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하는 뇌 - 기억력·집중력·공부머리를 끌어올려 최상의 뇌로 이끄는 법
마르틴 코르테 지음, 손희주 옮김 / 블랙피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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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에 많은 관심이 있던 터라 읽게 되었다. 공부하는 중이어서 기억력, 집중력, 공부머리를 끌어올려 최상의 뇌로 이끄는 법이라는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아주 만족스럽다. 일전에 읽었던 한소원의 변화하는 뇌는 뇌가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와 뇌 가소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은 부제의 내용대로 최상의 뇌로 만드는 비결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뇌는 인간이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마르틴 코르테는 브라운슈바이크공과대학 신경생물학 교수이며, 세포를 기반으로 학습과 기억, 망각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신경과학자이다. 성취하는 뇌는 최신 뇌과학과 신경학을 기반으로 최상의 성과를 내는 뇌의 비밀을 담고 있다. 저서로는 전두엽이 춤추면 성적이 오른다, 뇌는 청춘(Jung im Kopf)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학생은 물론 직업과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학습자로 염두에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최적의 뇌를 만들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의 구성은 1장 활용도 낮은 당신의 뇌,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 2장 뇌 기능 전반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방법 3장 뇌의 노화를 늦추며 사는 법 4장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5장 똑똑한 두뇌를 만드는 방법이다.

 


1장 활용도 낮은 당신의 뇌,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

 

 흔히 머리를 좋게 한다는 방법으로 스도쿠, 십자말풀이가 한창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뇌를 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문제를 풀면서 재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뇌의 성능을 향상하는 데는 유익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뇌의 수행 능력은 호기심과 동기 부여가 끈기를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는 그릿(Grit)’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음에 품은 고집스러운 열정과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한 끈기를 의미한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 결과를 통해서 재능이나 소질, 지능 지수보다 인내심을 갖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능력이 학습 결과를 더 많이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뇌의 수행 능력은 호기심과 동기 부여가 끈기를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2년 전 박민수 외 공저 공부 호르몬이란 책에서 멀티태스킹이 뇌를 혹사시킨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여기서도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뉴런의 최고 활동 속도는 겨우 1,000헤르츠(1초 동안 진동 횟수)인데 컴퓨터 시스템은 기가헤르츠(09개 자릿수)로 뉴런보다 백만 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주의력이 흐려지고 뇌가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연산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 뇌는 주의 집중하는 정보들만을 인식하며 일시적으로 저장되는데 이를 작업 기억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뇌의 수행 능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도쿠나 십자말풀이, 뇌 기능 개선 영양제나 두뇌 트레이닝 앱이 아니라 작업 기억의 강도 조절이라는 것이다.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9가지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다. 명상하기,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기, 운동하기, 브레이크 장착하기, 숙면하기, 목표 세우기, 시간을 통제하기, 독서하기, 의식적으로 중단하기 등이다. 특히 수면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튀빙겐 대학의 얀 보른(Jan Born)의 연구에 의하면 밤에 적어도 7시간은 자야 작업 기억이 충분히 쉴 수 있다고 한다. 일이나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2장 뇌 기능 전반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방법

 


 이 장에서는 뇌 기능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연상하기, 집중하기, 변화 주기, 함께 하기, 암호화 하기, 휴지기 갖기, 예측하기, 독서 하기, 역동적인 자아상 갖기, 무의식적인 루틴 버리기.

 


 앞서 언급한 멀티태스킹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이 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ADHD(주의력 결핍 장애)는 전두엽의 부족한 연산능력과 관계가 있으며 특히 작업 기억을 관여하는 뇌의 영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겪는 사람은 매우 짧게 집중하며 쉽게 정신을 빼앗기는데 멀티태스킹이 바로 ADHD와 유사한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멀티태스킹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과제를 순서를 정해놓고 하나씩 처리하라고 한다. 그러면 시간은 적게 들이면서 두 배의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신경심리학자인 러셀 폴드랙은 멀티태스킹으로 일하면 경험하고 처리한 것을 훨씬 적게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작업 기억의 용량이 작다는 의미이며 결국 에너지를 아끼려는 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수단과 노력을 기울여도 멀티태스킹을 절대 잘 해내지 못하며 여러 과제를 이리저리 번갈아 가면서 할 뿐이라고 했다. 또 실수를 하는 횟수는 많아지고 집중 시간은 짧아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미래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능력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니 꼭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기대이다.

