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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 또 다른 교육 더 나은 세상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번역 총서 2
마이클 애플 지음, 강희룡 외 옮김 / 살림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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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사람에게 생각의 문을 열어주는 귀한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책의 제목부터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더니, 끝까지 이 질문을 물고 늘어집니다. 시종일관 저자의 자세가 그렇습니다. 끈질깁니다.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는 놓아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무겁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사회를 바꿔야 하는 당위는 확실한데, 그 방법론에 있어 과연 교육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주제이니, 무거운 것이 당연합니다. 그만큼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울리는 반향이 크리라 믿는데사람들은 어쩌면 이 책을 애초에 잡으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우가 앞서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저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의 참여를 이렇게 촉구합니다.

 

<나는 또한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주목했다.

1) 누구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을 제시하고 응답할 것인가?

2) 이러한 변혁적 실천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오랫동안 우리의 범주를 확대할 것을 촉구해 왔는데, 여기서 우리란 이러한 질문에 웅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운동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를 의미한다.>(269)

 

그러한 저자의 촉구에 저도 우리들의 범위 안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자는 독자들에게 세계를 관계적으로 볼 것을 제시합니다. 더하여 자신의 태도를 바꿀 것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창조적으로 우리를 통제하는 지배세력을 무력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보다는 이 책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 그래서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사항은 270쪽 이하에 기록된 저자의 한국방문기입니다.

우리가 등잔 밑에 있어서 보지 못한 것들이 그의 눈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록은 앞서 언급한 우리라는 개념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처음에는 작은 틈으로 보였던 공간을 양보해야만 했다. 그 작은 공간은 나중에 점점 더 커져서 결국에는 권력이 아무리 강압적으로 통제하려 해도 통제할 수 없는 공간으로 내줄 수 밖에 없었다.>(270)

 

다음과 같은 말들은 교육현장을 이해하기 위한 잠언으로 우리 가슴에 남겨둘만 합니다.

 

<교육은 단순히 시험 점수를 만들어내고 길들여진 노동자를 양산하는 공장으로 여겨진다.>(23)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취업이 아니다. 교육은 한 사람의 존재 자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26)

 

<자기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서 자신들의 과거가 살아있게끔 하며,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간다.>(32)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되어서, 그러한 교육과는 동떨어진 그 곳, 가야 할 길이 아주 먼 곳을 헤매고 있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졌습니다. 과연 저자가 제기한 질문에 ,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가 있을지?

 

그래서 옮긴이는 그러한 저의 기우라도 아는 듯,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어느 선지자(애플)가 우매한 대중에게 교화를 베푸는 경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거나,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잠시 머뭇거리고 있던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책으로 보인다.“(332)

 

그래서 우리는 그가 건네는 말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며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기회를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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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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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힘이 세다

 

이 소설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요? 일단 판타지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판타지 소설과는 다릅니다. 격이 다릅니다. .

언뜻 보면 다른 소설들과 별 차이점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판타지 소설의 대열에 집어 넣으면 큰 손해를 보는 것이지요.

이런 판타지 소설? 읽어야 시간낭비일뿐!’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것도 큰, 아주 큰 오산입니다.

 

달립니다. 주인공 빨간머리 요코는 달립니다. 이야기도 같이 달립니다.

이처럼 흡입력이 있는 책은 모처럼만입니다.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느꼈던 것들보다 월등하게 이야기가 힘을 발휘하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달리고 달리고, 그래도 힘을 잃지 않는 이야기!

작가가 펼쳐내는 이 이야기, 이야기의 힘이 무척 셉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힘이 있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몇가지 살펴볼까요?

 

작가의 표현력이 대단합니다. 이런 표현, 누가 구사할 수 있을까요?

<외치는 요코를 보며 고개를 쳐들고 웃던 원숭이가 속삭인다.

있지, 이렇게 생각해 볼 마음은 없어?”> (162)

 

생각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대화체 문장입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는 자주 쓰지만,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어진 글을 읽어본 적은?

