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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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특이한 사건들을 힘들여 적기보다는 대부분의 사건을 개략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데, 이 점에 대해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역사를 편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웅들의 삶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모습을 보면, 몇천 명이 죽은 전쟁이나 엄청난 무기 또는 도시의 함락과 같은 이야기보다는 한마디 말이나 농담과 같은 사소한 것들이 그 사람의 덕망이나 악행을 더 잘 표현해 준다..... 그처럼 나도 그 사람들에 담긴 영혼을 그려 냄으로써 그 사람의 생애를 그리고자 하며, 그들의 위대한 투쟁을 그리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려 한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렉산드로스전, p16)

모든 법에는 예외가 있듯이, 그 모든 실수를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다. 얼굴에 뾰루지나 사마귀가 생겼다고 해서 잘생긴 얼굴 전체에 얼룩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로스의 실수나 완전하지 못했던 행동 때문에 현자로서 누린 명예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의 비교, p227)

운명의 여신은 한없이 변덕스럽고, 역사는 유구하다 보니 역사에서 꼭 같은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를 지어내는 소재가 무한하다면 운명의 여신은 새로운 사건을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사건을 엮어 낼 수 있는 소재에 한정이 있다면,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다가 어떤 때에는 같이 시대에 같은 사건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우연히 일어나지만, 마치 운명의 여신이 계산한 일처럼 느껴진다. (세르토리우스전, p281)





1. 알렉산드로스, "아들아, 너의 그릇에 맞는 왕국을 찾아보아라. 마케도니아는 너에게 너무 작다."



알렉산드로스는 출생에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필리포스왕인데 델포이 신전에서 다음과 같은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가 뱀의 형상을 한 귀신과 동침하는 것을 그대가 문틈으로 들여다본 적이 있으니, 그대의 눈이 멀게 되리라."(p17) 이는 이집트의 창세신 암몬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런 소문 탓인지 알렉산드로스의 모후인 올림피아스가 대왕의 원정 시 그의 아버지가 신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출처 분명의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 그의 출생날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는 불이 났는데 당시 모든 점성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때리면서 아시아에 재난을 몰고 올 원수가 태어났다며 울부짖었단다.


알렉산드로스는 일찍부터 야망이 커서 필리포스왕에게 물려받을 부동산이 많지 않기를 바랬다. 아버지대에서 국가가 부강해지면 그만큼 자신이 성공할 기회를 뺏기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활동적인 성격이지만 공부와 독서에도 취미가 있었 평소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여러 책 중 《일리아스》를 가장 아꼈는데 전쟁통에 가져간 것은 물론이오 잠잘 때도 베개 밑에 단검과 함께 놓고 잠들었다. 철학자를 찾아가 교류도 많이 하고 정복지에서 유명한 선생이 있으면 스승으로 초청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디오게네스와의 만남은 너무 유명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왕의 스승이었다는 건 좀 신기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다양한 면모를 알려준다. 격양된 바보처럼 보였던 전투부터 시작해 술을 먹어 허풍 떠는 사병 같아 보였던 연회, 장교 41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술자리(순수하게 술만 먹다가 죽음),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따라다니던 호메로스가 게으르고 쓸모없는 동반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정책들, 적으로 부터 칭송을 자아낸 포로 처우, 편지에 적힌 1만장의 글씨(=잔소리)를 모두 지워버리는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로 표현되는 효심, 무섭게 자신을 단련하고 확고한 의지와 지혜로써 이룩한 승리들, 배신과 병마, 죽음까지 말이다. 알렉산드로스전은 정말이지 아쉬운 페이지가 한 장도 없었다. 아니구나 참. 딱 하나 아쉬운 건 로맨스? 알렉산드로스 인생엔 의외로 거대한 로맨스나 치정 사건이 없었다. 한번에 많이 또 오래 마셔서 그렇지 생각만큼 술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여자 문제에서도 꽤 담백했는데 많은 후궁들에게 성병을 퍼트린 아버지의 방탕함에 지레 질린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로마의 내전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다툼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우정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귀족 정치를 무너뜨리고자 함께 일했지만, 일단 그러한 작업에 성공하자 서로 싸웠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전, p147)

