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어린이책 1 - 다움북클럽이 고른 성평등 어린이·청소년책 2019-2021 오늘의 어린이책 1
다움북클럽 지음 / 오늘나다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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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함께 배우고 나누고 싶었는데,
그 길에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를 만난 느낌입니다.
매년, 아기가 자라는 만큼, 세상이 변하는 만큼,
함께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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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3 세트 - 전3권 (본책 3권 + 가이드북)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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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덕후 엄마의 태교용 소설로 선택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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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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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성실'에 대한 알량한 사명감이 있다. 과도한 일중독 증세와 더불어, 오락적 유희마저 성실하게 끝장을 봐야 한다는 이상스런  집착이 그것의 방증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열광하면서, 게으름마저 성실하게 게으르고자 하는 건, 좀처럼 미치지 못하는 심심한 삶의 긴장을 조율하는 일종의 원칙같은 거다. 

 어렴풋하게 '꼴지에게 보내는 갈채'라던가 아주 오래전 손에 잡혔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제목조차 까마득한)에세이를 기억하고 있다. 일찍이 단거리보다 장거리 달리기에 호기심과 애정을 품었던 나에게 두 책 공히 '완주'의 미덕을 설파했고, 마라톤은 성실함의 끝을 확인하는 징표와도 같았다. 인간의 근성과 끈기의 결정체로서의 '마라톤'이라는 행위에 열광했던 시절을 건너오면서도, 실제 '러너'가 되지 못했던 것은 나의 게으름의 소산이기도 했지만, 보다 합목적인 이유를 필요로 하는 삶의 태도의 변화때문이기도 했다. 달리기가 등산보다, 자전거보다 비용대비 효율성의 측면에서 유리한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여전히 계산은 진행중이지만, 2009년이 '등산'이었다면 2010년은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 때문이다.  

 내 독서취향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동안 내가 그의 책을 한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적이 놀라곤 하는데,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던 하루키와의 인연이 1Q84에서 시작되어 이 책에 이르기까지, 나도 슬슬 하(루키)빠가 되어가고 있는 스스로를 확인한다. 

 혹자는 현대도시인의 인간군상, 그 내면의 탁월한 심리묘사가 매력적이라고 했고, 혹자는 사회에 대한 적확한 문제제기에 언제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체념해버리는 패배주의적 냉소가 유감이라고 했다. 이제 꼴랑 두권의 책을 읽는 나는 감히 그에 대한 어떠한 단정도 할 수 없다. 다만, 한편의 소설과, '달리기'를 빌려서 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회고록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에 마음을 내준 바,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는 그의 다짐이 우리를 오랫동안 동시대에 머물 수 있게 하기를 바란다. 

   
   물줄기는 강변을 적시고, 푸른 여름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물새들을 키우며, 오래된 돌다리 밑으로 바져나가, 여름 하늘의 구름 모습을 물 위에 띄우고(겨울에는 얼음을 띄우고), 딱히 서둘러 급한 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쉬어가는 여유도 보이지 않고,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오며 굳어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관념이라도 지닌 듯 그저 묵묵히 바다로 향해 간다. - p.30  
   

 물처럼 살겠다고 공공연하게 되뇌이기 시작한지 어언 10년. 그 가치를 충분히 멋드러지게 그려지도, 그 뜻에 충분히 부응하지도 못한채로 흘러오기만 했다. 내가 흘러온 어느 한곳 초록색 생명이 자라나주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다시 또 묵묵히 흘러간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일상생활에 있어서나 직업적인 영역에 있어서나 타인과 우열을 겨루고, 승패를 다투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고 그것으로 세계는 성립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가치관이 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있다. 그와 같은 차이는 일상적으로 조그마한 엇갈림을 낳고, 몇 가지인가의 엇갈림이 모이고 쌓여 커다란 오해로 발전해갈 수도 있다. 그 결과 까닭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거나 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건 괴로운 체험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와 같은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p.39-40
 
   

 만난지 4개월 된 혹자가 '너는 색깔이 너무 뚜렷하다'며, 의연하고 강단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염두해서 노력한 결과이지만, 실상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한다. 외부의 부침에 언제나 늘 한결같이 위해서 내면을 부지런히 단련할 뿐, 한가지 생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말랑말랑한 두뇌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삶의 방식을 정립하는데 게으르지 않았을 뿐.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p.115-116)

 
   

 직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조언이 '일에 끌려가지 말고, 일을 끌고 가라'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전전긍긍하면서 일에 휘둘리지 말고, 주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일을 처리하라는 뜻.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서 충분히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다. 얄팍한 꼼수로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날 즈음,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를 계속 달리게 한다. 

