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어공주 이야기가 아니다. 샤랸Q(シャ?Q)라는 록밴드를 이끌었던 리드 보컬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가수 츤쿠의 이야기다. 가수로서 목소리는 자신만이 가진 악기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목소리를 잃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201544일 긴키대학 입학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미 성대적출 수술을 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축사는 스크린 위에 영상으로 전달된다. 소리를 잃어버린 자신에게 킨키대학에서 입학식 연출을 해 달라고 의뢰를 받아서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는 이 대학을 졸업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메시지에는 이런 말이 들어있다.

 


자신은 목소리를 잃고 막 걷기 시작한 1학년생과 똑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자신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이런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려고 생각한단다. 여러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 그것을 추구하면 학력도 아니고 성적도 아니라고 한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한다. 

 


 록밴드의 리드 보컬 츤쿠(츤쿠♂〉라는 이름은 어릴 적 머리카락이 뾰쪽하게(ツン) 서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츤쿤"이라고 불렸던 데서 유래했단다.(위키백과 참조.)는 과거를 회상하며 아내와 세 아이 이야기와 자신의 음악활동, 투병생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수이면서도 아이돌 그룹 여성 14인조 モ?ニング(닝구무스메) 작사, 작곡, 프로듀스를 담당했으며 그들의 뉴욕 공연을 보며 감개무량 해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가 쓴 곡 중에는 밀리언 셀러의 음반도 있었다.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리드 보컬이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렇게 절망적이거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물론 후회되는 일은 있었다. 잠 잘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다. 약과 영양제를 달고 살았다. 비타민, 스테로이드, 영양제 등 뭐든지 약으로 해결했다. 너무 바빠서 짧은 시간을 자야 했기에 수면 유도제를 복용하고 그런 것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밴 것이다. 그런 생활은 몸에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두드러기 때문에 가려워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목에서도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8년 무도관에서 샤란Q 결성 20주년 기념 라이브 때는 목 상태가 좋지 않을 때라서 목소리가 나올지 어떨지 불안해한다. 많은 곳을 이동해야 하는 투어이기 때문에 컨디션이나 목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무렵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동료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방송이 나오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필요한 것 외에는 점차 안 보게 되고 가족들도 점점 음악 프로그램을 안 보게 되었다.

 


 2013831일 샤란Q 결성 25주년 기념 라이브 투어가 시작된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센다이 등으로 이어졌다. 그는 아마츄어 시절부터 결혼해서도 가족을 공연 현장에 데려가지 않았는데 샤란Q 결성 25주년 때에는 가족 전부가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을 보러 오게 한 이유는 많은 팬들이 응원해주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알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아빠에게는 언제나 응원해주는 이렇게 많은 아군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아빠의 일은 이렇다고. 프로란 이렇게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는 센다이 공연 때 무대에서 바라본 광경은 지금까지도 확실하게 떠오르는 자신의 보물이라고 했다. 라이브 공연을 잘 마무리하고 팬들이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안심하는 아내를 본 것이다.

 


 다행히 그 공연에서 걱정하던 것과 달리 목소리가 잘 나와서 공연 영상을 촬영해 두었다. 자신이 우겨서.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최후의 노랫소리가 되었단다.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공연 투어가 끝나고 2개월 후 내시경으로 봤을 때는 눈으로 알아볼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악성종양이나 암일 가능성은 99% 아니라고 했다. 또 적출 수술을 하고 난 뒤 어떤 영향이 있을까 봐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도 괜찮다며 외과 수술을 권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풀어 오른 무언가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느낌이 분명 있었다. 그때부터 3주가 지나도 목의 느낌은 좋아지지 않았다. 뒤늦게 생각한 것은 몸은 정직하다는 것, 자기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의사의 말을 너무 믿었다는 것.) 이전과 달리 몸의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자신의 기분이나 감각을 믿고 행동하세요. 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판단보다 의사의 판단을 너무 믿어버렸다고 후회한다.

