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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ㅣ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평점 :
내가 처음 본 발레 공연이 “호두까기의 인형”이었다. 강약이 살아있어 보는 내내 숨죽여 봐야했던 공연은 최고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또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공연이었는데 아마도 발레리나들의 몸짓보다 나는 그 속에 담겨있는 신경쇠약증에 걸린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조숙하기만 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던 쇼팽이후 다른 작곡가들에 대한 관심이 극히 떨어졌었는데 “호두까기의 인형” 때문에 차이콥스키의 음악의 강약이 그 어떤 갈등의 폭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아노 협주곡만 좋아했던 나에게 신세계나 다름없는 웅장한 음악이었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음악가의 일생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죽음 때문에도 있다. 화가나 소설가들처럼 극한의 상황을 맞이하여 자살하는 이들의 삶처럼 음악가들도 영혼을 태우며 자신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러시아 작가가나 화가들의 삶은 늘 풍족하게 시작한다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기는 하다. 차이콥스키 또한 풍족한 삶을 영위하며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대저택에 기거하는 하인만 해도 십여 명이 넘고, 지금의 오디오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계로 음악을 들었다고 하니 신문명을 접하는 얼리어답터인 것 같기도 하고 부유했던 그의 미소년 사진을 보니 그가 이후에 겪었던 어려움은 생각 할 수가 없었다.
차이콥스키가 신경쇠약증에 걸린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은 사실 그의 호두까기의 음악만 듣더라도 그 강약의 폭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감정 표현의 극한을 다루고 구축했기 때문에 바그너의 음악처럼 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P218)
잔잔한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늘 그의 예민하기만 한 감성이 그대로 표출되는 음악은 그런 감성 때문에 힘들었을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기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게 표현하지 못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로 자신의 감정을 계속해서 베어냈을 그는 또 어떤 고통 속에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지 않았다. 남자들 사이에서 유독 연약하게만 보였던 차이콥스키의 모습은 당연히 법률학교속 같은 남자 동급생들에게는 어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가 선택했던 과부 나데즈다 필라레토브나 폰 메크의 만남 또한 이상하지 않았던 것은 정상적인 사랑을 해보지 못한 차이콥스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마지막까지 감정을 가져갔던 사람도 결혼한 부인이 아닌 메크여사가 아닐까. 그녀를 향한 절절한 편지들은 톨스토이처럼 서사를 잘 다루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극작가가 아니었을지언정 충분한 감성을 가진 천재음악가의 러브레터였다.
모차르트는 16세에 천재성을 드러낸 음악을 작곡했다지만 차이콥스키는 선천적으로 보여줬던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오페라가 실패를 했다가 다시 일어서고 성공하는 과정을 보면 어는 기업이 점차적으로 일어서는 석세스 스토리를 가진 기업역사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만만하기만 했다.
바흐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위대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에게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델에게는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헨델은?
헨델은 완전히 삼류라서 흥미조차 안생긴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P35)
뭐 이런 차도남이 다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참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창의성과 능수능란한 솜씨가 꾸준히 나타나지만 그의 천재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P36) 시간이 필요했던 그의 음악처럼 그는 늘 타인에게 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악몽을 만들어내고 그것 때문에 우울증의 고전적인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예술가는 늘 이토록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관현악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또 그렇게 보냈을까. 우울하게만 생각되는 예술가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음악과 만났을 때는 빛날 수밖에 없다. 정직하게 감정을 실어 넣은 음악에 그 어떤 첨부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작곡가 중에서, 특히 위대한 작곡가 중에서 삶과 음악이 이토록 노골적이다 싶을 만틈 대책 없이 일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인간으로서 차이콥스키는 정직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고 표리부동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무슨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가로서 그는 더없이 정직했다. 선율과 관현악 기법에서 보여준 대단한 재능과 단순명쾌한 음악 덕분에 r는 수백만 명이 사랑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P15)
이 책은 작가의 전기와 작가의 음악 ‘간주곡’으로 나눠있다. 작가의 일생을 골라서 읽어 볼 수도 있고 간주곡만 따로 읽을 수도 있게 만들어 놓아서 간혹 한 챕터씩 작가의 음악 강연을 듣것 같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책과 함께 포함된 작가의 음악 CD다. 주장의 음악 CD를 다 듣고 나면 책을 덮을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파노라마를 함께 타고 온 것만 같다. 그의 삶에 음악이 녹아있고, 시간이 흘러있다.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이후에 시리즈로 올라와져 있는 리스트를 보았다. 내 사랑 쇼팽이 있다. 39세만 세상에 머물다가 사라진 그의 삶을 이렇게 또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생각하니 떨리기만 하다. 책 시리즈가 멋지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위대한 음악가, 완벽한 장인, 강력하고 독창적일 때가 많은 정신, 위대하고도 넉넉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념이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인간 정신이 말살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늘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