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 중국 최고 석학 장치청 교수의 건강 고전 명강의 장치청의 중국 고전 강해
장치청 지음, 오수현 옮김, 정창현 감수 / 판미동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인간의 몸과 마음을 다시 읽다

 

장치청이 쓰고 오수현이 옮긴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라는 책의 제목은 잘 못 되었다. 그 제목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 <황제내경,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읽다>

이 책을 읽고, 인간이란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책이 인간이란 존재를 두 가지 방면 - 몸과 마음-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의 넒이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제내경을 읽기 위한 선이해

 

그러나 이 책은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라서읽기 전에 몇 가지 선이해가 필요하다

 

황제내경은 진한시대(B.C 221~A.D 220)에 만들어진 의서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시의 고전들이 그렇듯이 시대를 거치면서 등장한 수많은 의원들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된 것으로 보인다.

 

동양철학의 근본 개념인 음양오행을 설파한 중의학 분야의 고전으로, 신화 속 인물인 황제와 그의 신하이자 명의인 기백(岐伯)이 나눈 문답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생리, 병리, 질병, 치료에 대한 원리와 방법을 풀어내어 인류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공헌한 중국 최초의 의학 이론서이자, ‘아직 병들지 않은 것을 다스리는예방 양생 비결을 서술한 최초의 경전, 그리고 의학, 천문학, 지리학, 심리학, 사회학, 철학, 역사 전반을 풀어내어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자 한 최초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이 책을 기초로 하여 중국 전통의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하였으며, 허준의 동의보감도 영향을 받았다.

 

<중국 고대에는 기서라 불리는 세 가지 경전이 있는데, 그중 첫째는 역경, 그 다음은 도덕경, 마지막이 바로 황제내경이다. 이 세 가지 경전은 현대인이 인생에서 한 번쯤은 밁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필독서이다.> (19)

 

<이 경전 가운데에서 어느 것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할까? 그 답은 간단하다. 마땅히 황제내경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황제내경은 다음 세 가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 20)

그 세 가지 최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황제내경은 중국 최초의 의학 이론서이다.

둘째, 황제내경은 양생의 비결을 서술한 최초의 경전이다.

셋째, 황제내경은 생명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백과사전이다.

 

황제내경의 구성과 핵심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소문(素問)과 영추(靈樞)이다.

소문은 생명의 체질과 본질, 근원에 대해 황제와 기백이 문답식으로 주고 받은 내용이며

영추는 신령함의 핵심이며 생명의 중추를 의미하는데, 경혈과 침뜸의 실전편이다.

황제내경에는 총 162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소문 81, 영추 8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제내경의 핵심은 불치이병 치미병’(不治已病 治未病, 이미 병든 것을 치료하기보다 아직 병들지 않은 것을 다스린다) 이다. (21)

 

沒世不殆, 長生久視, 无有終時

양생을 잘하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잘 살 수 있다.(9)

 

恬淡無慾, 合同於道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 (10)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찾는 내구’(內求)야말로 생명과 건강, 장수의 비결이다. 내구가 바로 양생이고, <황제내경>가 뜻하는 바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양정 養精, 조기 調氣, 치신 治神을 제시하였다. 즉 몸의 근본인 정을 지키고, 생명활동의 에너지인 기를 기르며, 생명활동의 주재자인 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이후 정기신 양생론은 면명히 계승되어 한의학 양생론의 근간으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10)

 

여기 염담(恬淡)’이란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와 관련해서 추가 언급된 부분이 있어 인용한다.

<황제내경에는 염담허무 恬淡虛無 라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하면 참된 기운이 과불급이 없이 순조로워지고 기가 스스로 제 갈 길을 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염담((恬淡)이 말하는 것은 마음의 평안함과 사적인 욕망을 줄이라는 것이고 허무(虛無) 는 더 높은 단계로 마음이 순순함을 회복하여 불순물이 제거된 단계를 말한다.>(107)

 

저자는 덧붙여 말한다.

<이렇게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 일상의 삶에서 순간순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깨끗하게 해야만 진정 즐겁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108)

 

이러한 양생의 이치는 결국 마음이 깨끗함에 이르도록 하는데 있기에, 서두에 이 책의 제목을 <황제내경,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읽다>라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해부에 관한 이해에서 한 걸음 더

 

인체의 해부와 관련하여 황제내경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양에서 인체 해부에 대한 기록은 이미 2000년 전 한의학의 최고서인 <황제내경>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영추>경수편’(經水篇), ‘위양편’(胃腸篇), ‘평인절곡편’(平人絶穀篇)에서는 사람의 형태적 구조가 서술되어 있고 이는 고대 동양의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인식이 어느 수준까지 발달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겨레 신문, 2014.6. 13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43674.html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

 

<갑골문자에서는 심을 어떻게 썼을까?

심장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황제내경이 쓰이기 이전에 고대사람들도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해부라는 단어도 황제내경에 등장할 정도이다.

