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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아웃>을 읽으며 떠오른 작품이 있습니다. 기시 류스케의 <푸른 불꽃>입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두고두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기시 류스케가 조금만 더 치열하게 밀어붙였으면, 문학적 야심을 좀더 불살랐다면, <푸른 불꽃>은 대단한 작품이 될 뻔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웃>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아웃>의 가장 큰 매력은 등장인물입니다. 도시락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마사코를 포함한 4인방은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시체를 절단하여 유기하는 언니들에게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좀 이상합니다만...)
저는 일본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름들이 어째 모두 비슷해서 구분하는데 애를 먹곤 하죠. 그런데 <아웃>은 비교적 수월하게 해냈습니다. 주요인물로 여자가 무려 네 명이나 등장하는데 말이에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생동감 넘치는 터라 초반부 이삼십 페이지만 집중했더니 만사 오케이였습니다.
주변인물도 훌륭합니다. 4인방을 위협하는 최후의 적인 사다케마저 연민이 느껴지고, 마사코를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유인하는 사채업자인 주몬지마저 사랑스럽습니다.
등장인물이 훌륭하다는 것... 이미 작품의 ‘1/3’ 이상이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거죠. 실제로 중반부에 이르면 사건의 진행 못지않게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쫓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목 ‘아웃’은 등장인물의 상황을 매우 직접적이고 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서 매력적이며, 연민이 느껴지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에서 ‘아웃’된 사람들이죠. 일상이라는 제도권 밖으로 방출된, 복귀불능 상태가 된 어처구니들입니다.
아쉬운 건 이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힘입니다. 좀더 매몰차고 무자비하게 파고들었으면 삶의 막장으로 방출된 인물들의 절망과 자조가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을 텐데말이에요. 만약 그랬다면 장르 소설 이상의 성취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뭐 지금 정도도 대단하지만요. 특히 동시대 일본의 얄팍한 작품들과 비교하면 말이죠.
그래서 단 한 작품밖에 읽지 못했지만 기리노 나쓰오가 대단한 작가라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네요.
끝으로 작품 중 다른 작가의 소설에 대한 재미있는 언급이 눈에 뜨여 소개합니다.
작품 속에 책읽기를 즐기는 ‘소가’라는 이름의 야쿠자가 한 명 등장합니다. 주몬지와 함께 한때 폭주족 멤버였다는데, 무라카미 류의 <러브 앤 팝>을 읽다가 주몬지에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던집니다.
“읽어봐, 그 녀석은 여자를 정말 좋아해.”
“그런가요. 읽으면 그런 게 보입니까?”
“알지 그럼. 그 녀석은 여고생을 좋아한다니까.”
“나도 읽어 볼까. 여고생 좋아하니까.”
“바보 놈. 그런 좋아한다랑 달라. 같은 지평에 있다고 할까. 입장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할까.”
(하권, p.27~28)
'그 녀석'은 물론 무라카미 류입니다. 어때요, 이 야쿠자?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죠? 뭐 실제로는 기리노 나쓰오 자신의 육성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