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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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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친한 남자친구들도 그렇고 회사 남자 직원들도 그렇고 회사가 끝나면 자신을 위해서 특별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여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 친구들은 모두 주부가 되어 이제 카톡에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이의 엄마 이름으로 바뀌어 있고, 아이를 돌보는 일로 취미라는 것을 모두 잃어버리며 살고 있다. 한때 기타를 치러 일주일에 서너 번씩 레슨을 받으러 다녔던 친구의 기타는 오랫동안 연주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건강을 위해 시작한 수영이 아마추어 대회까지 나갈 정도로 실력을 쌓고 남다른 애정을 가졌지만, 수영을 하러 가는 시간에 이제는 아이를 돌봐야하는 엄마가 되어 시간이 녹슬어가든 탄력을 잃은 비싼 수영복은 이제 회복 불가가 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직장 동료들도 대부분 칼퇴근을 하면 곧바로 집으로 향하는 착한(?) 사람밖에 없다. 어느 유명한 미국의 저니맨처럼 직장을 취미처럼 생각하고 옮기는 내가, 직장이 취미 생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어떤 지인의 말에 사실 다소 충격을 받았지만 일부는 인정하고 수긍하고 있다.

 

 

하루가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지라 뭔가 재미있는 일상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늘 뭔가 허덕이며 살아가느라 주변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는 동안 그동안 왜 내가 가진 사물에 이토록 애정을 쏟지 않았을까 안쓰러워졌다. 수납 관련 책을 읽으면서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싶어서 언젠가부터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느라 이 물건이 나에게 주었던 감사함과 추억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사라져버렸다.

 

 

물리학 교수라고 해서 책상에 깔끔하게 실험 도구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건 이기진 교수의 책상은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글을 쓰고 연구를 하시는 걸까 궁금할 정도로 정말로 지저분해 보였다. 수납 관련 책을 쓰는 사람들이 보면 정리해 주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방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들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끊임없는 상상의 세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가 가는 즐거운 시간을 주기도 한다.

 

 

외국 여행을 나가면 늘 새것, 좋은 것들을 사가지고 오지만 한 번도 벼룩시장을 가서 낡은 것들을 사올 기회가 없었고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기진 물리학 교수의 책상과 그의 연구실에는 이런 물건들이 가득하다. 손잡이가 깨져서 다시 수선된 포트, 110볼트 전원이라서 이제는 더 이상 깎이지 않는 연필깎이, 도무지 어디에 쓰일지 장식의 의미가 있을지 궁금한 튀니지에서 사온 거대한 사자 조각, 이가 나간 도자기와 접시, 나무 손잡이가 되어 좋다고는 하지만 지저분해 보이는 벼룩시장에서 사온 1유로짜리 티 스트레이너, 칠이 벗겨진 그릇, 심지어 이제는 주인을 잃은 개집까지 있고, 의자 또한 땔감으로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삼발이 나무 의자까지 그의 주변에는 이렇게 낡고 오래된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그가 수집한 것들중에 가장 가지고 싶은 물건이 이 윌로스와 그로밋 라디오다.

 

 

 

뭘 이런 것들을 다 모으며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정말 괴짜인가 싶다가도 그가 커피에 대한 얘기를 쏟아 놓는 순간 딱딱한 물리학자이며 골동품 수집가가 아닌 그냥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난 에소프레소에 꼭 각설탕을 넣어 마신다. 잘 녹으라고 스푼으로 젓지도 않는다. 다 마신 후 녹지 않고 남은 설탕을 바라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뭔가 다 소모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충만감을 가져다준다. 다 소진된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커피 잔을 내려놓을 때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조금 남은 커피와 설탕이 남긴 흔적이 좋다.” P103

 

 

 

왜 이런 것들에 애착을 가질까 생각해보면 내전 중인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연구를 하고 파리에서 식구들과 공부를 하고, 일본에서 7년이나 외국 생활을 하며 느꼈던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 그리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그 때의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것들을 오래토록 놓지 않고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아끼며 사랑하며 애정을 쏟는 것 또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취미 생활을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어쩌면 내 친구들 혹은 주변의 지인들의 취미가 사라진 것은 다른 취미, 즉 삶이라는 버릴 수 없는 취미와 합의를 이루며 살기위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육아라고 늘 카톡에다 울부짖는 친구의 삶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는 연애의 시작으로 삶의 방정식이 달라져 예전의 취미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것이 고된 나날이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가장 소중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아닐까.

 

 

 

저자의 연구실에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겸해 실험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 일반인을 위해 쉽게 쓴 물리학 책을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해 줬지만, 우연히 그 학생이 쓴 리뷰를 읽으며 부정적인 자신의 책의 평가로 당혹스러웠던 저자이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그냥 민감한 사랑은 피해가며 서로 쿨하게 바라보자고 말한다. 자신의 책을 읽고 쓸데없이 딱딱하고 골치 아프며 재미없는 방향으로 논리적이기만 한 ‘재수 없다’고 말했던 그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내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런 취미가 없더라도 지금 살아가는 삶의 하나의 취미이고, 서로의 마음을 끼워 맞추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아가자고 얘기한다. 그래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도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그대로 공존할 것이라고. 그렇게 무모하게 그냥 살아도 어떠한 삶도 하나의 삶이 된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기진 물리학 교수는 가수 2ne1의 씨엘의 아버지라고 한다. 간혹 첫째 딸 채린이의 얘기의 얘기를 하면서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속에 있었던 채린이의 오래된 밥그릇이라는 제목의 글을 다시 읽었다. 어쩜, 이런 사랑스러운 아버지가 다 있을까. 문득 이런 아버지를 둔 그녀가 부러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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