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도
박완서 외 지음 / 책읽는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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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보통의 여행기와 다른 느낌이 나는 여행 에세이다. 박완서 작가를 비롯하여 법정 스님 등 여러 시인들의 인도 여행담이 들어있다. 글을 쓰는 문인들이어서인지 여행에서 느끼는 바가 아무래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여행의 즐거움과 낭만보다는 성찰이 돋보인다. 아마 인도여서 그럴까.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광활한 땅과 문명의 속도와는 전혀 다르게 느린 시간이 느껴진다


 김선우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결코 낭만적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경로에서 내가 들은 바로도 정해진 시간에 척척 맞는 교통수단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제 시간에 오지 않아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누구를 탓할 수 도 없다. 낡고 오래되고 지저분해서 깔끔한 여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어딘가 좀 불편한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을까. 아마도 모든 것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적인 사회에 신물이 나서일까. 때로는 넋을 놓고 기다려도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하며, 재촉당하지 않는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인도를 여행하는 일은 어딘가 아파지는 일이다. 일단 몸이 몹시 고된 데다 맞부딪히는 풍경들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들쑤셔 놓기 일쑤다. 도시 문명의 안락함 속에서 병들었으나 병든 줄 모르고 있던 마음의 어떤 부위를 인도는 특이한 방식으로 깨우는데, 자신의 병든 데가 보이면 여행자는 힘들어진다. 그 힘듦을 맞대면하면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아파진 후 문득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 인도 여행이 순례라는 이름에 적합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P14)

 

 낯선 여행지에서 우리는 눈에 익숙한 것과는 다르게 낯선 이들의 풍경에서 자신의 안락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불평을 일삼던 일상이 그들로 인해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 삶을 위안을 찾고 성숙해가는 삶, 이것이 여행의 힘이 아닐까.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잃어버린 여행 가방 때문에 편치 않았던 마음을 토로한다. 아까워서가 아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겉옷이나 속옷, 양말을 많이 가져가서 갈아입고 넣어둔 옷가방인데 누군가 흑심을 품고 열었다가 개봉했을 때 실망감을 생각하고는 가슴앓이를 했다. 그 후로는 많이 가져가지 않고 그날그날 바로 빨아서 입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어찌 생각하면 이미 잃어버린 가방 누군지도 모르는 손에 들어갔을 것이고 걱정한다고 찾을 수도 없으니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좀 그렇겠다 싶으면서 우습기도 하고 그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한의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법정 스님은 그림에서 보았던 건축물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는 무무타지마할이 샤자한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달라는 유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럴 수 있을까. 또 하나의 타지마할을 야무나 강 건너편에 만들려했는데 아들의 저지로 좌절되고, 샤자한은 아그라성에 감금된 채 8년 후에 생을 마친다는 이야기. 권력을 위해서는 부모자식의 인륜도 저버린 인과관계로 점철되는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당시 국고를 탕진한 독재 왕이었지만 지금은 가난한 인도의 국가 재정을 위해서는 두고두고 애국자가 되었다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다.


 수행자답게 크리슈나무르티의 자취를 찾아간 법정 스님은 첸나이의 베산타비하르에서 마지막 강연의 주제였던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모든 것과의 단절입니다. 죽음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당신을 당신의 집착으로부터, 당신의 신으로부터, 당신의 미신으로부터, 편안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잘라 버립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당신은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P81,84)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삶은 지난 날 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추라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제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살아서 여행을 하고 죽은 자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 자신의 길을 확인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도 한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살아있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멋진 도구다.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더라도 여건을 만들어서 여행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누려야 하리라.

