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담 잭 런던 걸작선 1
잭 런던 지음, 이성은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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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잭 런던을 처음 접한 계기는 사회주의의 색채가 짙은 『강철군화』였지만, 더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이 대중작가가 심취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자연' 그 자체였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야성의 부름』이라거나 작년에 읽다 말았던 The Mutiny of the Elsinore나 올해 초에 접했던 The Scarlet Plague는 자연의 힘과 놀라움을 보여주는 데에 주목하고, 한편으로는 그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인간을 조명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쯤 되면, '물질은 영원하지 않고, 영혼은 불멸하다'며 유물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별 방랑자』가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요컨대, 잭 런던은 자연주의 작가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잭 런던 걸작선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비포 아담』은 자연주의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편소설이다. 격세유전과 적자생존 등 진화론의 관점에서 원시사회를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나 전생이었던 '큰 이빨'의 이름은 드러나지만, 현재의 '나'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잭 런던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나'의 시점을 빌려 자신이 상상한 원시사회의 풍경을 묘사함과 동시에 그가 생각하는 진화론을 설파한다. <인셉션>에서도 언급된던 '킥', 즉 떨어지는 꿈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본능은 단지 우리의 유전적 형질에 찍힌 습관에 불과하며, 그것이 전부이다. 말한 김에 당신들과 나,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 떨어지는 꿈속에서 우리는 결코 바닥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당신들과 나는 바닥에 부딪히지 않는 자들의 후손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속에서 결코 바닥에 충돌하지 않는다.


 초반부에 제시되는 진화 이론은 실로 흥미롭다. 묘하게 설득이 되는 듯 하다. 하지만 역자도 인정했듯이, 이 소설은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큰 이빨이 속한 동굴 부족과 인근에 위치한 나무 부족과 불부족은 신체의 능력과 지능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특정 인류가 진화하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더 우수한 종족이 무기를 이끌고 다른 부족을 학살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원주민들을 유럽인들이 몰아내는 풍경을 연상케 하는데, 『비포 아담』이 제시하는 최초의 문명이 이러한 비극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자칫하면 더 우수한 종족이 발전하지 않은 종족을 몰아내는 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정당화될 수 있다. 아무리 당시 진화론이 완성되지 않은 형태라고 해도, 익숙한 방식으로 과거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에 읽은 『종의 기원』에 제시된 자연 선택이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포 아담』은 흥미로운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큰 이빨과 늘어진 귀의 모험에서 지혜와 협력을 엿볼 수 있고, 재빠른 것에 대한 끌림, 붉은 눈을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 등은 이 회상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시킨다. 겉모습은 유인원에 가깝고 언어도 발달되지 않았지만, 단지 생존을 향한 욕구 이상의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불을 보고 기뻐하는 표지의 큰 이빨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문명을 축하하는 최초의 축제이다. 비록 동굴부족은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갔지만, 삶을 향한 강한 의지는 수천 세대를 통과하여 유전자에 새겨졌다. 잭 런던은 자신의 작품에 줄곧 등장한 강한 정신력의 인물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헌사를 바치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생존을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그것이 비극으로 끝난다 해도 갈망은 이후의 세대에게 전해진다고.


 자연주의가 오늘날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진화론은 논쟁 속에서 발전과 동시에 비극을 불렀다. 생존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생존본능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이들의 죽음을 합리화했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진화론은 완벽하지 않은 이론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선택이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자연주의를 기꺼이 채택한 작가들의 정신이다. 나 역시 잭 런던의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문명을 비판하는 태도나 자연관은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하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문명보다 우위에 있기에, 자연이 인간을 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명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자연이 인간을 몰아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의 원리는 무정하므로 한 번 시작된 재해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비포 아담이거나, 영원한 아담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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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 : 마크 트웨인 단편집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3
마크 트웨인 지음, 신혜연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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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예상하지 못한 언행과 상황을 제시하거나, 예상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거나. 신기하게도 이 방식은 웃음의 정반대에 놓인 공포의 전달 방법과 동일하다. 현재 내가 읽고 있는 세 명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과 잭 런던, 그리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각자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그중 마크 트웨인은 웃음에 가장 능통하다. 그가 한 말과 쓴 글들은 언어와 시대의 장벽을 뚫고 독자인 나에게 큰 웃음을 준다. 가벼운 웃음,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책을 읽고 낄낄거리는 웃음 말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 아닌가?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를 공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주저없이 '좋아서' 혹은 '재미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있다고 해도 처음 대답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업 시간에 분석의 대상으로 접근하다 보니 나는 마크 트웨인이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최면술사』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대부분 그의 자서전에서 추려낸 글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집자의 의도가 담긴 두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감기 치료법>과 <우울증 치료제>, 두 단편소설을 제외하면 제목이 없는 글들에 편집자들이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에 대해 나는 만족한다. 대부분의 가제들이 핵심을 짚었다. 

