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어제 저녁에 빵 사러 잠깐 나갔는데, 길가에 철쭉이 피었더라구요. 벚꽃은 약간 남았나? 밤이라서 잘 보이지 않던데요. ^^; 오늘도 잘 지내고 있겠죠?

 

 아, 왜 그 저녁에 빵 사러 갔냐구? 밤이나 새벽에 먹으려구요. 얼마 전에 장염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동안 못 먹은 게 아쉬워서 그런가 보죠. 아니, 아니, 난 원래 먹는 걸 좋아하잖아요. 사실, 장염이 다 나은 건 아닌데, 식탐이 더 강한 거죠. 에이, 뭐 그런 걸 궁금해하고 그래요,  새삼스럽게... 난 전에도 무게있고 볼륨감 있는 사람이었어요!!

 

 얼마 전에 끝난 주말연속극 제목이 <내 딸 서영이> 였어요. 언니, 이거 듣고 뭐 생각나는 거 없어요? 저는 피천득 <인연>이 생각나던데. 선생의 따님 이름이 서영이였지 아마? (아님, 안되는데... ^^; 그냥 우기자, 따님 이름이 아니면 집에 있는 인형이 서영이 였다거나 뭐라거나. ^^;)

 

 저는, 그 드라마 제목 봤을 때 어쩐지 이건 아버지 이야기 같았어요. 그런 건 사실, 시작도 하기 전에 생긴 알 수 없는 편견이라 해야겠지요. 그 전에 했던 드라마는 아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었을거야. 김남주와 유준상이 나오는 그 드라마를 엄마가 보기 시작해서 저도 보게 되었는데, 재미있었거든요. 근데, 연속으로 드라마를 본다는 게 약간은 죄책감(?)이 들어서... 라기 보다는 엄마의 눈이 무서워서 전 '서영이'는 안 봤지요. (우리 집에서는 넝쿨당은 김남주 드라마, 내딸 서영이는 서영이, 라고 간단히 불러요.) 그러나, 큰 소리로 거실을 점령한 그 드라마를 완전히 피할 순 없었어요. 그게 마치, 열심히 피하려고 해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는 인연(?)처럼 우리집 거실에선 주말 절찬 상영중이었거든요.

 

 거기다 말이예요. 막 빈정거리고 시끄럽게 해가면서 그 드라마를 보는 우리 아빠 때문에, 사실 좀 불편하기도 하더라구. 우리 아빠도 그 드라마에 상당히 몰입해서 봤나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점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요. 어째, 아버지들 나오는 장면에서는 불만이 없으신 것처럼 보여서 그래요.)

 

 저는요, 어쩐지 서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며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아요. 서영이라는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으로 자라 행복한 자기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인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근데, 이렇게만 생각하면 안 될 게, 서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을 테니까요. ^^

 

 갑자기 <인연>을 꺼내 온 이유? 언니 혹시 그 책 가지고 있어요? 제가 언니한테 선물했던 그 책이잖아요. 그 해, 아마 이 책이 이 표지로 새로 나왔을 거에요. 알라딘에 뒤져보니, 날짜가 벌써 십년 전이네요. 그러니, 보다가 누군가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아님, 이사 다니다가 없어졌을 수도 있겠고.

 

 제 친구는 이 책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같다고. 피천득님 글이 우리 교과서에 실려있었는지, 지금 와서야 크게 중요한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죠. 그 때의 기억과 마음이 오래 남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은 것들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전에는 싫었던 사람도 오래 지나고 보면 좋은 점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꽤 친했던 사람임에도 어느 순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이 책을 제가 선물 했을 땐, 그 책도 갓 나온 새 책이었겠지만, 이제 십여 년이 되어 누렇게 어딘가 표지가 변해있겠죠. 아무리 잘 보관해서 종이가 약간씩 변하는 일들이 생기곤 하잖아요. 그만큼 시간은 훌쩍훌쩍 가는데, 난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아요. 저도 나이 먹는 게 그런건가 싶어요.

 

 **언니, 봄날의 밤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동네에 산책가는 사람이 많았어요.

 이제 5월이에요.  곧 더워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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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영문학자이며 수필가인 피천득 수필집. 2002년 신판으로, 잘 알려진 <인연> 등을 비롯하여 80여 편의 수필이 실렸다. 이 책을 쓴 피천득 선생은 2007년에 세상을 떠났다.

 

 

 

 

 

 

 

 내 딸 서영이

2012년/유현기/이상윤|이보영|천호진|

 

  경제적인 어려움과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 단절된 채 살아가려는 딸과 그 딸의 주변에서 보고싶어 하는 아버지가 있는 한 가정. 사회적으로 부와 성공을 이뤘으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소녀감성의 어머니와 그럭저럭 원만한 자식들이 있는 또다른 가정. 또는 갑자기 중년의 나이에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려는 아버지와 현실적인 어머니가  가끔 말다툼하는 적당히 잘 지내는 가정. 이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만나 다시 또다른 자신들의 가정을 만들기까지의 이야기. 가족은 가족은 남이 아니며, 싫다고 부정할 수 없는 사람이며, 대가와 보상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아니기에, 끊을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주말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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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자기 직전엔 간식을 줄이라는 말, 그거 지키기엔 꽤나 어려운 거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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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5-02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천득 님의 따님 이름, 서영이 맞을거예요. 인형 이름은 '난영'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저도 참 좋아하는 수필이거든요.
봄날 밤의 산책은 근래에 해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강아지 운동시킨다고 낮에 주로 산책을 했는데, 말씀 들으니 이 봄 가기 전에 밤에 가까운 동네라도 꼭 산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니데이 2013-05-02 06:27   좋아요 0 | URL
따님이름, 서영이가 맞군요. (오, 다행이다.) 지금 책이 없어서, 맞는 것 같은데도 역시 자신이 없더라구요. 댓글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밤에 산책가는 걸 좋아하진 않는데, 어제는 오가는 사람이 많던데요.
어디선가 꽃향기도 나는 것 같고, 그냥... 좋았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