카이사르의 군대는 자비를 베풀 뿐 자비를 받지 않는다. (카이사르전, p152)

(갈리아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전쟁을 치른 지역의 험준함이라는 점에서, 정복한 지역의 광활함이라는 점에서, 깨트린 적군의 수와 막강함이라는 점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배은망덕한 부족들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포로들에게 보여 준 이성과 따뜻함이라는 점에서, 병사들에게 준 선물과 호의라는 점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르고 가장 많은 적군을 죽였다는 점에서 카이사르는 다른 장군들을 뛰어넘었다. (카이사르전, p151)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메난드로스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을 직역하면 "주사위를 던져라" 또는 "던져진 주사위이다"에 가깝다. (카이사르전, 주석, p173)

운명은 예상하지 못한다기보다는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카이사르전, p209)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카이사르에게는 율리아라는 딸이 있었다. 율리아는 이미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와 약혼한 터였음에도, 카이사르는 그 딸을 [자기보다 여섯 살 연상인] 폼페이우스와 약혼시켰다. 그리고 세르빌리우스에게는 폼페이우스의 딸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의 딸은 이미 정혼하여 술라의 아들 화우스투스에게 시집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카이사르는 피소의 딸 칼푸르니아를 네 번째 아내로 맞이하더니 이듬해에는 피소를 집정관으로 당선시켰다. 이에 카토가 맹렬히 저항하면서 혼맥으로 몸을 팔아 최고위직에 오르고, 여자를 수단으로 서로 도와 권력과 군대와 영지를 차지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노라고 외쳤다. (카이사르전, p149)



2. 카이사르, "인간이 살다 보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한 번이어야 한다."




로마의 종신 독재관이었던 카이사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내가 최초로 읽은 로마 역사서였는데 그 책을 통해 카이사르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키웠던 모양이다. 흠을 짚어주는 장면들을 굳이 기억하지 않았던 탓일까? 사실 못한 거일 확률이 높지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이 남자 상당히 야비하다. 그리고 그 야비한 모습이 꽤 충격적이다. 내 안의 카이사르는 부패와 방탕함으로 병든 로마를 일깨우는 개혁가의 이미지였건만.... 아뿔사, 개혁을 외치는 독재자이기에 앞서 그또한 힘과 권력을 욕망하는 한낱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도 지위도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와, 이런 복잡한 약혼과 결혼과 이별은 상상도 못했다. 한편 권력을 위해서는 치정 문제에 상당히 대범한 면도 있어서 자신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던 클로디우스가 호민관이 되도록 놓아 두기도 한다.


가냘픈 몸, 희고 여린 피부, 늘 따라다니는 두통, 간질.... 카이사르 아닌 것 같지만 모두 카이사르에 대한 묘사이다. 허약함을 핑계대지 않고 어려운 군대 생활을 자신의 허약함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생각했다는 정신력만큼은 인정! 전투를 기록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필경사를 두 명 이상씩 데리고 다녔으며 여색을 밝힌 것과는 별개로 음식에는 무심했다. 허름한 오두막에 묵어가는 날에는 무리에서 가장 약한 시동에게 가장 좋은 잠자리를 양보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아꼈으나 폼페이우스를 따라가는 것으로 배신한 부관에게 짐과 돈을 챙겨보내기도 했단다.


영웅들 중에서 판단하기가 제일 복잡한 부류의 사람이었는데 그런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걸 솔직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플라톤은 영웅은 위대한 덕성과 엄청난 마성을 함께 지녔다고 말하는데 카이사르를 보면 그 말이 꼭 맞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편은 재미와 존재감 때문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끝판왕을 만나는 기분을 들게 했고 이때 느낀 고양감 탓에 카이사르전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른 편을 읽을 의욕이 저하되어 무척 애를 먹었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팁을 드리자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니만큼 4권 뒤쪽의 다른 영웅들을 먼저 만난 후에 앞으로 돌아와 이 두 명의 영웅을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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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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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처사를 칭송하지도 않고 불운한 사람을 고소하다는 듯 모욕하지도 않는 것이 역사가가 가야 할 바른길이다. (디온전, p301)



