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하권을 읽고 있다. 피쿼드호는 이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에 진입했으며 향유고래 한 마리 사냥에 성공했다. 읽다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가끔 나온다. 원문을 찾아보며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인용문의 밑줄은 모두 내가 추가한 것이다. 


사냥하여 죽인 향유고래를 어떻게 해체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67장). 고래는 배 옆에 고정되어 있다. 고래 가죽을 벗기는 과정에 대한 얘기. 


  제일 먼저, 으레 녹색을 칠하는 도르래의 여러 육중한 장치들 중에서 커다란 절단용 도르래는 혼자서 도저히 들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이 엄청난 포도송이를 휘청휘청 주 돛대까지 끌어 올린 다음 갑판에서 가장 튼튼한 뒤쪽 돛대 꼭대기에 단단히 묶는다. 이제 이 복잡한 장치를 들고 나는 닻줄 같은 밧줄 끄트머리를 양묘기에 연결하고, 도르래의 커다란 아래쪽 토막을 고래를 향해 내리는데 여기에는 무게가 50킬로그램에 달하는 커다란 갈고리가 달렸다. (40 페이지)


도르래 뭉치("이 엄청난 포도송이")를 돛대에 고정하는 설명이다. 밑줄 친 부분을 보면 도르래 뭉치를 주 돛대까지 끌어올린 후 뒤쪽 돛대 꼭대기에 묶는다고 나온다. 주 돛대로 끌어올린 후 왜 뒤쪽 돛대에 묶지? 뭔가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 그림이다. 다음은 원문이다.


  In the first place, the enormous cutting tackles, among other ponderous things comprising a cluster of blocks generally painted green, and which no single man can possibly lift—this vast bunch of grapes was swayed up to the main-top and firmly lashed to the lower mast-head, the strongest point anywhere above a ship's deck. The end of the hawser-like rope winding through these intricacies, was then conducted to the windlass, and the huge lower block of the tackles was swung over the whale; to this block the great blubber hook, weighing some one hundred pounds, was attached. (p. 330)


원문에서는 main-top으로 끌어올린 후 lower mast-head에 고정시킨다고 나온다. main top이 주 돛대의 어느 부분이라면 lower mast-head는 주 돛대의 아래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뒤쪽 돛대가 아니라 같은 주 돛대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상한 부분이 해소된다. 


그 다음 이상한 부분은 피쿼드호가 항해 중 만난 제로보암호의 고래—모비 딕—사냥 이야기(71장)에 나온다. 고래 사냥은 고래잡이 배에서 내린 작은 보트를 타고 한다(61, 62장 등에 설명이 나와 있다). 이 보트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2명이 있는데, 한 명은 항해사가 맡는 보트장이고 다른 한 명은 작살잡이다. 보트장은 보트 뒤쪽에서 키를 잡으며 보트에 탄 선원들—노잡이—를 지휘하여 보트를 고래가 있는 곳으로 가게 한다. 보트가 고래에 접근하면 보트 앞에서 다른 선원들과 함께 노를 젓던 작살잡이가 일어나 밧줄에 연결된 작살을 고래에게 던진다. 작살이 고래에게 명중하면 고래는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작살이 단단하게 박혔다면 고래는 결국 한참을 도망치려 시도하다가 힘이 빠져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 보트장은 작살잡이와 자리를 바꿔 보트 앞으로 가서 고래를 창으로 마구 찔러 숨통을 끊는다. 바다가 피로 물드는 잔인한 장면이다. 그런데 다음 장면을 보자. 


항해사 메이시가 보트 앞머리에 서서 자기 부족 특유의 거침없는 에너지로 고래를 향해 격렬한 외침을 토해 내며 작살을 던질 기회를 노리는데, 이런! 커다란 흰 그림자가 바다에서 솟구치더니 부채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에 노잡이들은 잠시 숨을 죽였다. (59 페이지)


고래는 이미 작살을 맞았다(몇 줄 위에 “마침내 작살 하나를 깊숙이 꽂는 데 성공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고래에게 항해사가 다시 작살을 던질 기회를 노린다니? 원문은 이렇다. 


