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나 해 볼까? - 몸치인 그대를 위한 그림 에세이
발레 몬스터 지음, 이지수 옮김 / 예담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이것저것 해보다 실패가 예감되거나 시작하려는 일의 성과가 미심쩍을 때 흔히 '다 안되면 농사나 짓지 뭐'하며 자조의 말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런 업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고, 농사를 조금 알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본업을 삼은 적 없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남들이 보기엔 쉽고 멋있어 보이는 것들이 내 업이 되었을 때의 피눈물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일 게다.  아무나 할 수있다고 덤비는 농사를 정작 평생 농부로 산 사람들은 자식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모두 대처로 도회로 보내는걸 보면 알 수 있듯이.


[발레나 해 볼까?]도 그런 맥락에서 읽히는 그림 에세이였다.

위엔위엔이라는 뚱뚱한 아가씨?를 내세워 우아한 발레 세계의 이면과 고충, 생각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뚱뚱'하고 '발레'가 어울리거나 아름다운 조합은 아니지만 뚱뚱한 사람이 발레를 배우지 말라는 법 없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런 속에서 생겨나는 에피소드여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있었다.


저자는 미술반 학생 신분으로 국립타이페이예술대학교 무용과에 지원해 합격하지만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휴학한 경력답게 그림도 재미있게 잘 그리고 발레에 대한 상식과 이해가 깊었다.

짧은 글과 간단한 그림이지만 발레를 아는 사람은 아는사람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공감을 이끌어 내어 단숨에 읽히게 하는 재미와 흡인력이 있다.

특히, 뚱뚱한 우리의 주인공은 어디서나 빛을 발해 발레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위축을 자연스럽지만 당당하게 표현해 내어 웃음을 짓게 했다. 비단 발레가 아니더라도 일상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 궁금증, 단상들이어서 맞아 맞아 하면서 읽었다.

내 얘기군- 싶은 부분도 많아 웃으면서도 슬펐다. ㅠㅠ


웃으면서 끝나는 에피소드로만 된 것이 아니라 발레하는 사람들을 위한 SNS가이드나 키워드, 발레 초보자용 용어들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어 들을 기회도 없었지만 들어도 어떤 동작을 말하는 건지 모르는 말들을 잘 설명해 주었다.

바를 잡고 다리를 벌렸다 세웠다 하는 동작은 플리에, 고관절에서 시작해 발가락 끝까지 근육을 쭉 뻗어 늘리는 가장 중요한 동작 연습 중 하나인 탕뒤, 다리가 180도로 무릎을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위로뻗어 올리는 데벨로페,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는 동작인 소테 등 외우기 힘들고 직접해 보는건 더 힘들 발레 용어를 익히는 시간이었다.

음, 백조의 호수 군무를 출 때 모두 다리를 공중에서 모으며 날아오르듯 추던 춤이 아살블레였군- 이런 식이긴 했지만.^^


챕트8의 '무대만큼 흥미진진한 무대 뒤 풍경'은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애환이 스며 있어 짠해졌다.

발레복 튀튀가 벗겨질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몇번씩 고정상태를 점검하고 신입 무용수들이 우상을 바라보는 장면, 누구랄 것 없이 튀위톼 타이즈, 토슈즈의 상태를 확인하고 확인하는 강박, 군무 중 통일된 춤이 나오지 않을 경우 일어나는 격한 싸움, 커튼콜의 영광은 솔리스트 이상의 출연자에게만 돌아가는 발레 세계의 냉정함...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고 프로의 세계가 더 가혹한 건 당연하겠지만 그 세계를 알고 경험한 저자가 그린 그림이라 더 애잔하게 다가왔다.


나는 한 번도 감히 '발레나 해 볼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은 해 본 적은 없지만 발레를 (취미로 했건 직업으로 했건) 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달라 보인다. 나에겐 없는 우아함이 광배되어 빛나는 것 같아 단번에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래서 내 친구 중에는 발레를 한 친구가 (다행스럽게?) 한 명도 없다.^^;


발레에 대해 깊이 알기를 원하거나 기술적인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말고 취미로 익히고 싶은 사람이 읽어보면 참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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