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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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두려웠던 경험이 있는가? 그것이 큰일이었든 작은 일이었든 우리는 끔찍했거나 창피했던 기억으로 인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도 불리는 트라우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전쟁이나 재난, 성폭행 등 일상을 벗어나는 범주의 큰 사건이 주는 경험인 ‘빅 트라우마’와 각 개인의 삶에서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스몰 트라우마’ 가 그것이다. 개인에게는 극적인 경험이었을 사건들을 ‘빅’과 ‘스몰’ 로 나눈 것은 일상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구분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두 경험 모두 그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고 자신과 세상을 멀리하게 되거나 불안감, 초조함, 공포심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신적 충격은 외상과는 달리 눈에 표출되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주위 사람 뿐 아니라 자신마저 그 상처에 대해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곪아 우리 삶을 천천히 잠식해 나가기도 한다.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은 영화에서 등장한 트라우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자칫 트라우마인지 모르고 지나간 영화도 있었는데 이 책은 적절한 사례와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서 트라우마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넓혀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은 심리학이라는 어찌 보면 어려운 학문을 다루고 있지만 <밀양>이나 <굿 윌 헌팅>,<포레스트 검프> 등 여러 친숙한 영화로 심리학에 대해 쉽게 접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인지 내가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 혹은 놓쳤던 장면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여러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는데 어렸을 적 경험들을 되새겨 보니 나에게도 분명 트라우마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난 개고기를 입에 대지 못한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의 거창한 이론 때문이 아니라 어렸을 때 어른들이 개를 잡는 것을 목격한 이후부터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 (그 이전에는 잘 먹었다고 한다.) 너무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그 장면은 이후 내 꿈에 종종 등장했고 ‘개고기’ 하면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생각나는 끔찍한 기억이다. 이런 것도 트라우마가 맞는 건가?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 할 때 종종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세월로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어떻게 될까? 상처 입은 사람들이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거부한 채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일도 있는데 그것은 아직 자신이 고통 받는 사건과 그로 인한 상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주위에서 아무리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라고 주문해 봤자 안정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겐 고통스러울 뿐이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그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를 고통의 수렁에서 하루 바삐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이 흥미로워서 그런지 24편의 영화들을 다시 찬찬히 볼 기회를 가졌으면 했다. 이미 본 영화도, 못 본 영화도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난 후의 영화감상은 좀 다를 것 같다. 또 내 자신의 상처 뿐 아닌 다른 사람의 상처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그들에게 섣불리 다가갈 수 없겠지만 함께 좋은 방향으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치유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니까 함께 어루만져 주며 나아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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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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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새를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은 카나리아, 잉꼬, 십자매, 백문조 같은 새들로 넘쳐났었다. 그 중에서 날 가장 사로잡았던 새는 백문조인데 깨끗이 하얀 몸과 선명한 붉은 부리 등 외적인 이유 말고도, 오랜 기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새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인지 백문조 한 쌍은 알도 무척 많이 낳고 많은 새끼들을 부화시켰다. 또 사람을 피하지 않아서 내가 새장 문을 열고 손을 집어넣으면 날아와 내 손가락에 사뿐히 내려앉기도 했다. 어렸던 때지만 백문조와 나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분명 서로 다른 것으로 통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웨슬리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나의 스승이요, 동반자요, 자식이자 친구였고, 신을 일깨워 주는 존재였다.                    P. 313

<안녕, 웨슬리> 라는 책은 조금은 생소한 새, 가면올빼미와 작가의 19년 동안의 우정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보면 관찰일기나 기록장 같기도 하지만 대부분 종이 다른 두 영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태어난 지 나흘 밖에 안 되었던 작은 생명을 보고 작가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처음엔 작가도 펜필드 박사가 한  “자네가 저 녀석을 길들이면, 저 녀석이 자네를 구해줄 거야” 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웨슬리와 교감이 깊어지고,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또 극적인 상황에 웨슬리가 작가의 희망이 되어주면서 그 말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책엔 올빼미들의 여러 습성과 생태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고 있다. 그래서 야생에서 살아야 할 새를 사람이 키우려면 어미 노릇을 톡톡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작가는 웨슬리가 크는 동안 직접 쥐를 잡아 먹였다. 가면올빼미가 쥐만을 먹기 때문이었는데 하루에 많게는 7~8마리까지 먹어치우니 그 쥐들을 살 수 없다면 직접 잡을 수밖에 없었다. 또 작가는 직접 횃대를 제작하고 웨슬리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주의 하면서 집안에서 비행연습도 시킨다. 비행연습에 방해가 되는 물건들을 몽땅 치우면서 까지! 