 

 

 

무의식적인 루틴 버리기(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가급적 자세하게, 모든 세부 사항을 그려보는 일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목표가 확고할 때 뇌는 성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책읽기를 즐기고 있으니 독서는 그 자체로 유익한 두뇌 훈련법이라는 말이 정말 반가웠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습관과 연령에 상관없이 종이책을 가지고 공부했을 때 실제 장점이 많다고 했다. 그 이유는 종이책의 텍스트가 3차원적 질서를 따르고 뇌와 모든 감각은 물론, 몸 전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여하기 때문(P134)이라고 한다. 전자책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 냄새를 맡고, 읽으면서 남은 분량을 확인하는 일, 밑줄도 치고 포스트잇도 붙이며 읽는 습관은 종이책으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하는데 사고 과정에 신체적 구성 요소가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종이책이 갖는 우월함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진화 과정에서 기억이 공간 기억에 의거하는 뇌의 구조에 원인이 있다면서 발광 모니터보다 사람 눈을 덜 피곤하게 한다는 점 등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런 장단점이 있지만 둘 다 뇌를 영리하게 만들고 뇌의 성능을 개선하는 훈련방법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3장 뇌의 노화를 늦추며 사는 법

 

 동안의 외모를 갖고 싶은 소망처럼 아마 젊은 뇌를 갖고 싶다는 소망도 크지 않을까 싶다. 알츠하이머나 치매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가까운 주변에서 듣게 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는 뇌와 운동의 상관관계, 뇌를 위한 현명한 식단 짜기, 뇌는 쓸수록 젊어진다, 스트레스는 반드시 해소한다, 외로움을 피하라 등 뇌의 노화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환상은 갖지 말라고 한다. 뇌는 늙기 마련이기 때문에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이런 상황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뇌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지 알고 싶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고 놀랐다. 비만이란 흔히 말하는 건강과 미용상으로만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비만이 뇌의 최대의 적(P177) 이라고 했다. 특히 복부 둘레에 쌓이는 지방은 몸속의 염증을 촉진시켜 뇌에도 수십 년에 걸쳐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뇌에 유익한 현명한 식사법은 다양한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먹고, 고기는 줄이고, 생선을 더 많이 먹는다, 포만감을 주는 단백질은 많이, 탄수화물은 적게 섭취한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당분이 많은 과일 주스는 피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 얘기를 작은 아이에게 말해줬더니 엄마가 책 읽고 이야기해 주는 걸 들어보면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4장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이 장에서는 디지털 미디어와 AI가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이 가장 관심을 끌었다. 이에 앞서 2018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우버(Uver)차량의 사례를 든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어둠 속에서 길을 건너던 사람을 감지하지 못했고, 차 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차량에 부딪히기 몇 초 전에 보았지만(해결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기술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람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때 아주 나쁜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서 디지털화된 학습 도구에 치우치기보다는 아날로그식과 디지털식 학습을 서로 절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뇌에 관한 오해는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뇌의 10퍼센트만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신경학자들이 이런 정의를 내린 적도 없으며, 1910년 미국의 한 서점에서 뇌의 잠재력을 10퍼센트 더 올릴 수 있다는 광고 문구를 이용해 책을 판매 한데서 와전되었다고 한다. 우리 뇌엔 이런 한계는 없으며 가장 좋은 것은 평생에 걸쳐 배우는 것(P243)이라고 한다. 더구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실제로 뇌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P246)고 했다. 공부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몸의 다른 신체기관은 사용할수록 노화가 빨라지지만 뇌는 정반대로 쓸수록 성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한 몸에 있는 기관이면서도 이렇게 반대되는 현상이라니. 그나마 모두 나빠지는 건 아니니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5장 똑똑한 두뇌를 만드는 방법

 

 이 장에서는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힘, 자긍심 갖기, 내면과 대화하기, 이성이나 직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의지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참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키웠던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태교 이야기 말이다.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은 물론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도 뉴런의 손실이 가장 적은 곳은 음악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는 뇌 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배 속의 아기에게 음악을 들려준다고 해서 지능 지수가 높아지는 건 아니란다. 신화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제 태교는 그만두어도 되며 산모가 음악을 들으면 긴장이 풀리고 몸이 편안해진다고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한다.