1. 키작남 아게실라오스, 그리스의 외모지향주의는 어느 정도였을까?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는 볼품 없는 외모에 작은 키, 다리를 저는 흠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아르키다모스는 아들을 작게 낳았다는 이유로, 정확히는 너무 키가 작은 여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그대의 아내가 우리에게 대왕을 낳아 준 것이 아니라 소왕을 낳아 주었기 때문입니다."(p17)🥶 당시 민선 장관들의 말을 들었을 아르키다모스의 반응이 궁금하다. 나라면 완전 비뚫어졌을텐데 아게실라우스는 성격 파탄 안나고 낙천적인 성격에 농담도 잘하고 사랑받는 성격으로 잘 성장했다고 한다. 이때 2권에서 등장한 알키비아데스의 이름이 다시 한번 거론된다. 아르키다모스의 첫아들 아기스가 알키비아데스와 연적 관계였기 때문이다. 아기스가 원정 나간 사이 왕비는 알키비아데스와 눈이 맞아 아들 레오티키데스를 낳는다. 알키비아데스가 사망하며 왕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디오페이테스가 에언을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라, 그대 스파르타여. 그대들이 지금은 비록 영광스럽게 두 다리로 서 있지만 절름발이 왕실이 튀어 오르는 일이 없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도 않았던 고통이 그대들을 억누르고 전쟁이 휘몰아쳐 수많은 사람을 죽이리로다."(p18) 몸이 불구인 자와 스파르타의 적손이 아닌 사생아라는 굴절성을 지닌 자 중 누구를 왕위에 올릴 것인가. 아게실라오스가 왕이 되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리산드로스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불행으로 절뚝이는 삶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혼란하면서도 흥미롭다.




2. 폼페이우스, 여기 또 한 명의 미남이?!


"폼페이우스는 젊었을 때부터 잘생긴 풍모로 민중의 호감을 적지 않게 샀다. 그의 용모는 그가 말을 꺼내기에 앞서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소년 같은 사랑스러움에는 우아함이 어렸으며, 꽃처럼 젊은 나이에 자연스럽게 왕자의 풍모를 띠고 있었다. 머리칼은 이마에서 살짝 뒤로 넘어갔으며, 눈 주위에는 우아한 곡선이 나타나 마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초상을 보는 듯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생긴 것보다는 말이 부풀려진 듯하다." (폼페이우스전, 2, p76) 폼페이우스 흉상을 보고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던 때에 마침맞게 등장한 반전 문장에 빵 터졌다.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먹히는 플루타르코스의 유머감각이 영웅전 전반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폼페이우스는 술라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와 이혼했는데 장인, 장모가 모두 그 자신 때문에 사망한 걸 감안하면 정말이지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영웅전을 읽을 때 안타까운 점 하나는 영웅들이 그들의 권력을 위해 희생하거나 볼모로 잡았던 아내와 딸, 여자 형제와 손녀의 입장과 말을 들어볼 수 없다는 거다. 남편이 있고 약혼자가 있고 자식이 있거나 뱃속에 전남편의 아이를 품은 채로 집안의 이익을 위해 강제로 이혼하고 결혼을 강행해야 했던 여인들의 삶이 궁금한데 대게는 지나치게 단편이거나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폼페이우스와 재혼한 술라의 딸 또한 결혼 직후 전남편의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하였고 이는 독재자 집안에서나 있을 법한 혼인이었다며 플루타르코스 또한 안타까워한다.




