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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평점 :
<2017년 8월 14일>
저스티스맨 by 도선우 - 현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목소리를 읽다
평점 : ★★★★
실제 읽은 날 : 2017.07.17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말하는 의도, 생각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가 말하는 음악이나, 책이나, 영화등등을 따라가는 작업도 책을 읽는 것에 대한 한 부분이다.
물론, 작가와 똑같이 밟아나갈 순 없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하면서 '잭슨 폴록'이 누구인지 찾아 보는 것으로 작가에게 다가간다.
잭슨 폴록 작품들과 이 소설의 이야기는 어떠한 연결점을 가지고 있을까?
작가가 '잭슨 폴록'의 작품을 차례의 제목으로 사용한 이유에 대해 작가의 말에서는 꺼내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을 글에 나타난다.
'흡사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같았다.'.....라고!
살인범이 피해자를 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피가 튀는 흔적과도 똑같은 선과 면이 나타나 있는 잭슨 폴록의 작품을 찾아 본다.
작은 휴대폰 크기로 그 작품들을 본다. 그리고, 느껴본다.
사방으로 튀어 있는 다양한 사이즈의 방울들 혹은 튄 흔적들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 악의의 발현인지...
나에게 또 모든 인간들에게 저런 사정없는 무늬들의 악의가 내재되어 있을지....
만약 모든 인간에게 악이 내재되어 있다면 동시에 선도 내재되어 있다면 선이 이겨 악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연쇄적이고 연결점이 있다는 글이 '저스티스맨'이라는 닉넴의 누리꾼이 운영하는 카페에 올라온다.
연쇄살인 사건 일곱 건의 공통점, 사건의 근본 동기, 구제적 연관성등을 브리핑해 놓은 그의 글은 회원들의 신뢰뿐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악을 처단하는 사회적인 영웅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평범한 영업직의 20대 직장인이 어느 날, 잠시의 실수로 '오물충'이 되어 버린다. 그가 의도한 바가 절대 아니나, 원본 사진부터 개인 정보까지 속속들이 털린 그는 더이상 그가 속했던 사회뿐 아니라 가족과도 있을수가 없었다. 그 후로 그의 행적은 묘연해지고, 연쇄살인범의 첫 번째 피해자는 최초로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이다...
(P.17) 그도 그렇게 스스로 인식하는 자신의 모습보다 남들이 일러주는, 이를테면 가족이라든가 선생들이 평가하는 인격이 오롯한 자신의 모습인 걸로 알고 살아가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그는 내면에서 억눌린 채 수평으로만 팽창하는 본연의 자아를 인식하지 못했고, 몰랐고, 오로지 끊임없이 무언가가 엇나가고 빗나가는 그때의 나날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P.22) 그가 그런 자신의 처지를 적확하게 인지하고 비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던들, 그가 바꿀 수 있는 환경이란 없었다. 그나마 영업직이니 그가 설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을 뿐 다른 직장이란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그에겐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떠날 용기가 없었다.
그는 그냥 그렇게 살았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부르면 대답하는 일이 그에겐 가장 편하고 흔한 일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요점을 추릴 필요도 없다. 위의 문장에 그대로 나와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남의 시선으로 살고 있는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 있고,
나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 있고,
나는 글재주가 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성적인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저 나 어릴 적 엄마의 사고로 너무 빨리 철이 들어 버려서 그런 것 같은데, 나도 흥도 참 많은 것 같은데, 나도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은데..
내가 무얼 잘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40년, 과연 그 세월동안 진짜 나로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지만, 그 역시 알 수가 없다.
물론, 내 자신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타인에 대해 너무 쉽게 결정을 내린다. 나와 무엇인가가 다르면 틀린 것이 되어 버리고, 적이 되어 버린다.
무리라도 있을라치면 순식간에 많은 인원이 적이 되어 돌아서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를 두려워한다.
혼자서 많은 이들을 대적하려면 힘이 세야 하니까, 힘을 약한 개개인의 우리는 무리를 찾아 스며 들고, 무리와 비슷해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나를 잃어간다.
나를 찾을 기회도 없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찾을 겨를도 없이,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내기 위해 그렇게 나를 숨기며 산다.
나 뿐만이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그렇게 사는 것이다.
(P.68) 그는 후배 수사관과 식당에 앉아 설렁탕의 당면을 건져내면서, 그러니까 세상에 문제가 없는 가정이란 없는 거고, 누가 더 그 문제를 잘 감추거나 견디고 지내는가에 따라 행복의 지표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거라며, 또 그러니까 너만 시도 때도 없이 잠복근무에 외박이 잦아 가정이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각자의 사연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이나, 요컨대 문제는 문제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얼마나 잘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라고 설파했다.
(P.136)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은밀한 암투에 그들이 왜 그리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실생활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그곳에서 새로이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 그것은 먹고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인간의 최대 욕망이었으므로, 인터넷상에서 시작된 인간 관계라고는 해도 그 세계가 실생활에서 완전히 괴리된 공간은 아니었다.
...........
(p.137) 운영자. 표면상으로는 수많은 임원과 함께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카페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기실 핵심적인 결정 권한은 오롯이 그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간혹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임원 혹은 회원들이 존재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지만 결국 떠나는 건 개인이지 집단일 수 없었다. 운영자는 실상 옳고 그름을 떠나 그에게 완전히 붙어 움직이는 사람들이 존재했으므로 개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형태는 개인이었지만 집단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읽기가 힘들었던 책이었다.
쉼없이 읽다가 호흡이 껄떡거려지면 앞의 문장이 사그리 잊혀져버리는....
그래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처음 문장으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에 책날개에 나온 작가의 모습을 몇 번이나 째려봤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 적응이 되니 긴 호흡의 글에서 주는 강렬함이 매력적이다.
마치 사회고발하는 대자보를 보는 느낌처럼 말이다.
이 책은 최근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낸다.
획일된 교육관에 묻혀져 버리는 개인들의 생각들과 재능,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성, 인터넷 속의 가상 세계에서만 날뛰는 비겁한 손가락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적 관점이 팽배한 현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목소리를 낸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막힘이 없다.
강자가 아닌 약자를 위한 책이다.
약자들을 대신해 버럭대주니 가슴 어느 한 쪽이 후련해지는 고마운 책이다.