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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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반만년의 역사,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 이 두 가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알려져 있는 고조선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 속에서 고조선부터 시작되는 상고사[上古史]를 증명할 사료는 거의 없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신화로 전해지고 고려 말 이암이 썼다는 <단군세기>는 가장 믿을 수 없는 책으로 낙인 찍혔다. 이렇게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니 우리는 중국 사료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끼워 맞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고조선의 연구가 활발해진 시기는 고려 말 원(元)간섭기 무렵이었다. 몽고 간섭 하에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시기가 13~14세기니 지금으로부터 700~800년 전이다. 고조선부터 세어보면 3천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나는데 그때까지 책을 집필할 만큼의 사료가 남아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고려 말부터 불과 700~800년 떨어져 있는 지금은 왜 그 사료들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이런 의문을 담고 살아올 동안 작가 김진명도 오래전부터 한 의문에 사로잡혀 왔다고 말한다. 바로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한(韓)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왔을까하는 의문이다. 고종 실록에는 대한제국 국호를 정할 때 삼한을 잇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삼한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아무도 모를뿐더러 한반도 남부에만 국한되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 삼한을 잇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작가가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라면 고조선 이전에 한(韓)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이라 한다. 또 위작논쟁으로 뜨거운 <단군세기>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도 한다.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사학계를 뒤집어 놓을 일이다. 책 표지에 써있듯이 한마디로 말해 위험한 책이다. 
 

이야기는 한 여자교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김미진 교수는 사서삼경에 목을 매고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 모습에 타살 의혹을 가진 목 반장은 이 사건을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무렵 목 반장은 김미진 교수의 영안실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바로 김미진 교수의 친구인 이정서이다. ETER에서 일하고 있는 이 명석한 사내에게 목 반장은 사건의 의심 가는 점을 토로하고 정서도 자체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정서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친구인 한은원이 김미진과 함께 연구를 한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일본으로 떠났다는 은원의 소식은 끊기고 은원이 아직 중국에 있다는 확신을 한 정서는 중국으로 가 은원의 행적을 따라가게 되는데. 
 

책은 한 여교수의 죽음과 의문점,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한 여로,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적절히 혼합하여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어 손에서 중간에 떼어놓기란 어려웠다. 그만큼 흥미로웠고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나도 정서와 한 마음이 되어 실마리를 찾아 헤맸다. 또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한(韓)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며 작가가 늘어놓은 퍼즐은 어떻게 맞춰질까 하고.

사료가 충분히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세월의 흐름과 몇 차례의 전란 혹은 누군가의 악의적 조작 등 몇 가지에 있을 것이다. 드문드문 남은 기록으로는 역사를 추측하거나 유력한 설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작가의 주장을 온전히 믿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가가 인용한 오성취루와 남해조수퇴삼척에 관한 박창범 교수의 실험은 몇몇 사람들에게 비판 받고 있고 책에서 왕부가 썼다고 나온 <지명원류고>, <씨성본결>과 <유한집>은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또 아직 고조선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도읍지가 어디였는지에 대한 검증이 확실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조선 이전에 한(韓)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엄격한 기준과 논리, 확실한 증거자료로 역사를 되살려내야 하는 사학계와는 달리 작가의 주장은 자유롭다. 그 공간에서 작가는 자신이 주장한 바를 서술하고 나름의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섣불리 작가의 생각에 동조할 순 없었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작가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김진명 작가의 책을 봐왔지만 작가의 책엔 딱 한국사람, 한국의 것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우리가 관심을 끊어버린 것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독촉한다. 이렇게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세계화니 미래엔 나라의 경계가 희미해질거니 해도 우리 후손들이 지켜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을 쟁점화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니 고맙고 작가 홀로 전장에 내보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다.     
 