가면올빼미는 분명 다른 길들이는 동물들과는 다르다. 또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으로도 대할 수 없다고 한다. 웨슬리에겐 친구, 아니면 적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만약 큰 소리를 내면서 잘못했을 때 화를 내며 길들이려 했다면 웨슬리는 작가를 적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생동안 한 배우자와 살아가는 ‘올빼미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웨슬리에게 한없는 다정함만을 주었다. 웨슬리만의 ‘올빼미의 길’을 동참하고 이해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슬리도 사람인 작가의 생활을 이해하고 함께한다. 

 결말은 예상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이 기적이라는 19년, 책을 통해 웨슬리와 작가의 생활을 봐왔기 때문인지 웨슬리의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마치 내가 키우던 동물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예전에 떠나간 내가 키우던 동물들 생각이 났다. 나를 바라보던 신뢰가 담긴 눈, 따뜻한 몸짓, 친밀한 행위까지. 
 

 지금도 내 곁엔 8년을 함께한 강아지가 곁에 있다. 성견이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키워 내 강아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언젠가 다가올 이별도 두렵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곁에 없을까봐 무섭다. 작가가 웨슬리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다 알 순 없겠지만 눈을 마주 보고 몸을 부대끼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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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토바이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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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집을 떠나 친구 세 명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나와 친구들은 바쁜 시간과 게으름을 핑계로 밥을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았다. 그날도 점심부터 부실하게 먹고 들어와 쌀독을 열었는데 쌀이 한 톨도 남아있질 않았다. 주머니엔 ‘식권’만 들어있어 우리는 다음 날 식권으로 밥을 먹기로 하고 그날은 굶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할 때 우스갯소리로 “쌀이 없어서 굶고 있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안개가 유난히 심한 날이었다. 살다 살다 처음 볼 정도의 그날 안개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바로 앞에 다가와서야 보일정도로 짙게 깔려있었다. 그런 날에 아버지는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차를 타고 딸에게 달려오셨다. 쌀 반가마니를 싣고서 말이다. 다음 날까지 12시간 정도만 굶어도 되었을 때에 아버지는 그 정도의 시간도 굶게 하지 않게 하시려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내 손에 쌀을 쥐어주시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내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아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얼마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는 이런 삶을 살아오셨다 하고 말할 만큼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내가 봐온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 안에서의 모습일 뿐 결혼 전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엔 어떻게 지내셨는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알아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버지의 희생이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나오는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다. 아내와 아들들을 위해 돈을 벌면서 집을 떠나 있으면서 자기 입을 것, 먹을 것 아낀 돈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 그런 아버지. 
엄밀히 말해 이야기 속에 엄시헌은 나쁜 사람이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터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억척스러움 뒤엔 그의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아픈 첫째 아들, 자라나는 둘째 아들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설령 이렇게 돈을 모으다 자신이 일을 당하더라도 가족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엄시헌에겐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비난할 수 있을까? 모든 타인이 비난하더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편이 되어야한다. 그 희생과 노력이 자식을 완성시켰으므로. 그래서 엄시헌의 말년이 가슴 아팠다. 아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뒷일을 준비하는 엄시헌의 모습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들도 아버지가 됐다. 살아온 방식은 전혀 다르겠지만 자신의 자식을 위한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다른 삶을 살아도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가 희생한 일들에 조금이나마 보상이 된다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난 아버지는 절대 늙지 않을 실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곳에서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아버지를 보며 세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검버섯이 피어난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넘쳐흐른다. 워낙 무뚝뚝한 딸이라 아버지에게 따뜻하고 정감 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더 가기 전에 그 손을 붙잡고 마음속에 담아놨던 말씀을 드려야겠다. 고맙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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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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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 책을 읽다보면 심심치 않게 듣는 상 이름이 있다. 바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라는 상인데, 언제부턴가 일본 미스터리 책 중 이 상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들에 손이 먼저 가게 되었다. 이 책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도 마찬가지로 그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에 빛나는 책이라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대단했다. 또 요 근래 보기 드문 밀실살인에 대해 다뤘기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사실 ‘도서 미스터리’라는 말은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도서 미스터리’ 란 작품 처음에 범인의 정체나 범행수단을 미리 밝히는 형식이라 하는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또한 서장에서 이미 범인과 수법을 밝혀 버린다. 그래서 인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를 지배했던 생각은 밀실살인의 수법이 아닌 “왜”라는 질문이었다. 범인은 “왜” 그 피해자를 죽였고, “왜” 그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왜” 그 시간이었을까 같은 질문들이다.