Now, while Macey, the mate, was standing up in his boat's bow, and with all the reckless energy of his tribe was venting his wild exclamations upon the whale, and essaying to get a fair chance for his poised lance, lo! a broad white shadow rose from the sea; by its quick, fanning motion, temporarily taking the breath out of the bodies of the oarsmen. (p. 345)


항해사는 작살(harpoon)을 던질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창(lance)으로 찌를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부분. 제로보암호의 선장 일행이 타고 온 보트로 편지를 건네주려고 하는 장면이다. 몇 년씩 항해하는 고래잡이배들은 서로 편지를 싣고 와 전해주기도 한다. 제로보암호에 전염병이 돌아 보트 위의 사람들은 피쿼드호로 올라오려 하지 않는다. 


그[에이해브]가 편지를 들여다보는 동안 스타벅은 길쭉한 삽자루를 가져왔는데, 칼로 끝을 살짝 찢은 편지를 삽자루에 끼워 보트를 배에 더 가까이 대지 않고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61 페이지)


뭔가 부자연스럽다. 편지 끝을 칼로 살짝 찢어 삽자루에 끼운다니? 다음은 원문.


As he was studying it out, Starbuck took a long cutting-spade pole, and with his knife slightly split the end, to insert the letter there, and in that way, hand it to the boat, without its coming any closer to the ship. (p. 346)


원문을 보면 칼로 삽자루 끝을 조금 쪼개 그 틈에 편지를 끼워 보내려 함을 알 수 있다. 훨씬 자연스럽고 튼튼한 고정 방법이 아닌가? 왜 편지 끝을 찢어 끼운다고 했는지... 


이 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제 제로보암호는 떠났다. 그런데...


  막간극이 끝난 후 고래 가죽을 벗기는 일을 다시 시작한 선원들은 이 엉뚱한 사건과 관련된 기이한 얘기들을 한참 주고받았다. (62 페이지)

 

“고래 가죽을 벗기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나온다. 고래 가죽은 이미 다 벗겼고 고래 몸통은 떠내려 보낸 후인데 다시 고래 가죽 벗기는 일을 한다니? 


  As, after this interlude, the seamen resumed their work upon the jacket of the whale, many strange things were hinted in reference to this wild affair. (p. 347)


원문은 고래 가죽을 벗기는 일이 아니라 ‘고래 가죽에 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나온다. 고래 가죽 해체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다시 가죽을 벗긴다고 하니 헷갈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는 우리의 지식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담는 데 실패한다. 언어가 정말로 담는 것은 통제하려는 우리의 시도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어에 매달린다.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고, 숫자를 매기고 중요도를 합의하고, 무언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묘사한다. 경외, 역겨움, 공포,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우리가 붙인 이름에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가끔 나는 과학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름을 붙이는 것. 볼 수 있는 것, 추론할 수밖에 없는 것,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에.

  과학자란 자연 세계의 시인인가? 아니면 시인이 상상 세계의 과학자인가? 시만큼 긴 이름들, 과학 논문만큼 긴 이름들, 양쪽 다 우리가 언어라 칭하는 이름들로 적혀 있다. 우리는 이름을 짓고 이 이름들을 후대에 남겨주고 그런 뒤에 죽는다. 목구멍에 마지막 숨이 걸린 채로. (33~34 페이지)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라지고 없다. 작약은 전성기를 누렸고, 넘치도록 충분하게 누렸다. 그토록 순수한 것이 불멸이라는 지옥에 갇혀서는 안 된다. (57 페이지)


