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사용후기 -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
한윤형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한윤형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라는 책을 냈다고 하는데 난 그책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라딘의 신간 도서 목록에서 보았을 뿐이다. 그대가 아마 악플러들의 악플이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던 때 쯤일 것이다. 그래서 "올, 이런 책이 다나오네."하며 신기해했던 것이 전부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거금을 들여 구입하게 된 것은, 아직도 사놓고 읽을 책이 40권이 넘어가는 책 구매 속도와 독서 속도 사이에 버퍼링이 심하게 나는 지금에 굳이 이 책을 먼저 읽게 된 것은 순전히 "뉴라이트"라는 말 때문이다. "뉴라이트 사용후기"라는 제목도 흥미를 끌었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를 끈 것은 "상식인을 위한 역사 전쟁 관전기"라는 부제이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뉴라이트 사용후기"라는 말보다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라는 말 때문이다.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었지만 글쎄 뭐랄까?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자가 하는 말은 알겠는데, 왠지 저자의 주장 또한 저자가 그렇게 비판하는 편가르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의 태도는 저자가 그렇게도 비판하는 나를 따르지 않는 너는 좌빨이야라고 말하는 보수우익들과 우리의 주장에 반대하는 너는 수구 꼴통이야라고 말하는 진보좌익들의 모습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는 민족주의에 갇혀서 이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꽉막힌 사람이며, 철지난 이데올로기에 천착하는 비상식인이야. 대충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가 이런 나의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민족주의 담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라는 속좁은 담론에 사로잡혀서 과거에 천착하는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정치세력들은, 그리고 국민들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모두 한민족, 반만년, 단군의 후손이라는 허구적인 민족 담론에 사로잡혀 있다. 아무리 우리가 주장하고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건다고 할지라도 민족주의하는 담론은 근대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일제치하에서야 형성된 것을 가지고 좌우로 나뉘어져서 피터지게 싸우는 것은 우스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의 싸움조차 정작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채 변두리만 돌면서 변죽을 울리는 소모전일 뿐이라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기에 왕조국가였던 대한제국이나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농담이다. 오히려 우리는 3.1운동에서 그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대한민국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뭔가 마뜩치가 않다. 만약 우리가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딴나라 역사로 치부해 버린다면 고려와 남북조시대, 삼국시대와 고조선 시대는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통치자들이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단 말인가? 분명 이것은 아니다. 세련되게 말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그곳에서 찾는 정서적인 감정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저자는 민족의 정서적인 감정들이란 우리가 극복해야할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치부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우익도 아니고 그렇다고 좌익도 아니다. 비록 민주노동당에서 일한 전력이 있지만 진보세력은 아니다. 그렇다고 보수새력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자신은 상식인이며 재수가 좋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기의 위치를 포지셔닝하면서 뉴라이트를 비판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뉴라이트를 비판했던 사람들처럼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뉴라이트의 주장 가운데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것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그가 여타 진보세력이나 뉴라이트 비판자들과 다른 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뉴라이트의 주장은 순수하게 학설로 받아들일 때 일정부분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단지 저자가 뉴라이트를 비판하기 위하여 그들의 주장을 깊이 통찰한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순수한 학설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학문의 일관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분명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뉴라이트들이 어느 순간에는 극렬한 민족주의자들의 사상과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치적인 목적(가령 친일 청산이라는 부분을 피해간다거나, 이승만을 복권시킨다거나, 통일에 관한 문제들 특히 햇볕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을 위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잠시 포기하는 비겁한 행동을 취한다. 이것이 문제이고, 뉴라이트를 비판하려면 이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뉴라이트를 비판하면서 진보세력들의 모습 또한 비판한다. 그들을 비판하려면 그들의 학설의 논점을 비판해야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학자의 양심을 버린 부분을 비판해야 하는데, 그들의 출신성분을 비판하는 진보세력들을 비판하다. 말이 비판이지 좀더 정확하게 말하며 그들의 멍청함을 조소한다. 저자에게는 김기협도, 진중권도, 안병직도 모두 그밥에 그나물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하는 주장이 무엇인가? 양자가 편가르기 하지 말고 토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익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국민이 아니요 빨갱이이다. 진보세력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은 수구꼴통이요 친일파일 뿐이다. 접점없이 자기의 생각만 내세우면 결국에는 우리는 한 나라에 살면서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전혀 다른 인종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이 필요하다. 집권층은 국론이 분열된다고 협박하는데 국론은 원래 분열되어야 하는 것이며, 분열된 국론을 토론을 통하여 하나로 모으는 것이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누가 집권을 하든지 이러한 민주주의의 절차와 방식만 살아 있다면 그곳에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내가 세련되지 못해서 뭐라 콕집어서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 나라에는 토론 문화가 없다. 그저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말싸움과 감정의 대립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토를 달기 시작한 순간 그 사람과 나는 이미 적이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굳이 적을 만들면서까지 자기의 생각을 피력하려고 하겠는가? 그저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킬뿐이다. 혹은 익명에 기대어 인터넷에서 상식이하의 키보드 워리어가 되던지. 그렇지 못한다면 사생결단의 의지를 가지고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상대방을 초전박살내는 방법밖에는. 여의도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토론을 통하여 정책을 만들어 내고 토의를 거쳐 입법을 해야하는 국회가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의 화랑도를 펼쳐보이는 장소가 되어버리고 사생결단, 초전박살, 견즉필살이라는 전쟁터의 논리가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성급하게 국론을 모을 것이 아니라 국론이 분열된 것을 인정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다자간에 이성을 가지고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외에는 방벙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책의 주장 또한 대한민국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라는측면에서 한윤형이라는 사람은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한윤형의 생각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가? 나에게 새로운 상식인이 있음을 가르쳐 준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해서 논하자면 1부는 솔직하게 실망이다. 뉴라이트 비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의 생각을 살펴보고 간단한 코멘트를 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2부는 꽤 재미있다. 저자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일까? 2부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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