대학 서클인 경음악부에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뭉친, 일명 ‘알코올중독분과회’집단 일곱 명이 오랜만에 동창회로 모였다. 장소는 안도의 형이 운영하는 고급펜션. 부유한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저택을 펜션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형이 운영을 비운 사이 안도와 나머지 멤버들은 동창회 겸 간단히 펜션 청소를 하기 위해 모이게 됐다. 청소를 끝내고 각자 방으로 돌아간 휴식시간에 후시미는 후배 니이야마의 방에 들어가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 후 후배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문을 열지 못하게 해야 하는 후시미와 니이야마의 이상을 눈치 채고 닫힌 문을 열기 위한 유카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후시미는 “왜” 사이좋은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말았을까? 그것도 동창들이 다 모인 펜션에서- 

앞서 말했듯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의 최대 강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품게 하는 질문인 “왜”일 것이다. 책은 닫힌 문을 두고 두뇌싸움을 벌이는 후시미와 유카의 이야기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것도 대놓고 하는 질문이 아닌 살살 유도하는 식이라 책을 놓기 전까지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책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유카의 캐릭터는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 회상과 후시미의 설명으로 유카의 성격과 지능의 뛰어남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성격이 그렇다 하여도 다 같이 재밌게 놀러간 자리에서 이런 논리 정연한 추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살인’이라는 드물지 않은 상황에서. 뭐, 이런 인간미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속편제작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는 ‘도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 하는데 두 번째 작품에서도 유카가 탐정 역을 맡았다고 한다. ‘도서 3부작’이라는 것은 물론 이 책처럼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퍼즐 맞추듯 풀어가는 형식에 큰 재미를 느껴서 그런지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가 크다.

무더위로 몸이 바짝바짝 마른다. 가끔 내리는 소나기가 여름의 열을 식히듯이 우리의 마음을 차갑게 식혀줄 오싹한 공포를 찾고 있다면 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를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짜릿한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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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 2 뱀파이어 삼부작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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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의 달콤함에 빠져 있던 독자들은 꿈에서 깰지어다. 여기 색다르고 기괴한 뱀파이어 소설이 있다. <트와일라잇>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나온 어떤 뱀파이어 이야기와도 다르다. <스트레인>의 뱀파이어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끌리지 않고 유혹하지도 않는다. 또 몇 분 만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피를 흡수할 수 있고 굳이 이빨을 사용하지 않고도 손쉽게 인간의 피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있어 질병이자 재앙이며 이야기는 이 순수한 포식자로부터 인간의 멸종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네는 지금 검은 공단을 걸친 우울증 환자나 어금니를 숨긴 꽃미남정도를 생각하고 있겠지. 아니면, 바깥세계를 향한 저주에 갈등하는 실존적 존재라든가, <벨라 루고시, 애봇과 코스텔로를 만나다> 정도쯤 되는 영화를 떠올리고 있을 거야.”
<스트레인> 2권 p.26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알게 된 건 그의 영화 <판의 미로>에서였다. 개봉 첫 날,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를 연상시키는 극장 홍보용 포스터를 본 친구와 나는 주저 없이 <판의 미로>를 선택했고, 우는 아이들의 소음과 극장을 뛰쳐나가는 아이와 엄마들 속에서 영화 관람을 마쳐야 했다. 홍보로 인한 실패였다지만 누구도 그 영화의 매력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아이가 볼 영화는 아니었지만) 시종일관 어두운 영화 분위기와 소름끼치는 형상의 요정, 괴물들은 우리가 가진 판타지 정석의 틀을 부숴버릴 정도로 강렬했고 또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뱀파이어 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전 세계에 밀어닥친 뱀파이어 열풍에 편승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난 전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란 이름에 의지했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올 책은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뱀파이어를 창조했을 지 궁금하기도 했고.