 


 아는 프로듀서가 소개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후두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45세 나이에.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죽음, 가족과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등등 미래의 일을 생각할 수 없었다. TNM이라는 분류법으로 말하면 T2. 초기라기보다는 조기 발견이었다. 병명은 [성대의 편평 상피암]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자신의 창조한 [모닝구 무스메의 뉴욕 공연에 참석했다가 하루빨리 돌아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오게 된다. 심각하게 전이가 된 것이다.

 


 결혼할 때까지 폭군 같은 남편을 자처하던 그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완전히 입장이 역전되었다. 아내는 그때부터 남편에게 맡겨두지 않겠다면서 아이도 어리니까 확실히 하라며 적극적으로 나선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고 전문의를 소개받기 위해 지인과 통화를 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른 의사도 만나 봤더라면 좀 더 빨리 암을 발견했을 텐데. 더구나 목소리를 사용하는 프로니까 신중하게 목을 다루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반복한 자신이 잘못이었다는 후회를 한다.

 


성대적출 수술을 하기 직전에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내어 얘기하는 장면은 정말 짠했다. 천천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마지막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들어있다. 

 


장남에게 [엄마 말씀 잘 들어라, 우리 가족의 유일한 남자아이니까, 엄마를 도와주어야 해.]

장녀에게 [멋진 목소리를 가졌으니 노래 연습을 잘 하렴. 아빠 몫까지 노래하겠다고 전에 말했잖아.]


작은 딸에게 [언니를 본받아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해. 엄청 사랑한다.]

 


마지막 목소리라니... 그러고 보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노래를 따라 부르고 누군가를 부르고,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모든 것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졌다. 또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도.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의 세 아이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산다고 했다.

 


だから, きる(그러니까, 산다.)

 

 

이번에도 듣도 보도 못한 단어가 많이 나왔다. 더구나 오사카 사투리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가수라서 유튜브에서 찾아 보았다. 역시나 인기있던 그룹이라 그런지 검색 횟수도 어마어마했다. 몇 곡 들어봤는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한 곡 감상들 하시라고 올려놓는다.

 


**유트브 바로가기 (샤란Q의 싱글 베드シングルベッド)

https://www.youtube.com/watch?v=UYXNA54dDKs

 

 


​**이 책도 상품 검색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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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강상중의 번역본만년의 집의 원서이다. 작년 12월 번역본으로 감동깊게 읽은 책이기에 원서로 읽고 싶어서 올해 2월 나고야 여행을 갔다가 사온 책이다.

 

 고희를 바라보는 저자가 아들을 잃은 후 가루이자와로 이사를 하고 채소를 심어 가꾸고 정원을 가꾸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자신의 70년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가족들을 걷어 먹이려고 산으로 들로 나물을 채취하러 다녔던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걸어다니는 식도라고 했다는 어머니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한다.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들에게 챙겨주기 위한 집착이었다. ‘강상중이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자이니치로 살아간다는 것, 영원한 디아스포라로 산다는 것이 마음적으로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고원의 삶은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가루이자와는 이름난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며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아버지의 치아에 대하여>

 

 여기서는 머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쌉쌀한 맛이 나는 머위를 살짝 데쳐서 밥을 싸서 된장을 얹어 쌈으로 먹었다는 이야기다. 호박잎쌈을 먹듯이 한 것 같다. 머위는 아린 맛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으면 간에 좋지 않다고 한다. 어린 개구쟁이였을 때 이 머위 쌈은 먹기 싫은 음식 중에 하나였다고 한다. 쓴 맛이 강하니 당연했겠지. 재미있는 표현이 나왔다. ‘옛날을 뭉쳐서 싸놓은 듯한느낌이 드는 것이 머위 쌈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어 언제까지고 기억하게 되는 음식이라고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음식을 먹으면서 풀었던 건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일본에도 머위가 있었구나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두릅 이야기도 나왔는데 먹는 방법이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차이도 흥미로웠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먹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튀김으로 많이 먹는다고. 그 맛을 튀김을 좋아하는 아내로부터 알았다는데, 그 두릅 튀김이 얼마나 맛있는지 예찬을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 튀김으로 만들어 꼭 먹어보고 싶을 정도다.

