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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 1
전형진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8월
평점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하면 그 법은 그들이 막고자 했던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볼 때가 많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미국에서의 금주법과 우리 역사에서 몇 번 시행되었던 금주법이다.
미국 같은 경우는 금주법 시행 이후 알 카포네를 비롯한 마피아가 큰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금주법 역시 밀주를 만들어 유통한 일당과 그들의 배후에서 뒤를 봐주고 이권을 거머쥔 탐관들의 배를 불러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 책 금주법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조대왕이 노론과 소론으로 극렬하게 갈라진 조정 대신을 규합하고자 한 탕평책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이면에 금주법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선정을 베풀고 조정 대신의 화합을 도모하는 탕평책을 펼쳤지만 출신성분을 비롯한 여러 가지 걸림돌로 인해 지지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던 영조는 백성의 입으로 들어갈 귀한 쌀을 술로 빚는 일을 금지하는 금주령을 실시한다.
백성들의 구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누가 봐도 이는 단지 허울일 뿐 그 이면에는 당시 큰 권력을 지닌 노론 세력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의 돈줄을 죄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금주령으로 인해 정상적인 거래는 불가능했고 이로 인한 밀주가 성행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기회가 되었고 이 모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계기가 된다.
누구보다도 이런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영조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강행하면서 당대의 명장인 장붕익을 내세워 노론 세력의 타파를 꾀한다.
그가 꿈꾸던 정치를 하기 위해선 반드시 득세하고 있는 노론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무기가 바로 금주령이라는 계산을 한 결과였지만 오랜 세월 권력을 손에 쥔 노론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 책 금주령은 그런 두 권력의 다툼 즉, 영조와 노론과의 치열했던 정치경쟁과 그 밑에서 그들의 손발이 되어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붕익을 비롯해 금주령을 단속하는 기관인 금란방에 모여든 단 6명의 사람들은 밀주를 유통하는 검계 조직을 조사하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부패한 관리를 조사하지만 좀처럼 그들의 야합의 증거는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에나 그렇듯 그저 말단의 조직원들만 드러날 뿐...
그야말로 혐의는 차고 넘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간신히 어느 정도 그들의 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모였을 즈음 금란방의 우두머리인 장붕익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조직은 와해되다시피하고 영조의 꿈은 물 건너 간 듯 보인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후 세자의 명으로 남은 이들을 불러 모아 새롭게 검계와 노론을 노리고 증거를 수집하면서 못다 한 전쟁이 다시 시작되지만 세자 역시 자리 보존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목숨까지 보장받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더군다나 힘이 되어 줄 아버지와의 사이는 노론의 선동과 획력으로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민심마저 등을 돌린 상태라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길 없는 상태였다
다음 왕이 될 사람이면서도 자신의 사람 하나 제대로 지켜줄 힘이 없는 세자와 그런 세자를 밀어내고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보위에 올리고자 하는 노론과의 치열한 전쟁 아닌 전쟁을 대신한 것 역시 금주령을 둘러싼 검계와 금란방의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그저 비운의 세자로만 알려진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 그리고 노론과 소론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만 기억했던 영조 시대의 이야기를 권력자의 시선이 아닌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며 부당한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나 하소연할 수 없었던 민초들과 그 사이에 끼여 고민하고 갈등하는 관리들인 금란방 식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훨씬 더 생생하고 생활감 있게 그려 낸 금주령
읽는 내내 어찌해볼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했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입체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역사와 허구의 소설이 만나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