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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엘리엇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유난히 만발하게 꽃들이 피어나는 4월에 황무지를 보면서 생각했겠지. 나는 다른 의미로 견디기 힘든 3월이 지나 4월에 그런 느낌이었다. 봄이 참 예쁘구나. 이렇게 예쁜 봄을 앞두고 나에게 왜 그토록 버티기 힘든 일들이 일어났을까. 3월이 내게 깊은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봄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울 텐데 분홍 벚꽃들도 그저 시들해진 마음과 함께 아무 감정이 없을 때 읽게 된 책에 가슴이 훌쩍거렸다. 그녀를 통해 나의 이 괴로움은 스쳐지나가는 봄날의 바람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그간 훌쩍거린 3월이 미안해졌다.




지난 3월 내부적인 일들로 잠을 못자고 책도 읽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책을 읽는 일이 부질없어 보였다. 이렇게 책을 읽는다고 한들 그 어떤 것도 나를 위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간 미뤄 놓은 책들을 모두 다 구석에 넣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 달을 보냈다. 그동안 시간이 아까워서 한 번에 두 가지의 일도 했었던 나였는데 이토록 아까운 시간을 휴지처럼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제발 빨리 시간이 갔으면 했다. 지겨운 이 마음이 떨쳐 나가길 바랄뿐이었는데, 책속의 주인공은 참 부지런했다.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청각을 잃은 그녀는 소리 없는 세상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드렸고 그녀의 어머니 또한 말을 할 수 있게 혀가 굳지 않도록 연습을 시켰다.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해도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그녀가 마음을 담아 그린 귀가 큰 토끼 “베니”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때 잘나갔던 싸이월드 스킨 작가로 활동했던 그녀가 사람들이 떠나서 이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스킨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할 때쯤 그녀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불행한 소식은 그녀가 앞으로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개그맨 이동우가 앓고 있는 그 병, [망망색소변성증]. 점점 시력을 잃어 가는 그 병은 그녀가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보면서 아직은 이렇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한 그녀였지만 또 한 번의 시련에 그녀는 말했다. 잘 들리지 않아도, 앞이 보이지 않아도 어떤 것이든 만질 수 있는 손이 있지 않느냐고. 하나를 포기하면 나머지 것들에 충실하면 행복한 하루가 되지 않느냐고. 그것을 즐긴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냐고 말이다.

그녀의 캐릭터 “베니”가 유독 큰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녀가 듣질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은 들을 수 없으니 대신 많은 소리를 듣기 위한 큰 귀를 가지게 된 베니는 앞으로 앞을 보질 못할 그녀를 대신해 더 맑고 예쁜 눈을 가질지 모른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베니는 그녀가 적어 놓은 버킷리스트 30가지를 모두 클리어 할지 모르겠다.



그녀가 적어 놓은 버킷리스트는 사소한 것도 있고 굵직한 테마를 가진 것도 있다. 그녀만의 작업실을 갖기,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 드리기, 우유니 소금사막에 가서 누워보기, 김연아 선수 만나기, 소개팅 해보기, 운전면허증 따기, 살빼기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중에 살빼기에서 그녀가 참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 역시 여자였다. 예쁜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더 예뻐 보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싶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은, 어쩌면 너무나 일상적인 그런 하루를 가지고 싶은 사람이다. 그녀가 살을 빼고 싶은 이유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앞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고 누구에게나 예뻐 보이고 싶어서라고 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자신의 옷을 입혀줄 사람이 아무 걱정 없이 옷을 입혀 줄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걱정을 하지 않도록 건강하고 날씬한 몸을 가지고 싶은 그녀. 자신은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아무 옷이나 입어도 예쁠 수 있게 살을 빼겠다는 그녀의 이 소망에 그녀의 마음처럼 예쁜 누군가가 옆에 와줬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같이 해 봤다.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는 그 온기로

아주 작더라도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P189

그녀가 명동에서 프리 허그를 하고 싶은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몇 주 전 힐링캠프에서 김제동의 “고마워요, 들어줘서”를 보면서 나는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나의 얘기를 들어주며 나의 등을 쓸어주는 위로였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3월이 힘들었던 것, 그로인해서 4월도 쓸쓸해서 책을 읽기도 싫었던 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위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많은 것을 잃어가는 그녀가 느끼는 오늘 하루의 고마움이 내게는 온전한 몸으로 느끼는 가장 부족한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들리지 않고 점점 보이지 않은 오늘 하루도 괜찮다는 그녀는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아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버킷리스트가 꼭 완성되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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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23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마음은 괜찮아지셨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가끔씩 힘든 일이 생기면 모든걸 내려놓고 그렇게 흘려보낼때가 참 많아요 어떤분들은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지만 그 기분으론 책도 안들어오고 마음이 어느정도 진정된 뒤에야 글도 보이고 마음도 느껴지고 위안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마음이 힘들땐 굳이 무언가 생각해서 하려는것보다 마음에서 하자는데로 편히 지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것도 참 좋은거 같아서 몇자 남기고 갑니다^~^ 맛있는 저녁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래요^~^

오후즈음 2015-04-23 23:15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 감사합니다. ^^
한달동안 리뷰 기한이 있는 책 말고는 읽지 않고 있었는데 책을 읽었던 시간만큼 참 빨리 흐르네요.
봄인데, 봄을 느끼지도 못하고...벌써 4월말이예요. 뭔가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여튼...파이팅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