   
 

 무라카미씨처럼 매일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러다가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건전한 행위이고, 작가라는 사람은 공서양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되도록 건전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속세와 결별하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 순수한 뭔가에 더욱 근접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통념 같은 것이 세간에 뿌리 깊게 존재한다. 긴 세월에 걸쳐 그와 같은 예술가=불건적(퇴폐적)이라는 도식이 형성되어 온 것 같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자주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의-좋게 말하면 신화적인-작가가 등장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건전한 작업이라는 주장에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우리가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다시 말해 문장을 사용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려고 할 때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 좋든 싫든 추출되어 표면으로 나온다. 작가가 다소간 그런 독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험을 인지해서 솜씨 좋게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독소가 개재되지 않고 참된 의미의 창조 행위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묘한 예를 들어서 미안하지만, 복어는 독이 있는 부위가 가장 맛있다고 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건전한' 작업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예술 행위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니만큼 작가(예술가) 중에는 실생활 그 자체의 레벨부터 퇴폐적으로 전락하고, 또는 반사회적인 의상을 걸치는 사람들지 적지 않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할까. 그와 같은 자세를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어느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체내의 독소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한 독소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해 나가려면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어딘가에서 그 에너지를 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기초 체력 위에 그 에너지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할까?  

-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행동 목표이다.(p.149-150) 

 
   

  농담처럼 말한다. 담배도 술도 없는 반듯한 삶은 뭔가 진보적이지 않아. 그래서 서두의 돌발질문에 대한 하루키의 대답이 퍽 인상적이었다. 과시적으로 담배를 피우고, 전투적으로 술을 마시는 상처덩어리를 한사람이 떠올랐다. '불건전함'에 대한 애찬이 넘치는 와중에, '건전함'에 대한 적극적 옹호가 신선했다고나 할까 

   
   우리는 초가을 일요일의 소박한 레이스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에 대비해 각자의 장소에서 (아마) 이제까지와 같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해간다.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혹은 훨씬 높은 데서 내려다보면-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도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p.256-257)  
   

 그런 전차로 2010년은 부지런히 달리기로 했다. 42.195는 힘들겠지? 하프라도,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무시무시한 다짐 하나 덩달아 마음에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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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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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같은 토요일을 1Q84로 알차게 채웠다. 처음만나는 하루키. 과연 하루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말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그는 축적된 역량을 고스란히 발휘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한 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있을 수 있어서 참 즐거웠더랬다. 곳곳에 의미심장한 대사와 해독이 필요한 암호따위가 가득해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등장시키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p.31) 

 "아오마메는 이제 <신포니에타>를 구석구석까지 모두 기억했다. 몸을 극한 가까이 늘이면서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거기에서 그녀는 고문하는 자이며 고문당하는 자였다. 강제하는 자이고 강제당하는 자였다. 그처럼 내부로 향한 자기 완결성이 곧 그녀가 바라는 것이고, 그것은 그녀를 위무해주었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그러기 위한 배경음악으로서 매우 유효했다." (p.70)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티클라이맥스로 가득한 현실세계야"(p.92-93)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이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p.95)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아오마메는 자신을 타일렀다. 이제 와서 아유미의 삼촌이나 오빠를 징벌한다 한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벌을 받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어떤 짓을 한들 아유미는 돌아오지 않는다. 가엾은 일이지만 그건 늦건 빠르건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아유미는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중심을 향해 완만한, 하지만 어떻게도 피할 수 없는 접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먹고 좀더 따스하게 받아주었다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우는 건 그만두자. 자세를 재정비해야 한다. 나 자신보다 룰을 우선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다마루가 말했듯이"(p.123-124) 

 "물론 덴고의 기억이 남는다. 그의 손의 감촉이 남는다. 마음의 거센 떨림이 남는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갈망이 남는다. 가령 다른 사람이 된다 해도, 덴고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서 뜯겨나가는 일은 없다. 그것이 나와 아유미의 가장 큰 차이다.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無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p.133) 

