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근래에 스릴러 소설에 잠시 손을 떼었다. 여름이 지났다는 이유는 아니지만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단편집을 읽거나 에세이를 많이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혹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내 손은 어느새 스릴러 소설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처음 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어렸을 때 읽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였으니 말 다했다.) 그렇게 해서 내 손이 집어 든 책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신작 <달의 문>이다. 올해 들어 그의 세 번째 책이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를 읽고서 왜 이 작가가 2009년에야 우리나라에 소개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탄탄한 줄거리와 흡인력 있는 전개가 일품인 작가다. 전작들이 독특한 소재와 끊임없는 궁금증으로 날 즐겁게 했으니 이번 책에 거는 기대 또한 컸다. 
 

비행기 납치와 밀실살인 두 가지가 한 번에 일어나다.

처음 비행기 납치가 소재란 것 알았을 때 오, 전작보다 스케일이 커졌는데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달의 문>은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다. 데뷔를 2002년에 하고 이 책이 2003년에 나왔으니 벌써 6년 전 작품이다. 그 새 날고 긴다는 스릴러 책들이 많이 나왔다지만 전혀 촌스럽다거나 흔한 이야기가 아닌,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었다. 

책은 달빛 아래에서 시작한다. 사토미와 마카베, 가키자키는 각각 연령도 다르고 살아온 내력도 다르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단 한가지의 이유는 그들이 ‘스승님’이라 부르는 캠프의 주최자 이시미네 다카시를 위해서이다. 각자의 마음의 상처를 스승님의 도움으로 이겨 낸 세 사람은 순수한 이유로 스승님을 따르는 어디까지나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스승님이 유괴혐의로 경찰에 구속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세 사람은 스승님을 경찰서로부터 빼오기 위한 범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바로 비행기 납치이다.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파급효과가 큰 범행이기 때문이다. 각각 한명씩 아이들을 인질로 확보해 비행기를 장악한 세 사람은 오늘 밤 10시 30분까지 스승님을 공항으로 데려오라고 요구한다. 모든 것이 세 사람의 생각대로 흘러가던 시간, 비행기 내 화장실에서 인질 중 한명의 엄마가 시체로 발견된다. 완벽한 밀실에서 발견 된 시체로 세 사람은 당황하고 비행기 밖 수사본부에서도 세 사람의 납치범답지 않은 요구로 당황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현실적인 비행기 납치범의 범행수법과 판타지적 요소인 달과 스승님의 존재를 알맞게 버무려간다. 그리고 탈출을 고려하지 않는 세 사람의 범행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완벽한 밀실에서 발견 된 시체도 있다. 애초에 스승님을 구하려 살인까지 불사하겠다는 결심을 한 세 사람이 정작 시체가 나오자 우왕좌왕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래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이들을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한 범인은 누구이며 어떤 방법으로 밀실살인을 저질렀는지를.     책은 느릿느릿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들어서 펼쳐 놓은 모든 일들을 폭풍처럼 해결해 나간다. 힌트를 꽤 많이 줘 결말이 의외로 싱겁다 할 수도 있지만 반전의 요소는 만족스러웠다. 또 달을 이용한 판타지적 이미지가 책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신비로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책 속의 인물들의 성격은 각자 잘 드러나 있지만 그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승객으로 있다가 얼떨결에 탐정역할을 하게 된 ‘자마미’군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나오지 않은 채 끝까지 고생하지만 자마미군의 냉철한 판단력과 통찰력은 그를 평범한 회사원으로 단정 짓기에 무리였을 정도다.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연작시리즈가 아닌 관계로 다시 만나기 힘들 듯 한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의 탐정인 유카와 대결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나름의 상상도 해보았다.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줄거리로 폐쇄된 공간이라는, 어찌 보면 지루하게 진행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잘 이끌어간 소설인 <달의 문>. 브리콜라주의 명사라는 작가의 수식어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유명한 스릴러 소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휘영청 뜬 달이 보고 싶다. 책을 읽은 오늘 밤 뜬 달은 뭔가 달라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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