<영추>경수편’(經水篇)에서는 도입부에 보통 사람의 피부나 맥은 그가 살았을 때는 손으로 짚어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가늠할 수 있고 죽었을 때에는 해부하여 관찰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82)

 

<오장을 이루는 한자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부분 해부를 통해 확인한 장기의 형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에서는 심장의 형상을 볼 수 있고 간, 비장, , 신장도 모두 육달 월을 그 부수로 가진다. 육달월은 고기 육과 같은 의미로 이들 한자가 모두 장기의 형상과 관련이 있음을 설명한다.> (83)

 

황제내경의 탁월한 점

 

그런데 황제내경은 단순히 해부에서 그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황제내경의 탁월한 점은 기능을 먼저 논한 다음, 각 기능과 관계된 신체기관을 한데 묶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유, 정신, 의식활동이라는 기능을 먼저 말한 다음 이러한 활동을 뇌와 심장이 공동으로 주관한다고 밝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는 황제내경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형체에 국한되지 않고 형체를 초월하여 몇 개의 단일한 형체, 몇 개 기관의 조합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83)

 

<황제내경의 위대한 점은 형체 해부의 차원을 초월하여 장기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대 의학에서도 생명의 기능과 생명의 법칙을 명확히 하는 데에는 해부학적 부위와 조직 기관의 기능을 분명히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황제내경이 가장 대단한 점은 천지와 우주 전체에서 생명의 기능과 법칙을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천지자연의 법칙에 근거하여 생명의 기능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뒤 다시 그 다섯 가지에 근거하여 이에 상응하는 조직 기관 등을 한데 모은 데 있다.> (260)

 

중간 사족 - 이 책을 읽고 가외로 얻은 것들

 

한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은 우측의 청()이라는 글자에서 음가를 차용하고 좌측의 미()에서 의미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는 원래 , 양식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정밀하고 심오한 물질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 사람의 몸 속 매우 미세한 물질을 가리켜 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은 인체 생명의 정수이자 신체의 형태를 이루고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물질적 기초인 셈이다. (57)

 

()는 미()와 기()라는 글자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에도 미()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도 마찬가지이다. 이 미()자라는 글자는 미세하고 정마한 물질을 말하므로 기()도 정미한 물질을 가리킨다. (66)

 

() 바로 황제내경에서 말한 마음이 편안하여 욕구가 적절한 상태에 이른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은 일종의 여유롭고 편안한 생활 상태를 말한다. 자세히 살피면 자 안에 나무 자가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원래 나무 막대기를 이용하여 문빗장을 지른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면 바깥 세계의 욕망과 유혹이 문에 가로막혀 집안으로 들어 올 수 없다. (94)

 

실제로 시행해 본 것들

 

하나만 소개하련다. 발바닥의 용천혈을 눌러주는 것.

 

<잠들기 30분전 먼저 양 손바닥을 문질러 열을 낸 다음에 오른손으로 왼발의 용천혈을 눌러주고 왼손으로는 오른 발의 용천혈을 눌러주면 심장의 불이 가라앉고 신장의 물이 차오른다.> (90, 271)

 

그렇다면 용천혈은 어디일까?

<정확히 말해 발바닥의 정중선에서 앞 쪽 3분의 1 되는 지점의 움푹 팬 곳이다.> (90)

 

도연명 (陶淵明) 의 시 한 수

 

진나라 시인 도연명의 飮酒五首 (음주5) 에 이런 시가 있다.

 

飮酒五首(음주5) -술을 마시며

 

結盧在人境 (결로재인경)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 (차환유진의)

欲辨已忘言 (욕변이망언)

 

사람사는 곳에 오두막 지었지만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어라

묻노니 어찌하여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절로 외딴 곳이 된다네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산 기운은 해 저물어 아름답고 날던 새들은 짝 지어 돌아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어 말하려다 할 말을 잊고 말았구나

 

도연명이 술을 마시며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인데, 저자는 이 시를 심장의 양생과 수련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276- 277) 과연 그 해석이 올바른가?

저자의 해설을 읽기 전에 한 번 이 시를 읊어보면서 과연 그러할까, 생각해 보면 어떨지?

 

읽기를 마치고

 

이 책을 읽고 먼저, 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의 지평이 확대된 것이리라.

 

그리고 더하여 한의학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한의학 자체에 대한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그 접근방법에 대한 이해 말이다.

단순하게 인간의 몸을 고치려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려 몸을 고치는 방향, 그것이 이 책의 최종 지향점, 양생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저자가 말한 중국 고대 3대 기서(역경, 도덕경, 황제내경)에서 먼저 황제내경을 읽으라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 내경을 먼저 읽어 인간의 마음과 몸에 대해 이해를 먼저 하고 나머지 책들을 읽었다면 더 부드럽게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비록 그 순서는 거꾸로이지만, 이 책 황제내경을 읽었으니 다른 책을 읽을 때에 새로운 안목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그런 기대감이 생긴 것, 그 것 역시 이 책을 읽고 난 기쁨이라 할 수 있으리라.