결국 한(韓)의 의미는 무엇일지 확실한 것은 없다. 작가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그저 삼한을 뜻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우리가 그 시간을 되찾기 위해선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끝에 반만년의 찬란한 기록들이 세월의 더께를 벗고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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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타니 아키라,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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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골에 가면 흙 속에 묻혀있는 깨진 자기 그릇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묻혀있었는지 유래도 알 수 없는 그릇들이었지만 난 그 파편들을 모아 나뭇잎이나 나무열매를 올려놓고 소꿉놀이를 하곤 했었다. 보물찾기를 하듯 흙을 파고 파편들을 맞추고 운이 좋으면 움푹하게 파인 아랫부분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릇들을 집에 가져가면 안되냐는 제안은 엄마에게 당연히 거절당했지만 그 그릇들과 함께 했던 기억은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릇은 우리 생활에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예로부터 내려온 속담이나 관용어에서도 그릇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흔하고 일상화되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그릇은 소위 ‘막사발’이라 하여 품질이 낮고 막 쓴다는 뜻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우리나라의 ‘막사발’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도다완’으로 불리며 명품 대접을 받고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사발을 직접 생산하고 연구하여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관심이 끊기다시피 한 전통사발이 재조명 된 것은 최근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도자기 광(狂)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켰던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수 만 명에 이르는 도공들이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기 때문이다. 그 도예기술이 일본의 새로운 산업의 토대로 자리 잡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기까지 꼭 우리나라 도공들의 기술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막사발’ 이라 불리며 냉대 받던 사발들을 그들은 정성껏 가꾸고 보존하며 함께 살아온 것이다. 또 그 기술들을 자신들의 식으로 바꾸고 발전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도자기 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고려시기부터 내려온 기술들이 끊겼고 간단하며 간편한 자기들이 주를 이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전에 없는 대규모의 문화약탈로 도예기술 뿐 아니라 많은 문화재들을 빼앗겼으니 그들이 박물관에 모셔놓은 고려청자들과 문화재를 보면서 어떻게 울분을 참을 수 있을까? 그 도예기술로 만들어 낸 도자기들을 유럽으로 수출하여 부국의 기틀을 다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다. (물론 기술을 천시했던 조선의 문제도 있겠지만 난 주는 거 없이 빼앗아 가기만 한 옆 나라가 참 싫다.)     

이 책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는 한일 양국의 전통사발 전문가들이 만나 공동집필한 최초의 도자기 관련 서적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저자인 신한균씨의 이름이 들어가 반가웠다. 우리나라 전통사발의 선구자인 고(故) 신정희 옹의 장남이고 사기장으로 일하고 계셔서 그런지 전문적인 시각과 지식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부터 신한균씨가 낸 <신의 그릇>이라는 책을 관심도서에 넣어놓고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책이라 사발들의 사진과 함께 유래와 사발 모양, 그림의 의미까지 다양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어 좋았다. 또 사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두 관점을 교차하는 식으로 설명해 놓아 균형 있는 시각을 갖춘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예전부터 우리나라가 주변 나라들에 비해 차(茶)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수질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때부터 차를 마셨고 고려 시대는 차의 국가라 할 정도로 차(茶)문화가 넓게 퍼져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책은 이렇듯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려 주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또 더 나아가 전통사발의 현재와 미래까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우리들의 관심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흙과 환경도 물론 전통사발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것을 이어나가려는 의지와 일반 사람들의 사발에 대한 의식 바꾸기, 그리고 사발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통사발을 되살리는 것 뿐 아니라 보태어 더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신한균씨는 일본식 단어인 이도다완을 한국식 단어인 황도사발로 바꾸어 쓰자고 권고한다. 이미 널리 퍼진 단어라 일시에 고쳐지긴 어렵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의식하고 고쳐 쓰도록 노력한다면 황도사발이란 단어가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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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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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근래에 스릴러 소설에 잠시 손을 떼었다. 여름이 지났다는 이유는 아니지만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단편집을 읽거나 에세이를 많이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혹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내 손은 어느새 스릴러 소설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처음 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어렸을 때 읽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였으니 말 다했다.) 그렇게 해서 내 손이 집어 든 책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신작 <달의 문>이다. 올해 들어 그의 세 번째 책이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를 읽고서 왜 이 작가가 2009년에야 우리나라에 소개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탄탄한 줄거리와 흡인력 있는 전개가 일품인 작가다. 전작들이 독특한 소재와 끊임없는 궁금증으로 날 즐겁게 했으니 이번 책에 거는 기대 또한 컸다. 
 