 

 마크 트웨인이 주로 사용하는 웃음의 방식은 비틀기가 아닐까 싶다. 독자가 당연히 이것이라 예상하면, 그는 재치있게 거기서 도망친다. 허를 찔린 우리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곧 복장을 갈아입은 동명의 신사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남기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 참, 지금까지는 소설이었답니다. 물론 사실도 들어있습니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듯이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한 후, 그것이 허구였음을 밝히는 부분, 그러나 사실도 들어있다고 귀띔하며 마무리를 짓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들려준 일화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함정임을 알아채면 무릎을 탁 치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이러한 재치는 빛난다. 너무나 유명한 「뜀뛰는 개구리」는 고사하고, 「이상하고 끔찍한 중세 모험담(원제를 번역해 보았다)」의 마무리는 이렇다. 아버지 때문에 평생 여자임을 숨기고 공작이 된 콘래드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여인 콘스탄스를 거절했고, 콘스탄스는 자신이 콘래드의 아이를 배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콘래드와 그의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쓴다. "사실, 주인공을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하게 해놓기는 했는데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그만 여기서 손을 떼겠다." 세상에, 완결되지 않은, 아니 완결될 수 없는 이야기라니! 얼마나 애간장이 타는가? 그러나 이야기가 원래 그렇다. 끝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아니면 열린 결말이든 이야기는 끝내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그것을 살짝 비틀었을 뿐이다.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인데, 그들이 어떻게 되든 무슨 소용이람? 


 마크 트웨인을 보며 내가 읽는 책과 글을 돌아본다. 그래, 원래 문학은 재미를 추구했지.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계속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문학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그야말로 이상하고 끔찍해진다. 근래에 내가 쓴 글이 지나치게 의미에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의미는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 흥미롭지는 않다. 의미가 재미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원래 문학은 그러했으니, 유머가 담긴 소설이 필요한 순간이다. 세상에 이로운 주제, 고운 우리말로 된 표현이 담겼다 한들, 재치가 없다면 그 책에 생명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기이한 일이죠. 최면술사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서 마을에 최면술을 믿지 않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 P35

내가 쓴 원고를 아내가 검토할 때면 아이들은 항상 옆에서 돕곤 했습니다. 아내가 농가 현관에 앉아 손에 연필을 쥐고 큰소리로 읽으면, 아이들은 그 오른쪽에 앉아서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왜냐하면 특별히 마음에 드는 구절을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삭제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에요. - P76

그들이 직접 출판사 주주가 되어 저작권과 출판사업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날이 오지 않느 한 그들이나 그 후임자들이나 계속 이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현 지질연대가 지나기 전에 그런 날이 과연 올까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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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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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어땠어?

 O: 뭐가?

 V: 김영하가 쓴 살인자의 기억법』. 한 시간 만에 읽었다며.

 O: 모르겠어. 정리가 안 돼. 나는 당연히 박주태가 위험한 인물이고, 은희가 연쇄살인마의 딸이라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곳곳에 이상한 점들이 있었는데, 왜 그걸 우습게 여겼을까?

 V: 그럼 너는 박주태와 경찰들이 하는 말을 믿어?

 O: 적어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하는 말보다는 믿을 만해. 게다가 이 사람은 자기가 쓴 것도 기억하지 못하잖아. 이 소설은 김병수가 쓴 기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중간에 자기가 죽었을 때 은희가 보게 될 거라는 서술도 나오잖아. 독자를 가정하고 적은 거지.

 V: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한테 죄를 덮어 씌우는 거라면? 어쩌면 김병수는 시 강의 시간에 상상의 날개를 펼쳤는지도 몰라. 대나무숲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지만, 살인의 명확한 증거도 없고 말이야.

