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1
메리 풀브룩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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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꽤 오래 잡고 있었다. 몇 가지 작업하다가 막혀버린 부분이 있는데, 왠지 좋은 독일사 한 권 읽고 나면 묵은 숙변을 제거하는 비방약을 복용한 것처럼 한 방에 뚫릴 것 같았다. 그러나 중세를 거쳐 프로이센, 제2제정을 지나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가면서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그래서 한 문단 읽고 먼 산 바라보고, 한 문단 읽고 멍 때리고,,, 이러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 오해는 마시라. 이 책의 수준이나 서술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일단 내가 조금 읽은 독일 중세사를 지나 근대로 가면서 내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헤맨 점이 있었다. 특히 각 정당간의 입장 차이라든가 독일 정부 구성 등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이 저자분이 독일사를 보는 시각이었다. 물론 독일사에 대한 기본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미 갖춰져 있어야만 이 저자의 서술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준 낮은 내가 보기에도 기존의 독일사, 특히 독일 근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다른 책의 저자들과 확연히 다름이 보였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점도 되며, 또한 고민하며 읽게 만드는 점이 되기도 한다.

 

즉, 기존 독일사를 서술하는 다른 저자들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와 달리 비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근대에 도달한 독일의 역사를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케이스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독일인 저자라면 누구라도 히틀러와 나치의 망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근현대사의 모든 과정이 히틀러와 나치즘을 설명하는 원인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독일사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서술한다. 독일 정치의 전근대성과 경제의 근대성의 간극과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독일 역사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한다. 예를 들자면 독일이 중앙집권 통일국가로 향하는 과정이 다른 국가들보다 늦은 점이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영방의 군소국가들의 유지를 가능하게 만들어 독일의 빛나는 문화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보는 점. 그리고 저자는 민족국가, 통일국가의 과업을 이룩한 비스마르크 시대의 프로이센을 긍정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독일사 최초의 공화국을 붕괴시키고 양차대전을 일으켜 독일 분단을 가져온 원인을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과부하된 독일 사회의 긴장에서 찾는다. 이런 점을 저자는 기존 명망있는 독일사학자들의 견해를 요약해서 자신의 견해와 비교하며 함께 들려준다. 아주 재미있는 시각인데, 지금 내 수준에서는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지 감 잡을 수가 없다. 공부 더 하고 몇 년 후 다시 읽어봐야겠다.

 

본문 365쪽에 "모든 역사는 그것이 쓰여지는 시대의 산물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독일사에 대한 지식은 세계가 미, 소 양극으로 나눠져 있던 시기에 집필된 책들에서 얻었던 지식이었다. 같은 국가의 역사를 서술하더라도, 단 몇 년 차이인데 독일 통일과 소비에트 붕괴 이후 서구사의 서술은 확실히 뭔가 다른 면이 있는듯하다. 역사 서술에 있어 보다 다원적인 뭔가가. 

 

두서없이 쓰다보니 정작 책 내용 소개가 빠졌다. 이 책은 시리즈의 이탈리아사처럼 1장은 기본적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배경 지식을 알려 준다. 2장은 중세 독일 부분. 어떤 사학자는 카를 데어 그로세(프랑스에서는 샤를 마뉴라고 부르는)의 서로마 제국부터, 어떤 사학자는 신성로마제국부터 독일사를 본격적으로 서술하는데 이 저자분은 이 모두를 간략히 언급해 준다. 3장인 '종교개혁의 시대, 1500~1648'에서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이후 독일인들의 정치적 심성에 미친 영향을 서술한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고, 4장인 '절대주의 시대, 1648~1815' 부분은 일목요연한 정리가 좋았다. 이후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 산업화, 1차 대전,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나치의 득세, 2차 대전과 분단, 통일까지의 서술이 5장 '산업화의 시대, 1815~1918'와 6장 '민주주의와 독재, 1918~1945'. 7장 '두 개의 독일, 1945~1990'에 이어진다. 마지막 8장인 '독일사의 패턴과 여러 문제들'부분은 저자가 보는 독일사의 보편성과 특수성 부분이 잘 정리되어 있다.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자인 저자는 민족을 그리 신성하게 보지도 않고, 서독 위주의 통일에 과도한 의의를 부여하지도 않아서 특히 더 신선했다. 관심있는 분께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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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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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과 미국 역사에 대해 갖는 막연한 호감 말이다. 6,25 전쟁을 경험하신 어르신 세대들이야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의 감정을 현재 미국에 대해 품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가 조금 된다. 현재 집권 세력들이야 우리나라 서민들보다 미국 지배계급에 더 '프렌들리'하므로 이해가 많이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또래들까지, 어린 친구들까지 미국에 대해 중고교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 씌여진 그대로의 자유 정의 민주주의 수호국이라는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기브 미 초컬릿, 하던 세대들도 아닌데.

