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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평점 :
평창 동계 올림픽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나온 책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는 일단 출간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추리소설로 부동의 위치에 올라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흔하지 않은 에세이라는 점에서 더욱 점수를 주고
싶다.
작년인가에 하루키의 시드니올림픽 관전기가 나온 적이 있지만 하루키는 소설뿐만 아니라 줄곧 에세이 작품도 써
왔던 터라 게이고의 에세이에 비해 작품의 희소성이 좀 떨어진달까?
어쨌든 유명 작가가 쓴 올림픽 관전기는 올림픽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하다 생각한다.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동계 올림픽을 좋아하고
특히 스노보드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인지 해박한 지식과 어떻게 하면 좀 더 즐겁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글안에
가득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에세이와 달리 여기에서는 작가가 1인칭이 되어 이야길 풀어나가는 것이 아닌
그의 고양이이자 여기에선 어느 날 갑자기 청년으로 변신한 고양이 청년 유메키치라는 화자를 앞세워 게이고조차 아저씨라는 통칭으로 일컬으며 고양이의
시점으로 풀어가는듯하고 있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색달라서 좀 더 흥미로웠다.
스키 종목도 그렇고 스노보드도 그렇고
스케이트 외의 경기에 그렇게나 많은 종류의 경기가 있는 줄 미처 몰랐을 뿐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자면 관심도
없었다.
스키점프 역시 그저 스키를 타다 높이 활강해서 착지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지 스키를 벌려타거나 일자로 타는
방법에 따라 공기의 저항이 다르며 조금 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남자 선수들도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 같은 건 몰랐었던 사실인데 고양이
유메키치와 아저씨들 간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들이 마치 옛날 이야길 들려주는 것 같이
흥미로웠다.
경기 규칙이나 경기 방식 같은 딱딱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누가 가장 먼저 스키를 벌려서 즉
오늘날 흔한 형태인 V 형태로 시도했는지...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며 각국 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스키어 선수의 키에 따라 스키 플레이트의
길이를 정하게 되었는데 우리에겐 늘 강자처럼 하던 일본 역시 동계올림픽종목의 강국인 유럽에서는 변방 취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등등
잘 몰랐던 에피소드를 마치 투덜거리는 아저씨 같은 게이고의 입을 통해 들으니 더
흥미로웠다.
유럽에서 특히 인기 있는 종목인 바이애슬론 같은 경우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히는 어떤 종목이며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는지 몰랐는데 크로스컨트리에다 사격을 합친... 생각보다 어려운 종목일 뿐 아니라 사격에서 명중하지 못한 만큼 벌점처럼
스키를 더 타야 한다는 게 재밌었다.
늘 관심 밖이었던 루지며 스켈레톤, 봅슬레이에 대한 설명도 아주 간결했지만
인상적이었고 스노보드 종목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솔직히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경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읽게 되면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토리노 올림픽이 언제 열렸는지 보니 지금보다 11년 전
2006년에 올린 동계 올림픽이었고 생각보다 우리나라 선수의 활약은 좋았던 것 같아 놀랐다.일본보다 월등한 성적이었다니...통쾌함마저
들었다.
비록 게이고의 말처럼 특정 종목 즉, 쇼트트랙에 메달이 집중되고 다른 종목엔 참가조차 하지 않은 것 등은
아쉽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적은 인구와 적은 예산같은 것 때문에 모든 체육은 엘리트 중심의 체육이라 될 성 부른 나무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거지만 다행히 조금씩 다른 종목에도 관심을 가지고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경기의 규칙이나 경기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고양이와 아저씨 콤비의 투덜거림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특히 교통
편이 불편했던 것 같은 토리노에서 경기장을 찾아 여기저기 차로 다니며 고생하는 모습도 그렇고 화장실의 불결함에 질색하는 모습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지만 언어소통이 안돼 더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토리노 올림픽은 모든 것이 잘 정비된 채 열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내내 투덜거리고 불평을 일삼으면서도 아저씨스러운 면도 보이고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자신이 좋아하는 이상형에
비쳐 평가하는 부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속물스럽게도 보여 웃기기도 했다.
하계올림픽 종목에 비해 다소 어려운 경기
용어부터 익숙하지 않은 경기종목과 규칙 같은 걸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저런 에피소드 같은 걸로 흥미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보일뿐 만
아니라 경기장 밖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점.. 싫고 좋음을 가감 없이 나타낸 것 같은 건 오히려 진솔하게 느껴져 좋았던
것 같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게이고의 색다른 모습을 고양이의 비판을 통해 보는 것 역시
즐거웠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