 O: 그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게 뭔데?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뭐야?

 V: 적어도 무서운 건 악이 아니라 시간이다라거나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따위의 따분한 말을 전달하려는 건 아닐 테지. 애초에 첫 문장에 사람을 죽였다는 문장도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동시에 감정이입을 막으려는 장치였으니까.

 O: 변함없이 경찰은 무능하다고 비웃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를 주시하고 있었구나. 그럼 최근에 일어난 연쇄살인과 박주태의 차에 묻은 피, 그리고 은희의 아빠라는 호칭은 어떻게 설명하지? 은희는 어쩌다 살해당한 거야?

 V: 우습지. 가장 핵심적인 기록은 누락되었다는 게. 결국 김병수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 아니, 이 사람한테는 기록이 곧 기억이니까, 자신한테 필요한 과거만 적어놓는 셈이지. 나머지는 모두 혼돈, 또는 공으로 흘러갈 뿐이고.

 O: 뭐야, 그럼 우리한테는 알 권리가 없는 거야?

 V: 김영하가 후기에 그렇게 썼잖아. 자기는 어떤 세계를 방문한 여행자에 불과하다고. 작가한테 허용된 기록의 영역에는 한계가 있어. 어차피 그 세계에도 우리 세계와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니까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야.

 O: 어떤 원칙?

 V: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특히, 미지의 영역에 대해.

 O: 동의하기 어려운데. 사람은 모르는 것에 당혹감을 표현하거나 도망치잖아.

 V: 너는 논란이 되는 주제를 좋아하니?

 O: , 열린 결말이나 음모론 같은 것들?

 V: 그렇지. 의견이 갈려서 타협되지 않는 주제들.

 O: 딱히. 너는?

 V: 나는 기꺼이 한쪽 입장을 택해. 동시에 다른 입장도 존중하지. 사람은 미지의 영역에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맹목적인 확신을 품거든. 그곳에서는 인간의 믿음이 곧 근거가 돼. 사람이 가진 가장 약한 믿음은, 자신의 믿음이 확실하지 않다는 거야. 진실을 말해줘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김병수가 마침내 혼돈에게 주시당하는 순간이 이 소설의 결말을 장식하는 것처럼.

 O: 나는 연쇄살인마의 생각과 대부분 달랐어. 특히 시간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였지.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했잖아. 나는 오히려 인간은 현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과거와 미래는 현재에 잠시 개입하지만, 결국 인간은 현재로 돌아오지.

 V: 어쩌면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사람은 언제나 적절하지 못한 곳을 떠다니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도 김병수의 통찰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 순간도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이거거든. “인간을 틀 몇 개로 재단하면서 평생을 사는 바보들이 있다.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좀 위험하다.” 자기 눈 안에 있는 대들보를 못 보고 남들을 평가하는 행동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어떤 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기도 하고.

 O: 어찌 됐든 김병수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럴 듯한 가르침을 전해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주 했던 일, 또는 몰입했던 일로 형성된다는 걸. 처음에 아버지를 죽였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필요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그다음 살인부터는 순수한 몰입감이었잖아. 이제 김병수에게 삶의 고민이란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어.

 V: 초반부에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잖아. 「신부라는 시를 첫날밤에 신부를 살해하고 도주한 신랑 이야기로 읽었다면서 그걸 어떻게 달리 읽겠는가?”라고 따지듯이 쓴 장면. 누가 누구한테 이해를 바라는 거지? 연쇄살인마 주제에 독자한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어.

 O: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돼.

 V: 김병수의 시각을 떼어놓고 이 소설을 보면 조금 다른 점도 발견돼. 연쇄살인마 자리에 주어가 없으면 우리는 미지의 존재에 공포를 느끼지. 하지만 그 존재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치매 환자임을 아는 순간,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워. 사람에 대한 감정은 꽉 찬 그릇과도 같은 거야. 내용물이 대체될 수는 있어도, 비워질 수는 없어.

 O: 박주태의 시각으로는 치밀한 수사물이고, 은희 입장에서는 비극이겠지.

 V: 개의 입장에서는?

 O: 그것까지 알아야 하나?

 V: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무시할 수는 없지.

 O: 혼란, 무수한 혼란.

 

 N: 그래서 김병수는 마음의 안식을 얻었나?

