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오래전에 본 일본 드라마 <스카이 하이>에서의 주 골조는 복수와 용서에 있었다. 타인에게 살인을 당한 사람이 천국의 문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됐는지 보게 되고 복수를 할 것인지 용서를 할 것인지 선택을 하게 한다. 복수를 하고 지옥으로 갈 것인지 용서를 하고 천국으로 갈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에 늘 망설이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용서보다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원통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죽게 만들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복수를 해주며 지옥행을 달게 받겠다고 한다.

 

등급 때문에 한참 말이 많았던 김지운 감독의 개봉작 <악마를 보았다>역시 죽은 약혼자를 대신해 복수의 칼을 가는 내용이며, 그 이전에 박찬옥 감독은 복수 시리즈를 내 놓았다. 그중에 우리에게 가장 많은 단골 대사를 남겼던 <친절한 금자씨>역시 복수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아픔과 고통을 잊지 않고 그보다 더 아픈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일지 모르겠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법처럼 내가 아픈 팔보다 더 아픔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 저 밑에 깔려있는 심리라면 심리이겠지만 어디 그렇게만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하지만 때론 이런 모든 것이 내가 전에 가지고 있었던 어떤 업(業)에서 온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나가는 말로 어떤 돈 많고 잘 생긴 연예인과 결혼하는 평범한 여자를 보고 때로는 이런 말을 할 때도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무슨 덕을 쌓아 저런 행운을 잡느냐”

 

카르마(Karm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업의 말로,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인과응보에 따른 결말을 예시할 수 있었던 소설 <카르마>는 작가의 시나리오 경력이 잘 배어 있는 작품이었다. 장을 나눠진 것도 마치 시나리오의 씬을 연결하듯 구성이 되어있었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성도 구성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아마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구성을 해 놓고 장면 분할까지 마쳐놓은 것 같은 소설 분량에 작가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10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그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방식 또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릴러물 같았지만 개연성 없이 등장한 인물이 한명도 없었고 화상자국의 남자며, 곽사장등 조연의 성격 그대로 유지해 온 것을 보면 작가 이상민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효진의 캐릭터를 이해하기엔 그녀의 얘기들이 너무나 대사를 통해, 그것도 마지막은 거의 장문의 연설을 통해 이뤄진 것은 너무 지루했다.

 

10년 전의 일이 다시 꺼내지면서 시작되는 한 가정의 파국, 하지만 파국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결말을 맺으려는 반전에 독자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있다.

10년 전의 사건을 꺼내 온 것은 시작이니 뭐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것이 없지만, 여자의 복수, 그것이 꼭 윤간이어야 했을까.

언젠가 어떤 스릴러물의 얘기에 어떤 기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복수를 하기위한 소재는 꼭 그것 말고는 없을까.

 

효진과 정희는 이미 원한을 사기에 충분한 위치에 놓여있다. 배다른 자매이고 아버지는 전처보다 후처를 더 사랑하고 그 후처의 딸은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착하기까지 한데, 돈 많은 전처의 딸은 후처의 딸과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효진과 정희 모두 똑같이 능력 있고 괜찮은 여자였으면 어떴을까. <어글리 베티>를 보면 모두 다 괜찮은 사람들이 나와서 좀 더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서로를 음해하고 속이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심은 얼마큼이나 되기에 저리도 못살게 굴면서 살까 싶었는데 좀 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움직임이었으면 진부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에 좀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효진과 정희의 관계를 알고 나서부터 점점 처지는 극 후반부의 사건 결말은 작가가 이제 곧 끝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들이 많다. 하지만 화상자국의 남자가 미선을 겁탈하는 장면에서 주는 극적 긴장감, 그녀가 가지고가야 하는 휘발유 때문에 생기는 안타까움은 또 한 번 느슨하지 않게 만들어가는구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놀라서 읽게 되었다.

 

효진과 정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미선이 영매가 아닌 채널러라는 것 또한 특이해서 새로운 장치가 나쁘지 않았다. 영혼의 파장을 수신하는 능력을 지니고 타고난 능력으로 고유의 채널을 찾아 영혼의 파장을 찾아간다는 채널러에 익숙하지 않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다.

 

만약 나도 그런 채널러를 만나게 된다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미선에게 더 없는 애정을 가지고 그녀의 마지막 반전을 위해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화면 속 장면을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감독의 속임수와 연출력이 작가에게 있어야 하고 그런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이야 무서운 사운드와 어두운 화면 속으로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지만 글로서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