 "하지만 대체 어느 누가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덴고는 그렇게 생각한다). 온 세상의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핵무기를 폐기하지도 테러를 근절하지도 못하지 않을까. 아프리카의 가뭄을 끝내게 하지도, 존 레넌을 다시 살아나게 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러기는커녕 신들끼리 패가 갈려 격렬한 싸움이나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세계는 좀더 혼란스러운 사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가 몰고 올 무력감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을 잠시 미스터리어스한 물음표의 풀에 떠 있게 하는 것쯤은 그나마 죄가 가벼운 편은 아닐까.(p.147) 

 "아, 그렇군요.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그런 건 잘 모르겠지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빗살 빠지듯이 하나하나 당신 손에서 새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손에 들어오는 건 하잘것없는 모조품뿐이지요. 육체적인 능력, 희망이며 꿈이며 이상, 확신이며 의미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이 하나 또 하나, 한사람 또 한사람, 당신에게서 떠나갑니다. 이별을 고하고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잃어버리면 당신은 다시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없어요. 대신해 줄 것을 찾아내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이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요. 때로는 몸이 끊어질 듯이 안타까운 일이에요. 가와나 씨, 당신은 이제 곧 서른이 됩니다. 이제부터 조금씩 인생이 그런 저물녘으로 들어서려고 해요. 그것이 예, 말하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이 고통스러운 감각을 당신도 슬슬 느끼고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p.160-161) 

 "잠시 뒤에 덴고는 눈을 감고 야스다 쿄코가 그녀 자신만의 상실된 장소에 갇혀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곳에는 열차가 서지 않는다. 전화도 없다. 우체통도 없다. 한낮에 그곳에 있는 것은 절대적인 고독이고, 밤의 어둠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고양이들의 집요한 수색이다. 그런 나날이 한없이 반복된다."(p.199)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니 인간이라기보다 쥐나 다람쥐류에 가까운 생물처럼 보였다. 그다지 청결하다고는 할 수 없디만 나름대로 만만치 않은 지혜를 갖춘 생물.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덴고의 아버지였다. 혹은 아버지의 잔해라고 해야 할까. 이 년의 세월이 그의 모에서 많은 것을 앗아가버렸다. 마치 세금 징수인이 가난한 집에서 가재도구를 인정사정없이 빼앗아가듯이. 덴고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씩씩한 남자였다. 자기성찰이나 상상력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나름의 윤리관이 있었고, 단순하지만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인내심 강하고, 불평이나 우는소리를 입에 올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빈 허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스함을 남김없이 빼앗겨버린 빈 집에 지나지 않았다"(p.204) 

 "덴고는 말했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데 지쳤어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해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 알아들어요?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는 없어요. 아니, 그게 아버지 탓이라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역시 그런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도 아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을 거에요. 안 그래요?" (p.211) 

 설명을 안 해주면 그걸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215 )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실증 가능한 진실 따위는 원하지 않아. 진실이란 대개의 경우, 자네가 말했듯이 강한 아픔이 따르는 것이야.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아픔이 따르는 진실 따윈 원치 않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이야기야. 그러니 종교가 성립되는 거지."(p.276) 

 "정신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째서지?" "딱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어째서 정신에 대해 딱히 생각할 필요가 없을까? 스스로의 정신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것이 실효성이 있건 없건 인간의 삶 속에서 불가결한 일 아닌가""제게는 사랑이 있어요.""사랑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건가?""그렇습니다.""자네가 말하는 그 사랑이란 누군가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가?""그래요, 구체적인 한 남자를 향한 것이에요,""힘없고 왜소한 육체와, 이울어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이라..., 아무래도 당신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군.""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왜냐하면 자네의 그런 모습 자체가 말하자면 종교 그 자체에기 때문이야."(p277-278) 

 어떤 의미에서도 나는 이제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 있지 않는 게 좋아.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말살되어야 할 인간이야.(p.287)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묘사한 것도 그러한 세계의 양상이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 게야. 내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네. ( p.289-290 ) 

 "마음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일 따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아." (295) 

 너의 사랑이 없다면 이건 그저 싸구려 연극에 지나지 않아. Without your love, it's a honky-tonk parade, - it's only a paper moon. 그래,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갖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를 믿지 않느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까에 지나지 않아. 어느 세계에 있건, 어떠한 세계에 있건, 가설과 사실을 가르는 선은 대게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 선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어" (323) 

 

 

 

 

 

 

 

 

 

아오마메 

덴고 

노부인 

리틀피플 

다마루 - 노부인 호위무사. 