 

역사서를 읽어보면 내가 처음 역사를 배우던 80년대와 현재 2010년대의 역사 서술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는 예전과 달리 냉정하게 부르조아 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나폴레옹도 더이상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세계 각국사에 대한 서술에서 미국사 파트만은 예전 서술 그대로, 미국 보수 역사가들이 쓰는 말 그대로 서술되어 현재 학계의 수정주의적, 진보적 시각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식민지 엘리트들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 독립 전쟁은 자유를 위한 전쟁으로, 북부의 상공업 분야 이익을 지키고 남부의 연방 탈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 남북 전쟁은 노예 해방을 위한 거룩한 전쟁으로,,,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사를 통사로 서술한 대중 역사서를 읽을 때면 미국사 서술부터 먼저 읽어 본다. 미국사 파트의 서술을 보면 그 책의 저자가 얼마나 최근 서적들을 읽고 공부했는지, 저자의 세계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사람 만나 이야기해 볼 때에도 그렇긴 하다. 자신이 미국 국적의 백인 부자 남성도 아닌데도 왜들 이러셔! )

 

책 내용을 요약하여 미국사를 간추려 놓지는 않겠다. 저자가 서술하는 입장은 기본적으로 이렇다. 미국이란 나라는 원주민에 대한 침략과 학살에서 탄생했다는 것. 그러나 경건한 필그림 파더스의 이미지에 이 피묻은 태생은 가려진다. 영국의 압제에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선언한 독립선언서는 오직 백인 청교도 남성의 권리만 선언하고 있다. 흑인과 여성과 인디언에 대한 권리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비약적 발전은 늘 신참 이민자의 피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 강제로 끌려와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을 포함해서. 미국 사회의 심한 인종 갈등은 빈곤한 백인 하층 집단의 불만을 유색인종들에게 돌려 그들과 연대를 막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미국은 경제 위기가 있을 때마다 다른 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전통적으로 멋진 의미를 부여하거나 선제 공격이나 도발을 유도하고 참전하는 경향이 있다. 자국민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거나 부자 증세를 할 의향은 없다. 군비만 줄여도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포기해야 하므로 세계 경찰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한다. 물론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자의 허울아래, 챙길 이익은 다 챙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중은 꾸준히 연대하여 저항해 왔다,,, 책은 이런 관점으로 서술된다.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의미 부여에 능숙한 동물이므로 역사서를 읽을 때엔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통사류에 언급된 요약된 역사를 읽을 때면 더더욱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책의 분량상 '어떤 일이 벌어졌는데 이 일은 이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정도만 읽을 수밖에 없기때문에 저자가 부여한 역사적 의미만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긴장을 한다. 내가 나 스스로를 편견에 빠뜨릴까봐.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기꺼이 저자가 보는 입장에 서서 미국사를 보고 싶었다.

 

이 책은 2001년 <미국 민중사>란 제목으로 일월서적에서 2권으로 나뉘어 나온 두꺼운 책의 축약본인 셈인데, 최근 역사 4장 정도가 추가되어 나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인디언 학살사에서부터 클린턴, 부시 시대까지를 서술한다. 다른 미국사를 읽어 보고 전체 역사 흐름을 파악하고 계신 분께 권한다. 이 책은 그리 친절하게 통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제인 <미국 민중사> 그대로 부와 권력을 독점한 자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미국 정부에 대해 미국 민중들이 저항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책이다. 그렇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올바르다. 좋은 역사서란, 훌륭한 의미에서 가장 주관적인 서술을 통해 권력과 언론을 가진 이들이 숨기는 부분까지 서술해주는 책이니까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은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지만 두개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북한은 사회주의 독재 국가로, 남한은 보수적인 독재 국각가 되었으며, 각각 소련과 미국에게 예속되었다.

