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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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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에서 5일 동안 머무를 아파트를 구할 때 가장 크게 고려했던 것은 역시 교통과 가격이었다. 여행지로 다닐 곳에서 너무 멀어지면 힘드니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고 쾌적하면서 싼 곳이었으면 좋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가지고 집을 찾았었다. 그리고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교통편이 좋은 곳에 있는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저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수화물 무게를 초과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짐을 싸느라 녹초가 되어 리스본 아파트에 도착했다.


창문을 열고 멀리 보이는 리스본의 성당과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보는 순간 짐을 줄이기 위해 옷가지를 몇 개 버리면서 아깝다며 버럭 화를 났던 짜증이 다 사라졌다. 5일 동안 내가 머무는 아파트가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이곳에서 한 달은 더 있다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가 길거나 짧게 흘렀었다. 그동안 내게는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만난다는 것은 어쩔 때는 좋은 여행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집시처럼 떠돌아 다녔던 여행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스페인보다 이상하게 마음이 더 편안해졌던 포르투갈의 골목이 좋았고 언덕을 오르는 트램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행복했었다.

 

박연준과 장석주의 결혼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낯선 박연준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의 섬세한 감성을 마주하며 왜, 이런 사람을 이제야 알아봤는지 아쉬워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그들의 지인이 유럽여행을 한 달 동안 가게 되었고, 그들이 그 집에서 한 달간 호주 시드니에서 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곳을 걸으며 같은 시선으로 때로는 다른 마음으로 책을 펴냈다. 박연준의 글이 부드러운 곡선이라면 장석주는 곧은 직선처럼 글을 쓴다. 그래서 부드러운 곡선의 박연준의 글이 훨씬 빨리 읽히고 마음에 머문 문장이 많은 반면, 다른 책들의 인용 글이 너무 많은 장석주의 글은 사실 좀 답답하게 읽혔다.

 

두 사람이 시드니에서 한 달 동안 살아가면서 산책을 한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한곳에서 머물며 오랫동안 살아 보고 싶은 충동이 느꼈던 작년 포르투갈의 여행이 떠올랐다. 낯선 곳에서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느낌. 얼마나 근사한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들은 시드니에서 머물면서 이곳에서 계속 살라고 하면 살겠냐는 질문에 고민도 없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작가 장석주를 잘 모르지만 그의 책을 몇 권 읽으며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나만의 감으로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을 짐작했지만, 박연준은 왜 싫다고 했을까 궁금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수없이 지나 다녔던 골목을 그리워했고, 자주 찾은 식당과 그리고 그곳에서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을 떠 올리며 행복을 다시 한 번 찾았던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이란 있었던 곳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있었던 곳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 그래서 더 열심히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여행이 주는 미덕중에 하나가 아닐까.


 

 


“경의선숲길에 앉아, 익숙한 풍경이 주는 편안함을 만끽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이 사실이 왜 새삼 벅차오르는지 모르겠다. 먼 곳에서 이방인으로 한 달을 살아봐서 일까?” P99



 

내가 지나 다녔던 골목의 풍경을 말해주면 같이 그곳의 습한 기운까지 서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나의 고향이자 나의 집이 있는 곳에서 잠시 벗어 날 수 있겠지만 영원히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태어나면서부터 익혔던 나의 모국어로 원 없이 읽을 수 있는 나라, 그래서 ‘한국이 싫어서’ 떠났던 어떤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을 이해하지만 부러워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처음에 나는 그녀처럼 누군가 내게 이 나라를 떠 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자신이 있다고 느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것들의 새로움보다 익숙한 것들의 낡음을 더 사랑하고 있었다. 불안한 정치와 답답한 경제 상황은 눈감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것에 죄의식을 가지지 않으려고 매번 활짝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출근하고 있있는것, 그런 일상을 고마워하게 된 것도 어쩌면 여행에서 얻은 나만의 작은 교훈이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도시 경관 속을 걸으면서 나는 소리와 촉감과 냄새라는 매개로 시드니를 오감으로 받아들인다. 그 행위는 몸과 자아의 확장이고, 세상에 편재로 기쁨과 포만감을 몸의 그것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태평양을 끼고 펼쳐진 시드니 거리를 걸어보는 것, 그것이 시드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짜릿하고 흥미로운 모험이다. ” P159



 

익숙한 골목과 도시를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맞이하는 아침을 동경하며 읽었던 이 책을 통해 숨차게 올라야 집으로 갈 수 있는 언덕위의 내 집의 안락함을 떠 올려 봤다. 다시 돌아올 그들의 집이 있어 행복했다는 그들처럼 나도 리스본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면 아마도 골목 사이로 빠져 나가는 28번의 노랑 트램을 지겨워했을지 모른다. 돌바닥으로 만들어진 길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피곤했던 그 길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언제라도 전화 한통이면 만나서 폭풍 수다를 떨 수 있는 이곳의 산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제 결혼한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가게 될 그 도시의 산책은 또 얼마나 근사할지 궁금하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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