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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19년 7월
평점 :
태풍이 오는 이틀 밤을 연달아 제 12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과 2019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을 읽었다. 어쩌다 보니 둘 다 성장소설 또 어쩌다 보니 둘 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었다. <페인트>의 제누 301은 NC 센터에서 국가의 돌봄을 받으며 양부모가 될 자들을 면접할 권리를 얻어 심사하는 중이다. 한 때는 부모로 삼고 싶을 만큼 마음에 딱 차는 이가 없었고 꽤 마음에 드는 이들을 만난 후에는 그 자신 자식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관계를 고사한다. 어째서 부모에게만 자격이 필요한가? 자식에게도 마땅히 그 자격의 충분, 불충분을 살펴야 하지 않는가? 아이를 책임지는 공정한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굳이 부모를 고르지 않아도 되는 문제 아닌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고르겠느냐고 질문하며 시작한 소설이 주는 두번째 세번째 의문에도 마땅히 공감하며 책장을 덮고 났더니 이번엔 릴레이라는 육상 종목처럼 자꾸만 부모라는 주자가 바뀌어버린 소녀 유코를 만나게 된다. 현재의 성은 모리미야 유코. 엄마는 두 번, 아버지는 세 번이나 바뀐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의 주인공이다.
친어머니는 3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유코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때에 새어머니 리카를 만났고 다시 4학년 때 리카와 친아버지가 이혼하며 아버지는 브라질로 떠난다. 당시 유코의 부모님은 유코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아빠와 브라질에 가서 살거나 새어머니 리카와 일본에 남아 둘이서 지금처럼 살거나. 이제 4학년이 된 유코에겐 너무나도 가혹하고 실상 어처구니 없고 무책임했던 이 질문으로 유코의 인생은 많은 부분이 복잡해졌다. 친아버지와는 결국 연락이 끊어졌고 유코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즉흥적인 리카의 삶에 한 꼬투리로 엮어 이후로 두 번이나 더 아버지가 바뀌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성이 바뀐 아이도 세상에 유코 말고는 없지 않을까? 세번째의 이혼 때에 혼자 집을 나간 리카 때문에 유코는 결국 스무살도 차이가 나지 않는 젊은 새아버지 모리미야와 남겨졌다. 아량이 넓달지 엉뚱하달지 허당 같달지 유코는 당연히 내 자식이라며 내치지 않아준 모리미야 덕분에 아이는 벌써 3년이나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중이고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대학진학을 준비 중이다. 남다른 가정환경과 기상천외한 아버지를 둔 유코의 학교생활과 첫사랑, 이성교제, 대입 그리고 결혼까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인 남자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딸인 소녀와 그 밖의 많은 어른들이 예상치 못한 웃음들을 빚어가며 따뜻함을 남기는 만화 같은 소설, 읽기 전까진 정말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배경은 현대인데 이보다 더 판타지스러울 수 없을만큼 낙낙히 좋은 사람들만 등장하는 책이다. 새어머니가 남편을 선택할 때마다 그에 대한 아무런 의사도 내비치지 못한 채 덩달아 새로운 환경에 놓여져야 했던 유코가 만난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이 유코에게 쏟아준 따뜻한 사랑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불평하지 않고 덜 고뇌하며 새아버지들에게 적응하는 유코는 감탄이 나올만큼 강인한 소녀다. (가만 보면 유코의 성격이야말로 판타스틱한 이 소설의 묘미인지도^^)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어른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친아버지와 새어머니, 새아버지들 모두가 그 나름의 입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부모 노릇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다 못해 스치듯 등장하는 담임 선생님과 이웃 할머니마저 무척이나 어른스럽게 유코를 도닥인다. 넘겨받은 유코라는 바통을 최선을 다해 안아 달리고 또다른 훌륭한 어른에게 넘겨준다. 부모가 되는 건 두 배의 미래를 가지게 되는 것, 내일이 하나 더 생기는 경이라고 말하는 새어머니 리카와 그에 동의하는 새아버지 모리미야. 아이들을 보는 세상 모든 어른들의 마음이 이러하다면,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 내 이웃의 아이를, 내 가까운 곳의 아이를 내일처럼 보살피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페인트>의 제누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껑충한 아기가 디디고 올라갈 세상이라는 계단이 한결 편안하고 든든할텐데. 반성하고 공감하고 깨달으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