  결말이 의미를 만든다. 죽음은 영원한 의미 생성자인데, 오로지 죽음 속에서만 어떤 새로운 것이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것이 망각과 불확실성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새로운 몸속에서 세계를 헤매었고, 감각이 주는 황홀한 기쁨과 창작과 발견이라는 지적 자극을 받아들였으나 이는 모두 끝났고, 바로 끝났기 때문에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내 사랑들은 그 경험에 적절한 의미를 주기 위해 끝나야만 했으나 나 자신이 끝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나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내 심장을 단단하게 굳혔다. 나는 내부로 침잠했고 곧 내 안에서 질식했다. 삶은 독이다. 모든 독이 그러하듯 적은 용량은 치료제이지만 많은 분량은 치명적이다. 그리고 나는 삶을 너무 많이 맛보았다. (152 페이지)


삶이 행복하게 끝나든 슬프게 끝나든 차이점은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 좋든 나쁘든 지구에서 살아 있는 동안 가졌던 선명하게 의미 있는 순간들이 가지는 무게뿐이 아닌가? 그 무게가 결국은 우리를 진정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284 페이지)


  유전자가 우리 삶의 서사를 엮는 몇 줄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모든 코드도, 문학도 그러하지 않은가? 이들은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한다. 우리는 이들을 영속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야기를 영속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저 매개체일 뿐이다. 우리는 몸으로, 삶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죽는다.

  이야기는 계속 남는다. (306~307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번역가이자 작가인 안톤 허가 영어로 쓴 과학소설이다. 그가 영어로 번역했던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런 사실이 재밌어서, 그리고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언어와 시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영원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희망과 사랑의 힘도. 이 책을 과학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나노기술과 인공지능을 소재로 했기 때문인데, 난 그가 보여준 전개 방식이 과학적으로는 큰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과학적 소재는 단지 그의 생각을 펼쳐 보이기 위한 은유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딱한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좀 더 정통적 과학소설을 내가 더 좋아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가 석사 공부할 때 전공했다는 19세기 영시가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흥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국인이 썼음에도 한국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상 깊었던 시 하나를 정보라의 번역과 원문으로 다음에 옮겨 놓는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춰줄 수 없어서'이다.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춰줄 수 없어서

죽음이 친절하게 나를 위해 멈추었네

마차에는 우리들만 타고 있었네

그리고 불멸이.


우리는 천천히 타고 갔네— 그는 서두름을 알지 못했고 

나는 치워두었네 

나의 노동과 여유를, 

그의 정중함 때문에


우리는 학교를 지났고 아이들이 힘쓰고 있었네

쉬는 시간에 고리 속에서

우리는 바라보는 곡식들의 들판을 지났네

우리는 저무는 해를 지났네


아니 차라리 그가 우리를 지났네

이슬이 떨림과 냉기를 끌어내었네

내 드레스는 오로지 얇고 가벼웠으며

나의 숄은 오로지 그물 비단이었으니


우리는 어느 집 앞에서 잠시 멈추었는데

그 집은 땅이 부풀어 오른 듯 보였네

지붕은 거의 보이지 않았네

처마 장식은— 땅속에


그때부터 수 세기였네 그런데도 

그날보다 더 짧게 느껴지네 

내가 처음 짐작했던 날, 말들의 머리가 

영원을 향해 있다고 (289~290 페이지)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in the Ring—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We passed the Setting Sun—


Or rather—He passed us—

The Dews drew quivering and chill—

For only Gossamer, my Gown—

My Tippet—only Tulle—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The Cornice—in the Ground—


Since then—’tis Centuries—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ueyonder 2025-09-1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이상한 부분 하나:
301페이지(‘크리스티나‘ 챕터)를 보면 ˝‘이주‘ 이후에 난 10년 정도 보존 처리 됐어.˝라고 알레프가 말한다. 하지만 303페이지를 보면 ˝알레프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90년 동안 보존 처리되었던 것이다.˝라고 나온다. 둘 중 무엇이 맞는지? 원문의 실수인지, 아니면 번역 과정의 실수인지?
 















<세 개의 쿼크>를 읽다가 발견한 오식 2개만 지적해 놓는다. 