 

바라나시는 시바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신이 함께 공존한다. 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인간들도 공존한다. 성자로부터 마약쟁이, 깔끔한 공무원으로부터 양아치까지, 사제로부터 장사꾼까지, 온갖 사람들이 바라나시라는 독특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다. 신과 인간의 공동체가 이곳에 있고, 선과 악의 공동체가 여기에 있으며, ()과 속()의 공동체가 이 땅에 있는 것이다.(P103)

 

 승려이자 시인인 동명은 바라나시의 풍경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갠지스 강의 화장터에서 타오르는 시체들, 그 옆에서 한 쌍의 개가 교미하는 장면 등 낯설면서도 편치 않는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삶의 터전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 그 진리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 속에서도 삶과 죽음은 반복된다. 더 이상 죽음이 나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앎으로써 오늘을 더 행복한 삶으로 만들 수 있다.

 

 

 

 

 

 

 

 문인수 시인은 인도에서 본 검은 눈에 대한 인상을 풀어간다. 깊고 검은 눈, 표정 없는 미인들의 검은 눈. 일행에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나 또한 이 부분에서 웃음으로 공감했다. 비록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본 것이지만 깊고 커다란 눈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움으로 다가왔었다.

 

그 지독한 소음과 매연, 무질서가 뒤섞여 들끓는 도시라는 지옥, 혹은 극빈의 함정 속에 버려진 사람들. 그들은 모두 누구인가. 그러나 그런 도가니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더없이 깊은, 검고 아름다운 눈이 있었다. 방치된 소와 개와 염소와 돼지들과 함께, 싸이클 릭샤에서 외제 세단에 이르기까지 온갖 차량들이 들끓는, 그것들과 함께 어디론가 하염없이 흐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략) 천천히 통과하고 있는 거리는 바로 생의 고통 한 마당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일절, 비명도 엄살도 분노도 저항도 없이 그저 무표정한 얼굴들. (중략) 오래 견디는, 아니 참으로 오래 기다려 온 그 깊은 눈의 아름다움은 특히, 인도 여인들한테서 완성되고 꽃 피는 것 같았다.’(P122~123)

 

 저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이런저런 고생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성숙해간다.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은 달라질 것이다. 내게도 미지의 세계인 나의 인도는 훗날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몹시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은 여행지임에도 문인들의 나의 인도는 고향의 향수처럼 그리움이 물씬 느껴졌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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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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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가 해부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두면 번역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역시 들어보지 못했던 해부학에서 사용되는 낯선 용어가 많이 나왔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또 한가지 흥미를 끌었던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 낼 만큼 커다란 동물인 기린을 해부하는 학자가 여성이라고 해서 놀랐고 기대감으로 몰입하며 읽었다. 역시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었다.

 


 저자 군지 메구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 기린이었다. 도쿄대 1학년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운명처럼 엔도 히데키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기린 연구가 시작된다. 열아홉 살에 처음으로 해부를 시작하며 지금까지 30마리의 기린을 해부하며 연구에 몰두해 온 10년의 기록이다. 아무리 기린이 좋다고 해도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는 것은 별개일 것 같은데, 기린 연구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동물과 기린과 함께 한 이야기에서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맨 처음 해부를 하기 위한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와 순서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먼저 동물원의 직원이 기린의 부고를 알리면 사체가 반입되고 해부를 하고 골격 표본 제작의 순서로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떠올랐는데 기린을 해부한다니 얼마나 당찬 여성 과학자인지 비교할 수도 없다. 다 자란 기린은 키가 4~5미터에 무게는 800kg에서 1,200kg나 되는 특성상 몇 개의 부위로 나뉜 사체를 받는단다. 아무리 조각난 사체라도 그것을 옮기는 것은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사체가 상하기 전에 해부를 하기 때문에 기린 부고가 오는 즉시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달려가야 한다.

 


 첫 해부를 위해 도쿄대 박물관 해부실에서 기린 니나를 마주한 군지는 망연자실한다. 겨울인데 해부실의 온도는 영상 10도다. 사체가 부패할 우려가 있으므로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기린 연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첫 해부는 무력감만 남겨주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기린 몸의 구조와 근육 이름에 연연하다가 눈앞에 있는 기린의 몸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다는 실수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린의 목뼈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한다.