 

 

아내와 장모님 이야기, 두릅 튀김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식문화 차이도 알게 된다.

 

각종 야채 튀김이 우동에도 올려지는 걸 보면. 배고픈 시간인가 군침이...(ㅎㅎ)

 

 어머니가 잘 챙겨 주신 덕분에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치과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 음식은 정말 중요하구나 싶다. 아버지가 음식을 씹는 경쾌한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음식을 먹을 때 턱을 사용하는 방법, 씹는 소리까지 아버지를 닮았다면서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 신기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강인한 집착은 결국 이국(異國) 땅에서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고양이로소이다>

 

강아지파였던 저자가 고양이파로 바뀌어 고양이를 키우게 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게 되면 혼자 있게 되는 아내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서였고 시험 삼아 키워보다가 안 될 것 같으면 도로 갖다 주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아내는 거의 작정하고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는 거였다. 아내의 뜻에 떠밀려 고양이를 키우게 된 사연이다. 덩치 큰 고양이가 두려움인지 낯을 가리는 건지 커텐 뒤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처음 보게 되고 거둬들이게 된다. 고양이를 괴물로 여기던 어머니가 보신다면 아마도 기절초풍을 하실 거란다. 고양이 루크를 키우게 된 것이 유일하게 어머니의 말씀을 거스른 일이 되었다고 한다. 점점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과정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양이 이야기는 누가복음과 예수와 세례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고()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로 이어진다. 보복 정치의 희생양이 되었던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며 현재 정치 이야기까지 언급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간, 북미간의 중재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남북정상회담도 북미정상회담도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아서야...

 

저자가 어렸을 때 집에서 키우던 개 보스를 집에서 함께 살던 아저씨가 애지중지 키웠던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더구나 그렇게 기가 약한 고양이에게 루크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은 강한 이름을 지어 불러 줌으로써 강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속세와 떨어진 듯한 고원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풍경처럼 다가왔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바뀌기도 하면서 좀 유연해 지기도 할까. 좋은 쪽으로는 작정하고 바뀌는 것도 좋겠지.

 

 

 언어 공부란 할 때마다 새로운 단어를 만나게 된다더니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많았다. 역시 지식인이 쓴 이야기라서 더욱 어렵게 느껴진 걸까. 형용사, 부사, 의성어, 의태어 등 처음 보는 단어를 찾아보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좀 나아지겠지.

 

 

 

 

 

 

 

 **이 책도 상품 검색이 안되어서 마이페이퍼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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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ろ (文庫)
나쓰메 소세키 / 巖波書店 / 1989년 5월
평점 :
품절


 나쓰메 소세키의 이 작품을 번역본으로 두 번 읽었고 이번에는 원서로 읽어보았다. 갖고 있는 번역본이 있어서 중간 중간 원 문장과 대조하며 읽었다. 역시 문학 작품이라 그런지 직역보다는 문학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장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원 문장을 읽으면서는 맨 처음 작가가 쓴 날 것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그 사람을 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왠지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과거형이라서 그럴 것이다. 화자인 나는 친구와 함께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그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 후 도쿄로 돌아와서 선생님 집에 자주 놀러가면서 조금씩 친해진다. 나는 선생님과 자주 만나며 이야기하면서 무언가 침울하고도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자신은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를 멀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다가올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는 선생에게 다가가게 되고 점점 친한 사이가 되어 나중에는 선생님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게 된다.

