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짐과 쇠락 그러나 새로운 빛을 찾아] 녹이 쓴 커다란 못이 차지하는 표지 이미지는 "잊혀짐"과 "쇠락"이었다. 미국 역사의 어떤 부분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시대와 국경을 막론하고 경제의 부흥에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있다. 노동자와 그들의 잊혀진 삶이다. 아메리컨 러스트 역시 한때 철강산업이 부흥했지만 현재는 쇠락의 길을 걸으며 잊혀져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닫혀진 제강소의 문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방황과 갈등이 암담하게 그려지면서도 녹슨 이들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게도 된다. 4000달러를 손에 쥐고 마을에서의 탈출을 감행하는 아이작은 미래가 촉망되는 천재 소년으로 불렸다. 적어도 엄마가 물에 빠져서 자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아이작은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 듯, 자신을 무시하던 아버지의 병간호를 자청하며 벗어나고 싶었던 마을에 남게 된다. 그런 아이작과 달리 누나 리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마을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마치 마을을 잊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녀가 다시 마을에 들러 옛연인이자 아이작의 친구인 포와 관계하고 이들이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면서 여전히 마을이 안고 있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한 명의 인물인 포 역시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미래가 총망되는 럭비선수였지만 그 삶을 포기하고 마을에 남는다. 아이작과 함께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포는 그동안 외면하던 삶의 진실성에 눈을 뜨게 된다. 얼핏 젊은 청춘들이 외면하던 자신의 삶의 진실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만 비춰지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 작품에는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몰락한 한 마을이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철강이 최고의 산업으로 각광받던 때 마을 역시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산업의 몰락과 함께 철강소의 문은 닫히고 마을에는 해고된 노동자가 가득하게 된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안아야 할 삶의 무게는 상상 밖이었다. 아이작의 아버지는 먼 곳에서 일을 오가며 결국 사고로 다리를 잃어야 했고 어머니는 힘든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자살을 택하게 된다.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포의 집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아이작과 포의 집안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그 속에 녹아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언뜻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 것은 닫혀진 노동자들의 삶이 곳곳에 묻어났다는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작과 포도 마을 부엘에서 마지막 비상구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앞에 찾아든 현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이었다. 부랑자들에게 잡혀있는 포를 구하기 위해 아이작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늘 말썽 많던 포가 의심을 받아 잡혀가고 아이작은 마을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 그러나 작가는 누가 범인임을 밝혀내고 의심을 푸는 과정은 소설 속의 풀롯으로 설정하지 않는다.오히려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닫혀있는 자신의 삶을 직시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작과 포가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의 신선함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존 스타인백이나 헤밍웨이에 비유되면서 미국문학계에 해성처럼 나타난 신인작가 필립 마이어. 그의 작품에는 몽상대신 현실을 담아내는 힘이 있다. 어린 시절을 노동자층이 밀집한 볼티모어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필립 마이어는 노동자들의 삶을 작품 속에 진중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암울한 미래나 무조건적인 탈출보다는 이들이 자신의 삶 앞에 보다 솔직해지고 당당히 대할 수 있는 희망을 빛도 그릴 줄 아는 작가이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살짝 긴장되었지만 일단 한반 잡으면 흡인력 있게 읽혀지는 작품이었다. 장마다 모호한 구분 대신 인물의 이름으로 구성된 덕분에 개개의 인물 감정에 좀더 몰입하면서 부엘 마을의 인물 개개인의 삶을 좀더 진중하게 대할 수도 있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팬을 들기 시작한 필립 마이어, 단 한 편의 작품인데도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임에 틀림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