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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 - 오류투성이 구시대 법조문 이대로 둘 것인가
김세중 지음 / 두바퀴출판사 / 2024년 2월
평점 :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언어학자로 국립국어원에서 어문자료, 국어생활 등의 부장을 지냈고 공공언어지원단장으로 국어 바로쓰기를 위한 연구를,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만들기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초등학교 현장 교사로 평생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권정생 선생과 함께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던 이오덕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학교를 다녔기에, 우리말 속에 끼어들어있는 일본말을 우리말로 고쳐쓰고, 이를 널리 알렸던 분이다. 그가 지닌 언어가 그 사람의 세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이 책을 읽는데 아주 중요한 열쇳말이 될 듯하다.
이 책은 지은이의 관점에서 쓴 글이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 비판을 감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비판”이란 말에 담긴 함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는 오랫동안 국어 생활화를 위해서 그리고 공공언어를 우리말로 바꿔쓰기를 해온 분 답게 작정하고 돌직구를 던진다. 오류투성이 구시대 법조문, 일본어투의 번역, 쓰지도 않는 의미난해 낱말까지, 바꿔야 한다고...그러고, 알아 먹을 수 없는 기호같은 법률용어를 신성한 영역으로 여기는 법조인들에게도 쓴 소리를...
의용민법, 그리고 현재의 우리 민법과 일본의 그것을 우선 비교해보라
1960년 의용민법(依用), 조선 민사령 제1조에 의하여, 1912년부터 1959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던 일본의 민법전. 현행 우리나라 민법에 대응하는 말인데, 우리 민법 중 “인사편(친족과 상속편)은 일본과는 전통과 문화가 다르니 한국상황에 맞게 되돌리는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는 일본의 민법을 그대로 따랐다. 한겨레신문 창간과 더불어 신문의 ‘한글’가로쓰기 문화로 바뀌기 전까지 신문은 국한문혼용의 세로쓰기였다. 법학교재도 그렇다. 특히 곽윤직의 민법총칙은 한자표기에 조사만 한글이니 그대로 읽고 조사를 일본어로 바꾸면 바로 일본책 그대로가 될 정도였으니... 극단적으로말해, 일본 민법의 조문을 그대로 가져와 지시대명사와 조사 따위를 한글로 써서 연결하는 뭐 한자+한글.. 이두 문자라 할까?, 판결문도 그러하고, 행정부 전반에서 쓰는 행정용어는 거의 일본어를 국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은이가 지적한 육법전서(헌법,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는 오류투성이다. 그의 관점으로 이 책을 보면, 50년대 일본의 법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당대의 모든 행정용어와 문서, 군대, 건설 산업현장에서 쓰는 용어는 거의 일본어의 번역이었다는 사실을, 물론 법조문 따위로 한정해 본다 손 치더라도 이런 배경은 설명해줘야 한다.
언어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언어는 절대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또 언어게임과 철학탐구에서, 한 낱말의 의미는 그 낱말의 사용법이라고, 그 사람이 지닌 언어가 그 사람의 세계라고, 또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의 세계를 랑그와 파롤로 나눈다. 일제가 왜 조선말 사용을 금지하고 공식언어로 일본어를 모든 사람에게 사용하게 했을까?, 바로 그가 지닌 언어는 그의 세계를 나타내기에 그렇다. 일본말을 사용해야 내선일체로 이끌 수 있기에...
법전은 오류투성이 아니라, 일본어로 된 애초의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해 사용했을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한다.
국회에서 우리말로 바꿔 쓴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았음은 단지 여,야의 공방전으로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되지 않아서 그리 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때문인지도 살펴야 한다. 사법, 재판용어는 외국어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고, 판례평석을 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실생활에서 별로 사용하지 않거나, 전혀 쓰지 않는 용어들, 한자(표의문자)와 한글(표음문자), 우리 말의 어원의 7할이 한자에서 유래한 점 등에 비춰보면, 개념이 명확해야 할 법률용어를 쉽게 풀어쓴다는 문제는 또 하나의 과제다.
2023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의 ”이지리드 판결“ 즉, 쉽게 풀어쓴 판결, "청구기각" 대신에 "아쉽게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장애인의 요청으로 그림과 단문 등으로 판결문이 만들어 졌다고... 여기서 이지리드란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우리 신문의 기사꼬라지다. 어렵고 전문적인 법률용어를 쉽게 풀어썼다는 사실을 전하는 데 왜 영어표기를 썼을까, 한자가 우세했던 시대에는 한자를 써야 품격있다는 말을 들었듯, 영어로 쓰면 뭐가 달라보이나...
지은이의 지적은 이런 의미에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번지수를 착각한 것이다. 그는 1950년 대의 오류투성이 구시대 법조문을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논점을 명확히 하자. 오류투성이 구 시대 법조문을 이렇게 봐보자. 우선 일본어를 국어로 번역해두었을 뿐이라는 점, 이를 국어로 바꿔쓰면 국어의 7할이 한자인데, 여기에는 한자와 함께 표기를 해야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법률을 국어로 모두 바꿔야 한다가 아니라 알기 쉬운 말로 고쳐써야 한다고 해야 이치에 닿는다.
또 하나, 리걸마인드라는 개념, 즉 법률, 법조문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혹여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여기서는 생락한다.
지은이가 예로 든 오류투성이 법조문을 보자.
사단법인의 임시총회를 다루는 민법 제70조 제2항은 "총사원의 5분의 1 이상으로부터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하여 청구한 때에는”이라 돼 있는데, 지은이는 이를 전형적인 비문(非文), 즉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라 한다. 비문이라고 하는 대신에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겠지만, 아무튼…. 그의 견해는 ’회의 목적 사항을 제시하여 청구한'의 주어는 총사원의 5분의 1이상이다. 그런데 총사원의 5분의1이상으로 부터라는 엉뚱한 조사가 붙는 바람에 주어가 없는 문장이 됐다는 말이다. ~으로부터는 일본어 ~から라는 말이고, 이는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이 아니라 일본어(수동태 등)와 국어(능동태 중심)의 표현법의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아무튼, 일본어로 구성된 법조문을 국어 번역해놓고, 이를 국어문법에 맞는다 맞지 않는다는 지적보다는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 설명하며 알기 쉽게 써야 한다는 게 견해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224조(판결규정의 준용) ①성질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한, 결정과 명령에는 판결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자, 여기에 일본 민사소송법 제122조(판결에 관한 규정의 준용) 결정 및 명령에는,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 판결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判決に?する規定の準用)第百二十二? 決定及び命令には、その性質に反しない限り、判決に?する規定を準用する。
이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보인다.
일본 민사소송법 122조와 한국 민법 224조는 판결규정의 준용을 할 수 있는 경우를 다루고 있다. 일본은 "결정과 명령에는" 조문 상단에, 한국은 후단에, 핵심은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이다. 자, 이제 우리 민법과 민사소송법이 일본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이는 오류가 아니다. 독일법을 계수한 일본, 또 다시 일본으로부터 이어받은 한국, 이런 구도 속에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생기는 건 아닐까 싶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