비행기 납치와 밀실살인 두 가지가 한 번에 일어나다.

처음 비행기 납치가 소재란 것 알았을 때 오, 전작보다 스케일이 커졌는데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달의 문>은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다. 데뷔를 2002년에 하고 이 책이 2003년에 나왔으니 벌써 6년 전 작품이다. 그 새 날고 긴다는 스릴러 책들이 많이 나왔다지만 전혀 촌스럽다거나 흔한 이야기가 아닌,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었다. 

책은 달빛 아래에서 시작한다. 사토미와 마카베, 가키자키는 각각 연령도 다르고 살아온 내력도 다르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단 한가지의 이유는 그들이 ‘스승님’이라 부르는 캠프의 주최자 이시미네 다카시를 위해서이다. 각자의 마음의 상처를 스승님의 도움으로 이겨 낸 세 사람은 순수한 이유로 스승님을 따르는 어디까지나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스승님이 유괴혐의로 경찰에 구속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세 사람은 스승님을 경찰서로부터 빼오기 위한 범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바로 비행기 납치이다.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파급효과가 큰 범행이기 때문이다. 각각 한명씩 아이들을 인질로 확보해 비행기를 장악한 세 사람은 오늘 밤 10시 30분까지 스승님을 공항으로 데려오라고 요구한다. 모든 것이 세 사람의 생각대로 흘러가던 시간, 비행기 내 화장실에서 인질 중 한명의 엄마가 시체로 발견된다. 완벽한 밀실에서 발견 된 시체로 세 사람은 당황하고 비행기 밖 수사본부에서도 세 사람의 납치범답지 않은 요구로 당황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현실적인 비행기 납치범의 범행수법과 판타지적 요소인 달과 스승님의 존재를 알맞게 버무려간다. 그리고 탈출을 고려하지 않는 세 사람의 범행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완벽한 밀실에서 발견 된 시체도 있다. 애초에 스승님을 구하려 살인까지 불사하겠다는 결심을 한 세 사람이 정작 시체가 나오자 우왕좌왕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래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이들을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한 범인은 누구이며 어떤 방법으로 밀실살인을 저질렀는지를.     책은 느릿느릿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들어서 펼쳐 놓은 모든 일들을 폭풍처럼 해결해 나간다. 힌트를 꽤 많이 줘 결말이 의외로 싱겁다 할 수도 있지만 반전의 요소는 만족스러웠다. 또 달을 이용한 판타지적 이미지가 책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신비로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책 속의 인물들의 성격은 각자 잘 드러나 있지만 그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승객으로 있다가 얼떨결에 탐정역할을 하게 된 ‘자마미’군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나오지 않은 채 끝까지 고생하지만 자마미군의 냉철한 판단력과 통찰력은 그를 평범한 회사원으로 단정 짓기에 무리였을 정도다.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연작시리즈가 아닌 관계로 다시 만나기 힘들 듯 한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의 탐정인 유카와 대결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나름의 상상도 해보았다.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줄거리로 폐쇄된 공간이라는, 어찌 보면 지루하게 진행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잘 이끌어간 소설인 <달의 문>. 브리콜라주의 명사라는 작가의 수식어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유명한 스릴러 소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휘영청 뜬 달이 보고 싶다. 책을 읽은 오늘 밤 뜬 달은 뭔가 달라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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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전설 : 서양편
아침나무 지음, 이창윤 그림 / 삼양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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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말 그대로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이다. 어떤 공동체 속에서 전해진 이야기들이라 그 공동체의 특징과 내력을 다룬 것이 많다. 전설에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처럼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이야기도 있고 선녀의 날개옷처럼 동양의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도 있다. 문자로 기록되지 못한 그 옛날부터 전설은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져 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전설들을 믿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중세시대 때 귀족이나 왕에게 착취를 당하는 평민들은 착취자들을 벌주는 영웅을 꿈꾸지 않았을까, 또 신비한 자연현상들을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존재가 있다고 믿음으로써 해결하려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들이다.

