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유령 푸른사상 소설선 53
이진 지음 / 푸른사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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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그 확장성, 우리 시대의 돌봄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이진의 네 번째 소설집 <소설의 유령>은 “코로나 시대의 싱글 라이프” “소설의 유령을 위한 습작” “초록 알람” 등 9편의 단편과 문학평론가 방승호의 작품해설이 실려있다. 소설의 유령이라는 제목에 깔린 그 무엇은 유령일까, 역사 속 평강공주와 온달과 백제의 미마지전설을 소환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무엇은 “신뢰” “돌봄”, 서로서로 돌봐주고 배려해주고 믿어주고 하는 마음이 글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싶을 정도다. 현대 사회의 특히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엇인가에 얽매여있는 사람들, 서로의 관계는 물론 존재마저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작가의 작품 9편은 제각각의 “사람과의 관계”의 정도, 경계를 오가는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뭔가에 대한 그리움과 갈증, 즉 목마름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은밀한 계약 속에서의 관계들로 다양하게 전개된다. 작가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좇아가는데, 탄탄한 플롯도 한몫한다. 

작품해설을 한 방승호는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읽히는 마음의 거리, 그 둘을 오가는 갈등에서 갈증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기류를 표면으로 꺼낸다”라고 평한다. 


당당한 여성으로 살기 위해 


소설집 첫 장에 실린 “코로나 시대의 싱글 라이프”는 당당한 주체로서 서려는 여성, 이혼을 결심한 데는 그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으리란 독한 각오가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주인공의 말,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스크는 내면의 감정을 감출 수 있는 훌륭한 방패가, 만남도 대화도, 딱 코로나 시대의 적정거리 유지하기처럼, 여자의 일생, 통과의례처럼,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혼인해서는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이른바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떠도는 유령이다. 어머니는 낙태와 혼인의 갈림길에서 낙태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나’라는 존재가, 또 한편으로 직장동료에게 낙태 루트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것이 “돌봄”에 관한 시대적 해석일까?, 


돌봄의 확장성 "탈인간중심"


“도도와 쭈아”와 “은행나무 협주곡”은 우리가 지나치고, 둔감해졌던 “돌봄”을 재인식하게 된다. “도도와 쭈아” 가족이 있는 아비 고양이 도도에 관한 이야기다. 결말은 극적인 반전, 도도는 새끼고양이 돌봄을 위한 실험 로봇이었다. “은행나무 협주곡”은 추석 쇠러 아들네 집에 갔다가 그 집에서 사는 늙고 못생긴 작은 개의 질병에 호들갑을 떠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며, 주인공 심 여사는 조상한테 지극정성을 다하고 사람한테나 잘하라며 문을 박차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구급차를 쫓아 쏜살같이 달리던 누렁이와 조우, 주인을 기다리는 누렁이와 함께 아파트 주민들이 냄새난다며 베어버리라는 은행나무 표식을 떼러 간다. 그저 그런 개였지만. 누렁이의 이름은 “은행”이는 유기견, 그의 주인은 나 홀로 노인, 돌봄의 문제는 모든 주체에 적용되는 것이다. 돌봄은 모성적 사유가 전담해야 하는(혼자만 하는 육아처럼) 일이 아니라고, 돌봄은 친밀성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돌봄의 윤리는 배려와 신뢰로 이뤄지는 보편적 돌봄의 확장(이미 돌봄노동이란 산업이 생겨날 정도이니)을.. 하물며 짐승도 제 새끼는 챙기는 법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지만, 돌봄의 문제를 탈인간중심으로 문제로까지 확장되기를. 이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 깊이 생각해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 


“초록 알람”은 대리모 이야기다. 남편과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아이가 필요하다. 한 번의 대리모 경험이 있는 주인공에게 은밀한 직거래를 제시한 여자. 남편과 사이가 틀어진 여자는 주인공에게 낙태하라고 여성과의 계약이기에 따라야 하지만, 주인공은 생명과 돌봄의 문제로 들여다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인공은 첫 번째는 곁에서 떠나보냈지만, 두 번째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내 뱃속에 생명(태명이 초록이다)이 살아 움직이는데. 여자는 아이의 존재는 미끼…. 자본주의 속성을 전면에, 작가는 여성만이 소유해야 하는 모순적 욕구들을 정면으로 표출한다. 사회적 무능을 질타한다. 


돌봄 윤리의 또 다른 해석 


“소설의 유령을 위한 습작” 디지털장례사(이른바 컴퓨터에 있는 자료나 기록을 없애주는 일) 정산의 회상으로 시작하는데, 유명한 소설가 범상이 죽었다. 그의 컴퓨터 안에 있는 습작을 찾아야 하는 상속인, 정산에 이를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데. 범상에게 접근한 여자는, 상속인을 칭하는데…. 이후, 그 여자 이름으로 소설이 발표되는데, 그 소설의 내용은 가사도우미로 들어온 여자가 등단을 준비하는 소설가 지망생이었으며, 그 여자의 최종심 심사평을 범상 자신이 썼다는 사실, 그리고 최종심에서 떨어진 여자는 범상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내용. 작가는 돌봄의 윤리를 활용하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돌봄이 필요했던 범상은 자신의 소설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 자신을 타자화하는 역설, 이것이 행위 주체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현실을….



이 소설집에 실린 9편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있기도 하고 깔려있기도 한다. “유령”이라는 열쇳말을 음미하면서, 소설 속으로 몰입되기에 그렇다. 작가 닿고자 하는 문학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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