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그리스도인 - 현대 기독교 이미지 평가 보고서
데이비드 키네먼.게이브 라이언 지음, 이혜진 옮김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창녀 하나가 나를 찾아왔네. 집도 없고 몸도 병든 데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두 살 먹은 딸아이 하나 먹여 살릴 수 없는 처지였지. 울먹이며 하는 이야기가 두 살 된 자기 딸을 변태 섹스를 밝히는 남자들한테 돈을 받고 팔아왔다는 거야. 딸의 몸을 한 시간만 팔면 자기가 하룻밤 버는 것보다 수입이 좋다나. 마약 살 돈을 대려면 어쩔 수 없다더군. 차마 듣기에도 끔찍한 이야기였네. 일단은 내게 법적인 책임이 생겼지. 아동 학대 사례는 무조건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그 여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군. 교회에 가서 도움 받아 볼 생각은 안 해 봤냐고 겨우 물어 봤지. 그 때 그 얼굴에 스쳐 지나가던 충격 어린 표정은 평생 못 잊을 걸세.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안 그래도 충분히 비참한데, 가면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 거예요." 

                                                                    - 필립 얀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中  

  책의 제목이 Non-Christian이 아니라 Un-Christian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인의 반대말을 비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에서 외부인이라 표현하는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바라보면서 그렇게도 싫어하던 규정화를 우리 스스로 해왔던 것이다. 세상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 나뉘어 진다고 이야기해왔던 나에게 Un-Christian은 비기독교인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Non"이 아니라 "Un"인 것일까? 이 책에서 말하는 "Un"의 의미는 "非"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쁜"으로 번역한 말은 어찌보면 이것을 확인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한 번역은 "나쁜"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답지 않은"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간단하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위에서 언급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을 읽다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온 부분이다. 앞의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여인의 절규가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박혔다.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안 그래도 충분히 비참한데, 가면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 거예요." 그렇다. 어느샌가 교회는 비참한 사람을 더 비참한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분명 우리는 교회란 죄인들이 가는 곳이라 배웠다. 감옥보다 죄인들이 더 많은 곳이 교회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죄인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의인들을 위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의로운 사람, 잘나가는 사람, 부자인 사람 등 사회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은 정작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예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로 교회가 넘쳐난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은 복음주의권에서 나온 책이다. 미국의 복음주의권에서 나온 책들은 대체로 교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깝깝한 태도를 취하기 일쑤이다.(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 대하여 대응하는 방법들을 바라보라.) 비판을 아예 인정하지 않기 쉽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복음주의권에서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뻔한 내용인데하는 생각을 품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인은 위선적이다. 기독교인은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 기독교인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기독교인은 안일하다. 기독교인은 동성애를 혐오한다. 기독교인은 판단하려 한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외부인들에 대해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쉽게 고쳐지지도 않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 책은 이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말이다. 여기에 이 책이 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힘을 갖는 것일 아닐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 교회를 나간다는 것은 나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숨쉬듯이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게 교회란 당연히 가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에게 교회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힘의 원천이 된다. 이런 교회가 요즘 욕을 많이 먹고 있다. 미국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말이다. 교회는 복음이 아닌 다른 곳에 힘을 쏟고 있다. 장로 대통령을 이야기하면서 정치에 힘을 쏟고 친미에 힘을 쏟고, 반공에 목을 맨다. 시청 앞에서 반공집회, 친미 집회에 참여해 영어로 기도한다. 그리고 성조기를 흔든다. 5년후 정권이 바뀌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사회적으로 지탄 받고 돌을 맞지 않을까? 마음이 무겁다. 기독교인이 진지하게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의 물음에 진지하게 답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박물관에서, 문헌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종교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