 

 

<기린의 척추 구조>

 

 

 이 연구의 핵심은 기린의 경추 8개설이 맞느냐 아니냐이다. , 이미 나온 논문의 요점인 기린의 제1흉추는 원래 제 7경추이다.”는 내용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러 기린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제1흉추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안고 해부를 거듭하다가 목과 몸통이 절단되지 않은 기린을 처음으로 해부하면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더 확실한 증명을 얻기 위해 아오이의 새끼를 해부하고 CT스캐너를 이용하여 결국 밝혀낸다. 원래 포유류의 경추는 최소 2억년 전부터 7개로 알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기린은 7개의 경추 아래에 있는 제1흉추가 목 운동의 거점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8번째 목뼈인 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이 결과를 논문으로 만들어 세상에 발표함으로써 일본학술진흥회 이큐시상을 수상하게 된다.

 


다 자란 기린의 목 길이는 평균 2미터라고 한다. 포유류는 경추가 7개로 정해졌는데 기린의 목은 어떻게 그렇게 길어진 것일까, 어떤 구조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의문을 갖고 시작된 연구는 결실을 맺으며 기린 박사가 된다.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고 표본을 만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니 정말 좋아하지 않고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태도가 무척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에서 해부를 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기린에 대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기린 하면 한 가지 종류만 있는 줄 알았는데 4종류나 있다는 걸 알았다. 2016년 독일과 아프리카의 국제 연구 조직이 수많은 기린의 DNA를 채취해 유전자 특징을 조사해본 결과 4개의 집단으로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물무늬기린’, ‘마사이기린’, ‘남부기린’, ‘북부기린으로 일본의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기린은 앞의 두 종류뿐이라고 한다. 다음에 동물원에 갈 기회가 있다면 유심히 관찰해봐야겠다.

 

 

기린의 종류에 따라 무늬가 다르다.

 

 

 저자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지식을 몸에 익히는 즐거움을 배웠다고 한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50세 정도에 문화센터에서 향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향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나아가 전문적인 과학책까지 읽어나가더니 지금은 조향사가 되어 향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기린을 좋아했던 자신은 기린 연구자가 되었다. 학자는 아니지만 학자와 같은 자세를 지닌 어머니가 연구자로 살아가는 중요한 기본기를 다져주었다고 하는 부분에서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그리고 다소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하는 번역 공부는 기린을 해부하는 걸 새로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지 않나, 그러니까 중단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는 생각 말이다. 그만큼 무언가 열심히 해 보고 싶다고 결심하게 하는 동기부여도 해 주는 이야기다.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해부학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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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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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풀베개>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며칠 전부터 읽고 있었다. 화자는 도쿄에서 온 서른 살의 남자이고 화가이다. 그동안 읽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몰입도가 좀 약하고 도중에 문장을 놓치고 산만해지기도 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화가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감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리라. 오늘(1.29일) 날씨 온통 잿빛의 하늘, 그리고 약한 빗방울 흩날리는 이런 날은 마음이 차분해져 이러한 작품을 읽기엔 제격이라 생각이 든다. 들뜬 기분으로는 몰입할 여지가 없다. 겉돌던 초반의 분위기를 지나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두 세 번씩 읽고 필사하면서 조금씩 화가인 화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1896년 문학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후 그 해 연말에 오아마 온천을 여행하며 소재를 얻어, 1906년에 발표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사전>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옮긴이와 나쓰메 소세키의 가상 인터뷰 대화도 흥미롭다. 여기서 <풀베개>라는 제목은 여행을 상징하는 한다는 것과 자연속의 ‘비인정(非仁情)’-(각주: 인간의 의리나 인정 따위에서 벗어나 그것에 구애되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이쿠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자연을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시적으로 형상화한 수법을 작품 전반에서 볼 수 있다.



 산길을 오르면서 눈에 들어오는 여러 풍경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하이쿠에도 그 모습을 담는다. 가는 도중 마부도 만나고 찻집 할머니를 만난다. 시호다 온천장의 사연도 듣게 된다.