3. 애인이란 신이 영감을 불어넣어준 친구 (펠로피다스전, 18 p221), 테베의 신성 부대


테베의 영웅 펠로피다스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성부대이다. 신성부대는 고르기다스에 의해 처음 창설되었는데 플루타르코스의 표현을 빌자면 "사람하는 사람과 그 애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성애를 장려하는 걸 넘어 동성애를 하는 남자 연인들 300명으로 군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애인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만큼 상대방 앞에서 비겁함을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위험에 빠졌을 때 지켜주고픈 마음에 더욱 용맹해지므로 이는 전략적으로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등에 칼을 맞고 죽는 모습을 내 애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으니 나의 가슴을 찔러 주시오."(p221)라는 말로 적에게 아량을 베풀어주기를 바란 전사도 있었다는데 이런 당부를 실제로도 들어주었을지는 의문이다. "애인이란 신이 영감을 불어넣어준 친구"라는 플라톤의 말을 빌어 신성 부대라는 호칭을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플루타르코스. 동성애가 권장되었던 문화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4. 아르키메데스가 우리에게 또다른 무기를 시험하고 있다! (마르켈루스전, 17, p270)



"저놈의 브리아레오스 같은 기하학자와 싸우는 것을 멈춰야겠다. 저 인간은 물잔으로 물을 퍼 담듯이 우리 배를 바다에 내다 버리고 우리의 삼부카를 이토록 치욕스럽게 침몰시키고 한꺼번에 수많은 화살을 우리에게 쏟아부으니, 손이 1백 개 달린 괴물도 못견디겠다."(p270)



우리에게는 유레카!로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히에론왕의 친척이자 막료였던 아르키메데스는 기하학에도 정통하며 무기 개발에도 무척 힘썼던 듯 하다. 발사기를 통해 수 많은 화살을 장난하듯 쏘아 로마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니 성 밖으로 밧줄이나 나무토막만 튀어나와도 병사들이 놀라 달아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도 헛점을 살펴 전진해오는 마르켈루스를 막을 수 없었는데 도시가 함락된지도 모른 채 집안에서 도형 문제를 풀다가 로마 병사의 손에 사망했다는 썰이 있다. 이 문제만 다 풀고 가겠다고 버티다가 죽었다는 가설 1, 이 문제를 풀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해 열 받은 병사가 죽였다는 가설 2, 해시계 등 여러 기구를 들고 가다 떨어트렸는데 이걸 금덩이로 오인한 병사가 욕심 때문에 죽였다는 가설 3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느 쪽이든 어마어마한 양반인 건 틀림이 없다. 그 와중에 문제든 기구든 눈에 들어왔다니 나라면 오들오들 떨었을텐데. 인재의 안타까운 죽음에 화가 난 마르켈루스가 아르키메데스를 죽인 병사를 썩은 시체 바라보듯 했다는데 그게 어떤 눈빛인지 평생 모르고 싶다😱



5.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말은 보이지를 않는데??



"들리는 바에 따르면, 카이사르도 브루투스의 신변을 걱정하여 전투가 벌어져도 브루투스가 저항하지 않으면 죽이지 말고 포로로 데려오고, 만약 그가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격렬하게 저항하면 그를 다치게 하지 말고 보내 주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그토록 걱정했던 것은 그의 어머니 세르빌리아 때문이었다는 말도 있다. 카이사르는 젊었을 적에 세르빌리아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 여인도 카이사르를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두 사람이 그토록 사랑한던 시절에 태어난 브루투스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p370)


여기 한 문단만 읽어도 이미 소설 한 권 급 흥미진진함이다. 3권의 제일 재미는 브루투스이고 4권의 제일 재미는 카이사르라는 거, 아무도 부정 못할 것 같아😍 원로원에 있는 카이사르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을 때 카토가 일어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지금 카이사르는 역적 카틸리네에게 온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토의 손에 넘어간 그 편지는 다름아닌 카토의 여동생 세르빌리아의 연애편지였으니 카토 때문에 공감성 수치로 이불 뻥뻥 차게 된다. 그런데 브루투스 편을 눈을 씻고 읽어봐도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브루투스마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본 카이사르가 외투로 머리를 감싼 다음 자객들의 칼에 몸을 맡겼다"는 구절은 있다. 내 머릿속 브루투스의 이미지는 허약하고 귀가 얇고 적잖이 야비한 모습이었는데 플루타르코스가 자료를 모아 설명하고 있는 브루투스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음모자 가운데 오직 브루투스만이 그 거사가 고결하며 위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그 일을 저질렀다. 그 밖의 사람들은 다만 카이사르를 시샘하고 미워서 암살에 가담했을 뿐이다."(p401) 라고 안토니우스가 증언할 정도이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브루투스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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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6
규영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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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난다 이 시리즈! 다 쓰러져가는 호텔 "드림초콜렛" 이야기로 대충대충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던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가요. 어느 새 006번까지 출간됐더라구요. 뭐야뭐야. 다 읽지는 못해도 소설 신간은 빼놓지 않고 챙기는 성실한 독자인데 002번부터 005번까지 놓치고 있었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부랴부랴 최신간 <옥토>부터 만나기로 했어요.