<세계의 전설, 서양편>에는 유럽과 북미, 남미 등 서양 여러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을 담은 모음집이다. 작가 진은 수 백 만권의 책 중에서 세계의 전설을 모은 책이 없다는 사실을 앍고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 야심찬 기획에 맞게 책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 된 전설들이 많이 들어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로빈 후드나 아서왕 이야기, 바이킹, 트리스탄과 이졸데, 드라큘라 등 유럽의 전설들도 있고 북미 지역이나 남미지역의 생소한 전설들도 함께 다루고 있어 식견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지역마다 각자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유럽의 전설이 주로 영웅이나 실제 인물 등 초점이 ‘인간’에게 맞춰져 있다면 그 외 북미나 남미, 오세아니아는 동물이나 꽃 등 자연현상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또 책 <오두막>에서도 등장했던, 족장의 딸이 전염병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어 물로 뛰어든 전설은 흡사 우리나라의 <심청전>을 떠올리게도 해 신기했다.

백설 공주와 신데렐라는 세계 여러 곳에서 변용되어 존재한다고 한다.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 아닌 변용되어 온 이야기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끼옷’ 전설로 신데렐라를 도와준 대모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또 백설 공주는 ‘금나무 은나무’전설로 공주를 죽이려 한 사람이 계모가 아닌 친모고 난쟁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물론 난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오르페우스’이야기를 생각나게 한 북미의 전설도 아마 교류를 통해 퍼져나가 변용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보니 참 신기하다. 멀리 떨어진 각각의 지역에 고유의 이야기도 있지만 비슷한 이야기도 존재하니 말이다. 사실 뿌리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들어와 그 문화에 맞게 변형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그 특성들이 그 문화를 어떻게 나타내는지 더 알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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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 아라이 연작 소설
아라이 지음, 양춘희 외 옮김 / 아우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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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는 내게 있어 물안개 같은 나라다. 실체는 있지만 흐릿한 느낌, 존재는 하지만 뭔가 가려져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나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들의 이미지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이 감춰놓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스스로 그 나라를 틀에 가두어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는 듯, 손에 잡힐 듯해도 잡히지 않는 듯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마도 세 가지 다 해당 될 것이다. 난 티베트를 불교의 나라, 고승의 나라라고 한정시켜 욕망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그저 신비한 나라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작가 아라이의 <소년은 자란다>를 읽고 아, 티베트도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이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문학을 읽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나고 자란 그들의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인데 <소년은 자란다>를 읽으면서도 중국과 티베트의 일상생활, 사회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국의 문화혁명으로 사원을 잃은 라마승들이 일자리 노선에 뛰어드는 과정을 그린 단편들이 많아 그런지 이 일이 티베트에 큰 사건이었다는 것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요즈음 관광목적으로 중국정부가 사원들을 다시 복구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읽으면서 씁쓸해지기도 한 이야기였다.

티베트는 몇 천년동안 실생활에 큰 변화 없이 살아온 나라라고 한다. 답보상태로 있던 역사가 흐를 때쯤 태어난 작가는 자신이 변화를 목격한 세대라 운이 좋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변화의 바람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단편들도 실려 있었다. (<마지막 마부> <라마승 단바> 등.) 또 인간의 욕망과 남녀 간의 애정이 등장하기도 하고 원래 생각해온 티베트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단편들도 있었다. 열 세 개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마지막 마부>인데 말을 잘 다루는 곰보가 주인공이다. 마을에 마차가 들어오면서 곰보의 마차 모는  솜씨는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지만 그 뒤 트랙터와 자동차가 생기면서 곰보와 말들은 과거의 형상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지만 그 강렬함은 길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것들이 퇴물 취급받지만 그 속에 진정 소중한 것은 없었는지 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없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엔 여러 개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고 이야기의 소재도 제각각이지만 신기하게도 분위기는 한결같았는데 그것이 작가 특유의 분위기이기 때문인지 궁금했다. 감정의 고저 없이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소설집이 그래서 더 특별할지도 모르겠다.   

아라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단편집만으로 그가 쌓아온 내력들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오랜 시간 우려내어 진한 맛을 내는 음식처럼 값지고 맛있는 단편들이었다. 평론가에게 사랑받는 작가라 그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또 작가의 책이 많이 알려져 티베트의 진정한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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