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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먹고 난 기분이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유머의 뒤에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재미있는 소설이 '소설'이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작가가 만들어 놓은 공간인 '세렝게티 동물원'은 틀에 박힌 일상이라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나의 감옥처럼 보인다(참고로 '세렝게티'란 탄자니아 북서부에 있는 넓은 초원이며, 인간의 손길이 닫지 않는 야생의 세계를 의미한다). 동물들을 가둬놓기 위한 동물원에 인간이 갇혀 있다니,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굿바이 동물원』의 주인공은 네 사람이다. 회사에서 잘린 이후 각종 잡일(봉투 붙이기나, 마늘 까기 등)을 하다가 '돼지엄마'의 권유로 세렝게티 동물원에 들어가게 된 '나(김영수)', 본명은 '영희'이며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동물원 일을 겸행하는 '앤', 가족에게 버림받고 다시 취직하려는 '조풍년',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동물원에 들어가게 된 남파 간첩(!) '만딩고'. 이들은 고릴라의 탈을 쓰고 한 우리에서 만났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하고도 흥미로운 설정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동물보다 더 동물 같은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 들킬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살기 위해 발악해야 하니까.
딜레마는 이것이다. 나는 우리 밖에서 동물들을 구경하며 노는 사람인가, 아니면 살기 위해 동물의 탈을 쓰고 사람들에게 놀이감이 되어야 하는 사람인가? 전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편이고, 후자는 열악하다. 하지만 그것말고도 더 큰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인 반면,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사람은 '속박된 사람'이다.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탈출'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그 탈출 방법은 만딩고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작품 중간에 네 마리 고릴라에게 소생이라는 외판원이 찾아오는데 이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작가처럼), 태연하게 그들에게 콩고 이주를 권한다. 그리고 만딩고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말인데도. 왜 만딩고는 그렇게 '인간 탈출 선언'을 했던 것일까?
이 소설의 가장 큰 역설은, 어쩌면 정말 때려치우고 싶은 현실일지도 모른다. 영수, 앤, 조풍년, 만딩고, 그리고 영수의 아내와 운동 도중 만난 송 과장까지,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지만 그 사연이 탄생한 까닭은 물질만능주의와 차별로 가득한 이 세상이었다. 현실이 너무나 괴롭기에, 그러나 포기할 수 없기에 동물원에서 노예처럼 일하더라도, 그것을 참아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것, 아니 우리 모두가 원했던 것은 단 두 가지였다. 행복과 자유. 아니, 궁극적으로, 행복을.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하라. 이것이야말로 저자 강태식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