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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고백>이란 영화가 흥행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 딸을 죽인 아이가 우리반에 있습니다”라는 담임 선생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영화라니, 흥미가 당겼다. 친구와의 술약속을 기다리던 차에 생긴 30분의 시간은 내 발걸음을 교보로 향하게 했고, <고백>과 <속죄>, 그리고 역시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악인>을 사버렸다. 이 말을 써놓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같은 알라딘 매니아가 교보에서 책을 사다니! 하지만 눈으로 책을 보며 고르는 재미에 휩쓸린 탓에 정신을 차려보니 계산대 앞이었다, 정도로 해둔다.
원래는 이 책을 월요일부터 읽으려 했다. 새로운 과목 두 개를 이번 학기에 시작하다보니 주말이면 늘 강의준비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보자”는 사악한 마음에 <고백>의 앞부분을 조금 읽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고, 그 다음은 안봐도 비디오였다. “그만 읽고 강의준비해라”며 야단을 치는 아내에게 싹싹 빌어가며 책을 읽었고, 내친김에 같은 작가의 <속죄>까지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난 시각이 새벽 세시. 아내가 <악인>을 안보이는 데다 숨겨놨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늘 하루를 잠을 자느라 다 써버릴 뻔했다. 이러니 내가 아내를 좋아할 수밖에. 갑자기 흡입력 강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들은 대체 누굴 망치려고 그러는 걸까? 화요일에 <현대기생충백서>를 듣는 160명의 학생들을 실망시키는 게 미나토 가나에의 목적인지? 목요일 수업은 또 어떻게 하라는 건지, 지금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난다. 결국 그 두 책을 하루에 다 읽어버린 난 작가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 셈이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열호란 말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다른 사람한테도 좀 알려주자”는 기특한 생각을 했고, 오늘 테니스를 치는 멤버들 중 드물게 독서가 취미인 친구에게 이 책 얘기를 했다. ‘이 반에 내 아이를 죽인 학생이 있다’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책이 있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자길 좀 빌려달란다.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고, 리뷰를 통해 더 널리 알리려 했다가 깜짝 놀랐다. 리뷰가 무려 156개나 달려 있어서. 작년 한해 알라딘에 좀 소홀한 건 인정한다. 서재달인 엠블럼을 받지 못한 것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책의 존재를 나 혼자만 몰랐다는 건 참을 수가 없다. <고백>에서 담임에 의해 살인범으로 지목당한 와타나베는 아이들한테 왕따가 되고 마는데, 서재에 뜸하고 리뷰 읽기에 소홀했던 난 내가 몰랐을 뿐, <고백>이란 면에서 보면 왕따였다. 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번씩은 서재에 들러 새 소식을 접할지어다. 화이트데이를 하루 앞둔 2011년 3월 13일에 얻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