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평점 :
모퉁이를 돌면 좁은 계단이 있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담배 냄새 가득한 그 계단을 올라가면 건물 4층에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모르모트가 현실로 뛰쳐나온 듯한 어둡고 칙칙한 그 곳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름도 아니나 다를까 '블랙'. 그래서 우리는 들어가면서 스스로 '어둠의 자식들'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보기엔 그래도 그 곳은 명색이 카페였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여기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대화를 위해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었다. 뭐, 대화가 있기는 하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나누는 대화라 그렇지. 이 카페가 바로 앞에 앉은 사람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빛을 최소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단골로 다녔을 때가 7년째라고 했는데 아무튼, 그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언어의 밀어 보다는 감촉의 밀어를 나누고 싶은 커플들이 찾았기 때문이다. 모르모트의 어둠이 남들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롭게 마음껏 감촉의 밀어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주인은 결단코 그런 목적으로 카페를 이 같은 분위기로 만든 건 아니었다고 했다. 거기엔 나름의 뜻깊은 철학이 있다고 언젠가 우연히 같이 술 마시던 자리에서 맥주 서너병에 불콰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의 의하면,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그는 시각에 의해 음악이 주는 느낌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러니까 청각적 환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라 했다. 아, 내가 깜빡 잊고 말을 안했었는데 '블랙'은 그냥 카페도 아닌 음악 감상을 위주로 하는 카페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다른 비공식적인 버전도 있었는데 지리한 장마가 그 어느 해보다 더 길게 이어지던 어느 해. 어느 날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수리는 자꾸만 지연되었고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주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계속 지켰는데 장마를 피해 찾아온 커플들이 주인이 있음을 보고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어둠이 눅눅하게 내려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더란다. 주인은 그게 반가워서 주문한 것만 가져다 주고는 거기서 무엇을 하든지 얼마나 오래있든지 상관하지 않았다는데 그러다보니 어느새 커플들이 삼삼오오 여름날 불빛에 몰려드는 하루살이처럼 찾아오더란다. 그 때 그는 갑자기 '아, 이 가게는 빛을 가급적 없애는 게 생명이겠구나' 득도하게 되었고 결국 이런 분위기로 자리잡고 말았다는 그런 이야기다. 어쨌거나 믿거나 말거나이고 뭐가 진실인지는 모른다. 하긴 유래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아무리 장인이 만든 무라마사라 하더라도 무우 따위나 썰면 식칼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그 곳을 우리의 아지트로 만들었다.
하나는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껏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주인의 취향은 우리와 비슷해서 더욱 우리를 거기에 붙잡아두게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커플들이 여기를 찾았던 이유와 다를 바 없었다. 물론 그럴 때 우리들은 서로 모른 척 하기로 미리 양해해 두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다시금 그 카페 이야기를 이렇게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내 음악적 성숙의 팔할이 바로 그 카페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중 5할은 거기서 알게 된 어떤 '뮤즈' 때문이다.
누벨바그로 유명한 감독 트뤼포의 영화 '쥘 앤 짐'은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때 거기서 세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했다.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고, 청춘을 사로잡았던 우리보다 두 살 연상의 뮤즈가 가장 좋아했던 뮤지션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패티 스미스'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우리와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맞이 한 그녀의 생일 날이었다. 그즈음에 그녀는 실연을 했고(그러니까 우리는 짝사랑 중이었다. 우리들끼리는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생일을 기점으로 그 아픔을 모조리 잊기 위해 그는 주인에게 생일 선물의 의미로 각별한 부탁을 하나 했다. 패티 스미스의 'HORSES' 앨범 전곡을 틀어달라고. 오늘 우리들과 같이 전부를 감상하고 싶다고... 아비정전의 장국영이 말하는 '1분'처럼 그 앨범의 전체 시간만큼 우리가 같이 들었던 그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동결시키고 싶다고.
영문은 몰랐지만 오늘은 그녀가 주인공이니 원하는대로 다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인 역시도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패티 스미스의 앨범을 들었다.첫 곡 글로리아 부터 마지막 곡 엘레지 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서로의 실루엣만 바라보면서 말이다. 비트는 폭발하는 듯 했고 패티 스미스의 목소리는 읊조림과 절규를 넘나들었지만 누구도 거기에 대해 뭐라고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우리의 뮤즈였던 그녀가 언젠가부터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패티 스미스는 그렇게 내 인생에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했던 한 여인의 눈물과 함께...
