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셀렉션
데이브 프리드먼 지음, 김윤택 외 옮김 / 지성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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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유명한 다윈의 이론은 자연에 적응하기에 더 적합한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 생존함으로써 우수한 자손을 후대에 남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개체들은 수 백 만년동안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되어 왔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가령 바다 깊은 곳에서 온 이 악마가오리처럼. 
 

쥐가오리의 생태를 연구하는 팀의 제이슨과 리사, 대릴과 모니크 부부, 크레이그,필은 졸부 사업가인 해리 애커먼에게 고용되어 있다. 쥐가오리 수족관을 건설하기 위해선 쥐가오리의 생태를 연구할 해양생물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분명 돈이 되는 사업이었지만 쥐가오리들은 수족관에 적응하지 못했고 연구는 고착상태 빠졌다. 하지만 클라리타섬에서 쥐가오리와 비슷한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애커먼은 사업을 다른 방향으로 바꾼다. 그리하여 제이슨 이하 6명의 팀원들은 그 새로운 종을 뒤쫓기 시작하지만 추적하면 추적할수록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들과 생물체의 정체에 팀원들은 경악하게 된다. 환경에 적응 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다는 이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진화하는 이 생물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6명의 해양생물학자들은 그 악마들을 막을 수 있을까?   
 

심해는 우주만큼이나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다. 아직 그 곳 끝까지 도달할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심해에는 먼지만한 빛도 없는 데다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 다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바다괴물 이야기는 세상에 쉬지 않고 등장한다. 또 대왕오징어 같은 커다란 바다생물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넘어 경외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이 책 <내추럴 셀렉션>도 그랬다. 1톤이 넘는 무게지만 몸의 근육을 이용해 깃털이 없어도 날 수 있고 본능이 아닌 관찰 끝에 사냥하는 악마가오리의 모습은 분명 무서웠지만 감탄이 나왔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6명의 사람들이 미지의 괴물을 막기 위해 폐쇄된 장소에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요즘 기술로 만들어내면 정교하게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밌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다. 책이 63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무게도 느낄 틈 없이 읽어내려 간 건 요즈음 읽은 책 중에 손에 꼽을 만큼 흥미롭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처음 <쥬라기 공원> 봤을 때만큼의 충격은 없겠지만 가오리에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로선 대형 화면으로 악마가오리의 까만 눈동자와 수 백 개의 이빨을 보면서 엄청난 무시무시함을 느낄 것이다.  

사실 괴물과 인간의 싸움이 전부였다면 진부한 소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추럴 셀렉션>은 다윈의 이론을 빌려 그 진부함을 피해간다. 이 악마가오리는 인간의 실험으로 거대해진 것이 아닌 온전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잡아먹던 하늘을 날던 그 모든 게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수 백 만년동안 벌어졌던 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솔직히 무섭다. 이렇게 똑똑하고 거대하고 날기까지 하는, 약점은 찾아 볼 수 없는 생물이라니. 우리가 그보다 나은 건 두 손이 있다는 것 뿐, 만약 악마가오리들이 상어 떼만큼이나 몰려온다면 우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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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0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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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 없이 상황에 쉬이 적응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처음엔 주변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속될수록 사람들과의 사이에 선을 긋고 자기비하나 자기학대에 들어간다. 구부러지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사람은 주위를 힘들게 하거나 그 올곧음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게도 하는데 <어느 신골 신부의 일기>에 젊은 신부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아이처럼 순박하기에 주위의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특유의 곧은 성격으로 미움을 받기도 한다. 극도의 가난으로 하루하루를 걱정해야하는 사제,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있는 악을 물리치기 위해 깊게 성찰하고 노력하는 사제. 하지만 그의 노력은 사람들에게 닿지 않고 언제나 산산이 부서지기만 한다.   

<어느 신골 신부의 일기>는 신의 믿음이 사라지고 기계가 도입될 무렵의 이야기다. 종교가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중세시대가 지나고 점차 사람들이 그 자신의 탐욕과 욕망에 물들어가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1930년대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이 번져가던 당시 프랑스사회에서 그 시대 교회의 부패와 관료주의 등을 앞장서서 비판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신부는 매우 나약한 육체를 지녔다. 위통으로 밥을 못 먹을 때도 있고 병으로 몸이 말라가고 쇠약해지지만 그의 신앙심만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신부는 사람들을 도와주려 노력하고 신앙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너무나 올곧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세상에 대해 너무 몰랐던 신부는 다른 신부에게 충고를 받기도 하고 주위의 미움을 받기도 한다.