 

 내면과 대화하라는 부분은 최근 내가 활용해 본 방법이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의 일이다. 원고가 정말 안 써져서 거의 한 달을 고민하며 힘들었었다. 그때 나는 매일 일기를 쓰며 나를 다독였다. 물론 글제를 떠올리고 목차를 생각하는 노력을 하면서 말이다. ‘좀 막히는 경우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런 때도 있는 거지, 항상 잘 써질 수 있겠니. 넌 잘 쓸 수 있어, 결국은 써낼 거야.’ 나에게 이런 말을 소리 내어 말하기도 하고 글로 쓰면서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응원했다. 그런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알맞은 주제가 떠올랐고 원고를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내용 전부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는 내면의 대화를 뇌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진짜 대화로 여긴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가 상상 속의 와 대화를 하는 셈이란다. 또 내면의 목소리가 맡은 역할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절반으로 줄임으로써 스트레스로 인한 압박감을 낮춘다고 한다. 혼잣말은 용기와 신뢰를 불어넣고, 이를 통해 다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게 하며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니까, 머릿속에서 자신을 위한 트레이너나 코치가 되라고 한다. 중요한 건 넌 할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주문처럼 외우는 게 아니라 그릿(Grit)’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은 뇌과학 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이 책은 공부하는 나에게 최상의 뇌를 만드는 법을 선물해 주어서 더욱 유익한 시간이었다. 유용한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페이지마다 밑줄을 쳐 가면서 읽었고, 게다가 재미까지 있어서 몰입하며 읽다 보니 금세 읽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인간의 뇌란 정말 신기한 존재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현재 공부 중이거나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공부머리를 끌어올리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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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 하이쿠 선집 -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마쓰오 바쇼 지음, 류시화 옮김 / 열림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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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문학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하이쿠를 여러 책에서 접하고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날 것 그대로의 하이쿠를 처음 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도록 마음에 와 닿았거나 기억에 남는 하이쿠가 거의 없었다. 그 후 나쓰메 소세키의<풀베개>를 비롯하여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하이쿠가 언급되어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후자의 책에서는 작가가 바쇼의 기행문 오쿠노호소미치細道 깊은 곳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제목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제대로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읽게 되었다. 1,100편의 하이쿠 중 선별한 대표작 350편과 역자의 해설이 함께 들어있다.

 

 한 페이지에 한 편의 하이쿠와 일본어 원문이 실려 있다. 처음 하이쿠를 접했을 때는 일본어 공부는 오랫동안 쉬고 있던 상황이어서 잘 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요즘 한창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인지 한 글자 한 글자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로 읽었고, ()()로 읽었던 모양이다. 옛날에 쓰이던 글자와 오늘날의 언어변화를 짐작해 볼 수도 있었다. 우선 하이쿠 소재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무엇이든 하이쿠의 재료가 된다. 자연은 물론 일상에서 얻은 소재를 다루어서 일본의 문화, 풍습 등 에도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역시 어떤 책이든 마음에 다가오는 때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렇게 열일곱 글자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함축된 단어 너머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역자의 해설이 있었기에 더욱 스며들었을 것이지만. 역자는 하이쿠를 감상하는 독자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배경설명과 정평 있는 평단의 해설을 요약해서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꽃은 싫어라

사람들의 입보다

바람의 입이

 

(はな)にいやよ世間(せけん)(くち)より(かぜ)(くち)(P27)

 

 

 꽃구경을 하는 축제인 하나미はなみ[花見]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벚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화사하다. 저마다 이 꽃 저 꽃이 예쁘다고 함박웃음을 웃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로 떠들썩한 분위기가 그려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들의 입이 미울까. 저 화사한 꽃들을 다 떨어지게 하는 바람이 더 밉다는 것이다. 절대로 관찰하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하이쿠가 나오겠는가. 이것은 19세에서 29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란다.

