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료 현장이 나온다기에 <시사매거진 2580>을 봤다. 지방흡입 기계를 판 업자가 환자를 시술하고, 원장은 옆에서 배운다. 원장이 시험삼아 해보니 환자가 아프다고 난리를 쳐 업자가 다시 기계를 잡는다. 그 사람, 그런 식으로 천건이 넘는 환자를 치료했단다. 상식적인 얘기겠지만, 의사 이외의 사람이 시술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게다가 의사는 자기가 배우느라 환자를 아프게 했고, 빨리 끝날 수술을 훨씬 더 지체되게 만들었다.


나중에 기자가 들이닥쳤을 때, 보호자 앞에서는 “제가 주로 하고 그사람이 약간 도왔다”고 하던 그 의사는 기자와 단둘이 남자 불법임을 시인하고 업자에게 무릎을 꿇으며 “저 좀 살려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 의사는 천안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며, 지방흡입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을 터였다. <2580>에 따르면 새 기계가 도입되어 이루어지는 수술을 다 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행태는 잘못이다. 업자가 훨씬 더 능숙하게 지방흡입을 한다 해도, 약사의 진료권 침해를 소리높여 비난하던 의사들이 의사 아닌 사람에게 그런 시술을 맡길 수가 있담? 의학 관련 기계들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새 기계에 대해 배우고 실습할 수 있는 연수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다. 그렇긴 해도, 의사가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을 굳이 내보낼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기자 스스로도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했으면서 그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줘야 하는 걸까. 기자들이 평소 갖고 있는 반의사 감정과, 의사에게 비판적인 국민정서에 영합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어느 의대생이 쓴 글이다.

[모든 의사들이 환자를 볼모로 마루타적인 실험을 할 거라는 편견과 동시에 아무도 의사를 신뢰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 그러는 건 아니다’는 변명은 솔직히 좀 지겹다. 이어지는 그의 말, “기자분...나중에 아프시면 의사에게 갈껍니다. 하지만 그런 취재 장면 내보내고도 의사한테 갈 마음 생깁니까?”

이 의대생, 내일 학교에 가서 이 보도에 대해 친구들과 열나게 욕을 해댈 것이다. 그렇게 욕하고나서 그가 다시는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을까? 무릎꿇고 비는 장면이 오버라 해도, 그간 자행된 불법에 대해서는 같이 분노해야 되지 않을까. 그도 물론 거기에 대한 언급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줄에서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언급한 뒤 열심히 기자 욕만 하는데, 그가 진정으로 그 일을 부끄럽다고 느끼긴 하는 것일까?


또다른 글, “기자들은 자신들을 속이고 병원에 갔을 것이고... 결국에는 비굴한 의사에게 잘못을 시인하라고 엄하게 가르치며... 그 그림을 또 방송으로 내보냈다” 92년 대선 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명한 발언이 나왔던 기관장 회의, 녹취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나자 그들은 “우리도 나쁘지만 도청도 나쁘다”고 물고 늘어졌다. 김영삼은 “나도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 그때 도청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 기관장들끼리 만났다는 사실조차 부인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기자 신분을 속이지 않았다면 수술실 촬영은 불가능했을테고, 의사는 자신의 불법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을 터. 난 공익에 부합한다면 그 정도의 술수는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580> 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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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5-01-10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꺾은 괄호 쓰면 안 된다니까요~ 즐찾 브리핑에 태그로 취급되어 안 보인단 말여요. 한글 'ㄴ'과 동시에 한자 전환 버튼을 누르면 취향에 따라 다양한 괄호를 골라 쓰실 수 있심다!

마태우스 2005-01-1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역시 컴의 대가다운 모습.... 부럽습니다. 전 언제쯤....흑흑. 잘 수 있을까요...

하이드 2005-01-1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를 전화나 티비처럼 쓸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겁니다.

아영엄마 2005-01-1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도 그런 거 모르거든요...ㅜㅜ 저는 또 언제쯤에나 잘 수 있을라나요.. 밤 꼴딱 세야 할지도...

가을산 2005-01-1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형외과 의사가 아닌 한은 제대로 지방 흡입술을 시술 할 수 있을까요?

요즘은 개원가가 어렵다 보니 너도나도 비만, 미용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술 더떠서 피부 관리실에서 레이저로 점을 빼지를 않나..... 집에서 불법 시술을 받고 오지를 않나...

염증 나서 온 환자들을 보면 뒷치닥거리를 하면서도 욕 나오더라구요.

자격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 몸을 맡기는 것도 이해할 수 없구요.

마태우스 2005-01-1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다 수가 체계가 잘못된 탓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을산님 이미지 말이죠, 볼 때마다 심장 같아요^^ 하긴 하트가 심장이긴 하죠^^

아영엄마님/그래도 아영엄마님은 저보단 낫잖아요... 흐흑

미스하이드님/그런 날이 전 안왔으면 좋겠어요. 디지털 시대는 무섭거든요.


마립간 2005-01-10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시각의 관점으로 평을 합니다.

왜 산부인과 의사가 지방흡입술을 해야 하는가?

마태우스님의 페이퍼에도 있지만 의사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의대를 졸업한 일반의사에서부터 전문과목(special) 예를 들면 내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등이 있습니다. 요즘은 조금 더 세분화되어 산부인과도 산과학, 부인종양학, 불임 전문 등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방흡입술은 성형외과 전문입니다. (성형외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아마 성형외과도 얼굴성형, 가슴성형 등으로 세분화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당 분야 전문의가 그에 대한 시술을 행하면 수련과정에서 익혔거나 아니면 세미나 및 연수강좌를 통해 익힐 만큼의 밑바탕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산부인과 의사가 지방흡입술을 한 이유는 돈 때문이지요. 의사의 적정 수입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고 제가 결론내릴 것이 아니지만 의사가 기대하는 수입과 정부나 시민, 환자가 기대한 수입과는 격차는 확실하게 있습니다. 가을산님이 언급하셨지만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몸을 맡기는 것도...'의 한 예가 될 수 있는 즉 성형외과에서 지방흡입술 받지 않고 산부인과에서 지방흡입술을 받은 이유 또한 돈 때문이지요.

정당한 댓가를 치루지 않고 효과만을 기대하는 것이 의료계에서 만 볼 수 있는 예외적인 현상인가요. 아니죠. 불법 컴퓨터 프로그램 복제, 오디오, 비디오, 책 복사... 프랑스가 지적했던 3대 짝퉁의 나라의 오명이 벗어질 때쯤 되면 아마 이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없어지지라 생각합니다.

부리 2005-01-1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음, 저두 현재의 수가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공감합니다. 그러고보면 그렇게 불법이 판치는 분야가 한두군데가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