  쿼크로 이루어진 모든 강입자는 무색이다. 중입자는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지만, 중간자는 쿼크 한 개와 반쿼크 한 개로 되어 있다. 반쿼크의 색깔도 정해줘야 한다. 빨간 쿼크에 대응되는 반쿼크는 노란(vellow)색이 되고, 초록 쿼크에는 심홍색(magenta) 반쿼크, 파란 쿼크에는 청록색(cyan) 반쿼크가 대응된다. 이렇게 쿼크와 반쿼크에 색깔을 부여하면, 쿼크와 반쿼크로 이루어진 중간자도 무색이 된다. (262 페이지)


반쿼크의 색깔에 오류가 있다(밑줄 친 부분). 빨간 쿼크에 대응되는 반쿼크는 청록색이고, 파란 쿼크에 대응되는 반쿼크는 노란색이다[*]. 382페이지에는 올바르게 언급되어 있다. 


... 수병들의 반란은 시민과 노동자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1918년 11월 4일 저녁, 킬은 혁명군에게 점령 당했다. 혁명의 불길은 독일 전역으로 거세게 번져나갔다. 1919년 11월 9일, 베를린에서는 빌헬름 2세의 퇴위가 발표되었고, 독일이 민주 공화국임이 선포되었다. 빌헬름 2세는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적을 눈앞에 두고 베를린을 향해 진격할 수도 없었다. 황제는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11월 혁명'이라고도 부르는 이 무혈 혁명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390 페이지)


빌헬름 2세는 1919년 11월 9일이 아니라 1918년 11월 9일에 퇴위했다. 킬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킨지 며칠 안 되어서다. 


위의 오식이 이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이 책이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저자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

[*]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Color_charg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개의 쿼크 - 강력의 본질, 양자색역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김현철 지음 / 계단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에는 네 개의 근본적 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그리고 강력이다. 전자기력은 전하를 통해 물질(원자)의 구성에 기여하며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약력은 핵의 붕괴에 작용하는 힘이고, 강력은 핵을 결합하는 힘이다. 전자기력과 약력은 전기약력으로 통합되었으며, 강력은 양자색역학으로 설명되었다. 전기약력과 양자색역학은 모두 양자장론에 기반한 '게이지이론'의 틀로 이해되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으로 알려지게 된다. 단, 중력만은 위의 통합 노력에서 벗어나 아직까지 별개의 '힘'으로 취급된다. 중력과 나머지 세 개의 힘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양자중력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며, 초끈이론도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다. 


김현철 교수의 <세 개의 쿼크>는 강력을 설명하는 양자색역학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그 역사와 물리학자들의 삶과 일화와 의의를 일일이 짚어가며 우리 앞에 펼쳐 보여준다. 워낙 다양한 인물과 물리적 내용이 논의되므로, 읽을 때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난 후 온전히 기억하기는 어렵다. 자연현상에 숨어 있는 규칙을 발견하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노력에 대한 감탄과 여운이 깊게 남는다. 읽으면서 이러한 세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집대성한 저자의 연구 분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강력에 대한 3개의 시리즈 중 <강력의 탄생>을 잇는 두 번째 책이다. 세 번째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으며, 1979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책 속 구절을 다음에 인용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세상을 이루는 건 아토모스(atomos)와 공허뿐이라고 주장했다. 물질을 이루는 아토모스와 원자가 숨 쉴 공간인 공허. 오늘날 진정한 아토모스는 쿼크이고, 공허는 양자색역학의 진공이었다.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진공 속에 전자 하나를 두면, 진공에서는 음전하와 양전하가 생겨났다 없어지길 끝없이 반복한다. 그래도 이건 양자전기역학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다루기가 까다롭지만 풀 수 있다. 그러나 양자색역학에서 진공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끔찍할 정도로 어렵다. 그리고 쿼크는 강입자 속에 영원히 갇혀 있고, 그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할 수학적인 방법은 여전히 부재하다. 강력의 근본 이론을 찾았다고 해서 종착지에 도달한 건 아니다. 이제 절반을 이뤘고, 강력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다. (434~435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