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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어려울 때 소원에 의지하는 법이다. 사람은 만족할 때에는 결코 소원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그 욕망들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보통 사람들이다. 그래서 '알라딘의 요술 램프'나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민중의 '신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달과 게』도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신화' 또는 '전설'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소라게를 태움으로써 원하는 소원을 빌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여러 러 번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소라게를 태운다고 해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작가도 알고 있다. 단지 아이들이 자신의 어려움과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회피 수단'이다.  

 이 소설에서 사건을 이끄는 사람은 두 명이다. 신이치 도네와 하루야 도미나가. 그리고 좀 더 덧붙여 표현하면 소녀 나루미가 있다. 『달과 게』는 이 세 아이의 행동과 심리를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아이들은 각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하루야는 아버지의 폭력과 괴롭힘에서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것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한편, 신이치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이 '회피 수단'으로 삼은 '소원 빌기'의 방법은 간단하다. 바다에서 소라게를 잡아 산에 있는 바위 구덩이에 그것들을 넣고, 소원을 빌고 싶을 때 한 마리를 꺼내어 불로 지져 소라게가 껍질에서 튀어나올 때 그 게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이룰 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우정을 깊이 나누게 된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어 가면 갈수록, 소원 빌기가 그들의 상처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소원을 빌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라는 소원을 빌 수가 없었다. 결국 점차 서로가 갈등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서로의 소원이 대비되어 신이치가 다치게 되기까지 이른다. 

 바로 그 때가 소설의 절정이며, 모든 갈등 해결의 끝이다. 소라게를 태우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지 못했지만 소원이 아니라 만남과 대화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되자 서로를 의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친구야말로 이들이 의지해야 할 존재였다. 비록 통하는 언어가 다르고(사투리의 차이), 성격과 행동이 다르더라도. 왜냐하면 친구는 그런 것까지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깨달았다. 소원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라는 걸. 신이치도 쇼조의 죽음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도, 하루야도, 나루미도 충분히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친구는 신기하게도 질리지가 않지. 어른이 되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해서 만나면 바로 싫어지지만, 어릴 적에 만나는 친구는 그렇지 않아. 그건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쇼조가 아랫입술을 내밀고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신이치는 뭐라고도 대답하지 않고 침대에서 멀어졌다. 

 "그런 친구는 소중히 대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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