공기 번데기 

후카에리 

고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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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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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무의욕을 고취시키기위한 '업무능력향상교육'의 구석진 자리에서 '밑줄 긋는 여자'를 봤다. 인생선배라 할법한 성수선 작가의 시시콜콜한 수다가 뻔한 내용의 교육보다 흥미롭긴 하였으나, 귀한 나무를 베어내서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올시다' 

 자격지심탓이라고 해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주류사회에서 나름의 입지를 세우고, 다방면에 걸친 독서력을 맘껏 발휘해서, 적당히 생활 철학을 버무려낼 줄 아는 글쟁이. 감각있는 문체는 아닐지언정 진정성이 담겼고, 진부한 결론으로 끝나더라도 글쓰기 작업에 성실하게 노력하는 작가인건 분명하다. 꽤 오랫동안 백수였고, 남아도는 시간 꽤 많은 책을 읽었던 나는, '글쟁이'에 대해서 나름의 엄격한 기준이 생겨버린 탓에, 그녀가 오랜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글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만 깊은 존경을 표할 따름이다.

 막상 빈정이 크게 상한 이유는, 이 책이 '김현진'의 책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책을 빙자해 시시콜콜한 자신의 연애담, 세계각지의 친구 자랑, 개그콘서트가 선사하는 즐거움과  월요일 아침 강박의 이중성 따위를 논하는데 책은 참 많이도 팔렸다. (알라딘 판매량만 확인했음이다) 똑같이 '연애'를 말하더라도 다양하고 개별적인 사례를 바탕삼아, 보다 재치있는 글솜씨로, 궁극적이고 사회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김현진의 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 후자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더 절실하게 팔려야 할 이유가 있지만, 아마도 이것이 '마케팅'이려니.  

 가볍지만 유치하지 않고, 지적이되 어렵지 않은 생활인의 독서. 책 자체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없는 독서에세이에 '생활밀착형'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화려한 작가의 이력과 스타일리쉬한 표지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그런게 먹히고, 살다 보면, 일하다 보면, 그 수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지는 법이라고 설득하지만, 난 아직 이 정도에 감동받을 만큼, 충분히 늙지 못한 탓이리라. 

 직장생활 3개월차, 이 책을 선물해주신 님은 아마도 그녀의 '꾸준함'에 공명하길 기대했으리라, 

   
   달인이 되는 길은 길 위에 머무르는 거다. 하고 하고 또 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거다. 개그의 달인 김병만처럼, 생활의 달인 봉투아줌마처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처럼 포기하지 않고 길 위에 머무르는 거다. '10년이면 일가를 이룬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일단은 계속 하자, 포기하고 싶을 때 한 걸음만 더 (p.97(  
   

 그리고, 한창 자본주의틱한 마인드 함양중인 중인 내게 귀감이 되었던 경영 철학자들의 일화.

   
 

 피터 드러커는 평생에 걸쳐 읽고, 쓰고, 공부했다. 특정 분야에 치우침 없이 그는 매년 새로운 주제를 정해 석 달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p.71) 

 삶은 공중에 다섯 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게임과 같습니다. 다섯 개의 공에 일, 가족, 건강, 친구, 영혼(자기 자신)이라고 이름 붙이고 공중에 돌려보십시오. 당신은 곧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떨어뜨려도 바로 튀어올라옵니다. 그러나 다른 네 개의 공은 모두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손상되고, 흠집이 나고, 산산이 부서져 다시는 예전처럼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 다섯 개 공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p.75)- 코카콜라 회장 더글러스 태프트의 2000년 신년사 中

 
   

  "진정 무서운 건, MB가 아니라 책 읽는 우파"라고 했던 말을 실감하게 만들만큼 성찰과 매력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그나저나 야근과 철야가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가족'과 '친구', '영혼'의 유리공이 고무공 '일'보다 소중하게 취급되는 날이 오기는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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