책은 일기의 형식이다. 날짜는 나와 있지 않지만 주로 신부의 독백과 사람들과 나눈 대화로 내용이 채워져 있다. 중간 중간 나오는 공백과 변해가는 몸, 처절한 그의 고백은 그가 날이 갈수록 고통에 빠진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 책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어린이의 마음’과 ‘숭고한 가난함’을 강조함으로써 신부의 마음이 한층 빛나 보이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새로이 알게 된 말도 있다. ‘가난한 자는 애덕으로 살아간다’라는 말이다. 가난한 자는 타인의 자비로 살아간다는,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은 가난한 존재 덕분에 애덕을 행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뭔가 슬프면서도 맞는 말이라 기분이 씁쓸했다.

시련과 흔들림,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학과 외로움이 찾아오지만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자신과의 화해로써 애증의 감정을 승화시킨다. 특히 그의 마지막 말인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에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평온해진 그의 마음자세를 읽을 수 있었다. 뒤의 해설을 읽어보니 책에서의 신부의 수난이 골고다 언덕의 예수의 수난과 일치해 나간다고 한다. 작가는 예수의 수난을 현대로 재현시킴으로써 신앙심이 사라져가는 현대사회에 나약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고결함을 되새기려 한 것이다.

책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단어도 그랬고 귀족이나 하녀 같은 계급이 남아있지만 기계화가 시작된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이해할 수 없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믿음이 모자라서 그랬을 수도? 하지만 젊은 사제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뜻대로 되지 않음에서 나오는 고뇌와 자기성찰은 보편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처럼 하기는 어렵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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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
정세영 글.그림.사진 / 이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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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예쁜 책. 처음 <스페인에서 날아온 맛있는 편지>라는 책 표지를 보고 느낀 첫 감상이다. 엽서 모양에 주소 적는 칸까지 갖춘 책을 보니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날아온 반가운 소식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가 아기자기한 그림까지! 처음 책을 펴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겨우 펼친 책은 신기하게도 입체형이라 예전에 많이 했던 공작놀이를 생각나게 했다. 물론 분리가 되지 않아 책을 읽는 데 다소 불편함이 있었지만 책 자체가 작아서 그런지 별로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 책은 스페인에서 살다가 온 사진작가가 스페인에서 배운 여러 가지 요리법과 함께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서술해 놓은 에세이집이다. 사진작가답게 중간 중간 멋들어진 사진도 들어있고 스페인 요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 감성적인 글들이 매력적인 책이었다. 또 작가의 스페인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서 그런지 스페인을 잘 몰랐던 나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요리법을 책으로 보면 참 어렵다.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재료도 있거니와 복잡한 요리는 아무리 정독해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제일 문제인 것은 양 조절이다. 전문용어로 쓰여 있거나 너무 정확한 양을 요구하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하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레시피들은 요리초보인 내가 봐도 너무 간단한 거 아냐? 할 정도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가령 채소는 성격대로 자르시오와 같은 설명, 팬에 올리브유를 적당량 두르시오(!) (밥숟가락 5개정도. 비싼 기름 아낍시다!) 같은 글귀들이다. 손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요리과정도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에 한 몫 했다.

책엔 요리 한 개당 뒤에 작가가 스페인에서 겪은 일들이나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2~3페이지 정도로 실려 있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스페인의 문화를 새로이 알기도 하고 스페인 친구들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특히 미노네 가족이 입양한 한국아이들 민아와 영아이야기는 숙연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미노 부부는 다운증후군에 걸린 그 아이들을 흔쾌히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그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이제껏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고 이방인이 부모가 되어 미안해 운다는 베르나르 미노의 말은 내게 미안함, 고마움, 존경심까지 불러일으켰다. 
 

