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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 앨리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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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국 정도를 여행한 친한 언니에게 “당신에게서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 본적이 있었다. 왜 이토록 떠나야 하는지 물어 보자 그녀는 여행이라는 단어보다 어느 한 나라의 소도시 이름을 듣는 순간 죽어 있던 연애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했다. 다시는 연애는 못할 것 같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다가도 가슴 뛰는 이상형을 만나는 것, 그래서 그 사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려서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날들을 맞이하는 열병을 앓아서 나도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그런 순간이 오는것 같다고 했다. 그 두근 거림은 여행책자에도 한 줄로 설명되어 있는 작은 시골 골목길을 만났을 때 생긴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골목길을 발견하기 위해서, 아니 가슴 뛰는 날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꼭 이렇게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상은 늘 떠나야 하는 이유가 없다가도 있기도 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면서 작가이기도 한 밥장님의 [떠나는 이유]는 그가 여행을 떠나면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아홉 개의 단어들을 제시한다. 여행을 준비하고 가려고 했던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함께 자연을 느끼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그 공간을 공유하는 것, 그렇게 삶의 시간을 나누고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일상의 행운일지 모른다. 그리고 돌아와서 혹은 여행을 하는 도중 남겨 놓았던 기록들은 그 작은 행운들을 다시 곱씹게 될 것이다.



한때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었다. 물론 그 부러움의 크기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지금도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에게는 참 위대한 작가 김훈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이런 밥벌이가 놀러가는 것처럼 여행을 즐기고 있다니 얼마나 부러운가. 하지만 유럽의 8일 이상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있었던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몇 달간씩 여행을 한다는 것을 부러워했다가도 안락한 나의 낡은 침대를 발견하는 순간 그 부러움이 모두 사라진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돌아갈 곳에는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하루 종일 잠을 잘 수 있는 아늑한 침대가 있다는 것, 그것은 세상의 가장 위대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나도 일주일 정도 버터 냄새만 가득한 면 종류 혹은 볶은 밥을 먹고 나면 늘 그리운 음식이 하나가 있다. 집에 돌아 왔다고 느끼는 것은 MSG 냄새가 가득한 라면 냄새이다.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거실에 놓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집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 집에는 라면을 사 놓고 먹지 않는다. 그만큼 즐겨 먹지 않는다.) 제일 매운 맛으로 라면 하나를 사와서 끓여 먹는 일이다. 적당히 잘 익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삭한 소리가 나는 김치와 함께 라면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긴 여행이 끝이 나서 집으로 돌아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저자처럼 나 또한 컴백 기념은 라면 한 그릇이다.




지난해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오사카로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그때 여행 스케줄을 짜면서 정말 힘들었던 것은 모두의 입맛에 맞는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첫날 한국에서 빡빡하게 짜온 일정을 소화를 다 하느라 힘들었던 그날들을 생각해보니 왜 우리는 지도를 놓고 스케줄 표를 놓고 길을 잃는 여행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안타까웠다. 물론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을 가져 오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당히 길을 놓치며 만나게 될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를 왜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블로그들의 여행 리뷰를 통해 마치 그 골목을 찾아 갔던 것도 같은 착각을 줄 정도로 친절한 리뷰가 많지만 어쩌면 그것은 때로는 진짜 여행을 방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패키지여행이 싫다며 자유여행을 떠나보지만 우린 결국 <론리 플래닛>을 철석같이 믿거나 스마트폰으로 쉼 없이 검색합니다. 뻔 한 길을 가면서도 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여행은 어쨌든 달라야 하기에 허풍만 늘어납니다. 낚시꾼들이 자기가 잡은 물고기가 더 크게 보이게끔 카메라 쪽으로 팔을 쭉 뻗어 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합니다. 하지만 <론리 플래닛>을 버리고 블로그에 소개되지 않은 길로 가야 ‘초행자의 행운’이 찾아옵니다. 행운은 우리가 길을 벗어나길 바랍니다.” P37



여행은 안전이라는 말과 함께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에 가면 안전하지 못해 큰일이 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누군가 그 길을 걸어가 보고 괜찮았다는 말을 들으면 나도 그 길을 걸어가야 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길을 잃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어느 곳에서 반짝이고 있을 행운을 믿으며 지도와 스케줄 표를 가방에 집어넣고 무거운 카메라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진짜 여행일 것이다.



저자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 가슴이 뭉클했다. 특히 같이 시장에 나가 오렌지를 팔기위한 애썼지만 소득은 별로 없었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고 맛있는 밥(하지만 그 밥은 사실 특별하지 않는 그런 그냥 집 밥)을 먹으며 흙탕물 같은 강물에 비린 손을 씻고 맨손으로 밥을 먹어도 전혀 비위 상하지 않았던 그 순간은 어쩌면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운일지 모른다.



나는 작년에 갔다 온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 가수 “수지”를 좋아해서 한국 이름을 수지라고 지었다는 열여섯 소녀는 수지와 전혀 닮지 않았지만 동네에 있는 작은 자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소녀의 해 맑은 웃음으로 오랫동안 일정으로 힘들었던 우리를 웃게 만들어줬다.


쉬린제 마을에서 만난 그녀도 내가 터키를 가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이었다. 터키가 좋아 오랜 여행 끝에 터키인과 결혼을 하고 무슬림이 되었다는 그녀에게 한국으로 돌아와서 선물을 보내주고 싶었지만, 소포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그녀 때문이라도 터키를 다시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여행은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떠나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여행은 사진이 아니라 사람을 가슴에 남겨 가는 것이었구나. 그런 여행을 왜 오랫동안 해보지 못한 것일까.



설 연휴 때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난다는 한 지인의 카톡에는 홋카이도 책과 함께 이런 글귀가 써져 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아파서 떠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상이 지겨워서 떠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떠날 이유를 찾느라 떠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떠남은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슴이 뛰길 원해서 떠난다는 언니처럼, 때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친구처럼 저마다의 이유와 함께 길 밖을 나서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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