아마 없는 듯 합니다. 그만큼 이 책의 서술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술술 읽히나 봅니다.

 

이런 문장은 어떻습니까?

<요코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 걸었다. 어깨를 빌려준 남자에게는 조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주위 사람들에게는 살짝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도록.>(308)

 

이렇게 문장은 유려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묘사를 통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떠올리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문장들은 다른 여늬 판타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입니다. 거기에서는 사건 묘사에 치우치다 보니, 이렇게 세밀한 심리 묘사는 볼 수 없고, 그저 것핥기에 불과한데, 이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 과연 이러한 것들이 원작의 힘인가요? 아니며 우리 말 번역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런데 그렇게 문장의 아름다움과 이야기의 힘에 빠져들어 읽다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바로 몸 없는 푸른 색 원숭이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푸른 원숭이의 역할이 무언가 살펴보았습니다. .

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요코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그의 불안을 조장하는 존재, 아니 불안한 상태에서 각성과 조심을 촉구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각도로 읽어보니, 이 이야기 속에 한편의 심리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환경에 봉착하여 거기에서 맞부딪치는 사건들과 싸우는 일상!

우리네 현대인들의 불안한 모습이 거기에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심리 드라마측면으로, 특히 불안과 관련하여 이 이야기를 읽었던 것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불안은 어떻게 촉발되는가?

 

<외치는 요코를 보며 고개를 쳐들고 웃던 원숭이가 속삭인다.

있지, 이렇게 생각해 볼 마음은 없어?”>(162)

 

이 구절은 불안심리 촉발에 대한 탁월한 묘사입니다.

 

또한 불안은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염되기도 합니다.

<불안해하는 닷키의 목소리가 요코까지 불안하게 한다.>(128)

 

불안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좀먹는가?

 

<이 원숭이는 요코의 절망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요괴처럼 요코의 마음에 숨은 불안을 폭로해서 요코를 좌절시키기 위해 나타난다.> (202)

 

<푸른 원숭이의 말은 요코의 불안이다. 원숭이는 그 불안을 폭로하기 위해 찾아온다. 불어난 불안을 먹기 위해서다.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238)

 

<푸른 원숭이는 요코의 불안을 폭로한다. 푸른 원숭이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는 것은 자신을 납득시키는 작업과 비슷했다.> (239)

 

불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런데 그런 불안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긍정적인 방향으로도 작동하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그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푸른 원숭이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불안까지 폭로해 주니까,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용할 수 있다.> (241-242)

 

불안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자신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며 날이 저문 길을 반달음질로 걸었다.>(287)

<스스로를 열심히 설득하던... >(287)

 

일단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렇게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납득시켜 이겨내는 것입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불안하지 않다, 내가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옳다, 라고 스스로 납득이 되게끔 사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에 대처하다가 드디어 요코는 불안을 내치게 됩니다. 상징적인 묘사이긴 하지만 요코는 불안을 제거해 버립니다.

 

<혼신의 힘을 담아 풀 숲을 후려쳤다. 풀숲을 벤 검 끝은 공기마저 가르며 손에 묵직한 감촉으로 돌아왔다. 흩날리는 이파리 사이로 원숭이 머리가 날아간다. 땅에 떨어져 피를 뿌리며 데굴데굴 굴렀다.>(294)

 

그 보다 더한 방법, 목표와 희망!

 

그러나 그러한 방법보다 실상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큰 힘을 가진 방법은 바로 요코가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돌아간다. 반드시 그리운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 하니까 내 몸을 지킨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 (204)

<...돌아가고 싶어.> (262)

<마음속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288)

 

그래서 결국 요코는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푸른 원숭이인 불안은 요코에게 불안을 촉발시켜 이제 희망은 더 이상 없으니, 빨리 죽으라고 꼬드기는데 요코는 그것을 희망이란 존재로 물리치며 자기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결국은 이겨내는 것입니다.