그 밖에 일흔 한 살의 루시아 할머니가 한국에 와 작가의 집에서 머물며 한 달 동안 한국 고궁이나 사찰을 공부하고 스페인으로 돌아갔는데 10년 뒤, 스페인에서 다시 만나 집에 하나 밖에 없는 1965년 산 셰리주를 같이 마셨다는 이야기에는 가슴이 찡해졌다.    

자, 1965년산 셰리주가 포도주 저장고에 딱 한 병 남아있었다니, 오늘 이걸 마시면서 우리 기적 같은 재회를 기념하자.
이제 우리 집에는 1965년산 셰리주가 한 병도 남지 않겠지만, 마지막 병을 너와 함께 비웠다는 기억만은 영원히 남지 않겠니?              p.152

스페인은 더운 지방이라 음식이 짜고 기름지다고 한다. 작가는 본토 요리는 우리 입맛에 안 맞을지 모르니 적절한 간과 기름으로 맛있는 요리를 하자고 말한다. 스페인에서 요리를 배워 그 경험으로 스페인 요리음식점까지 차린 작가의 충고니 재료와 방법은 맞추되 양념은 우리 입맛대로 해도 좋을 것 같다. 또 책 맨 뒤에 실린 작가의 음식점에서 쓸 수 있는 상그리아 무료쿠폰까지!! 서울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뭐, 기간은 좀 남았으니 쓸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스페인 요리를 보다보니 군침이 돌아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책을 보면 작가가 주로 머물렀다는 그라나다 지방이 많이 나온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유명하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맛있는 요리로 유명한 지역인가 보다. 결혼하기 전에 유럽여행을 해보는 게 소원인데 그라나다를 꼭 기억해둬야겠다. 작가가 강력 추천한 바(bar)들도 가보고 복잡한 골목도 걸어보고 새파란 하늘도 감상하고 싶다. 가야지, 가야지 마음만 먹지만 상상으로도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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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몬스터
정승원 지음, 이창윤 그림 / 삼양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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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현상들이 과학으로 규명되기 전 인간들은 자연을 두려워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연을 경외하였고 그 모든 현상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바람이 부는 것, 비가 오고 또 별과 달이 빛나는 것까지. 그러다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거대한 자연의 힘은 신이 만들어 낸 것이고, 인간과 동물이 아닌 또 다른 존재가 신보다 더 가까이에서 인간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이다. 고대나 중세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그들의 고된 삶에 타당성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몬스터>는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온갖 몬스터들이 등장한다. 어떤 것들은 기원전부터, 어떤 것들은 중세시대부터 존재해온 몬스터들인데 이렇게 하나로 묶어 놓고 보니 몬스터에도 지역적 특색이 있기도 하고 공통된 것도 있어 읽으면서 정말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또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로마신화나 판타지 소설을 즐겨봐서인지 낯익은 몬스터들이 나오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선 이 책은 10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테마는 영생불사, 반인반수, 용, 이종결합, 다다익선, 거대괴물, 여신 여괴, 자연 정령, 요괴 요물, 환상식물로 제목이 붙어있는데 각각의 몬스터에 따른 전설이나 신화도 같이 소개하고 있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영생불사 몬스터 중 봉황이나 샐러맨더, 가루다, 아펩 등이 거의 새나 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다. 책에 의하면 그 몬스터들은 주로 태양, 불과 연관되어 있다 하는데 태양은 매일 밤 사라지지만 다음 날 다시 떠오르고 불은 생명과 빛의 근원으로 여겨져 영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또 뱀은 탈피를 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고 여겨지고 새는 그러한 뱀을 잡아먹기 때문에 같이 불사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예로, 용이 동양과 서양에서 상징하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양에서의 용이 보물의 수호자라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다.(하긴 책 <해리포터>를 봐도 그린고트 은행의 보물을 지키는 것은 용이었다.) 각각 관장하는 것이 물과 불이고 성격도 달라 동양에서는 용이 신격화 되어 있고 서양에서는 성격이 포악하여 무찔러야 하는 대상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같은 용인데 지역 따라 겉모습도 다르고 상징하는 바도 다르니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서양의 용이 이렇게 인간에게 해를 미치는 대상이 된 데에는 ‘신약성서’의 힘이 크다고 한다. ‘신약성서’에서 용은 하느님의 적인 사탄으로 규정하고 이브에게 사과를 권한 것이 사실  용이라고 하는 목소리도 있는 모양이다. 그에 반해 동양에서는 용이 머리가 좋고 바람과 비의 힘을 가졌다 하여 신성시 되어왔다. 가뭄이 계속 될 때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그 외에 이 책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친숙한 크라켄과 플라잉 더치맨도 소개하고 있고 어린 시절 비디오로 빌려봤던 강시시리즈의 강시도 나온다. 우리나라 고유의 몬스터인 불가사리와 미르에 대해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난 까마득한 옛날엔 인간과 환상적인 존재들이 함께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현대에는 인간이 전구를 발명해 어둠을 쫓아버려서 모두들 숨어버린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래서 검룡소(儉龍沼)의 이무기도 아직 천년이 되지 않아 바위 밑에서 수련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도 해봤다. 이런 얘기를 하면 논리적인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뭐 어떤가. 아무리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해도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 인간은 자연을 두려워 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그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불과 몇 백 년 만에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되어 인간에 의해 조각조각 난도질당하고 헤집어졌다. 그리하여 자연의 신비로움은 사라지고 원인과 결과만이 남았다. 그로인한 좋은 점도 부작용도 많다. 그래서 감히 말해 본다. 혹시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전설이나 설화의 몬스터들은 자연을 함부로 건드리면 해를 입는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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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혁명 - 시대를 앞서간 천재 허균의 조선개혁 프로젝트
정경옥 지음 / 여우볕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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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난설헌의 동생, 이것만이 허균의 대해 알고 있던 내 모든 것이었다. 말년이 불우했던 개혁가라는 것도 알았지만 앞의 두 가지가 허균을 이루는 가장 큰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은 허균의 개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언제부터 개혁의 꿈을 꾸었는지, 적자이면서 왜 서얼에 대한 소설을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인재가 많았던 선조-광해군 시절에 또 한명의 인재를 만날 기회였으니 말이다. 
 