 

서리 밟으며

절룩거릴 때까지

배웅했어라

 

(しも)()んでちんば()くまで(おく)りけり(P43)

 

 

 ‘아침 서리를 밟으며 그대를 배웅하러 나왔다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함께 간 것이 결국 다리를 절룩거릴 정도로 먼 곳까지 갔다.’ 하이쿠 앞에는 이 말이 적혀있는데 시인 시유(四友)와 작별할 때 쓴 작품으로 가마쿠라에 가는 시유를 배웅하러 나섰다가 결국 끝까지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헤어지는 것이 그토록 아쉬웠을까. 끈끈한 인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먹으니

몸에 스미는 바람

 

()ざらしを(こころ)(かぜ)のしむ()かな(P66)

 

 

 ‘()ざらし(노자라시)’는 들판에 버려진 해골이라는 뜻으로 바쇼가 41세의 가을, 최초로 방랑을 떠나는 절실한 각오가 담겨있는 하이쿠라고 하겠다. 하이쿠 지도자로 명성과 지위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무소유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욕심을 버리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백골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다짐했더니 뼛속에 바람이 스며든다. 하이쿠를 읽는 자체로도 오싹한 한기가 느껴진다. 이 시에서 제목을 딴 여행기노자라시 기행 ざらし紀行의 서문에 실려 있다고 한다.

 

종소리 멎고

꽃향기는 울리네

저녁 무렵

 

(かね)()えて(はな)()()(ゆう)(かな)(P146)

 

 이 하이쿠는 40대의 작품으로 자신의 시풍에서 벗어나 당시의 언어유희를 따른 느낌을 담고 있다 한다. 종소리(청각), 꽃향기(후각), 저녁(황혼 녁/시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시작법을 엿볼 수 있다. 옛날 국어시간에 배우고 암기했던 공감각적 표현법을 떠올리게 한다. 바쇼의 작품 외에도 동양의 시문학에서 자주 시도되는 기법이라고 한다.

 

 

(P177)

 

 하이쿠를 음미해보고자 필사를 해 보았다. 오랜만에, 그것도 잘 써보려고 하니 잘 안 된다. 열 번은 썼나보다. 더 이상 손이 아파서 안 되겠다 그냥 올리자. 이 시는 46세의 봄, 바쇼는 간토, 오슈, 호쿠리쿠 등 일본 동북 지방을 지나 중서부 내륙까지 도는 도보 여행을 출발한다. 스미다가와 강의 다리까지 배웅 나온 문하생들에게 준 작별의 시로 오쿠노호소미치서문에 실려 있다. 자신은 하늘을 나는 새로 뒤에 남은 문하생들은 물고기에 비유했다.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겠지 더구나 노쇠한 스승의 떠남이라니.

 

보리 이삭을

의지해 부여잡는

작별이어라

 

(むぎ)()(ちから)につかむ(わか)れかな(P311)

 

 