 ‘저무는 봄의 색깔은 곱고 아름다워, 잠시 어스름한 문을 환영으로 채색하고, 눈부실 정도의 허리띠는 금란(金?)인가. 산뜻한 옷감이 오락가락, 날이 저무는 색깔은 창연한데 고요하고 적적한 건너편, 요원한 저쪽으로 점차 사라진다. 찬란한 봄별이 새벽녘에 보랏빛 짙은 하늘 저 멀리 빨려 들어가는 풍경이다.’(p93)



 화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같은 장소를 배회하는 여인의 모습을 슬며시 지켜보면서 말도 못 붙이고 안달한다. 화자의 안달하는 마음을 그 여인은 알리도 없다.

온천장의 나미라는 이름의 여자는 결혼했다가 전쟁으로 남편의 은행이 망해서 다시 친정 나코이로 되돌아 왔는데, 사람들을 이를 두고 인정이 없다느니 박정하다느니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고도 했다. 화자가 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데, 나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들어왔다가 갑자기 나가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려고 이곳에 왔지만, 아직까지 한 점도 못 그리고 있는데...



 나미는 “내가 몸을 던져서 둥실 떠 있는 것을, 괴롭게 떠 있는 장면 말고요. 편안하게 죽어서 떠 있는 장면을 예쁘게 그려 주세요.” 라고 거침없이 말 한다.



 가가미가 못에 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다. 하나 둘 꽃송이가 떨어진다. 요전에 온천장의 나미가 말했던 농담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떠 있는 장면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가가미가 못(연못)은 오래 전 온천장 시호다가의 아가씨가 투신을 했는데, 그때 거울(かがみ[鏡],가가미)을 가지고 있어서 ‘가가미가 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하지만, 평소 나미의 얼굴에 떠 있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미소와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그 태도와 표정으로는 ‘인간 이상의 영원이라는 느낌’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 증오, 질투, 분노, 원한의 표정이 아닌 ‘동정’의 정서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림이라고. 나미의 표정 속엔 이러한 ‘동정의 정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화자는 불만스러워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 나미의 사촌 동생 규이치가 전쟁터로 떠나는 것을 배웅하는 기차의 차창으로 이혼한 전 남편의 얼굴을 보게 되고 망연해 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애련함’의 느낌을 떠올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한문과 중국의 학자, 문장가, 그리고 일본의 화가나 문장가, 하이쿠, 노(のう[能])-(각주: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이다. 노가쿠(のうがく[能?])라고도 한다.)- 등과 서양의 화가나 문인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작품을 이해가 한결 수월하고, 그에 대한 감동도 배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과는 다른 느낌의 작품,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화가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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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하는 뇌 - 기억력·집중력·공부머리를 끌어올려 최상의 뇌로 이끄는 법
마르틴 코르테 지음, 손희주 옮김 / 블랙피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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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에 많은 관심이 있던 터라 읽게 되었다. 공부하는 중이어서 기억력, 집중력, 공부머리를 끌어올려 최상의 뇌로 이끄는 법이라는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아주 만족스럽다. 일전에 읽었던 한소원의 변화하는 뇌는 뇌가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와 뇌 가소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은 부제의 내용대로 최상의 뇌로 만드는 비결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뇌는 인간이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마르틴 코르테는 브라운슈바이크공과대학 신경생물학 교수이며, 세포를 기반으로 학습과 기억, 망각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신경과학자이다. 성취하는 뇌는 최신 뇌과학과 신경학을 기반으로 최상의 성과를 내는 뇌의 비밀을 담고 있다. 저서로는 전두엽이 춤추면 성적이 오른다, 뇌는 청춘(Jung im Kopf)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학생은 물론 직업과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학습자로 염두에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학생부터 노년층까지 최적의 뇌를 만들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의 구성은 1장 활용도 낮은 당신의 뇌,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 2장 뇌 기능 전반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방법 3장 뇌의 노화를 늦추며 사는 법 4장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5장 똑똑한 두뇌를 만드는 방법이다.