<아무도 아까워하지 않는 목숨이니까 나만이라도 아까워하기로 했어.> (241)

 

이렇게 이소설을 심리드라마의 측면에서, 푸른 원숭이와 주인공 요코가 불안을 가운데 두고 투쟁하는 심리드라마로 살펴본 나의 시각은 마지막 결말 부분에 이르러 연왕의 말로 증명이 됩니다.

 

요코가 연왕을 만났을 때에 연왕은 이렇게 푸른 원숭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밝힙니다.

<"검집은 원숭이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지. 원숭이는 사람 마음속을 읽는데. 이것 또한 긴장을 늦추면 주인의 마음을 읽어 어지럽히지."> (365)

 

푸른 원숭이란 존재는 바로 그렇게 주인의 마음을 읽어 어지럽히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이 소설을 다른 각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요코라는 소녀의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고, 또 요코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그 학교 친구들이 요코를 평가하는 멘트를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가 이루어지는가를 다룬 소설로도 읽혀집니다.

 

결론하여,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로 읽을 수 있는, 한편의 아름다운 프리즘 같은 소설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통을 돌릴 때마다 화려하게 무늬가 펼쳐지는 만화경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이런 판타지 소설, 공연히 시간낭비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려준 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결론하여,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로 읽을 수 있는, 한편의 아름다운 프리즘 같은 소설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통을 돌릴 때마다 화려하게 무늬가 펼쳐지는 만화경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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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 - 이탈리어 완역 결정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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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백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군주론>, 몇 번 읽기를 시도했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매번 책을 열고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다가는 덮고, 또 그런 일을 몇 차례 반복했었습니다.

제깐에는 열심히 책을 읽어왔고, 또 이런 고전은 손에 익숙하다 싶었는데, <군주론>만은 이상하게 그렇게 몇 번씩이나 내 손에서 비껴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은 제 책장 한 켠에 자리만 차지한 채 그냥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군주론>을 그냥 맨바닥에 헤딩하듯이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군주론>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읽기에 앞서 그 책이 나오게 된 계기라던가, 그 책이 사상사(思想史)적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등을 알고 읽었더라면 그런 실패를 겪지 않았어도 될 것인데,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좋은 책을 고른다는 것, 그런 안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신동준 선생이 번역한 <마키아벨리 군주론>입니다.

신동준 선생은 그전에 <왜 지금 한비자인가>라는 책과 <후흑학>을 읽어, 그의 경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라, ‘그래 이번에는 기필코 군주론을 정복하고 말테다라는 각오를 하며 이 책에 덤벼들었습니다.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 책은 다른 <군주론> 번역본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몇 번의 읽기 실패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정말 정성들여 쓴 책인만큼 그 정도 정성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입니다.

먼저 군주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이라 할까요? 아니면 식사를 하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전채 요리를 먹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성격을 가진 입문서가 배치되어 있어 이해를 돕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이탈리아 역사 개관“<군주론> 출현배경 및 용어해설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을 먼저 정독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번역본(강정인, 박상섭 번역본이 아닌)은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본론 이해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41쪽의 <원문과 번역>이란 항목은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다보면, 이 책이 왜 잘 된 번역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문장입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코자 하는 군주는 시의에 따라 때로는 악하게 굴거나, 또는 악행을 저지르거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76)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볼까요?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강정인)

 

이 책의 역자에 의하면, 강정인 역본에서는 악하거나라는 대목을 빼놓았다는 것입니다.(41쪽)  그러니 마키아벨리의 참 뜻을 불완전하게 전한 결과가 되었지요.