《옥토》는요. 본명이 송달샘이라는 스물한살의 여자애인데 꿈 일기장을 쓸 정도로 어려서부터 호화찬란한 꿈을 많이도 꿨었대요. 공부도 못해 인물도 없어 성격도 소심해 대학도 안가. 하필이면 아들딸 쌍둥이로 태어나 귀남이 같은 동생에게 치여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요. 남몰래 꾸는 꿈이 얼마나 달콤한지 부모님 떡집 일을 도우며 뼈와 살이 고단한 하루 끝에도 행복을 찾을 수가 있었답니다. 달샘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보기 드물게 순둥순둥한 주인공이더라구요 ㅎㅎ



부모님이 동생과 같이 제주도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그때가 달샘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월세는 제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지만 좋아하는 떡집 일을 물려받았고 부모님의 따가운 눈초리와 잔소리에서 벗어나 독립 인생을 꾸릴 수 있게 되었잖아요. 떡집 지하에 카펫을 깔고 떡집 내부는 이렇게 저렇게 고치는 등 달샘이에겐 꿈이 참 많았는데요. 이런이런.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대로 흘러가지를 않아요.



수능에 늦은 단골손님을 오토바이로 태워주고 그 김에 길몽도 하나 3천원에 팔았는데 그게 동티가 됐을까요? 월세 낼 날이 돌아오는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앞니가 두개나 빠지고 팔에도 깁스를 떠억하니. 떡은 누가 만드냐구요. 엉엉ㅠ. ㅠ 돈 벌어야 하는데 어쩌면 좋지 걱정하던 때에 달샘은 언젠가 받아둔 명함 한 장이 떠오릅니다. "평창동 꿈집, 산몽가를 모십니다!!" 꿈은 꾸는 걸로 끝나는 줄 알았던 달샘이가 일기장을 옆구리에 끼고 평창동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매몽업계 최고봉 평창동 꿈집이 과연 달샘을 산몽가로 받아줄까요?


산몽가는 예지몽을 꾸는 사람인데요. 왜 한번씩 들어본 적 있잖아요.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 기간에 아버지가 똥꿈을 꾸고 박태환 선수는 세계선수권 때 뱀 두마리가 나오더니 금메달도 두 개를 땄다더라. 그 밖에 조상님이 보이고 물이 불어나 집이 잠기고 들판에 불이 붙더니 불길이 나한테 쏟아지더라 하는 거요. 과연..... 저는 한번도 꿔본 적이 없는 꿈이군요 ㅋㅋㅋ 산몽가들은 이런 꿈을 더 대대적으로 꾸는 사람들이래요.



길몽을 꾸는 산몽가, 흉몽을 꾸는 산몽가, 길경몽이나 훙경몽처럼 앞날의 길흉화복을 미리 보는 산몽가가 있는데요. 아니 글쎄 우리 달샘이가 그 드물다는 치유를 돕는 길몽가라지 않겠습니까. 달샘의 태몽이 옥토끼였는데요. 떡 찧는 토끼가 제일 유명하지만 옥토끼에 관해서는 또다르게 전해지는 전설이 있어요. 도 닦는 동물들을 시험하느라고 옥황상제가 거지로 분해 구걸을 했는데요. 토끼가 이를 불쌍히 여겨 "내 몸을 살라 먹으소" 하며 불에 뛰어들어 타죽었대요. 이를 긍휼히 여긴 옥황상제가 토끼를 달나라에 보내 불로불사의 약을 찧게했으니 옥토끼 태몽을 꾸고 태어난 달샘의 꿈에도 신묘한 치유의 기운이 담겨 있다 이 말씀!