- 본문 210쪽에서 인용

 

위와 같이, 미국의 진보 사학자가 보는 미국 관련 한국사 서술을 읽는 재미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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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4
W.A. 스펙 지음, 이내주 옮김 / 개마고원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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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케임브리지 강좌 시리즈의 이탈리아사를 아주 감명깊게 읽었기에 연달아 독일사를 읽고 영국사까지 읽게 되었는데,,, 아! 이 책은 나의 예상을 초월했다. 이 책은 보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영국사가 아니라 정치사이다. 근대 영국의 정당들이 의회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속한 집단, 계급의 이익을 위해 경쟁적으로 입법을 하고 서로 견제하며 선거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급격한 혁명의 경험 없이도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몇 년도의 선거 결과는 어떠했고, 그 때 어느 당이 어떤 정책을 내세워 유권자에게 호응을 받거나 외면당하거나 했으며, 그 때 수상은 누구였는데, 왕은 어땠고,,,,, 하는 사실을 나열한 책이어서, 난 거의 멘붕 상태로 활자만 읽어 나갔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영국사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으로 소위 대영제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이 성립된 1707년부터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1972년까지의 근현대사이다. 딱 대처가 보수당의 신임 당수로 선출된 시점까지인데, 이 기간은 영국이 해가 지지않는 제국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시기이지만 영국 대중에게 민주주의 참여의 폭이 넓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저자 W. A. 스펙은 이러한 영국 근대사를 휘그 사가의 관점, 즉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영국국민들이 의회를 중심으로 왕과 귀족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한 역사로 보고 서술하고 있다. (참고로, 토리적 관점, 보수주의적 관점은 영국사를 자유의 투쟁과정이라기 보다는 국왕을 중심으로 지배계급이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타협해왔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했다고 보며, 마르크스 주의적 관점은 사회 경제적 관계를 중시하는데,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계급 갈등을 역사 전개을 동력으로 본다고 한다.)

 

영국 근대 정치사나 정당사에 관심있으신 분께는 강추. 그러나 기본적 영국사와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심지어 양차대전까지도 전쟁 진행 과정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전쟁에 임하는 각 정당, 정치인들의 입장과 유권자들의 선택 위주로 서술하고 있기에.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했다. 리뷰를 남길만한 독서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리뷰가 하나도 안 달려 있었기에 의무감으로 이 짧은 글을 남긴다. 주의하시라, 이 책은 일반적인 영국 근대사 통사가 아니라 정치사이다. 현재의 무식한 내 입장에서 얻은 소득은, 토리당과 휘그당만 나오다가 현대에 노동당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알아낸 일 정도. 그러나 나중에 다른 방향으로 공부하다보면 이 책을 다시 찾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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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만들기 -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영웅만들기' 프로젝트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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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적에 관심을 두고 읽어나가면서, 여러번 경악을 했다. 처음, 어릴적 읽었던  문학 서적이나 다른 쟝르 책들에도 어쩜 이렇게 서구편향, 강자 위주의 역사관이 바탕으로 깔려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았을 때 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또 역사책에 기록되어 다 객관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사실들이 다 어떻게 서술자나 서술되던 당 시대 혹은 정권의 이용가치에 따라 변형되었는가를 알았을 때, 이번에는 난 귀를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시야가 좁고 아는 것이 없어서, 내가 막연히 문제의식만 갖고 있던 주제들을 어떻게 학계에서 접근하는지,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답답했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검색하고 찾다가 만난 책이 바로 이 책. 절판되고 도서관에도 없어서 정말 고생해서 구해 읽었다! (이런 내가 기특하다!)

 