 V: 감옥에 갇혔다면, 그랬겠지.

 N: 내가 보기에 그한테는 공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휴식인 것 같은데.

 V: 죽음 말인가?

 N: 죽음이 또 다른 구속인지, 자유의 시작인지 어떻게 알고?

 V: 그한테는 남아 있는 삶이 죽음보다 가혹했으니.

 N: 연쇄살인마한테 삶을 선고하는 것이 더 잔인하다니, 이해가 안 가.

 V: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니.”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앎을 택할까, 무지를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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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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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카프카는 묘하게 닮았다.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특수한 지위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입문자의 마음에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들어선다. 친절하면서 냉혹하고, 긴밀하면서도 툭툭 끊기는, 그들 특유의 양면성에 애증을 느낀다. 그래서 오랫동안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실종자』는 어느 선택지든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카프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카알 로스만은 설명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들에 휩쓸린다. 첫 번째 장부터 그 특징은 두드러진다. 모르는 남자에게 트렁크를 대뜸 맡기는 로스만, 그리고 그를 붙잡는 화부, 화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선장에게 찾아가고, 그러다 만나게 되는 외숙부까지, 이 일련의 과정이 어딘가 부적절한 표현들과 부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카알이 미국까지 떠밀려 오게 된 계기부터 그가 외숙부의 집에서 쫓겨나는 동기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카알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휩쓸려 세상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이후 미국에서 독립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다. 엘리베이터 보이로 취직하지만, 얼마 안 가 한 번의 실수로 바로 해고당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곳에서 하인으로 일한다. 이곳에서의 비참함과 부당함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로스만은 오클라하마 극장의 공고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리고 클레이톤으로 기차를 타는 과정에서 이 미완성의 작품은 막을 내린다. 언뜻 보면 드디어 카알이 억압과 방랑에서 벗어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불현듯 끊겨버린 그의 여정은 로스만이 결코 이 사회에서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라는 영문식 이름이 주는 무언의 압박과 공포는 '실종자'라는 신원 미상의 정보를 통해 완성된다. 분명 그는 실존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한다. 아들로서의 역할을, 식객으로서의 역할을, 직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로스만은 가치없는 존재일 뿐이다. 이는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하여 생산성을 잃게 된 그레고리의 우화와 다를 바 없다. 극장으로 향하는 로스만의 모습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종착점이 없는 터널을 향해 돌진하는 기차 안에 탄 승객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완결되지 않은 이 소설은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독자에게 남기게 된다. 굳이 카알 로스만을 자신에게 대입하지 않아도, 이 땅에 무수한 실종자들이 맴돌고 있으리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는가? 


 카프카의 소설에는 해답도, 질문도 없다. 그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어떤 우화들을 제시할 뿐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교훈은 '인간의 삶에는 어떠한 교훈도 없다'는 문장이지만. 알 수 없는 형벌에 의해 처벌을 받아도, 미지의 땅에 휩쓸려간다 해도, 개인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나 체제가 변화되어야 하는가? 글쎄, 세상이 좋아진다고, 정책이 변한다고 인간의 삶이 행복해질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기계가 추구하는 실용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인간이라는 부품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니까. 카알이 가지고 있던 인간성과 저항하는 마음이 그를 추방했듯이, 아메리카에 영혼이 머물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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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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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최근에 읽은 이상문학상 단편집과 박완서의 단편집을 비교해서 읽으면, 어쩐지 낯설다. 전자가 차가운 웃음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따뜻한 해학으로 인간을 비춘다. 두 책에 수록된 작품들 모두 현대사의 단면을 드러내지만, 박완서의 소설집은 조금 더 개인의 심리에 집중한다. 그래서 조금 더 친숙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는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있다고 본다. 문학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선호도라던가. 일단 나에게는 박완서 소설가의 토닥거림이 꽤 괜찮았다.


 등장인물과 다루는 내용이 다른 이 단편집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관찰자의 밀도 있는 심리 묘사다. 때로는 1인칭으로,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읽혀지는 인물의 심경 변화는 실로 극적이다. 사건은 미약할지라도 그것이 인물의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 안에는 일반적인 사랑과 욕망도 포함되어 있지만,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다른 유형의 마음이다. 차마 남들에게는 고하지 못하는 악의요,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탐욕이요, 다소 부끄러운 과거들이다. 누구나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는 이면들이 수면 위에 떠올라 독자의 마음을 찌른다.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곧 읽는 이의 감정을 동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낯부끄러운 존재들을 익살을 담아 표현하는 작가의 수완이 대단하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기보다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혹은,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몰라. 조금은 초조하지만 그래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소설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위가 아닐까 싶다.

