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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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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시인의 시집을 주문하며

 

평생 단 한 권의 시집을 낸

한 시인의 이야기에 나는 울었다

그 시인의 유고시집을 주문하며

나는 또 울었다

시집의 가격은 단돈 칠천 원

그마저도 박박 지우고

할인하여 달랑 오천구백오십 원

 

아! 한 시인은 삶은,

죽어서 유골이 된 그의 한평생은

단돈 오천 원

 

피로, 눈물로, 한숨으로 짓고

한편생을 한(恨)으로 고쳤을

그의 시가

 

제 손으로 쓰고

제 손으로 거둘 그의 시는

이제는 누구 한 사람 돌보지 않는

추도시로 남아

독자리뷰 한 줄 없는

제문(祭文)이 되었구나

 

시인은 알았을까?

단돈 칠천 원

그마저도 할인하여

달랑 오천구백오십 원

 

덤을 주어도 시원찮을

그의 한평생에

누군가가 매겨놓은 판매가 칠천 원

산 자들은 그마저도 아까워 오천구백오십 원

 

구만 리 황천길에

노잣돈이 되어버린

그의 삶은

산 자의 눈물을 더하여

오천구백오십 원

 

아무도 찾지 않는 그의 시집을

'옛소, 잘 가시오' 주문하며

나는 울었다. 

 

생가 앞에 노제를 차리고 그 앞에 영정을 가져다 두는데, 한 사람의 삶이란 뭔가 하는 슬픔이 몰려왔다.  "엄마"하며, 이 길을 뛰어왔을 배고픈 아이 하나가, 엄마는 들에 나가고 없는 집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 하나가 저 들녘을 넘어 서울로 가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이젠 외로운 유골 한 상자가 되어 맨 처음 출발했던 그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에 사무쳤다.  (P.84)

 

이제는 '희망버스'로 더 잘 알려진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 온, 군부 독재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던 그 시절의 칼날 앞에 베이고 찢기고 상처 입으면서도 영혼만은, 양심의 가치만은 꼭 지키려 했던 작가의 몸짓이 아프다.  나는 어쩌면 내 삶의 이면과 그 속에 감추어진 비겁의 고백들을 한 줄 한 줄 끄집어 내며 내 가슴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동시대의 사람이, 동시대의 다른 누군가를 향해, 단지 소수라는 그 이유만으로, 또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변명으로 그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냉정함이 유난히 시린 2012년 2월의 겨울 끝자락에 고드름으로 맺힌다.

 

넥타이에 걸린 나의 양심이 자꾸 목에 걸려 책을 읽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도 아닌 21세기에, 군부 독재도 아닌 민주 시대에 '운동','저항', '인권',' 노동' 등의 옛 단어들이 닫혀진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드는 오후.  바람이 몹시 불었다.  시인의 아픈 추억이 하나 둘 바람에 흩날리고 책장을 넘기는 나는 몸서리를 치며 추위를 견뎠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는데, 나는 먼(또는 가까운) 미래에 가해자의 편에 서서(또는 가해자보다 더 무서운 방조자의 입장으로) 시대의 양심을 위해 투쟁했던 그들의 매서운 시선을 피하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나도 85호 크레인 사람들과 함께 맨 먼저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뵙고,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 올리고 싶다.  부끄러운 눈물 한 자락 올리고 싶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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