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스트레인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핑거스미스'의 집이 생각났다.

 여주인공 모드를 가두고 있던 집. 그녀는 거기서 삼촌에게 속박당한 채, 삼촌의 명령으로 자신이 혐오해마지 않는 음란 서적을 대필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집은 감옥이었고 탈출은 염원이었다. 얼른 '리틀 스트레인저'의 캐럴라인과 겹쳐진다. 그녀 역시 자신이 사는 헌드레즈홀을 감옥이라 여기고 있으며 하루라도 빨리 거기서 자유롭게 되기를 갈구한다. 그녀가 페러데이를 사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을 거기서 데리고 나가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러데이는 '핑거스미스'의 사기꾼을 닮았다. 작품에선 그를 '젠틀맨'이라 부른다. 물론 그에게 있어 '젠틀은 어디까지나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덫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파렴치한 짓이라도 하는 악인 중의 악인, 그가 바로 젠틀맨이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매개로 여자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페러데이도 젠틀맨과 비슷하다. 물론 페러데이는 자신의 사랑을 순수하다 생각하지만 캐럴라인이 헌드레즈홀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캐럴라인이 그다지 끌릴만한 인물이 아님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으니까. 페러데이는 오래도록 선망의 대상이었던 헌드레즈홀에서 살 수 있기에 캐럴라인을 원했던 게 틀림없다. 한 예로 캐럴라인이 헌드레즈홀이 지긋지긋하다며 빨리 떠나버리고 싶다고 말하자 페러데이는 놀라며 그녀를 말린다. 왜 그러는 지 자신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건 물론 자신을 '헌드레즈홀'과 깊은 인연을 맺게 해 준, 베키에게도 마찬가지다. 베키는 그 저택의 유일한 하녀다. 그녀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꾀병을 부렸고 그러다 임시로 불려온 페러데이에게 그사실을 간파당한다. 페러데이가 왜 꾀병을 부리는지 이유를 묻자 그녀는 저택이 정말 싫다고 대답하고 페러데이는 역시나 베키의 그런 마음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베키는 '핑거스미스'의 '수'를 닮았다. 젠틀맨을 도와 모드를 유혹하기 위해 저택의 하녀로 들어갔던 여자. 베키가 헌드레즈홀의 하녀로 일하게 된 것도 남자 때문이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가 억지로 거기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베키는 원래 공장 노동자가 되길 원했다. 하녀 같은 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런 직업이라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자꾸만 은근슬쩍 겹치니까 '리틀 스트레인저'를 '핑거스미스' 옆에 놓고 싶어진다. 비교를 위해서. 물론 둘은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고, '리틀 스트레인저'는 1948년이니까. 그렇지만 어떤 연속성이 느껴진다. 바로 집에 관해서다.


 '핑거스미스'에서 집은 군림의 존재였다.

 그것은 여성 위에 군림했다. 항상 남성이 지배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집은 그래서 그대로 가부장제의 구현체였다. 하지만 '리틀 스트레인저'에서 집은 더이상 군림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쪼그라들어 있다. 페러데이는 몇 십년만에 다시 찾은 헌드레즈홀이 목책으로 된 울타리로 포위되어 있음을 본다. 바로 중간 계급들을 위한 집을 짓느라 부지 확보차 세워진 울타리였다. 그렇게 헌드레즈홀은 자기보다 아래 계급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쇠락의 징후는 저택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장남인 로더릭은 전쟁에서 입은 부상과 정신적 후유증으로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다. 에어즈 부인 역시도 심신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만 가는 헌드레즈홀을 꾸려가기엔 몹시 힘겨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헌드레즈홀에게 닥쳐오는 어려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만 한다. 집은 더이상 견고하지 못했다. 그것은 계속 부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집의 변화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것은 물론 외부 상황이다. 둘 사이에 있었던 거대한 전쟁. 바로 세계 2차 대전이다. 본디 전쟁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영국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도 엄청난 변화가. 정치적 환경이 급변한 것이다. 1881년에 창당한 노동당은 단 한 번도 보수당을 이겨본 적이 없다. 그들은 늘 2인자였다. 하지만 전쟁은 그들의 운명을 변화시켰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전후에 처음으로 치른 총선거에서 노동당은 놀랍게도 보수당에게 압승했다.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제 노동당은 단독으로 내각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보수당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바야흐로 흔한 말로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지금의 내겐 얼마나 부러운 상황인지.


 이런 상황의 변화는 예전의 계급 질서를 크게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직격탄은 젠트리 계급에게 가장 많이 떨어졌다. '리틀 스트레인저'에서도 한 인물의 입을 빌려 공공연히 언급하지 않았던가. 젠트리 계급 중 열에 여덟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라져가고 있다고. 헌드레즈홀의 쇠락은 그런 현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문도 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헌드레즈홀의 외관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제 정원은 도저히 손쓸 수 없을 만큼 수풀이 우거졌고, 테라스는 잡초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벽에 낙서를 해대고 창문에 돌을 던지는 바람에 헌드레즈홀은 혼돈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상처입고 피폐한 짐승처럼 보였다.(p. 705)


이것은 어린 시절의 그를 매혹시켰던 저택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그 때조차 저택은 그에게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는 내부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세라 워터스는 어린 그를 정말로 매혹시켰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드러낸다. 이렇게.