괄목상대가 바로 그런 의미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산보
플로랑 샤부에 지음, 최유정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들고 도쿄 산보를 나선다.

 

이 책 한권 들고서 산보를 나선다. 외국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정작 일본은 경유지로 공항에서 잠시 머무른 적 밖에 없다. 해서 공항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서 이 책을 들고 일본 도시에 산보 나서는게 초행길이다.

그만큼 설렘이 있다. 더구나 일본의 수도인 도쿄다. 일본하면 선입견으로 들었던 여러 이야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책 위에 어른거린다. 그러니 집중하자. 이 책 역시 일본이 타국인 사람이 쓴 책이니, 같은 타국인인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저자와 양의 동서로 다른 나라이니 보는 시각이야 물론 다르겠지만, 물설고 낯설은 것만은 같지 않겠는가? 해서 그의 뒤를 따라 여기 저기, 골목 골목을 구경해보자.

 

 공항에서 시내로 - 한 시간 소요

 

맨먼저 나리타 신도쿄 국제공항이다. 페이지 밑으로 공항의 상징인 관제탑처럼 보이는 높다란 건물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공항청사 건물이 보인다. 바야흐로 일본이다.

그리고는 공항에서부터 자세한 안내가 시작된다.

<공항에서 도쿄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한다. 요금은 3,000엔 정도이고 한 시간쯤 걸린다.>(14)

그러니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공항에서 서울까지 쯤 되는 거리, 시간일까?

일단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여행안내서도 겸할 수 있으리라. 물론 어디에 가서 공항 버스를 타고 ...뭐 그런 자질구레한 안내는 없어도, 공항에 내리면 여기 저기 안내 데스크가 있으니 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다.

 

 

고반 앞에서는 무슨 일이?

 

 그 다음은 생략하자. 일일이 언급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저자는 새로운 지역을 시작할 때, 꼭 그 지역의 파출소 건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파출소를 고반이라 부르는 모양인데(7), 저자가 왜 그렇게 파출소 그림으로 시작하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거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어서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짐작가는 게 있다면, 140쪽 이하에 소개하고 있는 경찰서에 연행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이 경찰서 그리고 그 하급 단위인 파출소(고반)에 대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새로운 지역을 소개할 때마다. 고반을 그리며 아픈 기억을 달래보는 것 아닌가, 싶다.

첫 번 째 고반인 마치야의 고반 건물은 여느 평범한 가정집 같이 보인다. 이층으로 된 아담한 가정집이다. 이층 -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 반대편에는 빨래라도 널어져 있음직한 순박한 건물이다. 그러니 그 앞에 서있는 경찰관마저도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게 그려 놓았다.

 

 허무 개그 한 판 - 도끼에 발등 찍혔네

 

그 다음 장에는 작은 지도를 그려놓았다. 그러니 이 책 가지고 산보 갈 수 있다! 산보가다가 길을 헤멘다 싶으면 그 옆 페이지(17)의 허무개그 그림도 한번 볼 일이다. 도끼로 발등을 찍는 그림이다. 저자가 우리 속담 도끼로 발등을 찍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라는 말을 알 리 없으니, 이 책 들고 길을 나선 행동을 그렇게 후회한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그런데 그 허무개그 등장인물인 주인공에게 걸린 말풍선 내용이 재미있다. 도끼에 발등을 찍혔으니 당연히 비명은 나오겠다. 그런데 그 비명소리를 표현한 의성어가 아야이다. 프랑스 사람도 아프면 아야라고 외치는가? 아니면 번역자의 재치인가?

 

 

 집 안도 구경해 봅시다.  

 

그 다음은 이제 산보를 잠시 쉬고 일본 가옥의 내부를 볼 차례이다.

우리가 듣기는 일본집은 좁다 좁다 하는데, 그림만으로는 그 정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저자의 그림 솜씨가 넉넉해서인지, 모든 그림을 관통하는 분위기는 푸근함이기에 더 그렇다.

물론 방안에 배치되어 있는 가구며 살림살이를 눈짐작으로 계측해 본다면 역시 좁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그림으로는 그래도 포근하게 보이니 저자와 여자친구 둘 정도는 오히려 아기자기하게 살 수 있었겠다, 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다를까요?

 

 그 다음에는 역시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문화 또는 생활의 차이점이 보인다.

