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오토바이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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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집을 떠나 친구 세 명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나와 친구들은 바쁜 시간과 게으름을 핑계로 밥을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았다. 그날도 점심부터 부실하게 먹고 들어와 쌀독을 열었는데 쌀이 한 톨도 남아있질 않았다. 주머니엔 ‘식권’만 들어있어 우리는 다음 날 식권으로 밥을 먹기로 하고 그날은 굶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전화통화를 할 때 우스갯소리로 “쌀이 없어서 굶고 있어요” 라고 말해버렸다. 
 

안개가 유난히 심한 날이었다. 살다 살다 처음 볼 정도의 그날 안개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바로 앞에 다가와서야 보일정도로 짙게 깔려있었다. 그런 날에 아버지는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차를 타고 딸에게 달려오셨다. 쌀 반가마니를 싣고서 말이다. 다음 날까지 12시간 정도만 굶어도 되었을 때에 아버지는 그 정도의 시간도 굶게 하지 않게 하시려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내 손에 쌀을 쥐어주시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내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아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얼마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는 이런 삶을 살아오셨다 하고 말할 만큼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내가 봐온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 안에서의 모습일 뿐 결혼 전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엔 어떻게 지내셨는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알아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버지의 희생이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나오는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다. 아내와 아들들을 위해 돈을 벌면서 집을 떠나 있으면서 자기 입을 것, 먹을 것 아낀 돈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 그런 아버지. 
엄밀히 말해 이야기 속에 엄시헌은 나쁜 사람이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터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억척스러움 뒤엔 그의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아픈 첫째 아들, 자라나는 둘째 아들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설령 이렇게 돈을 모으다 자신이 일을 당하더라도 가족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절실함이 엄시헌에겐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비난할 수 있을까? 모든 타인이 비난하더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편이 되어야한다. 그 희생과 노력이 자식을 완성시켰으므로. 그래서 엄시헌의 말년이 가슴 아팠다. 아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뒷일을 준비하는 엄시헌의 모습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들도 아버지가 됐다. 살아온 방식은 전혀 다르겠지만 자신의 자식을 위한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다른 삶을 살아도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가 희생한 일들에 조금이나마 보상이 된다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난 아버지는 절대 늙지 않을 실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다른 곳에서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아버지를 보며 세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또 검버섯이 피어난 아버지의 손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넘쳐흐른다. 워낙 무뚝뚝한 딸이라 아버지에게 따뜻하고 정감 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더 가기 전에 그 손을 붙잡고 마음속에 담아놨던 말씀을 드려야겠다. 고맙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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