허균의 나이가 스무 해가 되던 해, 집으로 금강산에 있다는 그의 둘째 형님 봉에게서 급한 전갈이 도착한다. 전할 말이 있으니 급히 와달라는 전갈이었다. 하지만 이레 걸려 금강산에 도착한 허균을 맞는 건 봉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봉이 율곡대감을 탄핵한 일로 정적(政敵)들에게 미움을 사 좌천된 지 5년만의 일이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타고난 총명함과 글재주를 묻고 살아가던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이 27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허균이 조선제도의 부당함을 느꼈던 것이. 적자로 태어나 조선제도 틀 안에서 지냈다면 평탄한 삶을 살았을 허균이었다. 하지만 허균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는 서얼들과 어울리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조금이라도 그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 그렇게 그의 슬픈 혁명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이야기는 1인칭 시점으로 허균의 생애를 그려나가고 있다. 역사 속 인물인 허균을 살이 있고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작가에게도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그만큼 허균이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오도록 만들었기에 보람 된 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 허균의 답답한 심정과 세상에 대한 분노도 잘 그려졌다. 역사 속 인물들과 역사 속 사건들을 잘 조합하여 많은 공부도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에도 허균이 왜 이 혁명을 주도하게 되었고 서얼들과 어울리며 기회를 엿보았는지에 대해 모호하게 느껴진다. 너무나 드라마틱한 사극들을 봐온 나의 문제인지 허균의 뜻에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이야기에서 꿈이 주는 의미가 많이 나온다. 허균의 운명을 암시하는지 하나 같이 슬프고 괴로운 꿈들이다. 불길한 꿈은 틀리지 않는다고 꿈을 꿀 때마다 그에게는 나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마지막에 꾼, 슬픈 눈으로 허균을 응시하던 이무기의 꿈은 허균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용이 되지 못하는 이무기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허균이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그의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죄안 없이 그가 급하게 형장으로 끌려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당시 역모혐의로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 복권되었다던데 허균만이 조선왕조 말까지 역적으로 남아있던 까닭은 왜였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이자 사상가에게 두려움을 느낀 조선왕조와 권력가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고찰하고픈 생각이 든다. 50생애, 한없이 자유롭고자 했던 허균의 꿈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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