처음 나오는 것이 저자가 두통으로 근처 병원에 갔을 때에 잰 체온계이다. 프랑스에서는 항문 체온계를 사용하는데, 일본은 겨드랑이에서 잰다는 것이다. 글쎄, 그럼 일본과 우리는 또 다른가? 나의 경험으로는 귀에 대고 재던데, 하여튼 프랑스에서는 온도계를 항문에 - 대고? 꽂? - 잰다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다시 고반 앞에서

 

 이렇게 서평을 쓰다보니, 진짜 산보하는 시간보다 더 걸릴 것 같아 나머지는 구석구석을 살피는 대신에 띄엄띄엄 살펴보기로 하자. 바퀴벌레 사건도 등장한다. 이제 다음 곳으로~

 다카다노바바에서는 고반 앞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해주고 있는 경찰관이 등장한다. 친절하다!

그 친절한 경찰관 아저씨를 그리고 있을 저자를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그 광경을 보면서 저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저 정도까지 해주나? 우리 프랑스에서는 안그런데, 하는 생각 했을까? 아니면 자전거의 주인쯤으로 여겨지는 아리따운 숙녀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 모두가 내가 지어낸 생각들이다.

그러니 책은 그렇게 읽어가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른다. 저자는 자기 눈에 보이는 일본을 자기 식으로 그려놓고 있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나의 생각에 기초하여 그림들을 해석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이 책을 들고 산보하겠지!

 

그렇게 이 책을 읽고 나는 이 책을 들고 진짜 도쿄 거리를 산보하는 꿈을 꿔보았다. 그런 산보도 함직하다. 그런 사람 있음직도 하다.

 이 책, 일단 재미있다. 그리고 담고 있는 정보들도 실제 도쿄를 여행할 때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고 분명하다. 그러니 괜찮은 책, 맞다.

이런 것도 양념으로 알아두면 어떨까? 일본어로 우동- 우리말로도 우동이다 - 이 프랑스어로는 어디라는 의미란다.(200) 이런 것 기억해 두면 일본 도쿄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여행가서 사용할 수 있으니, <여행 한마디>에 새겨둘 만한 요긴한 단어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 책 읽다가 몸살 나겠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 경우처럼 몸살을 앓았던 적이 없었다. 몸살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웬 몸살? 다름이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읽다가 멈추고 그 소설들이 기초하고 있는 배경들, 등장인물들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몸살이 났다는 이야기다. 사실적인 사건에 덧붙여져 교묘하게 진화하는 이야기. 허구임이 분명한데도 그것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를 알고 싶어지는 몸살 말이다. 그런 몸살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앓았다.

(, 여기에서 몸살() 나다는 말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못 견디다라는 의미의 관형구이니, 오해 없기를!)

 

그래서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읽기를 잠간 멈추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나 자신을 확인하고, 바로 베르베르를 떠올렸다. 그게 바로 베르베르의 경지가 아닌가? 이런 몸살은 첫 장부터 시작한다. ‘정말 서울시장 집무실에 깔려 있던 헤리트 카페트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개들의 사생활>에서는 어떤가? 자료를 검색해 보니, 프리온과 스탠리 푸르시너(191)는 실재하는 물질이고 인물이었다.

 

< 프리온(prion)1982년 미국 생리학자 스탠리 프루시너가 `단백질성'(proteinacious)`감염성'(intectious)을 조합해서 `감염성 단백질'이라는 뜻으로 만든 용어다. 프루시너에게 노벨상을 안겨줄 정도로 획기적인 특성을 가진 프리온이 우리에게는 고약한 광우병 발병 요인으로만 인식이 돼버렸다.>

(인터넷 자료 중 일부)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여 이어지는 스토리, 과연 어디까지가 소설? 그런 흡입요소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느 멋진 날>에서의 샤론 전 총리, 자극과 소리에 반응했다’(218)는 어떤가? 그건 사실이다. 그러면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실? 아니다. 그렇게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 기억투쟁 - 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십니까?

 

<라면의 황제>, 이것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 사람의 기억이 덧없음을 그려낸 책이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일반화의 오류에 속아 넘어가는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한 비논리적 프로파간다에 바보처럼 속아 넘어가는가를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냉철하게 비판한 것이다.

 

일인당 라면 소비량이 많은 지역일수록 거주자의 월평균소득이 감소한다'(80)는 본말전도식의 결론에 소설 속의 사람들은 깜박 속아 넘어가지 않았는가?

그러니 소설 밖에서도, 급기야는 현대 사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의 주범으로 라면이 몰리듯이(80) 우리도 누군가를 (전혀 본질과는 관련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몰아) 마녀사냥하지 않았던가?

 

그러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세상의 모든 영수증’(94)을 간직한 박모 노인처럼 그렇게 영수증이라도 모아야 하나?

아니면 <교육의 탄생>에 등장하는 것처럼 오길훈이란 일개인의 우연한 자료 발견(46)에 기대어야 하나?

 

이 책은 그런 오류에 빠져 애먼 사람을 잡아버리는 그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경고이며,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심각하게 그러한 풍조에 대항하여 기억투쟁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3. 개념있는 주제의식

 

<교육의 탄생><어느 멋진 날>에서는 저자가 얼마만큼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비평가인 백지연은 개념있는 주제의식’(316)이라 부른다.

