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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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백가 시대의 재조명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1권이 나왔다. 아직 2권을 사보지는 못했지만 1권을 통하여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이해가 간다. 조금 거칠게 표현해 보자면 맑시즘의 유물론이라는 프리즘을 가지고 제자백가 시대를 조명한다고 하겠다. 원래 리뷰의 타이틀을 유물론 강의 교재라고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굉장히 날카롭게 사유하기 때문에 유쾌한이라는 수식어를 첨가한 것이다. 요즘 딱딱한 인문학이나 정치에 대해서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인가 보다. 

  인간의 경제적 상황이(물적토대, 혹은 하부구조) 이데올로기와 사상(상부구조)를 규정한다. 

  유물론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접해본 사람이라면 위의 문장이 의마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물론은 맑시즘, 공산주의라는 빨간색을 아주 진하게 칠해놓은 개념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과거보다 덜하지만 여전히 빨간색은 옅어지지가 않고 있다. 게다가 인문학이라는 것이 얼마전까지 거의 사양학문처럼 여겨지던 시대이기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MB정권 들어서 인문학과 경제학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것은 당연히 유물론을 다시 집어드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빨간색이라는 무시무시함, 레드 콤플렉스를 걷어내고 유물론을 접하게 된다면 이만큼 설득력있고, 논리적인 해설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유물론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가? 여러가지 학설들이 많이 있겠지만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정신쪽으로 치우친 사상적인 편향을 바로 잡아 우리 삶을 보다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접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서구에서 기독교 정신과 철학이라는 거대한 이야기 앞에서 육체의 삶이라는 것은 그저 정신에 종속되는 변수로만 이해되었지만 근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과연 정신에 비하여 육체는 열등한 것인가?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규정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반대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물적인 것들이 정신적인 것들을 규정할 수 있다는 대답을 내놓게 된다. 꽤 복잡한 말이지만 간단하게 하자면 우리의 삶의 조건에 의해서 우리의 정신과 사상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중국 역사상 가장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다양했던 시기인 제자백가! 그 제자백가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온갖 잡스러운 학문들이 발생했고, 사불범정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온갖 잡스러운 학문은 유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다 스러지고 말았다고 이해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성리학이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유가가 현실적인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나오면서 성리학에서 양명학과 고증학으로 모습을 바꾸기는 하지만 그러한 변신도 유가 내의 변신일뿐 어쨌거나 유가의 사상이 절대 우위에 있다는 기본 전제는 바뀌지 않는다. 중국의 역사는,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는 철저하게 유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해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과격한 책까지 등장한 것이 아닌가? 

  강신주는 이러한 동양 사상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유가가 다른 학파에 비하여 사상적으로 우월한 것인가? 또한 우리의 사고는 유가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제자백가라는 말로 표현될 정도로 다양한 학설들을 고작 십 여가지의 학파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렇게 제기된 질문들에 의하여 강신주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부제 가운데에는 이러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왜 강신주는 제자백가의 재발견이 아니라 귀환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재발견이라는 말은 어떤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여 인정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제자백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재발견 정도의 수동적적이고 지협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제자백가들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발칙한(?)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겠는가? 

  1권에서 강신주는 제자백가는 이러한 유파가 있으며 어떤 사상을 주장하였다는 식의 전통적인 구조주의의 입장이 아니라 시대사적인 흐름으로 제자백가를 이해한다. 강신주에게 있어서 흐름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흐름을 무시한다면 유가, 불가, 도가, 법가, 종횡가 등등 제자백가의 사상들은 모두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서 발생하였다는 사실 또한 무시하게 된다. 주나라의 천하가 저물어 가자 주나라의 예법을 바로 세워서 질서를 세우고자 한 것이 유가요, 주나라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리고 법과 제도를 통하여 혼란을 잠재우고자 한 것이 법가이다. 외교적인 기술을 통하여서 현상 유지를 꾀하는 것이 종횡가이다. 다른 사상들도 마찬가지다. 주나라의 몰락, 그로 인한 혼란과 전쟁, 민생 파탄! 이를 잠재우고 사람 사는 세상을 설립하려는 필요에 의하여 제자백가가 출현한 것이다. 즉 삶의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온갖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유가가 오랜 세월 독보적인 통치 이념의 위치를 점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의 필요를 잘 잡아내고 그 요구에 맞추어 자신을 잘 변신시킬 수 있었던 유연함 때문이라는 것이 유가에 대한 평이다. 물론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신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게 되었고 그 순간 유가의 가르침은 타파되어야 하는 구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시대의 요구라는 점에서 제자백가를 바라본다면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오늘 SNS 통제라는 방통위의 초강수를 뉴스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철저하게 시대적인 요구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우리네 삶의 환경과 조건은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정신적인 가치들을 요구한다. 한국적인 예의라고 포장되었던 것들은 이미 상당부분 그 힘을 잃고 타파되어야 하는 구습으로 취급받았다. 요즘 열풍을 일으키는 동양 고전의 상당부분이 노자 장자 계열임을 떠올린다면 방통위의 가치관이 얼마나 이 시대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는지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제자백가의 귀환이라는 말 가운데에서 깨닫게 되는 또 다른 것은 통제를 통해 획일화를 꾀하는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이 시대는 다양한 제자백가의 사상들이 화려하게 귀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상적인 흐름이 아니겠는가? 

  조만간 2권을 구입해서 읽을 예정이다. 과연 관중과 공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신주는 둘을 가지고 어떤 썰을 풀어낼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춘추전국이야기와 열국지 교양 강의와 함께 읽는다면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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