 방랑의 삶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여행길에 수많은 문하생들을 찾아 하이쿠 모임도 하고 후원을 받은 거처에서 쉬기도 했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면서 객지에서 세월을 보내는데 몸이 성할 리 없다. 51세의 음력 5월 교토 지역으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가 음력 511일 다시 에도로 출발하면서 가와사키(도쿄 남쪽의 도시)까지 송별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남긴 작별의 하이쿠다. 체력은 이미 바닥나고 몸은 허약해져 있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보리 이삭을 부여잡는 작별이라니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절실함과 슬픔이 파고든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 바쇼나 잇사의 하이쿠가 언급되어서 상당히 의아하고 신기했었다. 동양권도 아닌 영미소설에서 말이다. 오쿠노호소미치 細道 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행문이며 외국에 가장 많이 소개된 일본 고전 작품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하이쿠의 성인 바쇼는 세계에 일본을 알리는 지대한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읽는 중에도 다 읽고 나서도 멈출 수 없었던 생각은, 우리도 우리 나름의 정서와 멋이 담긴 정형시 시조가 있으며 그 이전으로 들어가면 고려가요, 향가 등 우수한 작품이 많은데 이것이 세계에 얼마나 알려졌을까 궁금해졌다. 전통을 아끼고 계승하는 면에서는 어쩌면 한 수 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청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짧아서 말하다 마는 듯한열일곱자의 짧은 시구에서 한 편의 이야기를 상상할 여지를 준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안의 시인을 깨우는 일’(P404)이라는 역자의 말에 매우 공감된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의 멋을 알게 될 것 같다.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하이쿠를 자주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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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먹는 즐거움 - 한 그릇으로도 온전하게, 일즙일채 식사법
도이 요시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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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 가정에서 직접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밖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잔치에서 먹는 뷔폐 음식은 얼마나 우리의 오감을 얼마나 황홀하게 하는가. 맛과 색깔, 종류도 다양하게 잘 차려진 음식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최근 결혼식장에 갈 일이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배고플 때 엄청 먹을 것 같아도 두세 번 가져다 먹으면 더 이상 못 먹는다. 더구나 몇 시간 지나면 갈증을 느끼며 물을 마시기 바쁘다. 달고 자극적인 향신료로 무장을 한 음식이 갑자기 들어와서 속에서 놀랐을까. 계속되는 이 갈증은 뭘까 궁금해지고 살짝 마음이 꺼림칙해지기도 한다.

 

<심플하게 먹는 즐거움>은 일본 가정식 연구가가 제안하는 집 밥의 미니멀리즘 혁명이다. 그간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한 삶을 살자는 메시지였는데, 이제는 식생활에도 미니멀리즘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트랜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인은 못 먹어서보다는 너무 먹어서 각종 병에 시달린다. 단순하게 요리 레시피를 전달해주는 책은 아니다. 식생활과 삶의 철학적 사유라고 할까. 그것이다. 식사란 단순히 먹는 일만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먹으려면 해야 하는 일들 전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식사와 삶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일즙일채란 무엇일까. 바로 ,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 절임을 말한다. 저자는 일즙일채를 일종의 시스템이자 이상이자 미학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바빠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살아 있는 한 먹는 행위를 멈출 수 없고,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면서 매일 무엇을 해 먹을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단순한 , , 절임(채소 절임)’을 기본으로 삼으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바쁜 현대인에게 최적의 식사이며 건강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는 저자의 경험담에 호기심이 급 발동한다.

 

'가정 요리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바로 먹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관련성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각자 따뜻한 마음과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과 스스로 행복해지는 힘을 기른다.

일즙일채로도 충분하다는 내 제안은 지속 가능한 가정 요리를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 제안의 이상적인 도달점을 질서를 되찾은 생활이다. 개개인의 생활에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미를 되살리고, 세대를 넘어 전해야 할 생활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P103~104)

 

 요리에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내 삶의 중심이 날마다 돌아오고 싶은 집으로 바뀌고, 내 일상의 불편한 패턴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되돌리는 기적이 시작된다고 한다. 수고를 들이지 않을수록 맛있어지는 식사법이라는 역설에 반가운 마음이다. 매일 매일의 먹는 행위를 위한 준비가 스트레스 없이 지속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요리에서 실력이나 능력, 요령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장 순수하다. 그리고 순수한 것은 가장 아름답고 귀중하다. 이런 것들은 아이의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부모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당시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아이가 경험을 쌓아 어른이 된 후 언젠가는 분명 알게 된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가정 요리는 생명을 만드는 일이라고 시미즈 히로시(생명관계학 전공의 도쿄대학 명예교수이자 약학박사)가 가르쳐줬다.’(P106~107)

 