 


1장 활용도 낮은 당신의 뇌,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

 

 흔히 머리를 좋게 한다는 방법으로 스도쿠, 십자말풀이가 한창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뇌를 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문제를 풀면서 재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뇌의 성능을 향상하는 데는 유익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뇌의 수행 능력은 호기심과 동기 부여가 끈기를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는 그릿(Grit)’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음에 품은 고집스러운 열정과 이런 열정을 바탕으로 한 끈기를 의미한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 결과를 통해서 재능이나 소질, 지능 지수보다 인내심을 갖고 오래 버틸 수 있는 능력이 학습 결과를 더 많이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뇌의 수행 능력은 호기심과 동기 부여가 끈기를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2년 전 박민수 외 공저 공부 호르몬이란 책에서 멀티태스킹이 뇌를 혹사시킨다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여기서도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뉴런의 최고 활동 속도는 겨우 1,000헤르츠(1초 동안 진동 횟수)인데 컴퓨터 시스템은 기가헤르츠(09개 자릿수)로 뉴런보다 백만 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이런 조건에서는 주의력이 흐려지고 뇌가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연산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 뇌는 주의 집중하는 정보들만을 인식하며 일시적으로 저장되는데 이를 작업 기억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뇌의 수행 능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도쿠나 십자말풀이, 뇌 기능 개선 영양제나 두뇌 트레이닝 앱이 아니라 작업 기억의 강도 조절이라는 것이다.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9가지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다. 명상하기,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기, 운동하기, 브레이크 장착하기, 숙면하기, 목표 세우기, 시간을 통제하기, 독서하기, 의식적으로 중단하기 등이다. 특히 수면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튀빙겐 대학의 얀 보른(Jan Born)의 연구에 의하면 밤에 적어도 7시간은 자야 작업 기억이 충분히 쉴 수 있다고 한다. 일이나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2장 뇌 기능 전반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방법

 


 이 장에서는 뇌 기능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연상하기, 집중하기, 변화 주기, 함께 하기, 암호화 하기, 휴지기 갖기, 예측하기, 독서 하기, 역동적인 자아상 갖기, 무의식적인 루틴 버리기.

 


 앞서 언급한 멀티태스킹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이 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ADHD(주의력 결핍 장애)는 전두엽의 부족한 연산능력과 관계가 있으며 특히 작업 기억을 관여하는 뇌의 영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겪는 사람은 매우 짧게 집중하며 쉽게 정신을 빼앗기는데 멀티태스킹이 바로 ADHD와 유사한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멀티태스킹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야 할 과제를 순서를 정해놓고 하나씩 처리하라고 한다. 그러면 시간은 적게 들이면서 두 배의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한다. 스탠퍼드 대학의 신경심리학자인 러셀 폴드랙은 멀티태스킹으로 일하면 경험하고 처리한 것을 훨씬 적게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작업 기억의 용량이 작다는 의미이며 결국 에너지를 아끼려는 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수단과 노력을 기울여도 멀티태스킹을 절대 잘 해내지 못하며 여러 과제를 이리저리 번갈아 가면서 할 뿐이라고 했다. 또 실수를 하는 횟수는 많아지고 집중 시간은 짧아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미래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능력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니 꼭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기대이다.

 

 

 

무의식적인 루틴 버리기(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지 가급적 자세하게, 모든 세부 사항을 그려보는 일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목표가 확고할 때 뇌는 성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책읽기를 즐기고 있으니 독서는 그 자체로 유익한 두뇌 훈련법이라는 말이 정말 반가웠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습관과 연령에 상관없이 종이책을 가지고 공부했을 때 실제 장점이 많다고 했다. 그 이유는 종이책의 텍스트가 3차원적 질서를 따르고 뇌와 모든 감각은 물론, 몸 전체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여하기 때문(P134)이라고 한다. 전자책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 냄새를 맡고, 읽으면서 남은 분량을 확인하는 일, 밑줄도 치고 포스트잇도 붙이며 읽는 습관은 종이책으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하는데 사고 과정에 신체적 구성 요소가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종이책이 갖는 우월함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진화 과정에서 기억이 공간 기억에 의거하는 뇌의 구조에 원인이 있다면서 발광 모니터보다 사람 눈을 덜 피곤하게 한다는 점 등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런 장단점이 있지만 둘 다 뇌를 영리하게 만들고 뇌의 성능을 개선하는 훈련방법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3장 뇌의 노화를 늦추며 사는 법

