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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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특이한 사건들을 힘들여 적기보다는 대부분의 사건을 개략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데, 이 점에 대해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역사를 편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웅들의 삶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모습을 보면, 몇천 명이 죽은 전쟁이나 엄청난 무기 또는 도시의 함락과 같은 이야기보다는 한마디 말이나 농담과 같은 사소한 것들이 그 사람의 덕망이나 악행을 더 잘 표현해 준다..... 그처럼 나도 그 사람들에 담긴 영혼을 그려 냄으로써 그 사람의 생애를 그리고자 하며, 그들의 위대한 투쟁을 그리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려 한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렉산드로스전, p16)

모든 법에는 예외가 있듯이, 그 모든 실수를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다. 얼굴에 뾰루지나 사마귀가 생겼다고 해서 잘생긴 얼굴 전체에 얼룩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로스의 실수나 완전하지 못했던 행동 때문에 현자로서 누린 명예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의 비교, p227)

운명의 여신은 한없이 변덕스럽고, 역사는 유구하다 보니 역사에서 꼭 같은 사건이 여러 차례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를 지어내는 소재가 무한하다면 운명의 여신은 새로운 사건을 계속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사건을 엮어 낼 수 있는 소재에 한정이 있다면,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다가 어떤 때에는 같이 시대에 같은 사건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우연히 일어나지만, 마치 운명의 여신이 계산한 일처럼 느껴진다. (세르토리우스전, p281)





1. 알렉산드로스, "아들아, 너의 그릇에 맞는 왕국을 찾아보아라. 마케도니아는 너에게 너무 작다."



알렉산드로스는 출생에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필리포스왕인데 델포이 신전에서 다음과 같은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가 뱀의 형상을 한 귀신과 동침하는 것을 그대가 문틈으로 들여다본 적이 있으니, 그대의 눈이 멀게 되리라."(p17) 이는 이집트의 창세신 암몬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런 소문 탓인지 알렉산드로스의 모후인 올림피아스가 대왕의 원정 시 그의 아버지가 신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출처 분명의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 그의 출생날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는 불이 났는데 당시 모든 점성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때리면서 아시아에 재난을 몰고 올 원수가 태어났다며 울부짖었단다.


알렉산드로스는 일찍부터 야망이 커서 필리포스왕에게 물려받을 부동산이 많지 않기를 바랬다. 아버지대에서 국가가 부강해지면 그만큼 자신이 성공할 기회를 뺏기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활동적인 성격이지만 공부와 독서에도 취미가 있었 평소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여러 책 중 《일리아스》를 가장 아꼈는데 전쟁통에 가져간 것은 물론이오 잠잘 때도 베개 밑에 단검과 함께 놓고 잠들었다. 철학자를 찾아가 교류도 많이 하고 정복지에서 유명한 선생이 있으면 스승으로 초청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디오게네스와의 만남은 너무 유명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왕의 스승이었다는 건 좀 신기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다양한 면모를 알려준다. 격양된 바보처럼 보였던 전투부터 시작해 술을 먹어 허풍 떠는 사병 같아 보였던 연회, 장교 41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술자리(순수하게 술만 먹다가 죽음),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따라다니던 호메로스가 게으르고 쓸모없는 동반자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정책들, 적으로 부터 칭송을 자아낸 포로 처우, 편지에 적힌 1만장의 글씨(=잔소리)를 모두 지워버리는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로 표현되는 효심, 무섭게 자신을 단련하고 확고한 의지와 지혜로써 이룩한 승리들, 배신과 병마, 죽음까지 말이다. 알렉산드로스전은 정말이지 아쉬운 페이지가 한 장도 없었다. 아니구나 참. 딱 하나 아쉬운 건 로맨스? 알렉산드로스 인생엔 의외로 거대한 로맨스나 치정 사건이 없었다. 한번에 많이 또 오래 마셔서 그렇지 생각만큼 술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여자 문제에서도 꽤 담백했는데 많은 후궁들에게 성병을 퍼트린 아버지의 방탕함에 지레 질린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로마의 내전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다툼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우정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귀족 정치를 무너뜨리고자 함께 일했지만, 일단 그러한 작업에 성공하자 서로 싸웠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전, p147)

