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서글프거나 서글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상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를 지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저지른 지난날의 과오를 덮으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상반된 행위는 모두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서글픈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둔 것이기에 더욱 쓸쓸하고 그 행위자에 대한 연민과 애처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잘못 살아왔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대체적인 반응은 자기부정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까닭에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는 없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에 자신이 죽고 난 후 자신에 대한 세간의 판단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기간 동안 자신의 과오를 적극적으로 부정함은 물론 자신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집착함으로써 자신이 죽은 후에도 그들이 자신을 대신하여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아줄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통렬한 반성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당당한 사람은 잘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제 전두환 씨의 법정 출두 장면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에 대한 연민이었다. 얼마나 나약하고 추한 모습이었던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대중 앞에서 반성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 그럼에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 내려질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몹시 두려워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 그는 딱 그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역시 많지 않았던 듯하다. 대중을 향한 적개심은 나약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공포를 드러낸 단 한 마디의 문장. "이거 왜 이래!" 공포와 적개심이 한데 뭉쳐진 언어 밖의 언어. 가장 나약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자기부정의 언어. 그리고 공포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더욱 과장된 몸짓. 그 모든 감정이 하나에 응축되어 터져 나온 말, "이거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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