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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신은 무신론이 말하는 신의 부재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 존재인 악마에 대립되어 있다.  또한 존재는 비(非)존재가 아니라 실제의 체험이 나타내는 무(無)에 대립되어 있고, 우정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립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양면적인 방법이 매우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 전체가 이런 방법으로 쓰여졌다고 말할 수 있다."  (P.9)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자 위대한 작가로 추앙되는 미셸 투르니에의 신작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전통철학에 익숙한 현대인의 사고에 물방울처럼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위에서 인용한 작가의 서론은 현대 철학의 중심 축을 형성하고 있는 "구조주의" 개념을 무겁고 딱딱하고, 때로는 근엄하기까지 한 철학적 이론에서 한 발 물러나, 철학가의 입장이 아닌 일반독자의 수준에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작가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이런 발상은 그가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낙방한 뒤 작가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그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조명하고 해석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볼 때 문학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에 접근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여전히 철학에서 멀어지지 않았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소르본느 대학에서 동문 수학한 질 들뢰즈나 미셸 푸코는 현대 구조주의 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사람들이기에 작가의 사상이나 사유의 체계를 그들과 구별지어 생각하기는 어렵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했던 실존주의나 전통철학과는 달리 구조주의에서는 명증하게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를 포기한다.  오히려 '나 자신은 타인이다'라는 말에서 보여지듯 나는 말하여지는 존재, 생각되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삶의 외부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만들어진 개체이다.  무엇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실제적 대상이나 개념을 자세히 관찰하고 무심코 흘려보낸 세세한 것들을 꼼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돈 후안과 카사노바, 웃음과 눈물, 어린이와 사춘기 소년, 내혼과 외혼, 건강과 병, 황소와 말, 고양이와 개 등 서로 대립되면서도 한편으론 유사성을 갖고 있는 실제적 대상을 통하여 삶 자체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중요 요소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사유를 한 차원 더 높여보고자 하는 노작가의 지혜가 돋보인다.

 

"이 116개의 생각들을 옥타브 아멜랭의 방법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종합해야 할까, 아니면 잡다하지만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유의 자료로 그냥 내버려두어야 할까?  이 책에서는 생각들을 제시하는 순서 자체가 의미를 드러내는 선택이다.  따라서 나는 가장 특수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고양이와 말에서 출발해 신과 존재에 이르는 순서를 택한 것이다."  (P.10)

 

작가는 이 책에서 삶을 둘러싼 인식론적 개념을 어떤 범주와 이론적 해설이 아닌 사유의 방법을 제시하고 반대되는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사유를 확장하고 그 틀을 형성함으로써 전체적인 삶의 의미를 통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는 흔적이 엿보인다.  오류와 거짓된 사실 인식이 우리의 철학적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어쩌면 그런 시도도 하지 않고 사는지도 모른다.

 

"존재와 무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한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공의 이미지이다.  예를 들면, 별들이 떠 있는 공간을 떠다니는 지구 같은 이미지 말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어떤 텍스트들은 존재를 이러한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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