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웨슬리
스테이시 오브라이언 지음, 김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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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새를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은 카나리아, 잉꼬, 십자매, 백문조 같은 새들로 넘쳐났었다. 그 중에서 날 가장 사로잡았던 새는 백문조인데 깨끗이 하얀 몸과 선명한 붉은 부리 등 외적인 이유 말고도, 오랜 기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새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인지 백문조 한 쌍은 알도 무척 많이 낳고 많은 새끼들을 부화시켰다. 또 사람을 피하지 않아서 내가 새장 문을 열고 손을 집어넣으면 날아와 내 손가락에 사뿐히 내려앉기도 했다. 어렸던 때지만 백문조와 나는 말은 통하지 않아도 분명 서로 다른 것으로 통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웨슬리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그는 나의 스승이요, 동반자요, 자식이자 친구였고, 신을 일깨워 주는 존재였다.                    P. 313

<안녕, 웨슬리> 라는 책은 조금은 생소한 새, 가면올빼미와 작가의 19년 동안의 우정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보면 관찰일기나 기록장 같기도 하지만 대부분 종이 다른 두 영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태어난 지 나흘 밖에 안 되었던 작은 생명을 보고 작가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하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처음엔 작가도 펜필드 박사가 한  “자네가 저 녀석을 길들이면, 저 녀석이 자네를 구해줄 거야” 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웨슬리와 교감이 깊어지고,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또 극적인 상황에 웨슬리가 작가의 희망이 되어주면서 그 말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책엔 올빼미들의 여러 습성과 생태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고 있다. 그래서 야생에서 살아야 할 새를 사람이 키우려면 어미 노릇을 톡톡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작가는 웨슬리가 크는 동안 직접 쥐를 잡아 먹였다. 가면올빼미가 쥐만을 먹기 때문이었는데 하루에 많게는 7~8마리까지 먹어치우니 그 쥐들을 살 수 없다면 직접 잡을 수밖에 없었다. 또 작가는 직접 횃대를 제작하고 웨슬리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주의 하면서 집안에서 비행연습도 시킨다. 비행연습에 방해가 되는 물건들을 몽땅 치우면서 까지! 

가면올빼미는 분명 다른 길들이는 동물들과는 다르다. 또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으로도 대할 수 없다고 한다. 웨슬리에겐 친구, 아니면 적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만약 큰 소리를 내면서 잘못했을 때 화를 내며 길들이려 했다면 웨슬리는 작가를 적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생동안 한 배우자와 살아가는 ‘올빼미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웨슬리에게 한없는 다정함만을 주었다. 웨슬리만의 ‘올빼미의 길’을 동참하고 이해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슬리도 사람인 작가의 생활을 이해하고 함께한다. 

 결말은 예상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이 기적이라는 19년, 책을 통해 웨슬리와 작가의 생활을 봐왔기 때문인지 웨슬리의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팠다. 마치 내가 키우던 동물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예전에 떠나간 내가 키우던 동물들 생각이 났다. 나를 바라보던 신뢰가 담긴 눈, 따뜻한 몸짓, 친밀한 행위까지. 
 

 지금도 내 곁엔 8년을 함께한 강아지가 곁에 있다. 성견이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키워 내 강아지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언젠가 다가올 이별도 두렵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곁에 없을까봐 무섭다. 작가가 웨슬리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다 알 순 없겠지만 눈을 마주 보고 몸을 부대끼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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