 

 동안의 외모를 갖고 싶은 소망처럼 아마 젊은 뇌를 갖고 싶다는 소망도 크지 않을까 싶다. 알츠하이머나 치매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가까운 주변에서 듣게 되면 더욱 그렇다. 여기서는 뇌와 운동의 상관관계, 뇌를 위한 현명한 식단 짜기, 뇌는 쓸수록 젊어진다, 스트레스는 반드시 해소한다, 외로움을 피하라 등 뇌의 노화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환상은 갖지 말라고 한다. 뇌는 늙기 마련이기 때문에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이런 상황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뇌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지 알고 싶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고 놀랐다. 비만이란 흔히 말하는 건강과 미용상으로만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비만이 뇌의 최대의 적(P177) 이라고 했다. 특히 복부 둘레에 쌓이는 지방은 몸속의 염증을 촉진시켜 뇌에도 수십 년에 걸쳐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뇌에 유익한 현명한 식사법은 다양한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먹고, 고기는 줄이고, 생선을 더 많이 먹는다, 포만감을 주는 단백질은 많이, 탄수화물은 적게 섭취한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당분이 많은 과일 주스는 피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 얘기를 작은 아이에게 말해줬더니 엄마가 책 읽고 이야기해 주는 걸 들어보면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4장 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이 장에서는 디지털 미디어와 AI가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이 가장 관심을 끌었다. 이에 앞서 2018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우버(Uver)차량의 사례를 든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어둠 속에서 길을 건너던 사람을 감지하지 못했고, 차 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차량에 부딪히기 몇 초 전에 보았지만(해결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기술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람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때 아주 나쁜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서 디지털화된 학습 도구에 치우치기보다는 아날로그식과 디지털식 학습을 서로 절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뇌에 관한 오해는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뇌의 10퍼센트만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신경학자들이 이런 정의를 내린 적도 없으며, 1910년 미국의 한 서점에서 뇌의 잠재력을 10퍼센트 더 올릴 수 있다는 광고 문구를 이용해 책을 판매 한데서 와전되었다고 한다. 우리 뇌엔 이런 한계는 없으며 가장 좋은 것은 평생에 걸쳐 배우는 것(P243)이라고 한다. 더구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실제로 뇌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P246)고 했다. 공부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몸의 다른 신체기관은 사용할수록 노화가 빨라지지만 뇌는 정반대로 쓸수록 성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한 몸에 있는 기관이면서도 이렇게 반대되는 현상이라니. 그나마 모두 나빠지는 건 아니니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5장 똑똑한 두뇌를 만드는 방법

 

 이 장에서는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힘, 자긍심 갖기, 내면과 대화하기, 이성이나 직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의지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참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키웠던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태교 이야기 말이다.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은 물론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도 뉴런의 손실이 가장 적은 곳은 음악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는 뇌 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배 속의 아기에게 음악을 들려준다고 해서 지능 지수가 높아지는 건 아니란다. 신화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제 태교는 그만두어도 되며 산모가 음악을 들으면 긴장이 풀리고 몸이 편안해진다고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한다.