 

또 다른 번역본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사악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권혁, 돋을새김, 132)

 

이 번역은 시의에 따라라는 대목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라고 번역한 오역입니다. 그 것은 이 책의 역자가 <군주론의 용어해설>에서 네체시타를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는데(53쪽), 이 번역은 그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사실상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요체가 되는 구절이기 때문에, 이 문장을 잘 못 번역해 놓는다면, 독자들도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잘 못 읽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이 문장의 번역을 잘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 문장 하나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요약한 것이며, 군주론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말 한마디가 그 전의 모든 정치사상과 결별하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은 이 책은 그래서 다른 번역본들보다는 한 걸음 더 정확도를 향해 나간 책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주장합니다. 군주는? 선한 도덕을 시행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도덕적 당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관심을 두는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누구 - 여기 이 책에서는 풀라톤 등을 지칭함 - 의 말보다도 타당한 말입니다.

 

“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매달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소홀히 하는 자는 자신의 보존보다 파멸을 훨씬 빠르게 배우게 된다. 매사에 선을 내세우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몰락할 공산이 크다.”(176)

 

그리고 또한 43쪽의 ‘<군주론>의 용어 해설은 몇 번이고 읽어서 그 내용을 새겨 놓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다른 번역본에서 만나게 되는 애매모호함은 바로 이 장에서 역자가 설명한 내용들을 이해함으로 해결됩니다. 역자는 군주론을 관통할 수 있는 키워드를 뽑아내는데, 프린치페, 스타토, 비르투, 포르투나, 네체시타, 이렇게 다섯 개입니다. 이런 키워드를 몇 번이고 새겨서 체화할 수만 있다면 <군주론>은 술술 읽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읽어본 결과 지금까지는 막막하게 보였던 <군주론>이 실체를 드러나게 되었고, ‘앞뒤 문장이 왜 이렇게 연결되는거지?’ 하면서 의아해 하던 부분들이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군주론>의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그동안 숨어있던 것처럼 보였던 마키아벨리 사상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책을 읽은 큰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과는 별개로 이 책 <군주론>을 읽어야 할 필요성은 도처에 다음과 같은 명언들을 발견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군주는 앞서 언급한 선한 품성을 구비하지 못할지라도 마치 이를 구비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다. 장담컨대 실제로 그런 뛰어난 품성을 구비해 행동으로 옮기면 늘 군주에게 해롭지만, 구비한 것처럼 가장하면 오히려 이롭다”(195)

 

이런 말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회와 국가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며, 또한 그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제대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주는 증오를 촉발할 일은 남에게 맡기고, 칭송을 받을 일은 자신이 도맡아야 한다.”(204)

 

이 말은 우리나라의 정치역사상 몇 번이나 사용된 - 정치가들이 써먹은 - 방법입니다. 그런 것을 꿰뜷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라고, 마키아벨리는 이런 책을 지은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군주론>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이며, 군주론을 여러 번 읽었지만 그 실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교정자의 역할을 하리라 확신합니다.

 

좋은 책 제대로 옮겨주신 역자와, <군주론> 번역서가 많은 가운데 시장성을 바라보지 않고 출판을 결행(?)한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은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할 것이며, 군주론을 여러 번 읽었지만 그 실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교정자의 역할을 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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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은 바다에서 만나고 - 정치학자 임혁백 교수와 떠나는 지중해 역사문화
임혁백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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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은 바다에서 만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여행갔던 때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겁니다.

유럽 특히 저자가 다녔던 베니스를 거쳐 로마 등등을 다녀오던 길, 그저 여행안내서 한권만을 들고 다니며 무언가 조금 더 심도있는 자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여행내내 곱씹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당시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는지라, 그저 여행안내서 한권이 모든 여행길을 지배했었습니다. 그래서 지리도 역사도, 문화도 모두 그 책의 지시대로만 알고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때 이런 책을 수중에 가지고 있었더라면 조금 더 폭 넓은 깊은 여행을 했을 것이란 생각이 이 책을 읽는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이 책을 읽고 지금이나마 이런 식으로 (부록으로) 각 도시마다 정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에르푸르트

- 독일 사회민주당이 탄생한 곳 (232)

- 루터가 대학생활을 보낸 곳 (238)

