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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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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작가 '위화'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허삼관 매혈기>를 비롯하여 <형제>, <무더운 여름>, <인생> 등 많은 작품이 있는데 나는 그 중 <인생>을 감명깊게 읽었다.  물론 <허삼관 매혈기>도 좋았다.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두보의 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문체가 시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짧고 명료한 문체에서 유유자적하는 도인의 시선처럼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소설가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독자의 마음 언저리에 닿을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위화의 작품이 인기있는 이유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인 듯싶다.

 

2009년 미국 퍼모나 대학에서 있었던 중국에 대한 강연을 준비하며 썼다는 위화의 신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었다.  중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등 저자가 가려 뽑은 10개의 단어에 담아 문화 대혁명 이후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파헤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국가로서의 중국이 변화하는 만큼 그 안에 사는 민중의 삶도 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가 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잔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P.353)

 

돌이켜 보면 나는 중국의 문화 혁명기에 버금가는 산업화의 시기에 자란 탓에 작가의 이야기가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5.18 만주화 운동, 외국 기자가 몰래 촬영한 그때의 실상을 영상으로 접했을 때 나는 충격과 함께 그 잔인함에 경악했었다.  교정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자보가 연일 나붙고, 학생회관 벽면을 장식하던 걸개그림과 교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오가던 화염병과 최루탄, 피 흘리며 끌려가는 학생들, 학사주점의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서 구슬프게 들려오던 민중가요, 국가 권력의 강압에 마냥 무기력하기만 했던 학생들의 한숨 소리와 막걸리잔 부딪는 소리...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사람들의 기억은 세월보다 빨리 잊혀진다.  이런 현상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시대의 격랑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세월이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우리는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  작가는 그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아프게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덮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을 때 문득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이화인 시인의 시 한 수.  위화 작가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은 독자라면 나즉나즉 읊어보면 좋을 듯하다.

 

길 위에서 길을 잃다/ 이화인

 

가끔은, 아주 가끔씩은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남겨진 한 뼘의 간격조차 좁히지 못하고

스쳐 지나쳐야만 했던 사람들

시선 속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한발 비켜서야만 했던 일들

문득 작은 파문으로 밀려와

흔들릴 때마다, 가끔은

아주 가끔씩은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산그늘이 어둠보다

한걸음 먼저 찾아드는 산방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먼지와 땟국에 물들지 않고 산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을 때

 

가끔은, 아주 가끔씩은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내게 주어진 길을 가면서도

진정,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인지 내게 되묻곤 한다

가끔은, 아주 가끔씩은

길을 가면서도 길 위에서 길을 잃고

길 위에서 길을 찾아 헤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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