 

 내면과 대화하라는 부분은 최근 내가 활용해 본 방법이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의 일이다. 원고가 정말 안 써져서 거의 한 달을 고민하며 힘들었었다. 그때 나는 매일 일기를 쓰며 나를 다독였다. 물론 글제를 떠올리고 목차를 생각하는 노력을 하면서 말이다. ‘좀 막히는 경우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런 때도 있는 거지, 항상 잘 써질 수 있겠니. 넌 잘 쓸 수 있어, 결국은 써낼 거야.’ 나에게 이런 말을 소리 내어 말하기도 하고 글로 쓰면서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응원했다. 그런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알맞은 주제가 떠올랐고 원고를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내용 전부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는 내면의 대화를 뇌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진짜 대화로 여긴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가 상상 속의 와 대화를 하는 셈이란다. 또 내면의 목소리가 맡은 역할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절반으로 줄임으로써 스트레스로 인한 압박감을 낮춘다고 한다. 혼잣말은 용기와 신뢰를 불어넣고, 이를 통해 다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하게 하며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니까, 머릿속에서 자신을 위한 트레이너나 코치가 되라고 한다. 중요한 건 넌 할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주문처럼 외우는 게 아니라 그릿(Grit)’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은 뇌과학 관련 책을 읽어왔지만, 이 책은 공부하는 나에게 최상의 뇌를 만드는 법을 선물해 주어서 더욱 유익한 시간이었다. 유용한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페이지마다 밑줄을 쳐 가면서 읽었고, 게다가 재미까지 있어서 몰입하며 읽다 보니 금세 읽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인간의 뇌란 정말 신기한 존재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현재 공부 중이거나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공부머리를 끌어올리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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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 하이쿠 선집 -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마쓰오 바쇼 지음, 류시화 옮김 / 열림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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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문학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하이쿠를 여러 책에서 접하고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날 것 그대로의 하이쿠를 처음 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도록 마음에 와 닿았거나 기억에 남는 하이쿠가 거의 없었다. 그 후 나쓰메 소세키의<풀베개>를 비롯하여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하이쿠가 언급되어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후자의 책에서는 작가가 바쇼의 기행문 오쿠노호소미치細道 깊은 곳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제목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제대로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읽게 되었다. 1,100편의 하이쿠 중 선별한 대표작 350편과 역자의 해설이 함께 들어있다.

 

 한 페이지에 한 편의 하이쿠와 일본어 원문이 실려 있다. 처음 하이쿠를 접했을 때는 일본어 공부는 오랫동안 쉬고 있던 상황이어서 잘 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요즘 한창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어서인지 한 글자 한 글자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로 읽었고, ()()로 읽었던 모양이다. 옛날에 쓰이던 글자와 오늘날의 언어변화를 짐작해 볼 수도 있었다. 우선 하이쿠 소재의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무엇이든 하이쿠의 재료가 된다. 자연은 물론 일상에서 얻은 소재를 다루어서 일본의 문화, 풍습 등 에도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역시 어떤 책이든 마음에 다가오는 때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렇게 열일곱 글자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함축된 단어 너머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역자의 해설이 있었기에 더욱 스며들었을 것이지만. 역자는 하이쿠를 감상하는 독자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배경설명과 정평 있는 평단의 해설을 요약해서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꽃은 싫어라

사람들의 입보다

바람의 입이

 

(はな)にいやよ世間(せけん)(くち)より(かぜ)(くち)(P27)

 

 

 꽃구경을 하는 축제인 하나미はなみ[花見]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벚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화사하다. 저마다 이 꽃 저 꽃이 예쁘다고 함박웃음을 웃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로 떠들썩한 분위기가 그려진다.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들의 입이 미울까. 저 화사한 꽃들을 다 떨어지게 하는 바람이 더 밉다는 것이다. 절대로 관찰하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하이쿠가 나오겠는가. 이것은 19세에서 29세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란다.