산몽가로서 옥토라는 새이름을 받고 시작된 달샘의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부러움의 극치였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꿈집으로 출근해서 1시간 동안 워밍업하고 (=잠잘 준비)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꼬박 잔 다음에 꿈꾼 거 보고하고 퇴근!! 꿈값은 몇 백에서 몇 천, 몇 억까지 가는데 꿈집 대표인 산몽가 마담이 반 먹고 나머지 반은 산몽가한테 주는 구조!!! 잠만 자도 고소득이 보장되는 이런 직종 또 없습니까? 제발 저 좀 취직시켜 주세요. 왜 나는 길몽도 하나 안꾸는 거야~~ 옥토 횡재했다고 마냥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음? 읭? 엉?? 이거 이야기가 좀 희한하게 흘러갑니다?? 꿈집에 얽히고 섥힌 저주와 음모가 장난이 없는 거에요.



산몽가였던 마담의 고조 할아버지가 입방정을 떠는 바람에 저주를 받아서 그 자손들이 대대로 장애를 입고 태어났는데요. 아뿔사, 마담 때에는 아예 대가 끊겨 꿈집이 망하게 될 거라는 예언이 있었다는군요. 마담은 꿈집이 망하기 전에 산몽가들을 내보내서 제 살 길 마련해주고 꿈집도 마저 정리하겠다는 입장인데요. 마담만큼이나 꿈집에 갖은 공을 들였던, 어딘지 꿍꿍이 속이 넘쳐보이는 해몽가 고실장은 순순히 꿈집을 닫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일에 우리 옥토가 이용되고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토끼양을, 고실장 네 이놈!!!



옥토 달샘이와 함께 환상적으로 부러운 경몽과 무섭고 겁나는 흉몽을 오가며 정말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에요. 드라마, 영화, 만화(웹툰 좋다❤) 어느 쪽으로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신박한 소재구요. 주인공 성격이 주인공스럽지 않게 만만한 것도 무척 취향이었습니다. 말랑말랑 순둥순둥 ㅋㅋㅋ 옥토네 떡집의 복떡도 어찌나 먹고 싶은지 떡 먹는 장면마다 군침이 꿀떡. 작가님은 재미난 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옥토를 펼쳐주신 독자님께 감사하다 하시지만 재미난 게 많은 세상에서도 더 재미난 판타지 소설 《옥토》를 써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복 빚는 토끼 옥토를 만나 여러분도 꼭 길몽 하나 받아가세요. 굿나잇!




📕폴앤니나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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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6
규영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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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 소설 요즘 정말 최고에요. 특히 판타지! SF! 폴앤니나 시리즈 계속 응원하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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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경성 모던라이프 - 경성 사계절의 일상
오숙진 지음 / 이야기나무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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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경성의 삶이 닮긴 그래픽북이에요.


금빛으로 빛나는 특별판 파리, "금파리"의 안내를 받아 경성으로 출발합니다.


아참참, 왜 하필이면 이 멋진 여행의 안내자가 금파리인지 궁금하시죠?


방정환 선생님께서 잡지 <개벽>에 기고한 소설 중에 <사회풍자 은파리>라는 작품이 있거든요.



"나는 은파리, 흰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 마을 은파리가 아니라,


곱게 반짝이는 은빛 옷을 입은 멋진 파리, 은파리로소이다.


나의 눈은 샛별 같은 천리안이고 나의 몸은 총알보다 빠르며


남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화 능력과 그 밖의 많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소."



은파리 이 녀석, 알고 보면 당대 지식인을 대변하던 엄청난 친구거든요.


그 은파리에서 착안한 캐릭터가 오숙진 작가님의 "금파리"에요.


2021년을 사는 우리를 1930년으로 데려다 주기에 충분한 친구 같지요?


금빛 날개를 타고 타임머신 쓩쓩~



경쾌한 단장 소리(=지팡이 소리), 하이힐 소리, 모질게 이를 가는 전차소리.