 

먼저 저자는 그 것을 소설화하기 위해 음모론이란 도구를 꺼내든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모든 학생들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을 저자는 텔레파시 신호를 보내는 진언으로 음모론의 얼개를 짠다.

그렇게 소리내어 - 마치 진언처럼 - 외우면 그것이 우리 뇌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헌장을 열심히 외우면 거기에서 생긴 소리의 파동이 우리 뇌에 비가역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67)

 

그런 인과관계를 감쪽같이 만들기 위하여 저자는 천재 최두식을 등장시키고, 또한 소련계 뇌신경학자 레오니드 몰로디노프를 등장시킨다.

 

그런 진언은 <개의 사생활>에는 이렇게 (엉뚱하게) 진화하기도 한다.

개를 인간보다 더 사랑하라는 궁극의 신호’ (198)

 

<가장 진화된 신호, 프리온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고 나는 이 신호들이 이미 개들에게서 발산되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198)

 

그러나 그의 주제의식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어느 멋진 날>이다.

구로경찰서 관할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파키스탄인, 물론 그 신상정보는 여권상의 신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기시감을 느끼게 되며, 그래서 이야기는 저자의 상상력에 힘입어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스라엘의 전 총리,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샤론 총리의 무의식에 침투하여 전쟁의 참화를 알려주려 한다. 무의식에 침투한다니? 그게 바로 <교육의 탄생>에 등장하는 레오니드 몰로디노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물론 이번에도 그는 본명으로 행세하지 않는다.

 

<이븐 알 하둔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전공에 이슬람 신비주의를 결합하여 사람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방법을 만들어냈고, 그걸 테러에 이용하기로 마음 먹은 사악한 인간이다.> (222)

 

이븐 알 하둔이 바로 최두식에게 무의식에 관한 지식을 알려준 레오니드 몰로디노프이다.

그를 매개로 하여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은 시공을 건너 서울에서도 일어난다. 그것을 암시하는 말이 바로 기시감이다.

 

<기시감 :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들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앗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246)

 

<어느 멋진 날>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피를 동반한 사건은 그 장소를 서울로 옮겨 일어난다. 기시감이 서울과 이스라엘 사이, 그 천리길을 연결해주는 열쇠다. 그래서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단순히 거기에서만, 그 때에만벌어지는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 저자는? 상상력의 여왕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그런 상상력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마 이런 기록은 저자에게 해당하는 말일게다.

 

<‘소설이라는 말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그는 속으로 그 낯설고도 생소한 단어를 발음해보며 대답했다. “난 단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길 공책에 적었을 뿐인데요. 그냥, 이런 세상도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예요.>(225)

 

그런 상상력이 독자인 나를 즐겁게 한다. 이 세상 일들은,그러고 보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어디 하나라도 있던가? 그런 연관이 비록 지금 보기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어보인다 할지라도 속으로는 마치 용암처럼 지구 저 밑에서 서로 구렁이처럼 서로 얽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김희선의 이 소설집은 바로 그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런 표현으로 그 얽혀있음을 묘사한다.

<그건, 우리 모두가 세상의 기저에선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야.>(242)

 

덧붙여, 저자는 어떤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엔, 천재적인 직관이 필요하다’(189) 했는데,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저자는 그 연관성을 찾아내는데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연관성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보라! 미우주국 나사에서 일하던 소련계 레오니드 몰로디노프가 이스라엘 샤론 총리의 무의식에 침투하여 장미꽃 한송이를 흔든 그 의사(232, 238)인줄 누가 알겠는가? 저자는 그렇게 우리 허를 찌르는 그럴싸한 상상력으로 베르베르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5. ‘비틀기의 여왕

 

더하여 그는 유쾌하게 비틀기도 잘한다. 비틀고 꼬집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김난도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이렇게 비틀어 놓는다.

<그러니 여러분,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한국의 속담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뭐라더라, 거 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명언도 있지 않습니까?> (271)

 

작은 마을에 대형마트, 우리 보기에는 일상화된 건물이며 사건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누구 눈에?

<“얼마 전 새로 생긴 쇼핑몰이죠. 이 나라에선 저런 곳을 대형마트라 하더군요.

신기하군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저렇게 큰 쇼핑몰이라니요”>( 293)

 

외국인에게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저렇게 큰 쇼핑몰은 신기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신기하다는 것이 과연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말일까?

 

6.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그래서 <라면의 황제>를 읽고난 나는, 정색하고 말한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열광한 게 분명 한국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도 열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독서계에도 사대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실과 허구를 그토록 맛깔스럽게 요리하여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베르베르에 필적할만한 글인데, 왜 외국인이 쓴 것이라면 그토록 오매불망하고 한국인이 쓴 책은 백안시하는가? 그런 태도는 바람직한 독서인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의 구독 내지 판매 여부가 우리 문화계가 여전히 문화적 사대주의에 젖어있는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평가를 받아 마땅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이 책의 몇 갈래 흐름

 

<왕의 한의학>을 읽었다. 실상 이번 종이책으로 읽으니, 이 책을 두 번째 읽는 셈이다. 전에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통하여 이상곤의 글을 접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은 맛이 다른 법! 이제 다시한번 읽으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 책에 흐르는 두 갈래 큰 줄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한 줄기는 한의학에 관한 내용이다.

