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혁명 - 시대를 앞서간 천재 허균의 조선개혁 프로젝트
정경옥 지음 / 여우볕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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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홍길동전의 저자, 허난설헌의 동생, 이것만이 허균의 대해 알고 있던 내 모든 것이었다. 말년이 불우했던 개혁가라는 것도 알았지만 앞의 두 가지가 허균을 이루는 가장 큰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은 허균의 개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언제부터 개혁의 꿈을 꾸었는지, 적자이면서 왜 서얼에 대한 소설을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인재가 많았던 선조-광해군 시절에 또 한명의 인재를 만날 기회였으니 말이다. 
 

허균의 나이가 스무 해가 되던 해, 집으로 금강산에 있다는 그의 둘째 형님 봉에게서 급한 전갈이 도착한다. 전할 말이 있으니 급히 와달라는 전갈이었다. 하지만 이레 걸려 금강산에 도착한 허균을 맞는 건 봉의 싸늘한 시신이었다. 봉이 율곡대감을 탄핵한 일로 정적(政敵)들에게 미움을 사 좌천된 지 5년만의 일이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타고난 총명함과 글재주를 묻고 살아가던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이 27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허균이 조선제도의 부당함을 느꼈던 것이. 적자로 태어나 조선제도 틀 안에서 지냈다면 평탄한 삶을 살았을 허균이었다. 하지만 허균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는 서얼들과 어울리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조금이라도 그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 그렇게 그의 슬픈 혁명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이야기는 1인칭 시점으로 허균의 생애를 그려나가고 있다. 역사 속 인물인 허균을 살이 있고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은 작가에게도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그만큼 허균이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오도록 만들었기에 보람 된 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 허균의 답답한 심정과 세상에 대한 분노도 잘 그려졌다. 역사 속 인물들과 역사 속 사건들을 잘 조합하여 많은 공부도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에도 허균이 왜 이 혁명을 주도하게 되었고 서얼들과 어울리며 기회를 엿보았는지에 대해 모호하게 느껴진다. 너무나 드라마틱한 사극들을 봐온 나의 문제인지 허균의 뜻에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던 것이 안타깝다.

이야기에서 꿈이 주는 의미가 많이 나온다. 허균의 운명을 암시하는지 하나 같이 슬프고 괴로운 꿈들이다. 불길한 꿈은 틀리지 않는다고 꿈을 꿀 때마다 그에게는 나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마지막에 꾼, 슬픈 눈으로 허균을 응시하던 이무기의 꿈은 허균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용이 되지 못하는 이무기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허균이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그의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죄안 없이 그가 급하게 형장으로 끌려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당시 역모혐의로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 복권되었다던데 허균만이 조선왕조 말까지 역적으로 남아있던 까닭은 왜였을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이자 사상가에게 두려움을 느낀 조선왕조와 권력가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고찰하고픈 생각이 든다. 50생애, 한없이 자유롭고자 했던 허균의 꿈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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