 

서리 밟으며

절룩거릴 때까지

배웅했어라

 

(しも)()んでちんば()くまで(おく)りけり(P43)

 

 

 ‘아침 서리를 밟으며 그대를 배웅하러 나왔다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함께 간 것이 결국 다리를 절룩거릴 정도로 먼 곳까지 갔다.’ 하이쿠 앞에는 이 말이 적혀있는데 시인 시유(四友)와 작별할 때 쓴 작품으로 가마쿠라에 가는 시유를 배웅하러 나섰다가 결국 끝까지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헤어지는 것이 그토록 아쉬웠을까. 끈끈한 인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먹으니

몸에 스미는 바람

 

()ざらしを(こころ)(かぜ)のしむ()かな(P66)

 

 

 ‘()ざらし(노자라시)’는 들판에 버려진 해골이라는 뜻으로 바쇼가 41세의 가을, 최초로 방랑을 떠나는 절실한 각오가 담겨있는 하이쿠라고 하겠다. 하이쿠 지도자로 명성과 지위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무소유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욕심을 버리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백골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다짐했더니 뼛속에 바람이 스며든다. 하이쿠를 읽는 자체로도 오싹한 한기가 느껴진다. 이 시에서 제목을 딴 여행기노자라시 기행 ざらし紀行의 서문에 실려 있다고 한다.

 

종소리 멎고

꽃향기는 울리네

저녁 무렵

 

(かね)()えて(はな)()()(ゆう)(かな)(P146)

 

 이 하이쿠는 40대의 작품으로 자신의 시풍에서 벗어나 당시의 언어유희를 따른 느낌을 담고 있다 한다. 종소리(청각), 꽃향기(후각), 저녁(황혼 녁/시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시작법을 엿볼 수 있다. 옛날 국어시간에 배우고 암기했던 공감각적 표현법을 떠올리게 한다. 바쇼의 작품 외에도 동양의 시문학에서 자주 시도되는 기법이라고 한다.

 

 

(P177)

 

 하이쿠를 음미해보고자 필사를 해 보았다. 오랜만에, 그것도 잘 써보려고 하니 잘 안 된다. 열 번은 썼나보다. 더 이상 손이 아파서 안 되겠다 그냥 올리자. 이 시는 46세의 봄, 바쇼는 간토, 오슈, 호쿠리쿠 등 일본 동북 지방을 지나 중서부 내륙까지 도는 도보 여행을 출발한다. 스미다가와 강의 다리까지 배웅 나온 문하생들에게 준 작별의 시로 오쿠노호소미치서문에 실려 있다. 자신은 하늘을 나는 새로 뒤에 남은 문하생들은 물고기에 비유했다.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겠지 더구나 노쇠한 스승의 떠남이라니.

 

보리 이삭을

의지해 부여잡는

작별이어라

 

(むぎ)()(ちから)につかむ(わか)れかな(P311)

 

 

 방랑의 삶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여행길에 수많은 문하생들을 찾아 하이쿠 모임도 하고 후원을 받은 거처에서 쉬기도 했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를 견뎌내면서 객지에서 세월을 보내는데 몸이 성할 리 없다. 51세의 음력 5월 교토 지역으로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가 음력 511일 다시 에도로 출발하면서 가와사키(도쿄 남쪽의 도시)까지 송별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남긴 작별의 하이쿠다. 체력은 이미 바닥나고 몸은 허약해져 있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보리 이삭을 부여잡는 작별이라니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절실함과 슬픔이 파고든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 바쇼나 잇사의 하이쿠가 언급되어서 상당히 의아하고 신기했었다. 동양권도 아닌 영미소설에서 말이다. 오쿠노호소미치 細道 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행문이며 외국에 가장 많이 소개된 일본 고전 작품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하이쿠의 성인 바쇼는 세계에 일본을 알리는 지대한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읽는 중에도 다 읽고 나서도 멈출 수 없었던 생각은, 우리도 우리 나름의 정서와 멋이 담긴 정형시 시조가 있으며 그 이전으로 들어가면 고려가요, 향가 등 우수한 작품이 많은데 이것이 세계에 얼마나 알려졌을까 궁금해졌다. 전통을 아끼고 계승하는 면에서는 어쩌면 한 수 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청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짧아서 말하다 마는 듯한열일곱자의 짧은 시구에서 한 편의 이야기를 상상할 여지를 준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안의 시인을 깨우는 일’(P404)이라는 역자의 말에 매우 공감된다.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의 멋을 알게 될 것 같다.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하이쿠를 자주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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