다른 한 줄기는 <왕의 한의학>이라 저자가 이름붙인 재료를 통하여 조선의 역사를 다시한번 - 다른 시각으로 -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살펴볼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조선 왕의 몸은 당대 조선의 시대정신과 과학, 그리고 제도와 정치가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8)

<왕의 몸은 조선 왕조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8)

<왕의 한의학을 통하여 왕의 몸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 올릴 수 있다.> (9)

 

바로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보여주는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 그래서 저자의 인도를 따라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거머리 요법 - 기침법(蜞針法)

 

그럼 먼저 한의학에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자. 이 책 48쪽과 124쪽을 보면 거머리 요법이 등장한다.

거머리를 가지고 무슨 치료를?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나쁜 피를 거머리가 빨아먹게 하는 방법으로 종기를 치료했다.(124) 문종이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거머리를 사용하여 효과를 보았다. (49) 거머리를 사용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것을 동의보감에서는 기침법(蜞針法)이라 불렀는데, 다음과 같이 치료를 한다.

“ .... 종기의 꼭대기에.......그 속에 거머리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다음 찬물을 자주 부어 넣으면 피와 고름을 빨아먹는다. 그러면 헌데가 생긴 곳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허옇게 된다.”(49)

 

그런 거머리 요법을 사용하고 있었길래, 다음과 같은 소설속의 묘사는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루 위에 달군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릴 때, 신출내기 숯장이나 풀무꾼은 불똥을 뒤집어 쓰고 화상을 입기가 십상이었다. 쥐를 잡아서 대가리와 꼬리, 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라 내고 껍질을 벗겨서 끓는 물에 고면 하얀 기름이 엉겼다. 서날쇠는 그 쥐기름을 걷어내어 불에 댄 자리에 발라 주었다.

덴 자리가 곪으면 고름자리에 거머리를 붙여서 썩은 피를 빨아낸 뒤 파를 으깨서 붙여주었다> (김훈, 남한산성, 55)

 

종기, 나라를 망하게 하다 - 종기로 죽은 왕들

 

종기는 조선왕들을 가장 괴롭힌 질병이다. (216)

그리고 그 종기로 인한 죽음이 그 뒤의 역사를 바꾼 안타까운 경우가 되었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다.

문종의 경우, 종기로 고생하다가 일찍 죽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빌미를 제공하였고, 효종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혈요법을 쓰다가 지혈이 되지 않아 죽는 바람에 북벌의 꿈은 사라졌다. 정조 역시 종기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의 멸망이 가속화되었으니, 어찌 보면 종기가 나라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흉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6)

 

조선 왕들에게 사랑받은 약들

 

213쪽 이하에 보면 조선의 왕들이 마음의 안정에 효험있는 약들을 찾았는데 그 중 사랑받은 약들이 어떤 것들인지, 망라되어 있다.

우황첨심원부터 우황고, 저두환 등등 많은 약들이 조선 임금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런 약들이 사랑받은 이유가 안타깝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바로 왕들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런 약들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한의학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 한 기록들, 또한 많은 사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인조가 만약 자신의 건강을 이형익에게 맡기지 않고, 저주 타령에 빠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소현세자가 번침 같은 잘못된 처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처방을 받고 치료되었다면 어땠을까? 소현세자는 새로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않았을까?>(212)

 

저자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토로한 글이다. 과연 그의 말처럼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았더라면, 그래서 그가 인조 다음의 왕위를 물려받고 임금이 되었더라면?

분명 우리나라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으리라. 심양과 북경에서 강성한 청과 서양의 문물을 보고 배운 소현세자는 무언가 다른 눈을 가지고 국정에 임했으리라. 그렇다면? 분명 조선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 역시 다른 모습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왜 소현세자는 그러지 못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저주 타령에 빠진 인조의 무능과 돌팔이 의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만은 분명하다.> (209)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나라가 잘 못 흘러간 것이 아쉬워서 그 소회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어디 소현세자뿐이랴?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조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조선을 개조하겠다는 의지로 정약용들 실학파들을 중용하던 개혁군주 정조도 허망하게 약화사고(350)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의 개혁정치는 끝이 나고 그 뒤로 조선이란 나라는 멸망을 앞에 두고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성리학의 문제점

 

더하여 이 책을 통하여 유교와 성리학이 조선시대에서 노출한 한계를 알 수 있다먼저 성리학이 어떤 것인지 정의부터 하고 들어가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학이 공자를 조종으로 하여 국가와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했다면, 성리학은 주자를 조종으로 하여 태어난 마음을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141)

 

그래서 유학과 성리학은 안팎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한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왕의 질병이 생기면, 성리학자 대신들이 그 치료에 참여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어떻게 그런 제도가 가능했을?