- 막스 베버가 탄생한 곳 (238)

 

이런 식으로 각 도시마다 정리를 해놓으면 그 도시에 가면서 그런 사실에 착안점을 두고 관광을 한다면, 그 지역이 더욱더 의미있는 곳으로 각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 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비단 여행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여러 요소들을 두루 구비하고 있는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저자는 그의 인문학적 소양을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미술, 음악, 문학, 역사, 지리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여행하는 해당 지역과 연관된 자료들을 쏟아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해당 지역인 서양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관련된 동양의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백의 시, 소동파의 시 등등 문학작품은 물론 도덕경의 깊은 바다와 논어의 넓은 들판도 같이 보여줍니다.

 

이 책을 정리해 보자면, 저자 부부와 친구 부부 해서 4명이 유럽의 지중해 지역을 여행한 여행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것처럼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 이끌린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여행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느라 얼이 빠졌고, 어떤 때에는 그의 역사 해설에 잠시 넋이 나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예를 든다면, 블레드 호수와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러니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200)을 이 책 말고 어디에서 들어 볼 수 있었겠습니까?

 

더하여 새로 배운 것들도 많았습니다. 201쪽에 기록된 오토 힌체(Otto Hintze)의 이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가 주장한 내정의 연장은 외정이고, 외정은 다시 내정을 규정한다는 내정과 외정의 상호결정론은 그런 유럽의 역사에서 이미 검증된 이론으로 보입니다. 어디 그런 것이 하나뿐인가요?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와 진달래와의 얽힌 이야기(216)도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또한 마키아벨리에 관해 저자가 여기 저기 지역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내용들을 모아보면 한편의 훌륭한 마키아벨리 평전이 될만도 합니다.

 

또한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여기저기 배치해 놓아,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직접 현지에 다니는듯한 기분도 들게 합니다. 사진도 잘 찍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이 책을 따라 여행을 하는 동안 나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베니스와 관련하여 제가 여행중 산 마르코 광장 근처 어떤 카페에서 차를 마신 일이 있는데, 안타깝지만 그 카페 이름이 기억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카레 플로리안(Caffe Florian)이 유명하다 합니다. 커피의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계적 바람둥이 키시노바가 탈옥후에 잠시 이곳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127)로도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혹시 내가 들렀던 곳이 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유쾌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이미 다녀온 여행의 추억을 되살려 보는데도 좋거니와, 혹시 앞으로 여행을 할 때에 그냥 발자국만 남길 요량이 아니라 조금더 심도 있는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라면 한권쯤 들고 떠나도 좋을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자, 출판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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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5
다나미 아오에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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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보통 인간의 모습이고, 그것이 국가로 확대될 때에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 싶지만, 그것도 분수가 있지,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이 책 <이스라엘에는 누가 사는가>를 읽은 총체적 느낌은 그랬다.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책은 적나라하게 이스라엘의 실상을 까발린 책이다. ‘까발린이란 말을 사용한 것을 용서하시라. 지금껏 읽은 책 중에서 이스라엘의 속사정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알려준 책은 없었고, 이제 알게된 진실로 인하여 받은 나의 충격을 표시하기에는 그 말 보다 더 정확한 말이 없기에 그렇다. 그만큼 실상 나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아무래도 이 책의 원제가 의미하는 바처럼 부재자라는 말의 정의부터 짚고 가는게 좋겠다.