 

 ‘사랑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이 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선생은 인간을 믿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모님도 마찬가지냐고 되묻는 나에게 조금 망설이는 듯 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은 인간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다는 걸 감지할 뿐이다.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다. 다행인지 생각보다는 아버지의 상태가 나쁜 것 같지 않아서 안심이 된다. 아버지와 장기를 두면서 심심치 않게 해 드리지만 마음은 도쿄의 선생님에게 가 있다. 그러다가 한 통의 간단한 안부 편지를 받고 나중에는 장문의 편지를 받는다. 두 번째 상당히 두꺼운 편지를 받고 의아했는데, 이 편지를 도착했을 때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말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버지보다는 선생의 안부가 걱정이 되고 불안에 휩싸여 도쿄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 안에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와 그 집에서 대학생 때 하숙을 함께 했던 K와의 이야기. K의 죽음까지 모두 들어있었다. 도쿄에서 처음 만나러 갔던 날 조시가야의 묘지에서 마주치고 섬뜩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서로 삼각관계 인 것처럼 보였고 선생이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선언했을 무렵 갑자기 K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선생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회에 나가 일을 하지도 않고 은둔자처럼 생활을 한다. 물론 갑자기 그가 돌변한 것에 대해서는 아내도 아무 영문을 모른다.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을 뿐 아내에게 내색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는 자신의 과거를 화자인 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했었는데 공교롭게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편지로 고백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화자가 고향에 내려간 사이에 선생은 K의 뒤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K의 죽음과 선생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거론된다고 한다. 일전에 읽은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접했다. 그러니까 단순한 삼각관계에 의한 것보다는 K가 선생님과의 우정 이상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선생님의 경우를 보면 K의 죽음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이 컸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얻으려 애쓰지도 않고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K의 뒤를 따라서 죽음으로 죄책감을 갚아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아내에게 있어 유일한 남자는 선생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의지하고 살았다는데. 여기에는 시대적 배경인 메이지 시대에 대한 과오를 씻고 싶어 하는 지식인으로서 소세키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했다. 노기 장군이 순사한 것처럼 메이지 시대가 가는 것과 함께 선생님의 과오를 씻는 어떤 의식을 담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어렵게 읽은 터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야 다른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상품 검색을 해보니 출판사는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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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6년도 일본 여행을 갔다가 진보초 고서점가에서 사 온 책이다. 도쿄를 산책하듯이 느리게 걸으며 본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 잘 알려진 곳이나 번화가를 위주로 돌다보면 그 뒤에 가려진 골목에 위치한 풍경은 놓치기 일쑤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도쿄의 구석진 곳,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전통과 분위기 있는 상점 등을 알려준다. 그리고 특징이라면 도쿄 시타마치(상업지역 번화가)의 명소를 메이지 시대에 제작된 목판화와 석판화에 담겨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즈마바시, 긴자, 니혼바시, 우에노, 무코지마, 히비야공원 등 아사쿠사(淺草)의 센소지(淺草寺)까지.

 

많은 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내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나중에 가보고 싶은 곳을 위주로 쓰려고 한다.

 

<가츠시카의 주변에서>(쇼부엔(식물원)마을에서 시바마타, 에도가와에)

 

이번은 원행이다.

에도 사람이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외출하지 않았을까. 에도의 교외(郊外), 가츠시카 땅 호리키리, 시바마타, 타이샤쿠 텐, 그리고 에도가와, 야기리 건너. 아니 에도 시대뿐만 아니라 메이지부터 다이쇼에 걸쳐도 이 가츠시카는 도쿄의 교외(敎外)였다. 시골 교사,이불등 소설 외에도 기행문을 쓴 타야마 가타이의 도쿄근교의 1일 행락에 대한 책 한 권이 있다. 호리키리(堀切)의 쇼부엔(菖蒲園)은 도쿄의 교외이고 하루 가서 놀기에 좋은 곳이다. 호리키리(堀切)의 쇼부엔(菖蒲園)에 가는 교통수단도 안내되어 있다고 한다.

 

 도쿄 시타마치에서 자란 감각으로 도 저자는 호리키리는 꽤 멀고 시바마타라고 해도 도쿄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가츠시카, 에도가와 주변 쯤 되면 이른바 명소가 적지 않다.