 

<조선 시대에는 문과 출신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상당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자 말하길, “효자는 의약에 대하여 알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식이 의약 지식이 있어야 어버이가 오래오래 목숨을 부지하며 살수 있다는 의미이다.>(이덕일, <조선왕 독살사건> 1, 22)

 

그래서 성리학자인 대신들이 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를 감독하는 위치에서 임금의 치료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용인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바로 문제가 있었으니, “왕의 진료와 치료에 참여한 성리학자 대신들은 거시적 총론에는 강했지만, 미시적 각론에서는 예리한 기술적 진보에 걸림돌이 되기 일쑤였다”(10)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의원 대신에 참여한 대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자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이불상(哀而不傷)의 가르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논어 팔일편(八佾篇)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關雎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번역하자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첫 번째 편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낙이불음(樂而不淫) 즉 즐기되 빠지지 말고, 애이불상(哀而不傷) 즉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하였다.

 

그러니 애사를 당하였을 때 공자말씀을 따른다면, 슬퍼하는 마음을 허용하되 그 슬픔이 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자말씀을 금과옥조로 삼는 조선시대에 그 가르침을 잘 지켜졌을까? 이 책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왕들은 대부분 즉위하면서부터 국상을 치르다가 건강에 타격을 입는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면 조선의 모든 왕들은 선대왕의 국상을 치르는 것으로 정사를 시작했고 건강을 망쳤다. 충효가 국가 운영의 근본 가치였던만큼 임금은 상사에 있어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선대왕의 장례절차가 새 왕의 몸을 해칠만큼 복잡하고 힘들었다는 점이다. (227)

 

따라서 이런 국상 때문에 몸을 상한 왕이 한 둘이 아니다. 인종도 그 중의 한명이다인종이 세상을 뜬 것은 지나친 효도가 스스로의 몸을 끊은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144) 중종의 국상 때에 몸을 지나치게 상한 것이다. (142)

 

문종은 어떤가? 부왕인 세종이 병환이 나자 근심하고 애를 써서 그것이 병이 되었으며 상사를 당해서는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싹 야위었다, 고 실록은 전한다. (42)

 

, 조선의 왕들은 애이불상이란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라를 위란지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다시 결론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던 그 목적은 이 책 안에서 충분히 이루어졌다. 나 또한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여준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 이야기
장회익 지음 / 현암사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이야기 -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가 재미있다. 더하여 그가 했다는 공부도 재미있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면서 공부도 재미있게 하는 셈이다.

 

어떤 공부?

그가 전공했다는 물리학에 대한 매력을 담뿍 느끼며 또한 깨달음에 대한 과정을 마치 공부하듯 차근차근 해 나가는 재미, 이게 바로 책을 읽는 기쁨이 아닌가 싶다.

 

먼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이 책의 줄기가 잡힌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또 하나는 창고에 갇힌 도둑이야기이다.

 

아인슈타인의 생애는 저자의 생애와 오버랩되며 저자가 자기 생의 고비고비마다 비교하며 따라간 멘토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생애는 많이 알려져 있기에 여기에서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둑이야기는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앎을 훔쳐내는 학문 도둑

 

도둑 이야기는 강희맹(姜希孟)이 쓴 도자설(盜子說)에 나오는 것으로, 저자가 공부 도둑이라 자칭하며 자기 생에서 공부를 마치 부잣집 곳간에 들어간 도둑처럼 금은보화 같은 공부를 빼내어 온 것을 비유하는 아주 적합한 비유이자,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 등장하는 도둑 이야기는 강희맹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쓴 '훈자오설(訓子五說)'중 하나로, 아들에게 스스로 터득하는 '자득(自得)'이 학문 연구에서도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해 지극히 천하고 몹쓸 짓을 하는 도둑의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다. (도둑 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7903939)

 

아버지 도둑이 아들 도둑에게 스스로 지혜를 깨우치도록 하기위해 일부러 아들을 창고에 가두는 이야기를 '발단- 전개- 위기- 결말'의 서사적 구성 방식을 취하여 아들에게 훈계하고자 하는 내용을 뒤에 제시하고 있다. 강희맹은 도둑의 도()에도 '자득(自得)'이 있듯이 학문의 도() 역시 자득(自得)이 있어야 천하에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그래서 도둑 이야기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자득의 원리는 장회익 교수의 학문 방법을 그대로 말해주는 아주 적절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자득의 이치를 여러 군데에서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이 기간 동안 혼자 공부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득했고, 이후 이 것이 내 일생의 공부방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내가 수시로 미지의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공부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대학 교육을 통한 수동적 학업에 지치고 질린 나머지 학업을 거의 포기할 상황에서 나 홀로 몇 년간 공부에 몰두 할 수 있었던 것이 평생의 학문적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412)

