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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인생이란 누구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산실이다. 주인공 레오에게 찾아 온 친구들의 만남이 무거운 운명의 굴레를 예고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레오가 독백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을 알았더라면 첫 만남에서 했던 쿠키를 가져다주거나 보트에서의 식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우스 브로드>는 미국 소설가 팻 콘로이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처음 접하지만 표지의 “이만큼 훌륭하게, 이토록 아름답게 쓰는 작가는 없다.”란 미사어구와 “2009년 뉴욕타임즈 종합베스트셀러 1위”하는 타이틀을 간과하지 못하게 했다. 상당한 두께(511p)의 압박이 있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성장소설이다. ‘강가의 대저택’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국 남부 도시 찰스턴을 중심으로 오늘날 미국 사회의 명암을 흡인력 있는 이야기하고 있다.
인자하신 과학 선생님인 아버지와 강인하고 신앙심이 강한 교장선생님인 어머니를 둔 레오는 마약 소지죄로 보호관찰을 받으며 지역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조용하고 수줍은 그에게 이 같은 이력은 어린 시절 우상이고,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형의 자살을 목격한 충격과 방황에서 비롯되었다. 그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어두운 10대를 보내기도 했다. 어린나이에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안정을 찾기 시작한 1969년, 페닌슐라 고등학교에서 평생을 함께할 친구들을 만난다. 찰스턴의 명문가 출신인 채드워스, 프레이저, 몰리, 산에서 온 가난한 고아 남매 나일즈와 스탈라, 정신이상자 아버지와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를 둔 쌍둥이 남매 시바와 트레버, 흑인 풋볼 감독의 아들 아이크. 등 인종, 계층, 동성애자, 종교의 갈등을 넘어선 사랑과 우정을 보여주지만, 이들의 치명적인 트라우마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아픔으로 그들의 삶을 흔든다.
20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갈등과 반목, 크고 작은 사건을 추억하며 시간은 흐르고, 그 속에서 레오는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되고, 친구들 역시 변호사, 경찰서장, 할리우드 배우, 음악가 등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 그러던 1989년의 어느 날 트레버가 에이즈에 걸려 사라지자, 할리우드 배우로 성공한 여동생 시바는 오빠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친구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모이게 된다.
페닌슐라 고등학교 출신의 10명의 우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기에 가능한 사건들이었다. 아니 그러한 사건들 때문에 그들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졌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모든 상처와 아픔을 성숙하게 이겨낸 주인공들의 모습을 찰스턴을 중심으로 매우 풍부하고 아름답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0년의 세월을 다룬 인생의 서사가 묵직하게 느껴지지만, 작가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 서정적 묘사, 위트 있는 유머와 긴장감 있고 치밀하게 짜인 서사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작품이다. 후회 없는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 거대하고 대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대해, 그리고 하루 사이에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인생이 어디까지 어긋날 수 있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운명이란 장난감 총을 쏘듯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삶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바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그래, 그거였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다.”(2권 4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