제가 상상하고 생각해왔던 1930년의 소리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요.


순사들의 외침, 몽둥이로 무언가를 때리거나 부시는 소음,


그것도 아니라면 공포에 잠긴 고요하고 적막한 숨막히는 풍경만 떠올렸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들썩이는 낮과 유혹하는 밤의 소음으로


시끌벅적 요란하고 소란스러웠던 곳이 경성이었나 봅니다.



금파리는 봄여름가을겨울을 쫓아 독자들을 안내하는데요.


제일 첫장면에서 등장하는 남학생에 대한 묘사부터 빵 터져요.


1930년대인데 나 이렇게 웃어도 되나 잠깐 심각했다가 다시 비슬비슬 웃음이 나왔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구라 바지 질질 끌고 유행가 콧노래를


불러가며 일대 횡렬을 지어가다가 늙었든 젊었든 여자만


만나면 우라질 년 하고 욕을 하고 처녀 뒤를 따라가며


입 좀 맞추자 덤벼드는 씩씩하고도 쓸모없는 어린 친구들."(p16)



그 시대의 여성 처우를 생각하면 솔직히 한숨이 안나올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시대보정을 하고 보자니 보잘 것 없는 객기도 우스꽝스럽고


그걸 묘사하는 금파리의 말도 재미났어요.


자동차 꽁무니에 달고 가는 당나귀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상상도 안가구요.


처음 하는 서울 구경에 눈이 휘둥그레 목을 빼고 있는 할아버지는 정겹습니다.


거리에 나앉아 짐을 펼쳐놓고 있는 고물상의 풍경이 흉물스럽긴 하지만


그것도 오늘의 풍경이라며 편들어주는 금파리가 기특하네요.


고종이 돌아가신 후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놓은 덕수궁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워요.


파수병 하나 없이 내쳐져 있었다니 그 신세가 너무 가련하잖아요.


경복궁 길을 막고 선 총독부 건물이나 경성 재판소의 살인자 얘기에는 화가 불뚝불뚝.



설렁설렁한 경성 제일의 먹거리 설랑탕 앞에선 군침이 쏴악 돌구요.


단돈 5전, 딸깃물 듬뿍 친 빙수를 먹고 아이 시원해! 탄성 한번 내지르고 싶어요.


탑골 공원에 모여있는 룸펜이나 당구장에 또드락 공 부딪히며 놀고 있는 청년들을 보는 심경은 복잡한데


공원에 심어놓은 나무 수보다 낮잠 자는 룸펜의 수가 더 많았다니 이거 참 한심도 했다가요.


젊은 사람들이 오죽이나 할 일이 없었으면 저리했을까 안쓰러운 마음도 큽니다.


노느라 하루 해를 보내는 사람도 뜨거운 볕 아래서 땀흘리던 사람도


그래요, 모두 다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휴.....



2, 3원 많게는 10여 원씩 하던 책값 얘기에 눈이 휘둥그레.


솔직히 말하면 감은 1도 안잡히지만 지금도 비싼 책값이 저때라고 싸진 않았을 거에요. 그죠?


경성도서관 종로 분관에 앉아 기침 소리 하나 안내고 저도 같이 열독하고픈데


금파리 녀석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얼른 나가야 한답니다.


이 귀여움 무엇>_<



화신백화점, 종로야시, 경성운동장, 마작구락부, 조선 극장, 아편굴, 서대문 형무소 등등.


토지도 읽었고 일제시대 역사에 아주 손놓고 살지는 않았던 독자인데도


처음 만나는 듯 어색하고 낯설고 그래서 신기하고 호기심이 이는 풍경들이 참 많았어요.


금파리와 함께 1930 경성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노니는 시간이 뜻깊고 재미났습니다.



판형이 아주 크고요.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삽화가 인상적인 책이에요.


안내자가 금파리라서 그런지 설명들도 아기자기


읽기도 보기도 감상하기도 참 편안하고 매력적인 책입니다.


역사와 관련한 오숙진 작가님의 다음 그래픽북도 기대하며 기다릴게요.




📕이야기나무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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