 

<공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다. 이미 초판을 낼 때도 내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그간 칠팔 년이 경과하면서 공부가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다른 하나는 공부에는 오로지 앎의 깊이를 더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더 아름다운 삶, 더 즐거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내 최근의 생각이다.>(5-6)

 

<나는 나 자신을 공부꾼이라고도 했고 때로는 앎을 훔쳐내는 학문도둑이라고도 했다. 그저 앎을 즐기고 앎과 함께 뛰노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이 과정 자체를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기로 했다. 혹시 이러한 앎의 유희에 흥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감하는 바를 넓혀보자는 것이 취지라고 할 수 있다.>(9)

 

깨달음 이란 무엇인가?

 

이해의 새 지평이 열리는 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만큼 더 의미있는 것이 바로 그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그는 어떤 스님을 방문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201) 그런데 그 스님 방에 들어가니 탁자 위에 지구의가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이 지구의는 나중에 커다란 깨달음의 소재가 된다. (‘지구인의 눈우주인의 눈’ - 343) 그러나 그 때는 그 지구의에 대하여 묻지 못하고 그저 깨달음을 얻는 방법만을 물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돈오와 점오에 관한 경험을 하고 - 그저 듣고 오는 경험?- 돌아 온다.

돈오(頓悟)란 그 스님의 표현에 따르면 즉석에서 깨닫는 것이고, 점오(漸悟)조금씩 학습해 가면서 깨닫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해의 틀과 그 틀 안에 넣어야 할 이해의 내용을 말해주고 있으며, ‘관념의 틀관심의 폭패러다임의 전환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깨달음의 정의를 이렇게 표현한다.

<작은 돈오로 구성되는 하나의 큰 점오>가 바로 깨달음이다. (207)

그러기 위해서는 물음이 필요한데, 그 물음은 꼭 명시적으로 질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 구석 그 어딘가 답답함을 느끼거나 찜찜함을 느끼는 형태로 오기도 한다. (207)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어떤 현상을 대할 때에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으니, 그것도 하나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종교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

 

공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의외로 종교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특색 중 하나이다. 각 마당마다 거의 한 꼭지씩 담아 놓았다.

셋째 마당의 교회에서는 왜 질문을 안받나’, 넷째 마당의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나’, 다섯째 마당 성경이 과연 하느님 말씀인가’, 여섯째 마당 스님 방에서 받은 깨달음 수업’, 아홉째 마당의 인간의 도등이다

 

이중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나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내가 이 시험 - 서울대학교 입학시험 - 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릴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내가 합격하면 누구 하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나를 붙여 달라는 것은 누구 하나를 떨어뜨려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가 아닌가?> (147)

 

여기서 잠깐! 독자들 중에 위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그런 고민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았다.

< 결국 나는 공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길밖에 없었다.>(147)

 

어떤가? 그런 기도가 적절한가?

이런 기도를 드린 후에 결국 그는 원하던 학교에 합격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다른 결론에 다다른다. 

다른 경우에서 발생한 일인데,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지 않고 그가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경우도 그렇게 - 공정하게 해달라고 - 기도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공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에, "내가 적합한 사람이라면 시험과정에서 실수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283)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게 더 인간적인 기도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끝으로 읽어야 할 대목은 410쪽 이하의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이다.

뉴턴은 자기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이는 그자신보다 한 세대 앞섰던 데카르트의 선구적 방법론에 힘입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414) 고 말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다. “ 그러나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익힌 사람이 뉴턴만은 아니었을진대, 오직 그만이 멀리 보게 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스스로의 공백기간을 통해 마련된 자기만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기 어깨위에 올라설 수 있었기에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414)

 

그래서 그렇게 할 때에 시야가 하루 하루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요체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하여 그는 평생을 걸려 공부했고, 공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기억해 두고 싶은 말들

 

<아침에 도를 깨닫고 낮에 이를 적어 놓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403)

 

<학문의 본령을 터득한 학자가 학문 전체의 내용을 재음미 해가면서 그 안에 가장 본질적인 내용을 추려내고 이것을 다시 일반 지식인들이 함께 깨우쳐내게 하는 매우 적절한 방식을 강구해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오직 이를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07)

 

<‘앎 중심학문이 식품의 생산에 해당한다면 삶 중심학문은 음식의 마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상황은 엄청나게 많은 식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이를 적절히 선택하고 배합하여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줄 요리사가 부족한 실정이라 할 수 있다.> (408)

 

저자의 선조인 '장현광'의 우주설(宇宙說) - 303쪽 이하

 

'동굴의 비유'(367)

이 비유는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비유가 아니다. 저자의 독창적인 생각이 녹아 있는 신선한 비유인데, 이 부분 독자들이 읽어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