 

 인상적인 단편들을 몇 가지 꼽으라고 하면, 「참을 수 없는 비밀」,「그 여자네 집」,「J-1 비자」가 아닐까 싶다. 다른 단편들도 모두 빼어나지만, 박완서가 펼쳐놓은 언어의 망을 나의 방식으로 풀어놓기에는 역부족이다.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주제를 한 줄로 적어놓기에는 그녀의 단편에 서린 느낌을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분명한 인상으로 남은 것만 나의 언어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편은 책 전체에서 보기 드문 스무 살의 기억을 다룬다.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각인된 불행과, 그 사건의 진실을 품고 있는 한 명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생의 전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어찌 보면 비운의 인물이다. 관찰자는 그녀의 마음을 구석구석 후비며 내면의 욕망과 아쉬움 등을 낱낱이 내비친다. 그리하여 독자는 하영의 비밀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여자네 집」은 위에 언급한 단편소설과 대척점에 있다고 본다. 하영의 이야기가 개인의 서사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의 서사는 현대사와 다양한 지점에서 접한다. 소설은 만득이와 곱단이의 교제를 가로지르는 일제강점기, 분단과 전쟁, 그리고 위안부까지 맞닿는다. 그동안 인물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 작가는 이번에 자신의 능력을 한껏 제한하여,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에 놓인다. 그렇게 해야 역사를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요,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장만득의 호소는 어찌 보면 박완서가 추구하는 글쓰기와 어긋난다. 요지는, 나의 역사를 안다고 나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제야 만득이와 기구한 현대사를 동시에 보고 난 후,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독자들은 그 허무맹랑한 상상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박완서 특유의 해학임을 느꼈다.


 「J-1 비자」는 이창구라는 소설가 겸 고등학교 국어 선생을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소재는 J-1 비자를 얻기 위해 벌이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여정과 끝내 좌절되어 드러내는 속좁음이지만, 그 안에도 현대사의 단면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몇 번 언급한, 한국인이 품고 있는 막연한 아메리카 드림을 풍자한다. 박완서는 소설가가 느끼는 미묘한 욕망을 한껏 드러내어 해학스러운 어조를 유지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얼마 전까지 J-1 비자를 유지했고 실제로 미국에 갔던 경험이 떠올라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단편이기도 한다.


 서론의 첫 줄부터, 꽁뜨에 이르기까지 박완서는 그녀 특유의 해학을 놓치지 않았다. 더욱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작가가 세상을 그저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야말로 현대사의 산 증인이었고, 그 사이에 있었던 물리적, 정신적 충격에 함께 했다. 폭풍이 모두 지나고 나서, 그녀는 초연하게 미소를 짓는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거리를 적당히 조절하며. 때로는 기꺼이 소설 속의 세계로 참여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해학과 따뜻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그 능숙함에 감탄이 나온다. 다 읽고 나면 알싸한 느낌이 조용히 머릿속에 남는다. 처음에는 웃음 지을지라도, 후에는 표정이 달라진다. 전혀 낡지 않은 박완서의 소설들을 조용히 품는다.

극진히 사랑하던 애인을 바다에서 잃은 청년이 있었다나. 그가 남은 생애 동안 돈을 버는 대로 오로지 뛰어난 아콰마린만 사모은 게 늙어 죽을 때는 드디어 커다란 마대자루 하나 가득하더라는 것이었다. 깊은 바다에 애인을 빼앗긴 청년이 따라 죽는 대신 바다 빛깔 결정체에다 자신의 혼을 수없이 던진 이야기를 친구는 왠지 심드렁하고 간략하게 말했다. 그런 무기교야말로 극상의 기교였을까. - P13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십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 삼천기 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 P203

"난다 긴다 하는 급수 딴 타자수도 얼마나 많은데 할머니한테까지 돌아올 일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청년이 7000원짜리 수리비 청구서를 내밀며 정말로 안됐다는 듯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신기했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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