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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달 위를 걷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3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09년 5월
평점 :
열세 살 소녀 살라망카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기나긴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이란 단어가 주는 즐거움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집을 떠난 엄마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여행이다. 엄마의 부재만으로도 혼란스러울때 아빠는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시골집을 떠나온다. 아빠에 대한 원망도 생긴다. 엄마가 왜 집을 떠나야 했는지, 왜 돌아오고 있지 않는지 살라망카는 궁금하지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그저 아빠가 다른 여자를 바라본다고 원망만 하고 마음을 멀리한다.
엄마가 들렀던 모든 도시를 되짚어가는 여행중에 살라망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엄마의 그리움 그리고 마음 깊이 자리잡은 슬픔을 말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사랑하지만 말을 할 수 없다. 자기의 고집으로 그것을 꼭꼭 닫아둘 뿐이다. 오랜 여행 지루함과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자 살라망카는 여행 내내 친구 피비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시골에서 이사와서 알게 된 옆집 소녀 피비도 고집불통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어른스러워 하는 아이다. 살라망카는 피비와 같은 또래의 소녀들처럼 옷에 신경쓰고 머리 스타일에 신경쓰는 일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하다못해 조그마한 벌레조차 못잡는 그런 소녀들과는 다르다. 아마도 서로 너무 다른 두 아이였기에 피비와 살라망카는 가까워질 수 있었나보다.
어느날 갑자기 피비네 주변에 나타난 낯선 청년과 현관에서 발견되는 뜻모를 쪽지는 피비네 가족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는 사건이 된다. 사건으로 인해 살라망카는 자신의 가족과 주변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스스로 어른이라 느끼기 때문에 자기를 아이로만 여기는 부모들에게 반항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넓은 사랑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든든한 부모를 디디고 세상으로 나가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부모의 부재란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다. 단지 어른인척 하였기 때문에 어른처럼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다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속마음은 찢어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겉으로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행동을 하게 되며, 주변의 친구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할땐 오히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충고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아이들의 고민과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이들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라망카가 자동차 여행을 통해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천천히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도착하는 도시에서의 일들은 결국 살라망카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또다시 자기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아픔을 이겨 나가는 디딤돌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뉴베리상, 미국 어린이 도서상,스마티즈 북 상, 영국독서협회 상 수상작이라는 자랑에 맞게 이 책은 정말 잔잔한 마음의 아련함을 남겨준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를 읽어가면서 언제 변한지도 모르게 성숙된 살라망카의 모습과 그것을 읽어 가고 있는 나의 모습 역시 좀더 생각이 깊고, 좀더 넓은 시선을 갖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딸로서 부모를 바라보는 마음과 어느덧 부모를 이해하고 있는 살라망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아하. 이것이구나. 내가 어른이 되었던 시점이 이때였고, 나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시점이 이럴때 이겠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빠의 보호를 받던 살라망카는 어느덧 작은 어른으로 변해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그런 멋진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또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삶이고 인생인 것이다.
피비와 벤과 그리고 살라망카는 아주 정상적인 자람을 하고 있다. 그것이 때론 어른들의 사건으로 계기가 될 수 있고, 때론 어른들의 삶으로 내가 슬픔을 겪을 수도 있지만 내가 상대방이 될 수 있고, 상대방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깊은 인생의 뜻을 알게 된다.
부모들의 삶도 그리고 내 아이들의 삶도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달려가는 하나의 여행이다. 인생이란 이런거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지금 내게 있는 사람들이 인생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을 살라망카의 긴 여행을 통해서 얻어가길 바란다.
좋구나 좋아. 살라망카의 할머니가 말하는 것처럼 인생이란 좋은 것이니까.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위를 걸어 볼 때까지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책머리에 나왔던 이 말이 주는 의미를 알았다면 그는 분명 멋진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주는 의미를 느꼈다면 우리의 아이들 역시 멋진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