'저스트 키즈'는 패티 스미스가 그녀의 연인이자 남편 그리고 평생의 동반자였던 로버트 메이플소스의 죽음 이후에 그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그들이 처음 만나 사랑하고 가장 험난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원하는 꿈을 향해 노력하던 시기의 기록이다. 패티 스미스가 새삼 그 때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낸 것은 이렇게 기록이란 형태로 영원히 동결시켜 이 결빙된 기록만큼이나 영원히 그 때 가장 아름다웠던 로버트 메이플소스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거기에 보존되는 것은 메이플소스만이 아니다. '저스트 키스'라는 제목 그대로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라서 성숙을 시간의 결마다 아로새겨진 상처로 인한 아픔을 감내하며 치뤄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럼으로 인해 더욱 서로를 순수히 사랑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었던 그만큼 자유로웠던 시간 역시 보존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일종의 타임머신 같다. 과거의 시간 자체가 보존되어 있어 언제든 들여다 보기만 하면 그 때의 시간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아마 페티 스미스 역시 펼치기만 하면 그 때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는 경험을 무던히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이지 않을까? 나 역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정작 그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녀와 똑같이 '저스트 키즈'였던 그 때를, 패티 스미스를 처음으로 만났고 이후의 그녀와의 느닷없는 이별로 일찍 아픔을 껴안아 버렸던 그 때를 더 많이 떠올리게 되었던 것은... 이 책은 각주가 때로 본문 내용의 흐름을 끊듯이 그렇게 문장들마다 각주처럼 따라붙는 나의 기억들이 참으로 날 산만하게 만들었던 책이다. 패티 스미스 하면 바로 연동되어 버리는 기억들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날 방해했었던, 마치 사이렌의 노래 소리처럼 날 부여잡아서 책으로 부터 자꾸 얼굴을 들게 만들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노래였다. '미스틱 리버'와 '살인자들의 섬'으로 유명한 작가 데니스 루헤인에겐 대표작 시리즈물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이다. 거기서 여주인공 제나로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참을 수 없을 때마다 꼭 듣는 음악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패티 스미스의 노래다. 데니스 루헤인은 제나로가 패티 스미스의 어떤 노래를 듣는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난 그 노래가 뭔지 알 것 같다. 바로 앨범 'HORSES'의 첫 곡, '글로리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패티 스미스를 따라 'G - L - O - R - I - A'를 외치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내가 '저스트 키즈'를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도 바로 그 노래였다. 이 노래, 정말 많이 불렀다. 그것도 함께. 같이 따라 부르면 더 즐거워지는 곡이라서 우리는 그 생일 이후로 종종 후렴구를 합창했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합창은 함께 있어서 즐겁다는 표시였었고 함께 있어서 든든하다는 고백이었고 함께 있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백마디 말보다 그 하나된 목소리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던 시간. 그래서 내게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시간인지라 그 때 정말 예뻐보였던 뮤즈의 목소리를 아련히 되새기며 지금 이렇게 패티 스미스가 했던 것처럼 하나의 글로 결빙시켜 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같이 울고 웃으면서 보냈던 이제 막 자유의 첫 햇살이 비쳐들기 시작하던 스물을, '저스트 키즈'란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그 때의 우리들을 말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련다. 이 책은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그 시절로 다시금 돌아가게 해주었던 것 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니, 할 수도 없다. 패티 스미스의 글을 객관적으로 읽기란 내게 불가능하다. 그녀의 이름 자체만으로도 나는 나의 그녀를 떠올리게 되고 패티 스미스의 삶 한 조각마다 마치 그림자처럼 결부되어 그 때의 우리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삶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 미래의 것 보다는 과거의 것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저스트 키즈'는 그런 과거를, '한때 우리들에게도 빛나는 여름 바다가 펼쳐져 있었지' 하던 때로 돌아가게 한다. 비온 뒤 잠깐 볼 수 있었던 무지개와 같이 짧아서 더 아름답고 진한 그리움을 남기는 그 때로... 지금 이 순간 내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생각 없이 더 오래 더 깊이 잠기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