  밥과 미소시루의 대단한 점은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위적인 맛을 첨가하지 않은 자연에 가까운 음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같은 메뉴지만, 사계절 다양한 제철의 식재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변화 있는 일즙일채를 즐길 수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일즙일채를 식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우선 그 간편함에 시간적인 여유에 혁명을 일으킬 것 같다. 또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서 만들 수 있으니 버려지는 야채 없이 알뜰한 살림을 할 수 있다. 채소의 가짓수를 많게 하면 건더기가 반찬 역할을 한다. 조금씩 맛의 변화를 위해서는 여기에 생선이나 고기를 넣어서 영양적으로 균형을 이루면 된다. 미소 된장에는 식중독을 불러일으키는 세균이 거의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O-157 같은 대장균을 넣어도 사멸한다니 놀라운 식품이다.

 

 

전에 일드에서 이런 음식이 자주 보였는데 미소시루였던 것 같다. 각종 채소는 물론 심지어 토마토까지 들어있었는데 처음 볼 때는 저걸 어떻게 먹나 궁금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꺼려지기도 하지만, 인공적인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자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고 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겐 항암작용이 우수한 우리나라 대표 발효식품 된장이 있다. 세계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된장으로 일즙일채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일즙일채(밥, 국, 채소 절임)의 예.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만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하는 것,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먹는 행위를 통해서 건강 유지는 물론 식사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생물인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인간은 요리함으로써 인간이 되었다(P145)고 했단다. 요리하는 행위로 인해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바뀌고 삶에 애착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식생활의 색다른 변화를 위해 좋아하는 그릇을 골라서 사용하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항상 같은 그릇에 아무 생각 없이 먹곤 했는데, 이런 것도 시도해보면 좋겠구나 생각했다.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 식사를 하면서 애착을 갖고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일즙일채의 실천,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가끔 한번이라도 좋겠다. 심플한 식생활을 통해 삶이 좀 더 가뿐해진다면 나 자신은 물론 가족과의 관계도 즐거워지지 않을까아주 작은 변화가 모여 나중엔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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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할 걸 그랬어
김소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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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나만의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 그랬었다. 이 책은 전직 아나운서 김소영의 도쿄 서점 탐방기와 책방 운영기라고 할 수 있다.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어 열심히 활동하다가 의도치 않은 상황이 되고 앞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다가 선망의 대상인 직업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책방지기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가게, 자신만의 사업을 꿈꾸지만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용기 있는 도전이 멋져 보인다.


 이야기의 구성은 1. 책방에 간다는 것 2. 책방을 한다는 것 두 파트로 되어있다. 도쿄의 서점을 여행하는데 책방에서 얻은 정보와 사진 자료와 주소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마치 그 여정을 함께 하는 듯 실감난다. 또 여행의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가 아닌가.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금세 푹 빠져 군침이 돌고 이 서점 탐방 여행이 부럽기만 하다. 소개하는 많은 서점 중 내가 가 본 곳 진보초 고서점 거리와 롯폰기에 있는 츠타야 서점이 나와서 정말 반가웠다. 특히 인상적인, 진보초 서점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지고 이들의 저력을 짐작하게끔 해주었다.


 이제 책만 있는 서점은 좀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라나. 모든 것이 변화하듯이 서점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그가 만든 ‘북마크(Bookmarc)’가 패션의 메카, 패션 1번지 하라주쿠에 있는 아시아 1호점 이라니. 패션과 책의 조합에 의아해지지만 역시 창의력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것 같다. 지루해 보이는 밋밋한 분위기보다는 다양한 아이템과 볼거리, 즐길 수 있는 이벤트,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인테리어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긴자 식스에 있는 긴자 츠타야는 전 세계의 유명 아트북 출판사와 협업하여 수만 권의 예술 분야 도서로 꾸민 서가가 있고, 장서가 무려 6만 권이 넘는다는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30년간 사진 평론가로 활동한 주인이 식당과 겸업으로 운영하는 사진집 식당 등 저마다 개성이 있고 특색 있는 서점도 있다. 또 상상하지 못한 은행 내의 도서관을 소개한다. 고객이 수없이 드나드는 은행, 왠지 재테크에 대한 책이 수북할 것 같은데 의외로 ‘꿈’에 대한 책으로 진열돼 있어서 놀랐다는.