카이사르의 군대는 자비를 베풀 뿐 자비를 받지 않는다. (카이사르전, p152)

(갈리아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전쟁을 치른 지역의 험준함이라는 점에서, 정복한 지역의 광활함이라는 점에서, 깨트린 적군의 수와 막강함이라는 점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배은망덕한 부족들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포로들에게 보여 준 이성과 따뜻함이라는 점에서, 병사들에게 준 선물과 호의라는 점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르고 가장 많은 적군을 죽였다는 점에서 카이사르는 다른 장군들을 뛰어넘었다. (카이사르전, p151)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메난드로스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을 직역하면 "주사위를 던져라" 또는 "던져진 주사위이다"에 가깝다. (카이사르전, 주석, p173)

운명은 예상하지 못한다기보다는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카이사르전, p209)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카이사르에게는 율리아라는 딸이 있었다. 율리아는 이미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와 약혼한 터였음에도, 카이사르는 그 딸을 [자기보다 여섯 살 연상인] 폼페이우스와 약혼시켰다. 그리고 세르빌리우스에게는 폼페이우스의 딸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의 딸은 이미 정혼하여 술라의 아들 화우스투스에게 시집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카이사르는 피소의 딸 칼푸르니아를 네 번째 아내로 맞이하더니 이듬해에는 피소를 집정관으로 당선시켰다. 이에 카토가 맹렬히 저항하면서 혼맥으로 몸을 팔아 최고위직에 오르고, 여자를 수단으로 서로 도와 권력과 군대와 영지를 차지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노라고 외쳤다. (카이사르전, p149)



2. 카이사르, "인간이 살다 보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한 번이어야 한다."




로마의 종신 독재관이었던 카이사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내가 최초로 읽은 로마 역사서였는데 그 책을 통해 카이사르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키웠던 모양이다. 흠을 짚어주는 장면들을 굳이 기억하지 않았던 탓일까? 사실 못한 거일 확률이 높지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이 남자 상당히 야비하다. 그리고 그 야비한 모습이 꽤 충격적이다. 내 안의 카이사르는 부패와 방탕함으로 병든 로마를 일깨우는 개혁가의 이미지였건만.... 아뿔사, 개혁을 외치는 독재자이기에 앞서 그또한 힘과 권력을 욕망하는 한낱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도 지위도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와, 이런 복잡한 약혼과 결혼과 이별은 상상도 못했다. 한편 권력을 위해서는 치정 문제에 상당히 대범한 면도 있어서 자신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던 클로디우스가 호민관이 되도록 놓아 두기도 한다.


가냘픈 몸, 희고 여린 피부, 늘 따라다니는 두통, 간질.... 카이사르 아닌 것 같지만 모두 카이사르에 대한 묘사이다. 허약함을 핑계대지 않고 어려운 군대 생활을 자신의 허약함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생각했다는 정신력만큼은 인정! 전투를 기록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필경사를 두 명 이상씩 데리고 다녔으며 여색을 밝힌 것과는 별개로 음식에는 무심했다. 허름한 오두막에 묵어가는 날에는 무리에서 가장 약한 시동에게 가장 좋은 잠자리를 양보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아꼈으나 폼페이우스를 따라가는 것으로 배신한 부관에게 짐과 돈을 챙겨보내기도 했단다.


영웅들 중에서 판단하기가 제일 복잡한 부류의 사람이었는데 그런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걸 솔직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플라톤은 영웅은 위대한 덕성과 엄청난 마성을 함께 지녔다고 말하는데 카이사르를 보면 그 말이 꼭 맞다.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 편은 재미와 존재감 때문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끝판왕을 만나는 기분을 들게 했고 이때 느낀 고양감 탓에 카이사르전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른 편을 읽을 의욕이 저하되어 무척 애를 먹었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팁을 드리자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니만큼 4권 뒤쪽의 다른 영웅들을 먼저 만난 후에 앞으로 돌아와 이 두 명의 영웅을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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