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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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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봄꽃놀이를 가보겠다며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행들을 따라 짐을 싸고 출발했다. 그동안 봄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옛날 교회 오빠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상하게 나는 봄이면 늘 바빴다. 공모전을 준비할 때는 공모전이 봄쯤 있었기 때문에 꽃구경을 갈 수 없었다. 밤이고 낮이고 머리에 쥐가 날 때까지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현실을 즉시하고 공모전을 단념하고 멀어졌던 현실의 간극을 메꾸기위해 남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아야했다. 그랬더니 나에겐 봄꽃놀이는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것처럼 없어졌던 단어와 같았다. 그래서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은 꽃놀이를 즐기자며 내려간 남쪽 지방 여행이었는데 막상 내려가 보니 벚꽃은 이미 지고 파릇한 잎들이 무수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내 인생이 뭐 그렇게 화려했을라고 그렇게 단념하고 남은 시간을 꽃잎처럼 흩날리며 보내다 왔다.

 

 

 

실망스러운 여행을 뒤로하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참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미 져버린 남쪽 지방의 꽃들과 안녕이라며 속상해 했는데 집 앞 학교 담장에 손 벌리며 쭉 펼쳐있는 개나리며 바람만 조금만 불어도 흩날리는 벚꽃이 사월을 맞이하고 있었다. 멀리 내려가지 않았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구경이 있었는데 그동안 나는 왜 한 번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구경 할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후회가 되었다.

 

 

 

학교 앞을 서성이다가 아이들이 하교하고 운동장이 텅 비어 있을 시간에 테이크 아웃해간 커피를 들고 운동장에 앉아서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그 소리는 때로는 계절의 끝, 혹은 4월의 시간을 조금씩 지구의 축으로 움직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남쪽 나라의 여행이 없었다면 내 앞에 이렇게 훌륭한 마음의 휴식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내 손을 잡아 달라며 쭉 내밀고 있는 노란 개나리가 이렇게 예뻐 보일 수 있었을까. 몇 십미터쯤 나열되어 연분홍 꽃잎을 나부끼며 있어야 진정한 벚꽃놀이라고 생각만 했을 텐데, 열 그루 넘는 이 벚꽃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었을까. 분명 여행은 나에게 좋은 교훈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다.

 

 

 

벚꽃처럼 나이를 먹어도 화사한 시인 메리 올리버의 에세이 [완벽한 날들]을 그날 같이 읽으면서 나는 그녀가 집 앞에서 만나는 작은 꽃들과 동물들에게도 찬사와 안녕을 보낸 부분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첫 장을 펼쳤을 때, 그리고 몇 장을 더 읽고 나서 사실 그녀가 말하는 자연의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것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닭살 행각을 부리는 연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발연기에 나도 모르게 채널을 돌리고 말았던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았다고 하면 너무 큰 비약이겠지만 사실 그랬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을 찬란한 찬사까지 보낸 적이 없었다. 단지 자연의 고마움을 알겠지만 자연은 그냥 자연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하지만 시인 메리 올리버는 다르다. [완벽한 날들]속에 그녀는 자연의 모습은 정말로 완벽한 날들을 맞이하기 위한 아름다움의 단어 그 자체다. 그래서 그녀는 집 앞에서 만난 뱀을 보면서도 징그러운 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름이면 검은 뱀들이 크림색 인동덩굴 꽃들과 분홍 장미들 사이를 소용돌이치듯 기어갔다. 풀밭을 걷다 보면 뱀들의 검은 얼굴이 이국적인 꽃처럼 나타났다. 거의 항상 두 마리였고 가끔 세 마리일 때도 있었다. (중략)

뱀들은 이제 곧 다른 살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하지만 녹록치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자꾸 뻗어나가지 않으면 안되니까.” P67

 

 

그녀에게는 뱀도 세상을 살아가기 빠듯한 곳이라고 걱정을 한다. 그녀에게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위협적인 것은 없고 그냥 존재하는 자연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그녀의 성격은 이런 면들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닐까 생각된다.

 

 

 

“몇 해 전, 이른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쏟아지는 포근한 햇살 속으로 들어선 아주 평범한 순간, 나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그건 행복의 바다에 익사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행복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 P62

 

 

 

행복을 바라고 잡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니. 그런 것은 어떤 것일까. 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별안간 나에게 주어진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있었을까. 행복이 없었다고 생각했다가도 문득 그녀처럼 생각지도 않은 여행 사진을 발견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떠나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막상 같이 갈 여행 친구가 생겼다거나 할 때 나에게는 행복이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생각했었으니 그녀처럼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누군가에게 그런 날들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녀가 지켜보는 세상은 참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 같다. 물론 그녀가 뱀이 떠나는 길에 세상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한 것을 보면 그녀 또한 그런 세상을 견디고 겪으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 순수한 마음은 사실 부럽기도 하고 너무 새삼스럽기도 하다. 문학 낭만 소녀를 만난 것 같다가도 세상의 이치를 다 알아버린 중년의 혹은 노파의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우주가 우리를 위해서나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 그 섬세한 풍경들을 보이고 괴력을 과시하고 인식을 하는 건 분명 아니다.” 49

 

 

 

그녀는 아름다운 것은 그냥 아름다운 것으로 남겨져 있고, 그것을 좋아하며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녀의 에세이 첫 장을 읽고 너무 순수한 영혼이 적어 놓은 글인가 싶어 화들짝 놀라 덮었던 첫 장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버린다. 그녀가 찬미하는 세상을 나 또한 그렇게 찬미하고 싶고 찬사를 보내고 싶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P27

 

 

 

그녀의 물음들에 나도 나에게 물음표들을 던져본다. 나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일까. 난 세상이 아름다운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알아야 하는 것일까. 세상은 나에게 어떤 선물을 주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나는 그런 선물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기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아깝지 않게 잘 보내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웠던 것을 이제야 알았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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