 요즘 작은 책방이 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뭔가 좀 된다 싶으면 우후죽순으로 늘기도 한다. 여기 이 작가도 그랬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방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으며 생업이기 때문에 유지 내지는 이익이 나지 않으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온전히 주인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을 골라 진열하고 소개를 해주고 파는 일까지 말이다. 어떤 서점인지 정체성을 드러내는, 책과 서점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북 큐레이션 이라는 전문 용어를 만나게 된다. 그냥 베스트셀러 위주의 보통 서점과 다른 개성 있는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보다 숨은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


 진보초의 ‘책거리(CHEKCCORI)’는 한국 책을 파는 서점이다. 일본의 서점가에서 한국 책이라니,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정말 놀랍다. 출판사까지 겸업으로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기 전에 첫 번째로 출간했다며 무척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뿌듯해한다. 작가를 초청하여 북토크는 물론 일본 독자들을 상대로 한국으로 문학 투어까지 진행했다니 열정이 대단하다. 이 일을 ‘진작 할 걸 그랬다’는 말을 거듭했다는데 그 열정과 재미가 오롯이 전해진다. 천생 책을 좋아하고 일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감수해야 할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안정된 울타리는 종종 도전의식을 약화시킨다.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 쉽지도 않고. 어떤 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시도하고 도전했을까 궁금한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꼭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아닌, 어떤 일이더라도 동기부여와 열정을 엿보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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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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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다. 이 작품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B세트 제 87권에 속한다. 그의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네 번째로 읽은 작품이고...  10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고루하지 않고 사회비판과 함께 지식인의 삶의 태도의 모순을 잘 묘사하여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인 다이스케는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직업이 없는 채로 그야말로 한량처럼 유유자적하며, 미술에 탐닉하거나 음악회도 가고 나름의 교양을 쌓는 등 문화생활에도 참여하며 살아간다.

서른이 다 되도록 직업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저열한 경험으로 생각하며, 무위도식하며 아버지의 돈을 꼬박꼬박 받아가며 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나이가 차면 결혼을 시키려는 부모의 마음은 전통인가 보다. 사가와 집안의 딸을 소개하며 결혼을 종용하지만, 대학시절 친한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가 아직도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느낀 다이스케는 끝내 결혼을 거부한다. 이로 인하여 분노한 아버지는 앞으로 아들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 물질적, 금전적 지원을 그만 두겠노라고 선포한다.



 그렇게도 당당했던 다이스케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친구를 배신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적 인습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서까지 미치요를 선택했으나, 마지막에 커다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그 후>에는 ‘그 후’가 없다. ‘그 후’의 전야, 폭풍의 전야만 있을 뿐이다. 밋밋한 책의 제목을 짓기로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는 이 소설에도 역시 평범한 제목을 붙였지만 그의 문학 세계의 전환을 예고하는 지극히 ‘문제적 작품’에 속한다고 한다.



 어느 소설속이든 현실에서든 모두 사랑하는 남녀가 행복하게 잘 살려면 ‘돈’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더구나 직업이 없이 놀면서 지낼 수 있는 혜택을 누리려면 더욱 더 절대적인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래 지속 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것만 해결하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누려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 하며, 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맨 마지막에 다이스케가, 생전에 빵을 위해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던 그가, 일자리를 알아보러 뜨거운 햇볕 속으로 급히 걸어가며 “타들어 간다. 타들어 가” 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햇볕도 뜨겁지만 곤궁한 마음속은 더욱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을 게다. 사랑도 행복도 어느 정도는 물질적인 기반이 있어야 오래 가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매여 일을 하는 것을 ‘부품’ 운운하며 자유를 갈망하지만, 쉽사리 결단하지는 못한다. 시간에 묶여 있더라도 조금씩 주어지는 휴식 같은 여유에서 삶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삶에 열정이 없으면서 사랑만을 갈망하는 삶은 위험하다. 어디엔가 마음 바칠 곳 없이 무위도식하는 삶에는 회한이 자기도 모르게 기습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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