깊은 밤, JFK 공항에 한 비행기가 착륙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착륙한지 몇 분 만에 여객기 불이 모두 꺼진 채 움직이질 않는다. 기계결함을 의심하는 관제탑 직원들. 하지만 이어 들어간 특공장교들에 의해 승객들이 모두 죽었음을 알아낸다. 착륙한 지 불과 6분 만에 일어난 일이라 관계자들은 테러로 인한 바이러스를 의심하게 된다.
연락을 받고 온 질병관리센터의 에프와 노라는 그 속에서 생존자 4명을 발견하고 격리한다. 그리고 화물칸에서 흙으로 속을 채운 커다란 직육면체 나무상자 또한 발견하는데, 화물목록에 기록이 없는 이 나무상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생존자들의 변화와 함께 시체 보관실에서 시체들이 전부 없어지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곧 엄폐이자 일식이다. 나는 인간을 마시기 위해 왔노라.

책에서 ‘마스터’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큰 키에 말라비틀어진 검은 피부, 날카로운 노란 이빨에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투명한 피부로 묘사되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누구보다도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또 그와 마주치는 살아있는 존재들은 어떤 이는 경외감으로, 어떤 이는 절대적 공포심으로 무릎을 꿇게 된다. 이와는 달리 다소 실망스러웠던 인물은 질병관리센터의 에프였다. 비행기의 이변을 빨리 알아채고 ‘마스터’에게 대항하는 인물이지만 여느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주인공처럼 전형적인 인물이다. 할리우드 재난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주인공이 각 분야의 전문가인 과학자나, 교수, 의사 등인데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상황을 헤쳐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인>의 에프도 다르지 않았다. 아들 ‘잭’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진부했다. 아마도 나중에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되는 게 아닌가 생각 되는데 그걸 의식한 듯 한 에프의 캐릭터가 아쉬웠다.

<스트레인>에서는 과거 스페인 독감에서부터 최근의 SARS나 신종플루까지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해 말한다. 또 책 곳곳에 9.11에 대한 공포의 잔재가 깔려 있는데 비행기의 이상에 제일 먼저 테러 의심을 한 것도 이와 상통한다. 결국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빌려 현대 사람들의 근원적 공포심을 자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일 무서운 건 공황상태라고 했던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사람들은 대항할 힘조차 잃고 마는데 바로 조금 전까지 친절한 이웃이었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만나던 친구들이 피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는 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거대한 재앙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족조차 지킬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낸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고 점점 변화하는 인간들이 피를 빨기 위해 귀소본능처럼 집부터 찾아간다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 모든 상황과 기존의 뱀파이어의 틀을 깬 자잘한 설정까지 창조해 낸 기예르모 델 토로에겐 역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척 호건과 공동작이지만)

2권의 끝에 ‘마스터’와 같은 고대의 존재들이 더 나온다. 이어지는 얘기에서 뱀파이어와 인간의 전쟁이 될지 협정을 깬 뱀파이어와 그렇지 않은 뱀파이어와의 전쟁이 될지 궁금하다. 전쟁은 누구의 승리가 될 것인가. 이미 경고의 등은 켜졌다. 일주일이면 맨해튼이, 석 달이면 미국이, 반년이면 전 세계가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 질 위기에서 인간들은 다음 세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아직 1부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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