이 책의 원제는 <부재자들의 이스라엘>이다. 그 제목을 부연설명하자면 부재자들이 사는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에서 부재자로 명명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재자가 살고 있다니? 부재자란 보통의 경우에는 있지 아니한 사람’,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니, 책 제목은 벌써 형용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거다. 책 제목이 형용모순인 이유는 이스라엘의 실상이 각종 모순을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것을 낱낱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지향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재자의 사전적 의미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고 법률적 의미로는 주소지를 떠나 있어서 쉽게 돌아올 가망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두 번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부재자 투표’,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서는 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 책 23, 24 쪽과 288쪽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 거기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들어있다. 이 책은 부재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부재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부재자는 곧 삶과 직결된다. 추상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자. 부재자라 불리면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부재자재산관리법에 따라 부재자로 간주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 '재무장관이 임명한 부재자 관리인'이 관리하게 되어 있다. 이 법률에 따라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던 아랍인들 중 약 절반은 부재자로 간주되어 자신들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다. 여기서 말하는 재산이란 부동산만이 아니라 현금이나 상품, 주식, 그리고 거주권이나 영업권, 사용권 등 모든 권리를 말한다. (288-289) 그래서 부재자가 된 사람들은 땅을 빼앗기고, 자기가 살던 정든 땅에서 다른 곳으로 추방되어 무일푼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부재자는 자기가 살던 땅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쫓겨난, 존재하지만 부존재로 법률상 인식된 부재자를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런 불행한 '부재자'들이 이스라엘 땅에 '현존'하고 '실존'한다는 것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부재자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나의 편견에 관한 것이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편견,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 - 그것이 어디 한두개인가? -을 낱낱이 밝혀내는 데 이 책은 일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더욱 그러하다. 기독교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하여 , 그것이 나의 편견이었구나하면서 무릎을 치며 읽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아직까지 성경 속의 땅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글은 의외로 느껴질 것이다 

 

<북부 갈릴리가 문제되는 이유는, 이곳이 이스라엘을 건국할 때에 아랍인을 다 내쫓을 수가 없어 수많은 아랍인 마을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그리온이 북부를 시찰할 때 그곳이 전혀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처럼 보이지 않아 아연실색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320)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단지 무지로 인한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기쁨, 그것이 이책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주제가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는 점이다. 하나씩 하나씩 편견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 읽는 기쁨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저자가 매우 친절하기에 그렇다. 저자는 우리에게 낯선 주제를 친절하게 잘 요리하여서  제공하고 있다 

 

저자의 친절함은 각주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보통의 책은 각종 부연설명을 편집상의 편의를 위해서 미주로 미루는데  비하여 이 책은 각주다. 그 페이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개념이나 사실에 대하여 바로 밑에서 자세한 해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읽다가 처음 접하는 사건이나 개념을 만났을 때 그것이 미주로 해설이 되어 있다면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렇게 몇 번 잠시 책을 접고 뒤로 가서 미주를 찾아본 독자들, 불편을 참아내느라 책 읽기 어려웠는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바로 밑에 해설을 해주어 읽기 편한 점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저자는 섬세하기도 하다. 243쪽부터 245쪽까지를 읽어보자.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의 막돼먹은 행동에 어쩔줄 몰라하는 저자의 딱한 상황이 잘 그려지고 있다. 룸메이트의 너절한 행동에 저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조바심에 다음 페이지를 읽게 되는데, 저자는 어쩔 수 없이 룸메이트가 저질러 놓은 어지러움을 치우고 만다. 바로 그 때 이제 부엌도 깨끗해졌고 이제 내방으로 돌아가 한숨 돌릴 때면 그녀가 친구들을 데려오는 일이 징크스처럼 반복”(245)되는 상황이 전개되니, 딱하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책에서, 섬세한 글솜씨로 인하여 그녀의 딱한 상황에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니, 다른 글에서도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부엌에서 보는 이스라엘이라는 장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글쓰는 솜씨가 잘 드러나고 있다.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환경으로 넓혀나가는 저자의 글솜씨부엌이 작은 공간이라고 해서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부엌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환경정책을 고발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태도는 실로 공분을 사기에 마땅한 일이다. 저자는 부엌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주제로부터 큰 이야기까지, 똘똘 뭉쳐진 저자의 속속들이 파고드는 탐구정신으로 발굴한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단순한 고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또한 이 책을 매력있게 하는 요소이다. 그런 글을 써서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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