호리키리(堀切) 쇼부엔(菖蒲園)은 메이지 중기에 들어서 일약 도쿄 명소로써 인기 스폿이 된다. 호리키리(堀切)의 창포는 에도 말기쯤엔 활발하게 재배되어 에도 명승지 그림책등에도 많이 그려졌지만 유신을 계기로 황폐화된다. 오늘의 호리키리 쇼부엔은 옛날의 호리키리엔을 도쿄도가 매수해서 카츠시카 구에 이관시킨 거라고 한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비오는 날도 좋고, 맑으면 더 좋아 호리키리의 마을을 빼고 쇼부엔에 이른다. 만개할 시기에 원내(園內)는 정말로 별세계’(P77)

 

 정말 시적인 분위기다. 꽃피는 봄에 그 별세계를 구경하고 싶어진다. 도쿄의 교외(郊外) 호리키리 쇼부엔을 기억하자. ‘쇼부(菖蒲)’는 창포를 의미한다. 옛 이름은 아야메라고 했다.‘창포는 5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은 구력(?曆)의 이야기고, 요즘의 피크는 6월에 들어서부터다. 호리키리 쇼부엔은 61일부터 25일까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개원 시간이 길어진다.

가츠시카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폿이라면 시바마타 타이샤쿠텐이라고 한다.

 

 

히비야공원의 풍경이 담긴 그림(석판화)

 

 

<히비야공원 주변>

 

 메이지 6(1903)에 히비야 공원이 개원한다. 이에 앞서 메이지 6, 우에노, 시바, 아스카야마, 아사쿠사, 후카가와 다섯 개 장소에 처음으로 공원이 탄생하지만, 히비야공원은 이 다섯 개 장소와는 탄생 기반부터 취지가 다르다. , 메이지유신 정부는 막 타도한 구체제와 인연이 깊은 풍광이 밝고 아름다운 땅, 또 신사와 절을 세우는 장소에 공원이라는 새로운 의상을 푹 뒤집어 씌웠다고 할 수 있다.

 

메이지의 시민이 처음으로 양식(서양식 문화)에 접하다

 

 음악당에서는 서양 음악이 연주되어 양식 레스토랑 [마츠모토 사쿠라]가 인기를 모았다. 도쿄 시민은 처음으로 서양음악회에 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라져 가는 에도 문화 대두하는 근대였던 것이다.

 

 히비야공원에 학 분수는 시나 소설 속에 여러 번 등장해왔지만 용감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산보가 즐거운 히비야 공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곳은 전철을 타고 지나치기만 했는데 나중에 꼭 가보고 싶다.

 

<료코쿠(??)주변>

 

 료코쿠 주변은 도쿄 여행때 가본 곳이라 반갑다. 스미다가와를 건너는 철교를 매일 건너다녔다. 스미다가와 하나비 (불꽃놀이), 료코쿠에 있는 국기관(스모 경기를 하는 장소) 등이 소개되고 있다. 불꽃놀이 축제를 즐기는 건 좋지만 강물이 더러워지고 지독한 냄새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폐수, 오수를 흘려보내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밖에 없다고 부끄러워하고 있다.

야나기바시를 건너 스미다가와로 나가면 바로 료코쿠바시이다. 에도시대는 혼조, 후카가와 방면과 에도 시() 속 두 개의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료코쿠의 큰 다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목조다리였던 료코쿠 다리는 그후 메이지 37(1904)에 철교(鐵橋)가 된다.

 

 어쨌든 불꽃놀이, 뱃놀이, 스모 구경이라는 것은 에도 이래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지역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름다운 스미다가와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이견이 없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읽은 일본어원서 중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지명과 인명 그리고 시()를 인용한 문장이 많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특히 시에 나오는 한자어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다 보면 좀 나아지겠지.

 

 

참 일본스럽기도 한 그림...

 

 

 


​알라딘에서 상품 검색이 안 되어서 이 코너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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くじけないで (單行本)
柴田 トヨ / 飛鳥新社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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