제목과 달리, 영웅 자체에 대한 담론은 없다. 6인의 전문 교수 필진이 서양사 근현대 속의 유명인물들이 각 국가별 시대별 정권별 요구에 따라 어떻게 영웅화되고 신화 속의 인물로 격상되어 이용되는지를 건조하게 짚어간 자료집 같은 성격이다. 연구진이 각각 다루는 인물들은 나폴레옹, 잔다르크, 엘리자베스1세, 비스마르크, 무솔리니. 이들은 영웅화와 신격화와 왜곡, 혹은 정권교체나 시대 변동에 따른 격하 등 부침의 과정을 거쳤지만 최종적으로 유럽 근현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각각 자국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강력히 이용되었던 인물들이다. 결국 우리가 위인전이나 세계사 책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있던 이들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객관적 사실'이란 강요당한 기억의 파편들일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들 남한의 독자들은 이들 서구의 위인들을 식민지 시대나 냉전시대, 독재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형시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책은 내게 아주 유익했다. 이 책을 골라 읽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이런 분들 덕분에 전공자도 아니고 그 나라 언어도 모르는 내가 편히 정보를 얻게 되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나에게는 참고 문헌 목록만 보아도 책값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필자에 따라 수준차가 고르지 않았고, 각 인물의 생애에 대한 개괄적 서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독자에 따라서는 좀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박지향 저자분의 엘리자베스 이야기는 그분의 다른 책에 나온 내용과 거의 겹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어릴 적에 유관순 열사나 화랑 관창 등 10대 소년 소녀 애국영웅들을 어른들이 찬양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어린이 위인전을 읽을 때면 무척이나 의아했다. 아니, 어른들은 뭐하고 우리 애들더러 나라를 구하래??? 뭐 이런 해묵은 궁금증이 어떤 영웅만들기의 매커니즘이었는지를 알게 되어, 늦게나마 삐딱했던 왕년의 소녀 독자, 지금 열대야 자정이지만 꽤나 상쾌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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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책 - 로마 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 / 민음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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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 "어떻게 한 권의 책이 600만 명을 학살하게 되었나"라고 크게 적힌 띠지, 한 권의 책을 입수하기 위한 나치 친위대원들의 빌라 폰타데모 습격 과정이 영화의 오프닝처럼 표현된 이 책의 프롤로그,,,, 하하, 여기에 낚이셨는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책 구입 당시의 기대와 달라 살짝 당황하거나 아예 이 책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르실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책은 <게르마니아> 본 책과 필사본이 세상에 등장한 경위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를 건조하게 추적한 책이다. 결코 흥미진진한 픽션적 성격을 가미한 대중 역사물이 아니다. 물론,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읽을만하다. 독자 자신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춰 기대를 하고 읽는다면. 그러나 기본적인 독일사와 대략의 유럽사를 모른 상태에서 읽는다면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바루스 전투에 대해 모른다면, 아르미니우스(헤르만)이라든가 토이토부르크 숲이 뭔지 모른다면, 유태인 학살 과정의 뉘른베르크법을 모른다면,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 악극의 관련성을 모른다면,,, 이 책은 "낚였다!"라는 기분만 들게 만들 수도 있다.

 

<게르마니아>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게르만족에 대해 쓴 역사책이다. 당시 타락해가는 로마 지배계층에 경고하기 위함인지 타키투스는 로마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인 게르만족의 야만성과 더불어 육체적 강건함과 전쟁시의 용맹함 등 미덕 또한 기록해 두었다. 이 책은 잊혀졌다가 근대 독일 통일 운동 시기에 독일민족 지식인들 사이에서 재조명 받게 된다. 고대 게르만의 사료가 양적으로 매우 부족한 실정에 게르만족의 장점이 정확히 문자로 기록된 이 책은 곧 민족이식이 없는 분열된 독일 민중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불어넣게끔 이용된다. 중세를 거치면서 필사되는 과정에 이미 약간의 왜곡이 가해진 이 책은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과 나치 시절을 거쳐 대대적으로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오독된다. 이러한 <게르마니아>의 오독 과정과 왜곡 실례 등을 저자인 고전학 교수 크레브스는 해박한 언어 능력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를 추적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사실 고대의 게르만족이란 매우 추상적이고 범위가 넓은 민족 개념이었고, 현대의 독일 민족울 비록 '게르만'이란 단어로 표기한다고는 해도 그때 그 고대 게르만족의 직계 순혈 후손이라고 볼 수도 없다. 히틀러나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 히믈러, 그외 독일의 권력자들이 그렇게 주장했더라고 해도 이는 역사적 근거가 있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현실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 권위를 지닌 <게르마니아>를 인용했을 뿐이다. 결국 위험한 것은 고대 문헌인 <게르마니아> 책 자체가 아니라 책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 한 구절을 침소봉대하여 이용하는 현재의 독자들이었다.

 

'낚이셨는가'라며 건방지게 이 글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고 읽지 못했다. 라틴어와 독일어를 모르기에, 저자 크레브스가 필사본 변형 과정을 추적한 부분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 읽기를 주저하거나 겁낼 필요는 없다. 대중 역사책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세부사항의 정확한 이해라기보다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주제의식 느끼기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좋은 대중역사서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확실한 주제의식, 즉 왜 우리가 이미 지난 과거 역사를 알고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명확히 주기 때문이다.

 

비단 <게르마니아>에 대한 해석 뿐이겠는가. 과거 역사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국가별 분쟁이나 겨우 스포츠 행사일뿐인데도 과도한 민족 이데올로기의 주입을 유도하는 지배계층의 행태를 보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권을 정확히 드러내는 정치인의 역사 발언을 보라. 역사 왜곡과 민족 신화를 주입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600만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는 지금도 우리 곁에 널려 있다. 이렇듯 과거 역사를 해석하고 이용하는 시각을 보면 현재의 각 집단간의 이권얽힘이 보여 그들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역사서 독서, 매우 유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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