나는 대체로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 메이드가 살며시 복도 한쪽으로 사라지자 나는 대담하게 그 반대쪽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 엄청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단순히 몰래 침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집 자체에 대한 전율이었다.(p. 13)


금기의 위반. 고착된 계급이 부여한 규율의 무시. 그것을 감행하게 했던 공간이기에 그는 헌드레즈홀에 매혹된 것이었다. 즉 그가 소설에서 그토록이나 저택을 선망하는 이유는 그곳이 자신을 뛰어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이보다 조금 전에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거꾸로 보강된다.


그때 훨씬 더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아치형 통로 벽 높은 곳에 전선과 종들이 어지럽게 걸린 배선함에서 종이 하나 울렸다. 위층의 호출이었다. 호출받은 팔러메이드를 따라간 나는 저택 후미와 본관을 분리하는 성긴 초록색 모직 커튼 사이로 집안을 훔쳐볼 수 있었다.(p.12~13)


 이 장면은 뒤이어 나오는 페러데이의 금기 위반에 대한 선망을 더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나중에 페러데이의 어머니에 관한 사실이 하나 밝혀지는데 페러데이의 어머니도 바로 이 저택에서 유모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호출 종이 울리면 무조건 거기로 가야했다. 따라서 호출하는 종은 엄마의 순종을 강요하는 고정된 계급의 상징이며 그 어머니는 그런 계급에 종속되어버린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저택에서 어머니의 위치가 하필이면 유모가 된 것도 이런 계급 상황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이것은 저택에서 나온 엄마가 계속 유산하는 바람에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것으로 더욱 부각된다. 호출 종에 대해서는 소설 중반에 유령이라 추정되는 것들이 호출 종에 혼선을 일으켜 그 종을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명확화 한다. 이런 면에서 넘어선 안 될 선 안쪽으로 들이민 페러데이의 한 발이 가지는 의미는 엄마의 처지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해지며 이렇게 하여 페러데이는 전후에 달라진 계급의 위치를 약호화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저택에서 도토리 조각 하나를 몰래 가지고 온다. 아마도 이 도토리는 캐롤라인에 대한 복선일 것이다. 끝내 이 도토리는 현 계급 관계에 포섭되어버린 엄마에게 빼앗겨 재가 되어버리는데 이 역시 캐롤라인과의 암울한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유령을 가리키고 있는 '리틀 스트레인저'의 존재는 다름아니라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한다 즉 경계의 침범이요, 무시 혹은 와해시키는 모든 것들이다. 제목이 그런 존재를 뜻하는 '폴터가이스트'가 아니라 굳이 '리틀 스트레인저'가 된 것은 세라 워터스가 여기에 페러데이도 포함시키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헌드레즈홀의 벽에서 도토리를 훔친 어린 시절의 페러데이 역시도 '리틀 스트레인저'이기 때문이다. 그가 냈던 집의 균열을 현재의 유령들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령들은 페러데이의 분신 혹은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령은 페러데이 욕망이자 더  나아가선 젠트리 계급을 굴복시켰던 계급 평등 욕망의 대변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헌드레즈홀에서 오랜만에 열린 무도회처럼 저택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나타나서는 훼방을 놓고, 존재를 지속시키려 애쓰는 로더릭을 정신적 공황 상태로 몰고간다. 그 유령들은 현실에 있는 카운티 의회와 조응한다. 물질적으로는 카운티 의회가 그들을 압박하고 정신적으로는 유령들이 그들을 두려움과 신경쇠약으로 몰아간다. 이제 더 이상 혈통이나 가문이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임박해 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라 워터스의 다섯 번째 소설 '리틀 스트레인저'는 2차 대전 후에 급격하게 일어난 계급 변화를 고딕 스타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러데이와 캐럴라인의 로맨스는 그런 면에서 계급 사이에 작용하는 역학 관계의 변화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랬기에 이 소설은 참 흥미로웠다. 뭔가 세라 워터스가 담고자 하는 지평이 보다 확대되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은 어디까지나 고립된 여성의 은밀한 욕망이라는 개인적 지평 위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세심하게 포착하려 하는 것이다. '리틀 스트레인저'와 비슷하게 고딕 스타일로 된 '끌림'에 견주어 본다면 변화는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다. 이 같은 변화,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그 동기가 내겐 참 흥미롭고 궁금한데 그래서 '핑거스미스'와 '리틀 스트레인저' 사이에 존재하는 '나이트 워치'가 정말 읽고 싶다. 본격적인 변화는 '나이트 워치'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 작품 역시 '리틀 스트레인저'처럼 전후의 40년대 시간을 다룬다. 그녀가 왜 이 시대에 천착하는지 그 진짜 이유는 바로 거기서 알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순서대로 읽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리틀 스트레인저'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세라 워터스의 이야기는 타자를 중심으로 주체가 새로이 형성되는 것임을 '리틀 스트레인저'로 깨닫게 되었다. 얼른, 2014년의 '페잉 게스트'까지 나와서 타자의 현대적 연대기를 보다 완전체로 경험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